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 * 일본 제125대 천황 - [[아키히토]] * [[beatmania IIDX]]의 수록곡 - [[HEISEI]] * [[헤이세이 프로젝트]] [include(틀:일본의 연호)] [include(틀:일본의 역사)]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be0026><table bgcolor=#fff,#1f2023><bgcolor=#be0026><:>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be0026 0%, #be0026)" '''{{{#c0a73f 헤이세이 시대[br]平成}}}'''}}} || ||<width=90><colbgcolor=#be0026> '''{{{#c0a73f 일본어}}}''' ||[ruby(平, ruby=へい)] [ruby(成, ruby=せい)] || || '''{{{#c0a73f 개막}}}''' ||[[1989년]] [[1월 8일]] || || '''{{{#c0a73f 종막}}}''' ||[[2019년]] [[4월 30일]](31년) || || '''{{{#c0a73f 천황}}}''' ||[[아키히토|아키히토 천황]] || || '''{{{#c0a73f 이전}}}''' ||[[쇼와 시대|쇼와]](昭和) || || '''{{{#c0a73f 다음}}}''' ||[[레이와 시대|레이와]](令和) || [목차] [clearfix] == 개요 == '''[[平]][[成]](へいせい)''' [[1989년]] [[1월 8일]] 0시 00분 00초부터 [[2019년]] [[4월 30일]] 23시 59분 59초까지 사용된 [[일본]]의 [[연호]]이자 시대 구분. 일본의 제125대 [[천황]] [[아키히토]]의 재위 기간이었으며, 전 시대는 [[쇼와 시대]], 후 시대는 [[레이와 시대]]다. [[2019년]] [[4월 30일]], [[고쿄|고쿄 세이덴 마쓰노마]]에서 202년만에 이루어진 당시 [[아키히토|아키히토 천황]]의 생전퇴위를 끝으로 막을 내리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平成,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넣으면 {{{+2 ㍻}}}.[* 이외에 선대 덴노인 [[메이지 시대|明治]], [[다이쇼 시대|大正]], [[쇼와 시대|昭和]]를 압축해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넣은 것이 유니코드에 등록되어 있다(㍾, ㍽, ㍼). 비슷하게 가타카나로 단위를 쓴 것을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욱여넣은 환경 의존 문자([[미터|㍍]] 같은 것. [[40mP]]의 명의가 이 글자를 쓴다)나 株式会社를 전각 문자 한 글자 공간에 욱여넣은 ㍿가 존재한다. 또한 한국의 ㈜에 해당하는 ㈱도 존재한다(일본어 IME에서 かぶ를 변환하면 출력되기도 한다).] 한국식 독음으로는 평성이라고 읽는다. 이 연호를 제안한 사람은 야마모토 타츠로(山本達郎; 1910~2001) [[도쿄대학]] 명예교수이다. == 용례 == 서기 [[1989년]]이 '헤이세이 원년(元年)'이다. 즉, [[1989년]] = '헤이세이 원년(1년)', [[1990년]] = '헤이세이 2년' 식으로 진행했다. 서기 [[2010년]]은 일본 연호로 헤이세이 22년. 그래서 일본에서는 [[콩드립|'''2'''010년(헤이세이 '''22'''년) '''2'''월 '''22'''일]]에 다양한 이벤트가 전국 각지에서 펼쳐졌다. 연호가 바뀐 시점이 새해 벽두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던 탓에, 이전 연호였던 쇼와(昭和)와 현재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를 세대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1988년]]까지의 출생자를 쇼와 세대, [[1989년]]부터의 출생자를 헤이세이 세대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히로히토가 사망한 것은 [[1989년]] [[1월 7일]]로, [[1989년]] [[1월 1일]]부터 7일까지의 일주일간은 쇼와 64년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연도만으로 세대를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처사이다. 그러나 일본 현지의 민간 홈페이지나 매체 대부분이 [[1989년]]을 쇼와 64년이 아닌 헤이세이 원년으로 계산하는 곳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아무래도 1989년 중 쇼와 64년이었던 시기가 1년 365일 중 고작 7일 밖에 안 되어서가 큰 것 같다.[* 반대로 쇼와 원년도 1주일 정도였다. 이전 덴노인 [[다이쇼 덴노]]의 기일이 12월 25일이었고, 새해에 쇼와 2년이 바로 시작됐기 때문.] == 연호/출전(出典) == ||<table align=center> [youtube(WWi7QS_vOps)] || || 헤이세이 시대로 넘어갈 때의 방송자료([[후지TV]], 1989년 1월 7일~8일)[* 이 화면의 남성 앵커는 럭비 선수 출신의 우에다 아키오(上田昭夫)씨로 [[2015년]]에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 || [youtube(tjp6uN-JBgw)] || || 헤이세이 시대로 넘어갈 당시 어떤 사람이 캠코더로 찍은 당시의 특별 프로그램들(1989년 1월 7일~8일)[* 45초 경에 일본제국 시절에 관한 KBS 보도가 나오는 일본 방송이 잠깐 나온다. 그리고 그 캠코더는 도쿄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아날로그 위성 전송 혹은 VHS 테이프 특송, 또는 부산발 TV 전파 수신 등의 경로로 입수한 화면이라 원래 화질에 비해 중간에 열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동영상 촬영 품질도 당시의 홈 캠코더 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다.] || ||<table align=center> [youtube(ntWG_3FXpPQ)] || || 새연호 발표 장면이며 4:3 비율의 아날로그 감성이 상당히 인상깊은 영상자료이다. || || [[파일:헤이세이 아저씨.jpg|width=400]] || || [[1989년]] [[1월 7일]]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를 발표하는 [[오부치 게이조]] 당시 내각관방장관. [br] [[쇼와 시대]]에서 [[헤이세이 시대]]가 됨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 >'''{{{#!html <span lang="ja" style="font-family: MS PGothic, MS Gothic, Meiryo, MS PMincho, MS Mincho, Hiragino Kaku Gothic Pro">新しい元号は「平成」であります。</span>}}}''' >새로운 연호는 '헤이세이'입니다. >---- >''[[오부치 게이조]] 당시 내각관방장관의 새 연호 발표'' 연호 '平成'은 《[[사기(역사책)|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의 "内'''{{{#green 平}}}'''外'''{{{#green 成}}}'''(안이 다스려짐에 바깥의 일이 이루어진다)"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의 "地'''{{{#green 平}}}'''天'''{{{#green 成}}}'''(땅이 다스려짐에 하늘의 일이 이루어진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연호를 정할 당시 <서경>의 해당 부분이 [[청나라]] 고증학자들의 연구로 [[위서]]라는 사실이 고증되었고, 헤이지(平治, 1159~1160) 연간이 전란으로 혼란스러웠기에 이후 平으로 시작하는 연호를 피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平에는 干(방패)이 있고 成에는 戈(창)이 있으니 곧 '방패와 창'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해서 다른 걸로 고르자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다행히도 헤이세이 시대 동안 일본에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전란으로 혼란스러웠던 헤이지 시대 vs 일본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헤이세이 시대-- 알다시피 오히려 '백성이 밝게 드러나고 만방이 화목하게 되었다'는 《[[서경]](書經)》구절에서 유래한 [[쇼와 시대]]보다 평화로웠다. 그 대신 후술될 일세일원제 확립 이후 연도의 알파벳 표기 문제 때문에 平으로 시작하는 연호를 다시 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연호 결정 시 최종안에 올라왔던 후보인 헤이세이(平成), 슈분(修文), 세이카(正化)[* 정부에 의한 미디어 탄압이 소재가 되는 소설 [[도서관 전쟁]]에서 연호로 사용되었다.] 중 슈분(''Shubun'')과 세이카(''Seika'')는 직전 연호인 쇼와(''Showa'')와 알파벳 이니셜이 겹치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헤이세이(''Heisei'')로 결정되었다.[* 일본에서는 일세일원제가 확립된 이후의 연도표기에서 연호를 알파벳 이니셜로 표기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쇼와 56년은 S56, 헤이세이 23년은 H23 식으로.] 그 밖에 올라왔던 또 다른 후보는 분시(文思), 덴쇼(天章), 고쇼(光昭)가 있었다. 헤이세이(平成)라는 연호안은 이미 [[에도 시대]] 말기 게이오(慶應)로 개원했던 [[1865년]] 당시 연호의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었다. 그 전거 역시 <사기>와 <서경>이었다. 헤이세이(平成) 연호안 발표 이전에는 일본의 고전서를 출처로 하는 방안이 있었지만, 최종안에 남아있지 않아 무산되었다. 훗날 30년 뒤, [[레이와]] 연호를 일본 고전인 [[만요슈|만엽집]](万葉集)에서 따왔다. [[오부치 게이조|헤이세이 아저씨]]가 들고 있던 저 액자는 이후 [[다케시타 노보루]] 당시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총리]]의 저택에 걸려있었으나 다케시타 총리 사후 유족들의 논의에 따라 국가에 무상 기증되었다. 대신 다케시타 총리 저택에는 레플리카가 걸려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학연|의도된 것인지]]는 당사자들만 알겠으나 이 헤이세이가 개원할 시점의 총리와 관방장관은 둘 다 [[와세다대학]] 출신이다. 다케시타 총리의 다음다음 계승자 [[가이후 도시키]] 총리와 오부치 총리의 바로 다음 후임자 [[모리 요시로]] 총리도 와세다대학 동문이었으며 그 외에는 91대 [[후쿠다 야스오]] 총리, 95대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있다. 간혹 전임 덴노인 아키히토 상황을 일컬어 헤이세이 덴노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본의 예법상 이는 틀린 것이다. 아키히토가 사망하면 일세일원의 원칙(덴노 한명에 연호 한개)에 따라 추존 시호로 [[아키히토|헤이세이 덴노]]가 되는 것이 확실하지만, 이렇게 부르는 것은 사후 명칭이 되므로 아직 살아 있는 덴노의 명칭이 될 수 없다. 즉 일반인으로 따지면, [[고인드립|살아있는 사람을 '고 XXX 님'이라고 부르거나, 명절날 어르신에게 세배하면서 '명복을 빕니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소리다. 따라서 심각한 결례가 되기에 일본인은 보통 '덴노 헤이카(천황 폐하)' 등의 경칭으로 부르지만 외국인은 다른 [[유럽]]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이름을 불러 아키히토(Akihito)라고 칭하면 무방하다. 후술되는 생물학 논문에서도 저자 명의로서 'Akihito'로 표기된 예가 있다. === 202년 만에 일본 [[일본국 헌법|현행헌법]]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생전 퇴위와 차기 연호 === [[2010년]] [[7월 22일]]에 [[https://www.news-postseven.com/archives/20170221_493913.html|이미 생전 퇴위를 밝혔다.]] 그러다가 [[2016년]] [[8월 8일]]에 궁내청을 통해 생전 퇴위 의사를 다시 한번 확고히 밝혔다. [[2019년|헤이세이 31년]]인 [[2019년]] [[4월 30일]]에 202년 만에 일본국 역사상 처음으로 생전 퇴위하고 천황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삼종신기|삼종의 신기]](三種神器)는 맏아들 [[나루히토|히로노미야 나루히토]][* 당시 친왕의 신분이자 동시에 황태자 신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천황가 황위계승 서열 1위라서 [[미야케|어칭호(궁호)]]도 결혼 후에도 유지가 되었다. 당시 명칭은 皇太子:浩宮徳仁親王이다.] [[나루히토|황태자]]에게 황위가 세습되면서 '상황(上皇)'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2018년]] [[7월 1일]]에 신 연호를 미리 발표하고, [[2018년|헤이세이 30년]]이 되는 [[2018년]] [[12월 31일]] 헤이세이 시대를 마감하고, [[나루히토]] 황태자가 아버지 아키히토에 이어 일본의 제126대 덴노에 즉위하는 [[2019년]] [[1월 1일]]부터 신 연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궁내청]]은 연말에 행사가 많아 이때 퇴위식과 즉위식을 연이어 열고 연호를 바꾸면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판단해 아키히토 덴노의 퇴위 날짜와 헤이세이 시대 종료일을 [[4월 30일]]로 조정하고, 나루히토 덴노의 즉위와 새 연호 사용은 [[5월 1일]] 0시부터 하기로 최종적으로 공식 발표했다. [[http://v.media.daum.net/v/20171122190105581|#]] 이때부터는 모든 행정 시스템상의 공문서 날짜 기준이 [[연호]] 대신 [[서기]]로 바뀐다. 단 전산상의 날짜 한정이고, 실제 종이로 제출 및 보관하는 경우에는 여전히 연호와 서기를 병기한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9&aid=0004154706|#]] 새로운 연호는 [[4월 1일]]에 발표가 되었다. [[2019년]] [[4월 1일]] 새 연호 발표는 우선 9시 30분경에 전문가들이 참여한 간담회를 여는데 여기서 5개나 그 이상의 연호 후보군이 제시되고 10시 20분경에 정부가 이 후보안 설명을 들고 중의원 의장 공저로 찾아가 중의원, 참의원 의장단의 의견을 각각 듣는다. 이후 아베 총리가 주재하는 '''임시 각료 회의(臨時閣僚会議)'''에서 최종결정을 하게 되며, 헤이세이 발표 때와 같이 현직 내각관방장관인 [[스가 요시히데]]가 약 11시 30분 정도에 발표하며 이후 12시에 아베 신조 총리가 총리관저 기자회견실에서 연호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할 예정이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은 이미 리허설까지 여러번 마쳤다고 한다. [[https://m.news.naver.com/read.nhn?oid=025&aid=0002895658&sid1=104&mode=LSD|#]] '''새 연호는 일단 과거 연호의 영문명 앞글자 이니셜인 M(메이지), T(다이쇼), S(쇼와), H(헤이세이)는 피할 걸로 관측된다.''' "S50"(쇼와 50년) 같은 표기가 있기 때문으로 실제 헤이세이 당시에도 후보군이었던 세이카(正化), 슈분(修文)이 탈락한 이유, 선례가 있기 때문. 일각에선 아베 총리의 이름과 비슷한 '안큐(あんきゅう/安久)'가 유력하다는 찌라시급의 소문도 있었지만 속용(널리 쓰임)되는 말이라서 제외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상황. [[2019년]] [[4월 1일]] "오전 11시 42분경"에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이 새로운 연호를 공식 발표했다. 새 연호는 '''레이와(令和)'''. 이에 따라 헤이세이는 [[4월 30일]] 23시 59분까지 쓰이고 [[레이와 시대]]는 [[5월 1일]] 0시에 바로 개원(開元)해 비로소 [[헤이세이 시대]]는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레이와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시대적 특징 ==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가 끝나고 [[잃어버린 10년/일본|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는 시기와 헤이세이의 시작이 우연히 맞물려서 쇼와(의 후반부)를 살 맛 나던 시대, 헤이세이를 기나긴 불황의 시작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일명 [[헤이세이 불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쇼와 시대 감성이 한국의 쌍팔년도 감성에 해당한다면 헤이세이 시대 감성은 한국에서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감성에 해당한다고 불 수 있다. 동서 냉전기를 겪었던 [[쇼와 시대]]와는 다르게 [[냉전]]이 풀려가는 시대에 맞물렸다. [[1989년]] 12월 말,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유럽권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1990년]]에는 동서 독일이 통일되고 공산진영으로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모두 자본진영으로 전향하고 공산국가들의 기구인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해체되는 등 냉전의 종식 및 20세기의 마지막기와 맞물려 시작된 시대이다. 그러나 [[1994년]] [[김일성]]주석이 사망이후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권을 거쳐 현재 3대를 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권시기가 이어져 북핵문제, 일본인 납치문제, 북한의 핵 미사일 발사 등 일부 냉전기를 겪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는 당시 [[자민당(일본)|자민당 정권]]의 장기적인 집권기를 거쳤다가 잠시 [[민주당(일본)|민주당 정권]]([[2009년]] 9월 ~ [[2012년]] 12월)으로 교체되기도 하였으나 [[2012년]]에 다시 [[아베 신조]] 정권이 수립되면서 [[자민당(일본)|자민당 시대]]가 지금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일본 경제의 불황과 실업난 등으로 힘겨운 경제침체기를 보냈었으며[* 2013년 이후 겨우(?) 극복했다.] 사회적으로는 우파들을 중심으로 일본 중심주의와 중국의 급격한 경제, 군사적 부상에서 촉발된 중국 위협론을 명분으로 기존의 미일 동맹 강화를 비롯하여 [[NATO]]와 호주등의 서방권 국가들과의 군사적 협력이 더 활발해졌고 [[자위대]]의 활동 영역 확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규정한 '''평화안전법제(平和安全法制)'''의 시행 등으로 일본의 재무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대였다. 또한 헤이트스피치를 비롯한 인종차별 문제가 부각되던 시대였다. 정보상으로는 [[쇼와 시대]]의 아날로그를 이어받았다가 [[스마트폰]]이 대중화/간편 보급화 되었으며 [[Windows 95]]의 출시로 일본 국민들의 인터넷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화되어간 시대이다. [[한국]]에게 있어서는 [[아키히토|덴노 본인]]이 직계 조상 [[간무 덴노]]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을 직접 언급하며 한국과 인연을 느낀다고 주장하여서 다소 친밀감이 있는 듯하지만 총리를 중심으로 한 일부 정치인들의 잇딴 대한(對韓) 망언과 역사 왜곡, 헤이트스피치 및 제노포비아, 우익 재특회(일본 극우파)의 시위, [[독도]] 영유권문제, [[위안부]] 문제, 조선인 강제징용 보상 문제,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 위안부 소녀상 문제 등으로 한국과 여러차례 분쟁과 갈등을 벌여왔던 격랑의 시기였다. 또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12년]] 8월 [[독도]] 깜짝 방문 및 갑작스럽게 [[천황]]에게 사과를 공식으로 요구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던 시기였다. 이 사건은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 잃어버린 30년(1989~2019) === 헤이세이 시대의 초창기는 많은 [[일본인]]들이 그리워하는 일본 경제의 최전성기 즉,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거품이 붕괴되고 현재까지도 일본경제를 끈질기게 발목 잡고 있는 장기적인 불황기에 진입하게 되었다. 일본의 경제학자, 경제평론가들이 19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렀으나 10년의 세월이 지나서도 거품붕괴의 악영향이 완전히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2000년대는 [[잃어버린 20년]]으로 연장되었다. 일본의 2010년대는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초대형 재해와 함께 맞이했으며, 1970년대 이후 일본을 상징하는 제조업 강국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수출이 부진해지자 [[2011년]]을 시작으로 전대미문의 3년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大前研一)를 비롯한 일부 지식인들은 헤이세이사(平成史)를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실패한 시대'로 규정, 단정하고 있다. === [[1998년]] [[한일관계]]의 대대적인 정상화 === 쇼와 시대와는 다르게 특이하게도 현재의 한국의 젊은층들에게는 꽤나 친숙한 연호이기도 하다. [[1998년]] 10월 [[김대중]] 정부 당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일본 문화 전면 대개방에]] 따라 [[일본 문화]]가 한국에 급속도로 유입되어졌고 그 영향으로 이후 태어난 한국의 젊은이들(19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 2000년대 초반생들은 기준잡기가 상당히 애매모호한데, 이들은 90년대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세기말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겉과 속이 달라 상당히 애매모호한 세대라 태어난 년도는 현재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같이 2000년대생이지만 경험은 90년대생 들과 거의 비슷한 세대이다. 그러한 영향으로 이들도 90년대생의 연장선으로 평가하여 1990년대생 문화와 2000년대생 문화를 동시에 아는 폭넓고 다원적인 세대라 1990년대생 이라고 보기도 한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연호이기도 하다. 그 영향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일본문화에 익숙한 세대이고, 과거에 즐겨보던 애니 대부분이 일본 만화라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들 사이에서는 헤이세이 연호를 어렵지 않게 기억하거나 부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일본 애니메이션]][* 대표적으로 [[짱구는 못말려]], [[도라에몽]], [[개구리 중사 케로로]], [[포켓몬스터]], [[명탐정 코난]], [[나루토]] 등이 있다.]을 쉽게 접해 볼 수 있고 일본 문화에 관한 내용을 간접적으로나마 익힐 수 있기도 하다. [[쇼와 시대]] 당시는 한국 기준으로 [[노태우]]정부의 5공에서 6공 시대로 갓 넘어간 시기인지라 이 시대까지는 일본 문화가 전면 봉쇄된 시기였고 당시의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쇼와 시대를 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아동급 애니메이션 등을 제외하고[* 이들조차도 방송법에 따라 한국식으로 대부분 수정하였다.] 일본 문화 대부분은 한국 지상파TV 방송을 타는 것이 제한되어있었기 때문에[* 물론 그러면서도 일본방송 포맷이 몰래몰래 들어오기는 했다.] 쇼와 시대나 쇼와를 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물론 가요, 만화,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유입이 제한적이었지 소설같은 일반서적은 그 시절에도 들어오기는 들어왔지만 청소년 취향작품들은 아니었다. 이는 다음 [[김영삼]] 정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 당시인 역시 일본 문화 유입에 부정적이라 이 당시 일반인들이나 젊은층들조차도 대학교수급 정도의 전문가들이 아니면 일본 [[천황]]과 일본 [[총리]]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1998년]]에는 [[한일관계]]에선 전혀 다른 면모를 선보였는데, [[일본 정부]]와 [[궁내청]]에서는 [[1998년]] [[10월 7일]],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시 천황과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처음으로 [[아키히토]] [[일본]] [[천황]]이 [[한반도]]에 대한 '[[고통]](苦痛)'과 '[[사과]](使過)' 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언급함으로써 과거 한반도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로 얼룩진 [[일본]]의 모습과 다른 면모를 보였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2005188_19498.html|아키히토 일본국왕 발언]][[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2005187_19498.html|일본 국왕 김대통령 귀빈 초청 만찬서 한국 고통 사과]] === [[쇼와 시대]] 서브컬쳐와의 차이점 === ==== 아이돌 성우 양성 시대 ====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이 시대는 애니메이션, 특히 '''서브컬쳐 및 아이돌 성우 양성 시대'''로도 불리기도 하였다]]. [[19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오타쿠]]' 애니메이션 시대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으며 [[1998년]] [[카우보이 비밥]] 같은 세기말 명작을 남겼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페이트 시리즈, 코드 기어스, 스즈미야 하루히, 클라나드, 이누야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강철의 연금술사, 유유백서, 헌터x헌터 등 대작들이 배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였고 2010년대 들어서는 모에 및 미소녀 애니메이션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와 맞물렸던 때였다. 동시에 1990년대 선구자인 [[하야시바라 메구미]]를 필두로 2000년대 및 2010년대 아이돌 성우가 배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타무라 유카리]], [[호리에 유이]] 등 아이돌 성우들이 배출되거나 [[미즈키 나나]] 등 오타쿠들을 열광시키거나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급 성우들이 배출되기도 한 시대이다. 남자 성우로는 [[코야스 타케히토]] 등의 성우들도 배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전에는 발성이 뛰어난 성우들이 배출되었다고 적혀있었으나, 성우들의 발성은 2000년대 이후인 헤이세이 중반 이후로는 오히려 평균적으로 약해졌다. 물론 2000년대 이후에도 발성이 좋은 성우들이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그들조차도 8~90년대 성우들에 비하면 현격하게 떨어진다. 그 이유를 코야스 타케히토가 언급한 적이 있는데, 본인이 데뷔한 쇼와말기(...)나 헤이세이 초반까지만 해도 녹음하는 마이크의 성능이 좋지 않아서 당시 성우들은 기본적으로 발성이 단련될 수 밖에 없었다고... 반대로 지금은 마이크가 좋아진 탓에 지르는 발성이 안좋은 성우들이 많다고 하였다.] ==== [[라이트 노벨]]의 전성기 ==== 이 시대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던 양강 체제 속에서 [[라이트 노벨]]이 활성화되었던 시기라 사실상 전성기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일반 소설에 비해서 내용이 가볍고 만화풍의 일러스트를 삽입가미하여 만담스러운 내용을 소설로 담아낸 라이트 노벨 문화가 유행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상당한 라노벨 작가들도 배출되었고 동시에 라노벨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만화, 애니, 게임에 이어서 라노벨 문화까지 더해져서 오타쿠들과 청소년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라노벨에서 삽입되어 나온 캐릭터들 또한 만화나 애니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애니메이션화가 되었을 때는 진보적인 모습으로도 나오게 되어서 더욱 열광하게 만들었다. 라노벨의 등장은 엄숙하고 딱딱하거나 어른스러운 면이 짙은 일반소설의 상식을 깨버림과 동시에 소설도 가볍고 만화풍의 일러스트와 함께 보며 보고 느낀다는 점 때문에 청소년 및 오타쿠들이나 가벼운 내용의 소설을 원하는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에 가서야 일본식 라노벨이 전래되었으며 일본에서 수입된 라노벨들이 한국어판으로 번역 발간되었다. ==== 가상 캐릭터들의 노래와 음악 ==== 이 시기에는 유난히 가상 캐릭터들 중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감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 중반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의 등장을 시작으로 그 전부터 있었던 [[MEIKO]], [[KAITO]] 등이 더 주목받거나, 이어서 등장한 [[카가미네 린]], [[카가미네 렌]], [[메구리네 루카]], [[가쿠포이드|카무이 가쿠포]] 등,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감을 가진 가상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오타쿠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또 [[아이돌 마스터]]를 통해서 여자 캐릭터들이 성우의 육성 노래를 통해서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감을 가진 성향의 캐릭터들도 등장하였으며 이후 2010년대에는 [[러브 라이브!]]의 [[μ's]]와 선샤인의 [[Aqours]]가 등장하였고 여성향으로 [[노래하는 왕자님]]이나 [[앙상블 스타즈]] 등 남자 캐릭터들이 아이돌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 매체도 생겼다. 여기에 [[WUG]]나 [[뱅드림]]도 가세하여 가상 캐릭터들의 노래시장에 가세하였다. ==== 심야 및 서브컬쳐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와 강세 ==== 이 시대에는 특히 심야 시간대에 방영하였던 애니메이션, 즉 오타쿠들에게 만족을 주는 애니메이션들이 많이 제작되어서 방송되었던 시기였다. 쇼와 시대에도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는 하였지만 이 시대에 들어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영향으로 오타쿠 애니메이션들이 생겨나고 2000년대와 2010년대부터 늘어난 심야시간에 방영하는 애니메이션들을 중심으로 오타쿠들을 시청층으로 끌어들여서 일명 하렘이나 모에라 불리우는 일부 자극적인 애니메이션도 나왔으며 라이트 노벨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들도 다수 제작되어 본격적으로 방송하게 되었다. ==== 아동 및 여아, 청소년 애니메이션 ==== 이 시대에는 대중적으로 [[크레용 신짱|크레용 신짱(짱구는 못말려)]], [[도라에몽]], [[원피스(만화)|원피스]], [[이누야샤]], [[나루토]], [[블리치]], [[세일러문]], [[꼬마마법사 레미]] 그리고 현재도 방영중인 [[프리큐어 시리즈]]가 처음으로 시작했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크레용 신짱]]과 원피스, [[프리큐어 시리즈]]는 현재까지도 시대를 넘어서 방영하고 있고 나머지 세일러문, 레미는 헤이세이 시대 안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작품들이다. 이누야샤와 나루토는 본작은 헤이세이 시대에서 끝났지만 후에 [[반요 야샤히메]]와 [[보루토]]를 통해서 후속작으로도 나오게 되었다. 그 외에도 [[웨딩피치]], [[달빛천사]], [[머메이드 멜로디 피치피치핏치]], [[캐릭캐릭 체인지]], [[아이카츠!]], [[프리파라]] 등 여아들을 위한 애니메이션도 나왔으며 [[슈퍼 그랑죠]], [[피구왕 통키]], [[몽키삼총사]], [[꾸러기 수비대]], [[명탐정 코난]], [[포켓몬스터]], [[디지몬 어드벤처]], [[요괴워치]] 등의 아동 시청자들을 위한 애니메이션도 나왔었다. == 주요 인물들 ==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인물들은 [[헤이세이 시대/출생]] 문서 참조. == 사건 == '''연도 표기는 헤이세이 연호와 서기 병기.''' 이중에서 몇몇에 해당하는 사건은 아래와 같이 표기. * 한일 양국과 연관된 사건: <韓日> * 일본 국외에서 있었던 사건 중 일본과 연관된 사건: <日外> === 헤이세이 원년 ~ 헤이세이 9년([[1989년]] ~ [[1997년]]) === * [[헤이세이 덴노]]의 즉위로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 - 헤이세이 원년(1989년) 1월 8일 *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 헤이세이 원년(1989년) [* 피해자가 사망한 당일은 쇼와 64년이지만, 사건이 발각된건 헤이세이 원년이다.] *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 - 헤이세이 원년(1989년) * [[1990 오사카 엑스포|오사카 엑스포]] 개최 - 헤이세이 2년(1990년) 4월 1일 * [[마스야마 히토미 실종사건]] - 헤이세이 6년(1994년) 2월 19일 * [[중화항공 140편 추락 사고]] - 헤이세이 6년(1994년) 4월 26일 *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개최 - 헤이세이 6년(1994년) 10월 2일 * [[효고현 남부 지진|한신 대지진]] 발생 - 헤이세이 7년(1995년) 1월 17일 *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도쿄지하철 테러사건]] 발생 - 헤이세이 7년(1995년) 3월 20일 * [[도쿄전력 여직원 살인사건]] - 헤이세이 9년(1997년) * [[포켓몬 쇼크]] 발생 - 헤이세이 9년(1997년) 12월 16일 === 헤이세이 10년대([[1998년]] ~ [[2007년]]) === * [[나고야 클럽 경영자 납치 살해사건]] - 헤이세이 13년(2001년) 9월1일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월드컵]] 개최<韓日> - 헤이세이 14년(2002년) 5월 31일 * [[Bakky 사건]] - 헤이세이 16년(2004년) * [[2005 아이치 엑스포|아이치 엑스포]] 개최 - 헤이세이 17년(2005년) 3월 25일 * [[껀터대교 붕괴 사고]]<日外> - 헤이세이 19년(2007년) 9월 26일 === 헤이세이 20년대([[2008년]] ~ [[2017년]]) === *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 - 헤이세이 23년(2011년) 3월 11일 *[[아마가사키 사건]] - 헤이세이 23~24년(2011~2012년) * 미일 방위 협력을 위한 지침 개정 - 헤이세이 27년(2015년) 4월 27일 * 평화안전법제 시행 - 헤이세이 28년(2016년) 3월 29일 *[[가나가와현 토막살인사건]] - 헤이세이 29년(2017년) === 헤이세이 30년대([[2018년]] ~ [[2019년]]) === * [[2019년 일본 인플루엔자 유행]] - 헤이세이 31년(2019년) * [[아키히토]]의 생전퇴위로 헤이세이 시대가 끝남 - 헤이세이 31년(2019년) 4월 30일 == 기타 == 안습하게도 헤이세이 연호가 사용 개시된 [[1989년]]이 지난지 얼마 안되어 일본 버블이 순식간에 훅 꺼져버렸고, 그래서 헤이세이란 단어가 들어간 일반명사 중 가장 먼저 유명해진 건 '''헤이세이 불경기''' 또는 '''헤이세이 불황'''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버블경제를 상징하는 단어 중에 [[헤이세이ABC]]라는 게 있긴 한데 이건 [[차덕후]] 아니면 잘 모르는 전문용어. 보통 라이더나 건담 같이 오래 시리즈를 이어온 작품들이 [[쇼와 시대|쇼와]]와 헤이세이를 기점으로 호불호가 엇갈리곤 하는데, 이를 버블경제에 의해 팬층이 보다 가볍게 즐기는 것을 선호하게 되어서라는 주장도 있다. [[헤이세이 라이더]], [[헤이세이 건담]] 참고. 2010년대 일본에서는 구세대와 신세대를 나누는 기준으로 '쇼와 시대에 태어난 사람'과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즉 [[1989년]] 이전 출생은 쇼와태생 [[아재]] 취급하는 것. [[2018년]] 현재도 '어리다'는 것을 '헤이세이 출생'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Hey! Say! JUMP]]에서 실제로 몇몇 일본 가수들이 이 드립을 친 전례가 있다. 멤버는 모두 헤이세이 시대 출생. ||<tablealign=right> [[파일:external/cdn-ak.f.st-hatena.com/20070605020052.jpg|width=130]] || || 쇼와 64년에 발행된 [[500엔 주화]] || '''[[1989년]]'''에 발행된 일본 주화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1월 1일부터 7일까지 쇼와덴노의 재위기간 동안 발행되어 유통된 쇼와 64년 발행주화와 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발행되어 유통된 헤이세이 원년 발행주화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쇼와 64년 발행주화는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발행, 유통량이 적었기 때문에 한정판과 다름없는 희귀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심지어 일본 내에서까지도) 한국의 1998년도 [[오백원 주화]]와는 다르게 실제 그렇게 귀한 편은 아니다. 일본 내에서도 한번도 사용되지 않은, 즉 미사용의 쇼와 64년 500엔은 우리나라 돈으로 해봐도 단돈 약 5천원 정도이다.[* 언뜻 봐서는 높은 것 같지만 '''[[500엔]]의 액면가를 생각하자. 무려 5천원 내외이다.'''] 흔한건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구할수 있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며, 이따금 운이 좋으면(?) 자판기 거스름돈 등으로 쉽게 발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쇼와 64년의 주화가 많은 이유는 '''쇼와 64년으로 찍힌 주화가 실제로는 1989년 3월까지 주조'''되었으며 발행량 자체도 무려 1600만개를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쇼와 64년의 주화가 귀하다는 인식조차도 어디까지나 500엔 주화 한정.[* 이전 글에는 쇼와 62년도(1987년)의 500엔 주화가 비싸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도 사실 500엔 중 제일 귀한건 맞지만 미사용이 2만원을 못 넘겨 낱개로는 별로 거래되지 않고 대부분 n개 묶음이나 심지어 50개들이 주화묶음, 간간히 500개짜리 동전마대(이건 좀 보기 드물지만)채로 거래되는 실정이다.] [[2018년]] [[2월 13일]] 헤이세이 시대 출생자 중 처음으로 [[국민영예상]] 수상자가 나왔다. 주인공은 [[일본]] [[바둑기사]] [[이야마 유타]] 九단.([[1989년]] [[5월 24일]] 생)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헤이세이 시대에 최초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헤이세이 시대에 마지막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 팀이다. 그야말로 [[한신 타이거스]]와 [[히로시마 도요 카프]] 빼고 모든 팀이 한 번씩 우승을 차지한 시대. 또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최초이자 유일하게 우승한 시대가 이 시대였다. '헤이세이'라는 연호가 정해진 뒤, 이 연호와 한자 표기가 똑같은 타이라 시게루(平 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잠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영화 박스오피스 1위는 다름아닌 ~~드디어 코난의 벽을 잠시나마 부수는데 성공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다. 사족으로, 위 사진에서 헤이세이라는 연호를 발표하던 당시 내각관방장관이던 [[오부치 게이조]][* 1998년에 [[일본]]의 [[일본 총리|내각총리대신]]이 되어 [[2000년]]에 과로로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는 연호가 적힌 간판을 드는 장면때문에, 별명이 '헤이세이 아저씨'라고 불렸는데,~~[[아키히토|???]]: 뭐라고요?~~ 뒷날 실내 골프장에서 만난 한 여대생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여 문제의 저 자세를 직접 재현하면서 '''"날 알아보시겠습니까?"'''라고 하자, 그제서야 그를 알아봤다는 후문이 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헤이세이, version=450)] [[분류:헤이세이 시대]][[분류:아키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