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132448><tablebgcolor=#132448> '''{{{#ffffff 호르헤 포사다의 수상 경력}}}'''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4><table align=center>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 ||<bgcolor=#132448> '''[[1998년 월드 시리즈|{{{#ffffff 1998}}}]]''' ||<bgcolor=#132448> '''[[1999년 월드 시리즈|{{{#ffffff 1999}}}]]''' ||<bgcolor=#132448> '''[[2000년 월드 시리즈|{{{#ffffff 2000}}}]]''' ||<bgcolor=#132448> '''[[2009년 월드 시리즈|{{{#ffffff 2009}}}]]''' || ---- [include(틀:뉴욕 양키스 영구결번)] ---- }}} || ---- ||<-2><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132448>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ew_York_Yankees_designated_hitter_Jorge_Posada_(20).jpg|width=100%]]}}} || ||<-2><colbgcolor=#132448> '''{{{#ccac00 뉴욕 양키스 No. 20}}}''' || ||<-2><bgcolor=#c4ced4,#2a343a> '''{{{#132448,#b6c7ec 호르헤 라파엘 포사다 비예타 [br] (Jorge Rafael Posada Villeta)}}}''' || || '''{{{#ffffff 생년월일}}}''' || [[1971년]] [[8월 17일]] ([age(1971-08-17)]세) || || '''{{{#ffffff 국적}}}''' || [[푸에르토리코]] [[파일:푸에르토리코 기.svg|width=28]] || || '''{{{#ffffff 출신지}}}''' || 산투리세 || || '''{{{#ffffff 포지션}}}''' || [[포수]] || || '''{{{#ffffff 투타}}}''' || [[스위치 히터|우투양타]] || || '''{{{#ffffff 프로 입단}}}''' || 1990년 드래프트 24라운드 ([[뉴욕 양키스|NYY]]) || || '''{{{#ffffff 소속팀}}}''' || '''[[뉴욕 양키스]] (1995~2011)''' || || '''{{{#ffffff 수상}}}''' || '''4× World Series Champion (1998~2000, 2009) [br] 5× All-Star (2000~2003, 2007) [br] 5× AL Silver Slugger Award (2000~2003, 2007)''' || [목차] == 개요 ==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와 함께 '''코어 4'''라고 불렸던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주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말년에는 지명타자로 활동했다. 여담으로 월드시리즈 반지는 4개다. 1996년 월드시리즈는 양키스 소속이었지만 출장을 안 했다. == 선수 경력 ==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에는 포수가 아닌 내야수였고 타격도 우타자였다. 후에 아버지의 도움으로 현재의 포사다가 되었다. === [[뉴욕 양키스]] === [[1990년]] 드래프트에서 24라운드, 전체 646위[* 입단 동기가 앤디 페티트인데, 페티트는 594위로 입단했다.]로 뽑혀 양키스에 입단한다. 드래프트 순위와 나이를 보면 알 수 있듯 즉전감은 아니었다. 지명 당시에는 포수와 내야수(주로 2루수)를 봤으나 포수로 쓰기엔 송구 능력이 떨어지고, 내야수로 쓰기에는 어린 나이를 감안해도 돌글러브 기질이 심했다. 그러나 포수를 볼 수 있으면서 타격이 괜찮아 로우 A부터 트리플 AAA까지 차곡차곡 한 단계 밟아 나갔다. 그러나 당시 양키스 포수 자리에는 마이크 스탠리, [[조 지라디]] 등이 버티고 있었기에 메이저리그에서도 95년 1경기 출전[* 교체 선수로 출전해 조 아우사니오의 공을 받았다], 96년 8경기 출전[* 첫번째 선발출장을 한 해로 [[로저 클레멘스]]의 공을 받았다.], 97년 60경기 출전 등 점점 출전시간을 늘려나가야 했다. 그리고 주전을 꿰찬 98년, 111경기에서 17홈런으로 포수로서 상당한 장타력을 뽐냈다. ~~그러나 당시 AL엔 [[이반 로드리게스|퍼지]]가 NL엔 [[마이크 피아자|피아자]]가~~ [[데이비드 웰스]]와는 배터리 궁합이 잘 맞았는지 이 해 [[퍼펙트 게임(야구)|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의 양키스 왕조의 월드시리즈 3연패에 일조했고, 2000년에는 28홈런을 치는 등 타격이 진일보해 이후 4년 연속으로 올스타 출전, [[실버슬러거]] 수상에 성공했다. 2003년에는 MVP 투표에서 3위까지 할 정도로 기량이 만개했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취득해 4년 5240만 달러에 잔류했다.[* 총액으로는 못 미치지만 평균 금액은 [[마이크 피아자]]의 메츠 계약을 뛰어넘는 계약이었다.] 그러나 포수가 워낙 단명하는 포지션이기도 한 탓에 이후 자주 부상에 시달리게 되는데, 타격보다 수비의 쇠퇴가 두드러진다. 2009년에는 [[A.J. 버넷]]과의 불화설이 있었는데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했으나 실제로 포사다가 마스크를 쓸 때보다 수비형 백업포수 [[호세 몰리나]]와 배터리를 이룰 때 버넷의 성적이 훨씬 좋았던 것도 사실이고 버넷의 커브를 포사다가 블로킹하기 힘들어하기도 했다. 예전 [[데이비드 웰스]]의 알콜 커브를 받아내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 과거 [[마이크 무시나]]의 너클커브를 받아낼 때도 이리저리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버넷도 마찬가지.] 블로킹 뿐만 아니라 2루 송구도 나빠졌다. 그렇지만 수비 하는 내내 블로킹과의 싸움을 하다가도 장타로 게임을 뒤집는 등 지명타자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로빈슨 카노]]가 클린업 울렁증을 극복 못했을 시기에는 간혹 5번 타자로서도 출전했을 정도다. 사실 양키스 측에서는 계약기간 내내 포사다를 포수로 쓸 생각은 아니었고 계약 후반에는 트레이드로 데려온 [[닉 스위셔]]와 함께 1루수와 지명타자 슬롯에도 활용할 계획이었는데 2008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대참사가 터지자 [[조지 스타인브레너|보스]]가 덜컥 [[마크 테세이라]]를 질러버렸고 지명타자에는 [[마쓰이 히데키]]가 있는터라 포수 마스크를 길게 쓰게 된 면도 있다. 2011시즌엔 양키스에는 수비형 백업포수인 프란체스코 서벨리가 있고 팜에는 베네수엘라산 대형 공격형 포수 재능 [[헤수스 몬테로]]와 상당한 수준의 수비형 포수 유망주인 오스틴 로마인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논텐더로 풀린 포수 [[러셀 마틴]]마저 데려왔기 때문에 2011시즌의 포사다는 주로 [[지명타자]]로 나서게 되었다. 2010 시즌까지 통산 올스타 출전 5회, 실버 슬러거 수상 5회. 결국 2011년에는 스프링캠프부터 포수 마스크를 빼앗기고 팀 연봉만 잡아먹으면서 지명타자로 나설만큼 타격 컨디션을 유지하지도 못해서 팀의 잉여가 되었고 연봉 포기하고 은퇴하라는 압박을 받기도 했다. 9번 지명타자로 나서라는 조 지라디 감독의 명령에 불응하여 스캔들이 불거지기도 했고 [[앤드루 존스]]가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경기도 많아지며 [[플래툰]] 시스템으로 인해 고생하기도 했다. 2011년 3천안타를 달성한 [[데릭 지터]]와 602세이브로 올타임 세이브 리더가 된 [[마리아노 리베라]]를 축하하는 모습에 양키스 팬들은 세월이 이리도 빨리 지나갔다는 데에 탄식을 내뱉었다고. 그래도 경기 중간중간 팀에 파이팅을 불어넣고 루키 [[헤수스 몬테로]]를 불러앉혀놓고 이리저리 가르쳐주기도 했다. 가끔 승부가 많이 벌어졌을 때 2루나 1루로 출전~~시켜달라고 감독에게 땡깡부리는~~하는 모습은 양키스 덕아웃에서 [[닉 스위셔]]와 함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으며[* 실제로 8월 25일 오클랜드와의 홈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로는 처음으로 2루 대수비로 등장해서 1이닝 동안 타구처리를 해내는 등 홈팬들에게 여러가지 즐거움을 주었다. 여담으로 이 날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1경기 3개의 그랜드슬램으로 기록을 세운터라 점수차이가 큰 상태여서 포사다와 팬 모두에게 추억을 만들어준 셈.], DH로든 [[대타]]로든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양키 팬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맞아줬다. 특히 포수들이 잇따라 부상을 당하면서 백업포수가 없이 나선 [[러셀 마틴]]마저 부상을 당했을 때 [[LA 에인절스]] 원정에서 DH를 보던 몬테로가 포수 장비를 준비하고 [[CC 사바시아]]가 타격에 들어서게 생겼을 때 홀연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을 땐 LA까지 따라온 양키 팬들은 물론 일부 앤젤스 팬들까지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http://nyypark.tistory.com/entry/911-Jorge-Posada2011firstcatcherin|포사다의 2011 첫 포수 출전]]. ~~물론 그날은 [[댄 해런]]에게 완봉으로 졌지만~~ 이후 팀은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탈락했고 그렇게 그는 2011년 시즌이 끝나고, [[조 지라디]]와 [[데릭 지터]]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월 24일 은퇴식을 가졌다. 17년동안 양키로 있을 수 있게 해준 팀과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 연도별 기록 == ||<-18><table align=center><bgcolor=#c0c0c0,#3f3f3f> {{{#1c2841,#becae3 역대 기록}}} || ||<rowbgcolor=#132448>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 || {{{#ffffff 타석}}}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득점}}} || {{{#ffffff 타점}}} || {{{#ffffff 도루}}} || {{{#ffffff 볼넷}}} || {{{#ffffff 삼진}}} || {{{#ffffff 타율}}} || {{{#ffffff 출루율}}} || {{{#ffffff 장타율}}} || {{{#ffffff OPS}}} || {{{#ffffff fWAR}}} || || 1995 ||<|17> [[뉴욕 양키스|NYY]]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 || || 0.0 || || 1996 || 8 || 15 || 1 || 1 || 0 || 0 || 1 || 0 || 0 || 1 || 6 || .071 || .133 || .071 || .205 || -0.2 || || 1997 || 60 || 224 || 47 || 12 || 0 || 6 || 29 || 25 || 1 || 30 || 33 || .250 || .359 || .410 || .768 || 0.6 || || 1998 || 111 || 409 || 96 || 23 || 0 || 17 || 56 || 63 || 0 || 47 || 92 || .268 || .350 || .475 || .824 || 3.1 || || 1999 || 112 || 437 || 93 || 19 || 2 || 12 || 50 || 57 || 1 || 53 || 91 || .245 || .341 || .401 || .742 || 1.2 || || 2000 || 151 || 624 || 145 || 35 || 1 || 28 || 92 || 86 || 2 || 107 || 151 || .287 || .417 || .527 || .943 || 6.1 || || 2001 || 138 || 557 || 134 || 28 || 1 || 22 || 59 || 95 || 2 || 62 || 132 || .277 || .363 || .475 || .838 || 3.5 || || 2002 || 143 || 598 || 137 || 40 || 1 || 20 || 79 || 99 || 1 || 81 || 143 || .268 || .370 || .468 || .837 || 4.2 || || 2003 || 142 || 588 || 135 || 24 || 0 || 30 || 83 || 101 || 2 || 93 || 110 || .281 || .405 || .518 || .922 || 6.0 || || 2004 || 137 || 547 || 122 || 31 || 0 || 21 || 72 || 81 || 1 || 88 || 92 || .272 || .400 || .481 || .881 || 4.1 || || 2005 || 142 || 546 || 124 || 23 || 0 || 19 || 67 || 71 || 1 || 66 || 94 || .262 || .352 || .430 || .782 || 3.3 || || 2006 || 143 || 545 || 129 || 27 || 2 || 23 || 65 || 93 || 3 || 64 || 97 || .277 || .374 || .492 || .867 || 4.3 || || 2007 || 144 || 589 || 171 || 42 || 1 || 20 || 91 || 90 || 2 || 74 || 98 || .338 || .426 || .543 || .970 || 5.6 || || 2008 || 51 || 195 || 45 || 13 || 1 || 3 || 18 || 22 || 0 || 65 || 117 || .268 || .364 || .411 || .775 || 0.0 || || 2009 || 111 || 438 || 109 || 25 || 0 || 22 || 55 || 81 || 1 || 48 || 101 || .285 || .363 || .522 || .885 || 2.3 || || 2010 || 120 || 471 || 95 || 23 || 1 || 18 || 49 || 57 || 3 || 59 || 99 || .248 || .357 || .454 || .811 || 1.5 || || 2011 || 115 || 387 || 81 || 14 || 0 || 14 || 34 || 44 || 0 || 39 || 76 || .235 || .315 || .398 || .714 || -0.9 || ||<-2><bgcolor=#ffff88><color=#373a3c>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통산''' [br] (17시즌) ||<rowbgcolor=#ffffff,#191919> 1829 || 7150 || 1664 || 379 || 10 || 275 || 900 || 1065 || 20 || 936 || 1453 || .273 || .374 || .474 || .848 || 44.7 || == 여담 == * 2006년 초대 WBC에 푸에르토리코 국가대표팀으로서 참가를 열망했지만 당시 구단의 결사적인 반대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다. * 2010년 야후 스포츠에서 자신이 공을 받은 투수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 원문은 [[http://sports.yahoo.com/mlb/news;_ylt=AuWujuGJuEhsbICk6UIHuW0RvLYF?slug=ti-posada042710|여기]].] 최고의 직구(구속으로만)로는 [[카일 판스워스]]와 [[스캇 프록터]], 최고의 커브로는 [[이라부 히데키]], 최고의 슬라이더로는 [[조바 체임벌린]], 최고의 체인지업은 [[지미 키]]와 [[CC 사바시아]], 최고의 커터는 [[마리아노 리베라]], 받기 어려운 구질로는 [[로저 클레멘스]]의 스플리터와 [[앤디 페티트]]가 마이너리거 시절 던지던 너클볼 등을 꼽았다. 가장 영리한 투수로는 [[마리아노 리베라]], 엘 듀케 [[올랜도 에르난데스]], 클레멘스 등을 꼽았다. 빅게임 피쳐의 자질을 가진 선수는 역시 앤디 페티트라고. * 서적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나오는 '[[2루수]]에서 [[포수]]로 포지션을 전향하고, 스위치 타자로 타법을 바꾼 그 선수'가 맞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저자 [[호아킴 데 포사다]]와 호르헤는 사촌지간이다.] 다만 책 내용 중에 일부분은 사실과 다른데, 아버지가 나무 뱃을 쓰게 했다던가, [[스위치 히터]]를 시켰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포수]]로 전향을 시켰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아버지가 아니라 구단이 바꾸도록 한 것. [[http://sportsillustrated.cnn.com/2012/writers/tom_verducci/01/07/posada.retires/index.html|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기사]] * [[블라디미르 게레로|게선생님]]처럼 타격 시에 장갑을 끼지 않는다. * 양키스 팬들이 Core 4라고 부르는 프렌차이즈 스타 4인방([[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중 한 명이다. [[박찬호]]의 말에 따르면 휴스턴에 잠깐 갔다와서 그런지 앤디 페티트의 라커가 4인방 '중에서는' 가장 작다고 한다(...). * 2008년에 마운드 운용에 대해 간섭하는 듯한 발언을 해 고액연봉 베테랑 + 장기 부상자가 선수단에도 왈가왈부하냐고 까였는데 그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다. 양키스의 정규시즌 중에 이벤트성으로 [[조 토레]] 감독 대신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 보스턴 레드삭스 에이스였던 [[페드로 마르티네즈]]와는 철천지 앙숙관계로, 이 둘은 은퇴 후에도 서로의 좋지 않았던 사이에 관해 종종 언급하고 있다. 페드로에 따르면 2003년 양키스와의 벤치 클리어링 당시 자신이 72세 코치 돈 짐머를 넘어뜨렸을 때, 포사다로부터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적 발언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페드로는 2015년 명예의 전당 입성 당시 “양키스에서 가장 빈볼을 맞추고 싶은 선수는 포사다였다. 그는 내 행동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고 나중에는 어머니를 모욕했다. 라티노 선수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모욕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 라고 이야기했다. 포사다 역시 “페드로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풀리지 않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출한 바 있다. 35개로 페드로에게 가장 많은 삼진을 준 선수지만 페드로를 상대로 최다 타점인 12개를 기록했고 페드로에게 4홈런 이상을 기록한 6인의 타자 중 하나이다. 통산 .204타율, .721OPS로 페드로를 상대로 한 성적치고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 2012년 시즌이 끝나고 주류 광고를 하나 찍었다. {{{#!html <video src="http://mediadownloads.mlb.com/mlbam/2012/10/24/mlbtv_25445401_1200K.mp4" controls ></video> }}} * 2015년 2월 17일, 전 날 [[앤디 페티트]]에 뒤이어서 [[버니 윌리엄스]]와 함께 영구결번자로 선정되었다. * 2015년 5월 15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mlb&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7592823|약쟁이인 A-ROD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반대한 기사가 떴다.]] 사실 포사다는 약물을 굉장히 혐오하는데다가 약쟁이들 때문에 수상을 놓친 경우도 꽤 있었고, 한창 약물 논란이 불붙었을 때, '''자진해서 혈액검사까지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 피부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손에다 소변을 보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 2017년 입후보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3.8%의 득표율을 보이며 [[제이슨 배리텍|라이벌 팀 레전드]]와 함께 첫 해에 광탈했다. * 2019년부터는 함께 코어4였던 지터가 사장으로 있는 [[마이애미 말린스]]에 특별 고문으로 부임하며 재회한다.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MLB)]] [각주] [[분류:푸에르토리코의 야구 선수]][[분류:1971년 출생]][[분류:포수]][[분류:우투양타]][[분류:스위치 히터]][[분류:뉴욕 양키스/은퇴, 이적]][[분류:원클럽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