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국 상원의원]][[분류:미국의 외교관]][[분류:미국의 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1902년 출생]][[분류:1985년 사망]][[분류:미국 공화당 소속]][[분류:온건 공화당원]][[분류:매사추세츠 주 출신 인물]][[분류:하버드 대학교 출신]][[분류:영국계 미국인]] [목차] == 개요 == Henry Cabot Lodge Jr. [[미국]]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다. == 생애 == 전형적인 [[보스턴 브라민]] 출신의 [[WASP(미국)|WASP]] 상류층이다. 로지의 할아버지는 [[매사추세츠]] 주의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헨리 캐벗 로지[* 즉 이 문서에서 다루는 헨리 캐벗 로지는 정확히 말하자면 헨리 캐벗 로지 2세다.]이며, 또 그는 [[연방당]] 소속의 메사추세츠 주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조지 캐벗을 6대조 외할아버지로 두고 있다. 보스턴 브라민답게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잠시 신문사에서 근무했던 로지는 [[공화당(미국)|공화당]] 소속으로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메사추세츠 주의 주 하원의원으로 재직했다. 이후 1937년에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하여 당선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1944년에 의원직을 사퇴했으며, 이는 2차대전에서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 선거에서 다시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로지는 뜻밖에도 1952년 메사추세츠 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는데, 해당 선거의 당선자가 바로 [[존 F. 케네디]]다.[* 케네디의 외조부이자 보스턴의 지방 유력 정치인이기도 했던 존 피츠제럴드는 로지의 할아버지와 선거에서 대결해 패한 일이 있었다. 말하자면 케네디가 2세 대결에서 외할아버지의 설욕을 해낸 셈.] 이 패배 때문에 그는 오늘날에는 상원의원 선거에서 케네디에게 패배한 인물로 가장 잘 알려져있다. 다만 기부 입학을 통해 하버드에 들어간 케네디와 달리, 로지는 자신의 학업능력으로 하버드에 입학한 우등생이었다. 게다가 해군으로 참전해 자신이 함장이었던 경비정을 격침당한 케네디와 달리, 로지는 육군 장교로서 우수한 전공을 세웠다. 또 로지의 패배는 보스턴 브라민의 정치적 영향력의 퇴조를 상징하는 사례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보스턴]]과 메사추세츠 주의 인구구성의 변화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영국계 미국인]]들이 대거 모여살던 해당 지역에 공업화와 대도시화, 그리고 이에 따른 대량의 해외이민 유입으로 [[아일랜드계 미국인]]들과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 비율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저학력 저소득의 노동자 계급들이었고, 따라서 [[민주당(미국)|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대손손 연방당 - [[휘그당#s-2|휘그당]] - 공화당이라는 [[우파]] 정당에 소속되어 정치활동을 하던 보스턴 브라민들은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퇴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경남권의 [[낙동강 벨트]] 권역에 공업화가 많이 이뤄져 이곳에 [[전라도]] 출신 노동자들의 비율이 급증하고, 이에 따라 민주당의 득표율이 급증한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낙동강 벨트는 양 진영이 경합인 것과 달리, 미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하게 일어나서 완전히 민주당의 텃밭이 되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분구하고 해당 연도에 같이 치러진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로지는 공화당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고, 덕분에 미국의 주 유엔대사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그는 당시 현직 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의 러닝메이트로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당 선거에서도 로지는 케네디에게 밀려 닉슨과 함께 낙선하였다. 이쯤되면 로지는 케네디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게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지는 주 [[서독]]대사를 맡아달라는 케네디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케네디는 아일랜드계라 당시 WASP들이 중심을 이뤘던 미국의 주류 엘리트 사회에 철저히 외면받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WASP 출신의 보수 성향 [[기술관료]]들과 온건파 공화당 정치인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보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케네디의 제안을 수용한 로지는 아예 외교관으로 전업(?)하여, 훗날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고위 외교관으로 재직했다. 이후 그는 은퇴하여 1985년에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