||<-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0032a9><bgcolor=#0032a9> '''{{{#ffffff 역대 [[칠레|{{{#ffffff 칠레}}}]] 대통령}}}''' || ||<-5>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Coat_of_arms_of_Chile.svg.png|width=250]] || ||<width=30%><bgcolor=#0032a9> {{{#ffffff 10대}}} ||<bgcolor=#0032a9> {{{+1 {{{#ffffff →}}} }}} ||<bgcolor=#0032a9><width=30%> {{{#ffffff 11대}}} ||<bgcolor=#0032a9> {{{+1 {{{#ffffff →}}} }}} ||<bgcolor=#0032a9><width=30%> {{{#ffffff 12대}}} || || 도밍고 산타 마리아 || {{{+1 → }}} || '''호세 마누엘 발마세다''' || {{{+1 → }}} || 호르헤 몬트 || ||[[파일:JoseManuelBalmaceda.jpg|width=270]] || José Manuel Balmaceda [[1840년]] [[7월 19일]] ~ [[1891년]] [[9월 19일]] [목차] == 개요 == [[칠레]]의 제11대 [[대통령]]. == 생애 == 호세 마누엘 발마세다는 1840년 칠레 부카레무(Bucalemu)의 부유한 가정에서 12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산티아고]]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1864년 당시 칠레 대통령이었던 마누엘 몬트(Manuel Montt)의 비서로 정치 생활을 시작하였고, 1870년 의원으로 선출되어 칠레의 [[자유주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뒤 [[아르헨티나]] 주재 [[대사]]를 거쳐 도밍고 산타 마리아(Domingo Santa María) 대통령 밑에서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886년 자유당의 유일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98.18%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음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이 된 발마세다는 칠레의 근대화를 성공시키기 위해 각급 [[학교]]와 [[대학]]을 만들고, 낙후된 지역에 [[철도]]와 [[항만]]을 건설하는 등 광범위한 개혁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는 보수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의회 역시 발마세다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며 충돌하였다. 게다가 1891년에는 발마세다와 의회의 권력 분배를 놓고 [[내전]]이 일어났고, [[육군]]은 발마세다를, [[해군]]은 의회를 지지하며 서로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발마세다와 육군은 8월 28일 프라실라 전투에서 참패하였고, 이후 지지층의 신뢰마저 잃은 발마세다는 아르헨티나 대사관에 은신하다가 9월 19일[* 이 날은 그가 5년 전 대통령에 취임하였던 날과 같은 날짜이다. 즉 자신의 대통령 취임 5주년이었던 날에 자살을 한 것.] 결국 권총으로 [[자살]]하였다. [[분류:1840년 출생]][[분류:1891년 사망]][[분류:칠레 대통령]][[분류:자살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