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나라당 관련 문서)] [목차] == 개요 == [[한나라당]]의 역대 전당대회에 대한 문서. == 창당대회 == * 1997년 11월 21일, [[신한국당]]-[[통합민주당(1995년)|민주당]] 합동 전당대회는 양당의 합당과 [[한나라당]]의 출범을 의결하고, 9개의 강령과 62개의 기본정책을 채택한 뒤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를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겸 한나라당 명예 총재로, 민주당 [[조순(1928)|조순]] 총재를 한나라당 총재로 선출했다. 이어 조순 총재는 신한국당 [[이한동]] 대표위원을 한나라당 대표위원으로 지명했다. == 1차 전당대회 == * 1998년 4월 10일, 한나라당은 대표위원직을 폐지하고 총재 중심의 단일지도체제를 채택했다. 이어서 조순 총재와 이회창 명예총재를 각각 총재와 명예총재로 재추대했다. == 2차 전당대회 == ||<tablealign=center> 순위 || 성명 || 득표수 || 총 득표율 || 비고 || || 1 || [[이회창]] || 4,083 || 55.7 ||<bgcolor=#FFFF00> '''총재''' || || 2 || [[이한동]] || 1,554 || 21.2 || || || 3 || [[김덕룡]] || 1,283 || 17.5 || || || 4 || [[서청원]] || 392 || 5.4 || || || 총투표수 || || 7,326 || 100 || || * 초대 총재 [[조순]]의 사퇴 뒤 명예총재였던 [[이회창]]이 당선되었다. == 3차 전당대회 == ||<tablealign=center> 순위 || 성명 || 득표수 || 총 득표율 || 비고 || || 1 || [[이회창]] || 4,717 || 66.3 ||<bgcolor=#FFFF00> '''총재''' || || 2 || [[김덕룡]] || 1,473 || 20.7 || || || 3 || [[강삼재]] || 663 || 9.3 || || || 4 || [[손학규]] || 257 || 3.6 || || || 총투표수 || || 7,110 || 100 || || * 전에 이어 [[이회창]] 총재가 다시 당선되었다. 비주류 계파였던 [[김덕룡]]과 [[강삼재]]의 분열과 16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회창]] 총재가 비주류 측의 지구당을 대부분 자신의 계파 사람들로 채워넣었고, 총선에서도 승리했던 까닭에 손쉽게 재선에 성공했다. == 4차 전당대회 == ||<tablealign=center> 순위 || 성명 || 득표수 || 총 득표율(%) || 선거결과 || || 1 || [[서청원]] || 3,603 || 33.6% ||<bgcolor=#FFFF00> '''대표최고위원''' || || 2 || [[강창희]] || 3,336 || 31.1%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3 || [[김진재]] || 2,788 || 26%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4 || [[강재섭]] || 2,652 || 24.7%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5 || [[박희태]] || 2,478 || 23.1%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6 || [[하순봉]] || 2,062 || 19.2%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7 || [[김일윤]] || 2,060 || 19.2% || || || 8 || [[이해구]] || 1,933 || 18% || || || 9 || [[정형근]] || 1,593 || 14.8% || || || 10 || [[김부겸]] || 1,448 || 13.5% || || || 11 || [[김기배]] || 1,415 || 13.2% || || || 12 || [[안상수(창원)|안상수]] || 977 || 9.1% || || || 13 || [[김정숙(1946)|김정숙]] || 936 || 8.7% ||<bgcolor=#FFFF00> 여성 몫 최고위원|| || 14 || [[김호일]] || 883 || 8.2% || || || 15 || [[홍준표]] || 883 || 8.2% || || || 16 || [[함종한]] || 844 || 7.9% || || || 17 || [[강인섭]] || 569 || 5.3% || || * 최초로 단일지도체제에서 집단지도체제로 바꾼 뒤 최고위원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득표한 [[서청원]] 당시 의원이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또한 집단지도체제로 바꿈과 동시에 여성 몫 최고위원 제도를 도입해 19.2%를 득표한 [[김일윤]] 당시 의원 대신 [[김정숙(1946)|김정숙]] 당시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다. == 5차 전당대회 == ||<tablealign=center> 순위 || 성명 || 득표수 || 총 득표율(%) || 선거결과 || || 1 || [[최병렬]] || 46,074 || 35.8% ||<bgcolor=#FFFF00> '''대표''' || || 2 || [[서청원]] || 42,965 || 33.4% || || || 3 || [[강재섭]] || 18,899 || 14.7% || || || 4 || [[김덕룡]] || 15,680 || 12.2% || || || 5 || [[이재오]] || 2,697 || 2.1% || || || 6 || [[김형오]] || 2,406 || 1.9% || || || 총 투표수 || || 128,721|| 100% || ||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한나라당]]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했으나 재검표 결과 원래 선거 결과와 별반 차이가 없이 국고만 허비하자 [[서청원]] 당시 대표는 대선 패배와 불복에 책임을 지고 [[박희태]] 최고위원을 권한대행으로 지명 후 사퇴한다. 그 뒤 대선 패배를 다시 겪은 [[한나라당]]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홍사덕]]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의 개혁안에 따라 개혁된 단일지도체제(당 대표와 지역운영위원 체제)를 택하고, 경선을 위해 일반당원 50%, 국민 50%로 구성된 22만 227446명의 선거인단을 구성했다. == 6차 전당대회 == ||<tablealign=center> 기호 || 순위 || 성명 || 국민 여론조사 || 선거인단 || 총 득표율(%) || 선거결과 || || 1 || 2 || [[박근혜]] || 1,255/49.8% || 1,359/53.9% || 2,614/51.8% ||<bgcolor=#FFFF00> '''대표''' || || 2 || 5 || [[홍사덕]] || 553/22% || 900/35.7% || 28.8% || || || 3 || 4 || [[김문수]] || 498/19.8% || 109/4.3% || 607/12% || || || 4 || 3 || [[박진(정치인)|박진]] || 106/4.2% || 104/4.1% || 4.2% || || || 5 || 1 || [[권오을]] || 110/4.4% || 50/2% || 160/3.2% || || || 총 투표수 || || || || || 100% || || *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으로 인해 이른바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은 [[최병렬]] 당시 대표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사퇴하자 3개월 과도기 대표를 뽑기로 하며 여론조사를 포함시켰다. 결과 [[박근혜]] 당시 의원이 당선되었다. == 7차 전당대회 == ||<tablealign=center> 순위 || 성명 || 득표수 || 총 득표율(%) || 선거결과 || || 1 || [[박근혜]] || 8,443 || 84.2% ||<bgcolor=#FFFF00> '''대표최고위원''' || || 2 || [[원희룡]] || 2,610 || 26.1%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3 || [[김영선(1960)|김영선]] || 2,249 || 22.5%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4 || [[이강두]] || 2,185 || 21.8%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5 || [[이규택]] || 1,968 || 19.66%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6 || [[정의화]] || 1,525 || 15.2% || || || 7 || [[곽영훈]] || 1,050 || 10.4% || || || 총 투표수 || || 10,010 || 200% || || * 3개월 과도기 지도부를 뒤로 하고 [[한나라당]]은 집단지도체를 택하고 과도기 지도부 대표였던 [[박근혜]] 당시 대표를 대표로 선출한다. 이 전당대회는 여론조사와 인터넷 투표로 선출했으며 원희룡과 김영선 같은 소장파 의원들이 [[이강두]], [[이규택]] 등의 중진 의원들을 이기는 이변이 일어났다. == 8차 전당대회 == ||<tablealign=center> 기호 || 순위 || 성명 || 국민 여론조사 || 선거인단 || 총 득표율(%) || 선거결과 || || 1 || 4 || [[강재섭]] || 954/30.2% || 4,229/58.4% || 5,254/50% ||<bgcolor=#FFFF00> ''''대표''' || || 2 || 3 || [[이재오]] || 1,423/45.1% || 3,368/45.7% || 4,791/45.6%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3 || 7 || [[강창희]] || 554/17.6% || 2,071/28.1% || 2,626/25%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4 || 5 || [[전여옥]] || 1,161/36.8% || 833/11.3% || 1,994/19%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5 || 2 || [[정형근]] || 663/20.1% || 1,339/18.2% || 1,993/18.9%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6 || 1 || [[권영세]] || 540/17.1% || 1,223/16.6% || 1,773/16.9% || || || 7 || 8 || [[이규택]] || 809/25.6% || 847/11.5% || 1,656/15.7% || || || 8 || 6 || [[이방호]] || 213/6.8% || 735/10% || 949/9% || || || 총 투표수 || || || || || 100% || || * 1인 2표제, 대의원 70%, 여론조사 30%로 전당대회를 진행한 결과, [[한나라당]]은 [[강재섭]] 전 원내대표[* 공교롭게도 강재섭 원내대표의 후임 원내대표가 바로 이 전당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이재오다.]를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하였다. == [[제17대 대통령 선거#s-2.1.1|9차 전당대회]] == * 2007년 8월 20일 역사에 회자될 대선 경선을 치른 뒤 [[이명박]]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 10차 전당대회 == ||<tablealign=center> 기호 || 순위 || 성명 || 국민 여론조사 || 선거인단 || 총 득표율(%) || 선거결과 || || 1 || 2 || [[박희태]] || 1,865/60.2% || 4,264/56.4% || 6,129/57.6% ||<bgcolor=#FFFF00> '''대표최고위원''' || || 2 || 7 || [[정몽준]] || 2,896/92.6% || 2,391/31.7% || 5,287/49.6%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3 || 4 || [[허태열]] || 555/19.8% || 2,792/37% || 3,284/30.8%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4 || 3 || [[공성진]] || 283/9.6% || 2,306/30.5% || 2,589/24.3%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5 || 5 || [[김성조]] || 209/5.5% || 2,245/29.7% || 2,454/23%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6 || 6 || [[박순자]] || 382/12.5% || 509/6.7% || 891/8.4% || || || 총 투표수 || || || || || 100% || || * [[친이]]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이 여론조사 상[* 상단의 표를 보면, 국민 여론조사 수치로만 보면 정몽준 후보가 비교적 큰 표차로 1등이지만, 당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인단 투표에선 세력이 미비하여 3등을 차지하였고, 반면 박희태 후보는 국민 여론조사에선 정몽준 후보에 밀렸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크게 이겨서 합산 1등이 되었다.]으로 꽤 앞서던 [[정몽준]] 의원과 [[친박]] 중진 [[허태열]] 의원을 누르고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 11차 전당대회 == ||<tablealign=center> 기호 || 순위 || 성명 || 국민 여론조사 || 선거인단 || 총 득표율(%) || 선거결과 || || 1 || 2 || [[안상수(창원)|안상수]] || 1,295/40.6% || 3,021/56.4% || 4,316/40.6% ||<bgcolor=#FFFF00> '''대표최고위원''' || || 2 || 7 || [[홍준표]] || 1,482/46.4% || 2,372/31.9% || 3,854/36.3%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3 || 4 || [[나경원]] || 1,530/47.8% || 1,352/18.2% || 2,882/27.1%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4 || 3 || [[정두언]] || 472/14.6% || 1,964/26.4% || 2,436/22.9%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5 || 5 || [[서병수]] || 142/4.4% || 1,782/24% || 1,924/18.1%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6 || 6 || [[이성헌]] || 89/2.6% || 1,301/17.5% || 1,390/13.1% || || || 2 || 5 || [[한선교]] || 790/24.6% || 403/5.4% || 1,193/11.2% || || || 3 || 4 || [[이혜훈]] || 144/4.4% || 1,034/13.9% || 1,178/11.1% || || || 4 || 3 || 김대식 || 155/4.8% || 819/11% || 974/9.2% || || || 4 || 3 || [[김성식(1958)|김성식]] || 132/4% || 533/7.2% || 665/6.3% || || || 5 || 1 || [[정미경(정치인)|정미경]] || 147/4.6% || 299/4% || 446/4.2% || || || 총 투표수 || || || || || 100% || || * [[미래희망연대]]와의 합당과 함께 [[안상수(창원)|안상수]] 전 원내대표[* 17대 후반기(2007~17대 국회 임기 종료 시)와 18대 초반기(2009~2010)]가 역시 원내대표[* 18대 국회 초반기(18대 국회 개원~2009년)]였던 [[홍준표]] 전 원내대표와 재선의 [[나경원]] 전 대변인을 누르고 선출되었다. == 12차 전당대회 == ||<tablealign=center> 기호 || 순위 || 성명 || 국민 여론조사 || 선거인단 || 총 득표율(%) || 선거결과 || || 1 || 2 || [[홍준표]] || 12,356/50.4% || 29,310/51.3% || 41,666/51% ||<bgcolor=#FFFF00> '''대표최고위원''' || || 2 || 7 || [[유승민]] || 4,638/18.9% || 27,519/48.1% || 32,157/39.4%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3 || 4 || [[나경원]] || 14,903/60.8% || 14,819/25.9% || 29,722/36.4%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4 || 3 || [[원희룡]] || 6,579/26.8% || 22,507/39.4% || 29,086/35.6%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5 || 5 || [[남경필]] || 6,036/24.6% || 8,860/15.5% || 14,896/18.2% ||<bgcolor=#FFFF00> 최고위원 || || 6 || 6 || [[박진(정치인)|박진]] || 3,294/12.4% || 5,662/9.9% || 8,956/11% || || || 2 || 5 || [[권영세(1959)|권영세]] || 1,211/5% || 5,695/10% || 6,906/8.5% || || || 총 투표수 || || || || || 100% || || * 계파색이 뚜렷하지 않았던, 다르게 말하면 [[친박]]과 [[친이]] 사이에 위치하던 [[홍준표]] 당시 의원이 [[친박]]으로 평가되었으나 사실 소신파이던 [[유승민]] 당시 의원과 [[친이]]가 밀던 [[원희룡]] 당시 의원을 누르고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이 전당대회로 인해 [[친박]]의 세력이 [[친이]]를 압도한 것을 물론 당권이 [[친박]]으로 넘어왔다. 또한 이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차기 대권주자를 찾지 못하던 [[친이]]는 몰락하고 만다. * 이 선거에 출마한 이들 모두 안 좋은 일이 생겼는데, 당장 [[홍준표]]는 3개월만에 대표직에서 쫓겨나듯이 사퇴했으며 차기 총선에서 낙선했다. 또한 [[원희룡]]은 차기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쳤으나 낙선하며 국회를 떠났고, [[나경원]] 역시 차기 총선에서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유승민]]도 당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에게 찍혀있을 때이니... [[권영세(1959)|권영세]] 역시 이 전당대회 이후로 두번 내리 낙선했다. [[분류:한나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