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신흥군 출신 인물]][[분류:1882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한주호(韓周鎬) || || 생몰 ||[[1882년]] [[7월 1일]]~? || || [[출생지]] ||[[함경남도]] [[신흥군]] 영고면 경흥리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한정원은 1882년 7월 1일 함경남도 신흥군 영고면 경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0일 [[김동규(1876)|김동규]] 등과 함께 풍산군 안수면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마을 주민 100여 명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들은 평산리 헌병주재소까지 행진하며 일본 헌병의 만행을 규탄한 뒤 다시 소산동으로 향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하여 다음과 같은 취지의 상고서를 제출했다. > “나의 행동은 조선 민족으로 정의 인도에 기초한 의사 표현으로 범죄가 아니다. 그러므로 유죄판결은 부당하며, 복종할 수 없는 위법이다.” 그러나 1919년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러야 했으며,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한주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