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김해 허씨]][[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887년 출생]][[분류:194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허학(許壆) || || 아명 ||허만령(許萬齡) || || 이명 ||허형(許瑩, 許瀅)[* [[국가보훈처]]에는 이 이름으로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었다.]·허학(許學)[br]허만(許萬)·허백경(許伯敬) || || 호 ||박경(博卿) || || [[본관]] ||[[김해 허씨]] || || 생몰 ||[[1887년]] [[4월 26일]] ~ [[1940년]] [[9월 28일]] || || [[출생지]] ||[[경상도]] [[구미시|선산도호부]] 하고면 임은동[br](현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김해 허씨]] 집성촌이다.] || || 사망지 ||[[카자흐스탄]]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허위(독립운동가)|허위]]의 아들이며, 독립유공자 [[허훈(독립운동가)|허훈]]과 [[허겸]]의 조카이다. 독립유공자 [[허필]]은 허학의 종숙이며 동북항일연군 [[허형식]]은 허학의 6촌 동생이다. == 생애 == 허학은 1887년 경상도 선산도호부 하고면(현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에서 [[허위(독립운동가)|허위]]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이 1907년 [[경기도]] [[연천군|연천]]에서 의병을 일으켰을 때 21세의 나이로 참가하였는데, 일제 기록에 의하면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으로 칭하면서 경기도 지방에서 부하 2천명을 거느렸다고 한다.[[http://db.history.go.kr/id/im_114_10179|#]] 이후 그는 의병장들에 대한 연락과 무기 조달을 위해 각처로 잠복하여 활동하였다. 1913년 9월 [[임병찬]]·이인순(李寅淳)·[[전용규]] 등과 함께 [[독립의군부]] 사건의 주모자로 활동하다가 1914년 5월 동지 54명과 함께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독립의군부 사건에는 허위의 아들 허학을 비롯하여 사위 이기상(李起商)과 그 아우 이기영(李起永), 그리고 부하였던 정철하(鄭哲下) 등이 연루되어 있었다. 이후 출소한 그는 중부(仲父) [[허겸]]을 따라 동지 [[박노창]]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강산 이도구에서 [[김동삼]] 등과 함께 동화학교(東華學校)를 설립하였다. 1917년에는 유하현 전수하자에서 이세기(李世基) 등과 함께 동흥학교(東興學校)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1920년 일본군이 [[간도 참변]]을 자행하자, 허학을 비롯해 그의 종숙 허형(許蘅)과 [[허필]](許苾) 등은 서간도를 떠나 일제의 탄압이 미치지 않고 동만주·남만주보다 남한 출신 동포들이 많은 북만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허위의 유족인 허학과 허국 등은 주하현(珠河縣)[* 현 [[중화인민공화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샹즈(尙志)시.]으로 이주하였다. 허학은 1925년 [[김혁(독립운동가)|김혁]]을 위원장으로 한 신민부(新民府)가 창립되자 원로들로 구성된 참의원에 선출되었다. 이때 참의원장은 [[이범윤]](李範允)이었고, 참의원으로는 허형을 비롯한 김규진(金奎鎭) 등이 있었다. 1934년 허학은 일제 관헌의 비밀문서인 『국외에 있어서의 용의조선인명부』에 '남만주군정서원(南滿洲軍政署員)으로서 부독판 [[여준(독립운동가)|여준]](呂準)과 연결되어 있다'며 요시찰 대상에 올라 있었다. 아우 허영(許瑛)[* 1890 또는 1891 ~ ?. 아명 허억령(許億令, 許億齡).[[http://db.history.go.kr/id/im_114_10155|#]]]과 허준(許埈)[* 1895 또는 1899 ~ 1956. 아명 허천령(許千令, 許千齡). [[http://db.history.go.kr/id/im_114_10175|#]]], 그리고 허국(許土+國)[* 1899 또는 1901 ~ 1955. 아명 허경령(許京令, 許京齡), 이명 허선(許宣).[[http://db.history.go.kr/id/im_114_10131|#]]]도 같은 혐의로 수배 대상이었다. 1940년 9월 28일, 허학은 카자흐스탄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허학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