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카를스루에 현/행정구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Heidelberg_corr.jpg]]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eidelberg_corr.jpg?uselang=ko|이미지 출처(위키미디어)]]] ||<-6><table align=right><tablewidth=450><tablebgcolor=#FFF,#1F2023><bgcolor=#fcd116> '''{{{#000 {{{+1 하이델베르크}}}[* R이 모음화되는 독일어 경향상 현지인들의 발음을 들어보면 '하이델베어크' 정도에 가깝게 들린다.][br]Heidelberg}}}''' || ||<-3><:><rowbgcolor=#dddddd,#383B40><width=50%>[[파일:Heidelberg_flag.gif|width=150]] ||<-3><:><width=50%>[[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0px-Wappen_Heidelberg.svg.png|width=100]] || ||<bgcolor=#fcd116><-3><width=50%> '''{{{#000 깃발}}}''' ||<-3><bgcolor=#fcd116><width=50%> '''{{{#000 문장}}}''' || ||<:><-6>[include(틀:지도, 장소=하이델베르크)] || ||<bgcolor=#fcd116><-6> '''{{{#000 하이델베르크의 위치}}}''' || ||<bgcolor=#000><-6> '''{{{#ffffff 행정}}}''' || ||<width=35%><-2><bgcolor=#000> '''{{{#ffffff 국가}}}''' ||<-4>[[독일]]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 ||<bgcolor=#000><-2> '''{{{#ffffff 시간대}}}''' ||<-4>(UTC+1/+2) || ||<bgcolor=#000><-2> '''{{{#ffffff 주}}}''' ||<-4>[[바덴뷔르템베르크]] || ||<bgcolor=#000><-2> '''{{{#ffffff 현}}}''' ||<-4>[[카를스루에 현]] || ||<bgcolor=#000><-6> '''{{{#ffffff 인문환경}}}''' || ||<bgcolor=#000><-2> '''{{{#ffffff 면적}}}''' ||<-4>108.83km² || ||<bgcolor=#000><-2> '''{{{#ffffff 인구}}}''' ||<-4>161,485명^^(2019년)^^ || ||<bgcolor=#000><-2> '''{{{#ffffff 인구밀도}}}''' ||<-4>1,484명/km² || ||<bgcolor=#000><-2> '''{{{#ffffff 홈페이지}}}''' ||<-4>[[https://www.heidelberg.de|[[파일:홈페이지 아이콘.png|width=30]]]] || ||<bgcolor=#000><-6> '''{{{#ffffff 정치}}}''' || ||<bgcolor=#000><-2> '''{{{#ffffff 시장}}}''' ||<-2>에카르트 뷔르츠너 ||<-2> [include(틀:무소속)] || [목차] == 개요 == 독일 [[라인 강]] 지류인 [[네카르 강]]변에 위치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도시이다. 유구한 역사의 [[하이델베르크 성]]과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알려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로 유명한 도시이며, 관광지로 꽤 각광받고 있는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인구는 [[2015년]] 기준 156,267명으로, 이 도시가 꽤 작은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인근에 [[만하임]], [[카를스루에]] 등 비교적 큰 도시들이 있다. == 역사 ==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조상격으로 추측되는 하이델베르크 원인(原人)의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으며[* 하이델베르크 원인이 살았던 시기가 [[신생대]]라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정확히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저마다 견해가 갈리는데, 200만~60만년 전 사이로 그 폭이 꽤나 넓다.] 기원전 5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측되는 켈트족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기원전 1세기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라인강 이서 지방이 [[고대 로마|로마]]의 영역으로 편입된 이후 하이델베르크 일대에 로마군의 주둔지가 세워졌으며, 로마 제국이 쇠락한 3세기 이후 이 일대는 다시 게르만족의 영향권에 편입된다. 하이델베르크라는 지명이 처음 언급되는 것은 중세이던 서기 12세기의 일로,[* 그 전에도 이 일대에 사람들이 거주하기는 했지만 사료에서는 일반적으로 베르크하임(Bergheim)이라는 지명으로 불린다.] 가톨릭 수도원들이 이 일대에 건립되면서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하고 1386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가 당시 [[팔츠]] [[선제후]]였던 루퍼트 1세에 의해 설립되면서 발전세가 급속히 빨라진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당대 독일 문화권 지성들의 경연장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으나 17~18세기 끊임없는 전란으로 타격을 입고 만다. 1622년에는 틸리 백작이 이끄는 가톨릭 측이 2달에 걸친 포위전 끝에 이 곳을 점령하면서[* 이 때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는 비블리오테카 팔라티나(Bibliotheca Palatina)라고 불리는 당대 최고의 도서관을 갖추고 있었고 이 도서관에는 알프스 이북에서 르네상스 시기 발간된 수많은 장서들을 보관되어있었으나, 틸리 백작에 의하여 [[바티칸]]으로 압수된다.] 일시적으로 하이델베르크는 팔츠가 아니라 [[바이에른]]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1634년 스웨덴 군이 하이델베르크를 탈환하자 가톨릭 측은 하이델베르크를 재탈환하기 위한 공세를 계획했으나 ~~같은 가톨릭 국가이면서도 뒷통수를 친~~ 프랑스가 스웨덴 군을 지원하면서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하여 하이델베르크는 다시 팔츠 선제후의 품안으로 돌아왔지만, 본격적인 전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팔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팔츠 선제후였던 카를 루트비히 1세는 자신의 딸을 루이 14세의 동생이었던 오를레앙 공작에게 시집보냈는데, 팔츠 선제후 가문의 대가 끊기자 루이 14세가 이 혼인을 근거로 팔츠가 자신의 땅임을 주장했다(...) 물론 신성로마제국 측의 반응은 이뭐병...] [[9년 전쟁]]이 발발한 것. 1693년 하이델베르크는 프랑스 군에 의해 점령되고, 이 과정에서 도시는 철저하게 파괴된다.[* 한편 거듭된 전란에 지친 (하이델베르크를 포함한) 팔츠 일대 주민은 영국을 거쳐 신대륙으로 이주를 감행하는데, 이들이 바로 오늘날 미국의 [[펜실베니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일대를 개척한 선구자들이다.] 이후 1803년 하이델베르크는 [[바덴 대공국]]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존재의 힘입어 19세기 전반기 내내 하이델베르크는 자유주의의 성지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고 [[1848년 혁명]] 당시에는 혁명세력의 거점 역할을 맡기도 했다가 혁명이 결국 분쇄당하면서 [[프로이센]] 군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되기도 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1815년 혁명 이념을 박살내버리기로 결의하면서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 러시아 사이에서 체결된 [[신성 동맹]]이 이곳에서 맺어졌다는 점이다.] 원체 소규모 도시였기 때문에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지는 못한 채 소규모의 도시로 머물러있어야 했지만, [[독일 제국]] 시기에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존재에 힘입어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의 중요한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나치 독일]] 시기는 하이델베르크의 [[흑역사]]인데, 나치의 정치적 아성이었기 때문.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는 않아서 나치가 집권한 이후 [[뉘른베르크 법]]에 따라 많은 비 아리아(주로 유대인) 출신 교직원들이 해고되었으며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나치 당원과 [[슈츠슈타펠]]을 위한 시설을 건설하기도 했다(...) ~~역시 [[괴벨스]]를 동문으로 둔 학교답다.~~ 산업이나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말 그대로 순수한 교육 도시였기 때문에, 2차 대전 중에는 연합국 측으로부터 폭격을 피할수 있었으며[* 미군이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를 막사나 포로 수용소로 쓰려고 일부러 폭격을 안했다는 루머도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전쟁이 길어질 경우 이곳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남겨 두었던 것이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3월 30일에 미군이 이 곳을 점령했고, 이후 2011년까지 하이델베르크는 주독미군의 거점 중 하나였다.[* 2011년 이후로 2013년까지 2년에 걸쳐 [[비스바덴]]으로 주둔지를 옮겼지만, 한창 시절에는 하이델베르크 인구의 10%가 미군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 탓에 1970년대 내내 급진 공산주의 학생조직이었던 [[바더 마인호프|적군파]](RAF)의 타겟이 되어 1972년에는 이 곳에 주둔하던 미군 세 명이 살해당하는 사건도 빚어졌다. 사실 하이델베르크는 독일 역사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큰 영향을 끼친 사건도 없었다.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이곳에 미국 방문자들이 늘어났고, 미군들의 휴양을 위해 그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메르헨 가도'라는 관광코스가 생겨나면서 관광지가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의정부시]]나 [[평택시]] 같은 도시와 비교할 수 있다. == 여담 == *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초대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 [[조지 패튼]]이 교통사고로 인해 이 곳에서 사망한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하이델베르크 인근의 도시였던 [[만하임]]이었으나 치료를 위해 하이델베르크로 옮겨졌고, 치료 도중에 끝내 사망.] * 2007년에는 하이델베르크 성과 구 시가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도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미국 관광객들을 위해 사실상 새로 지어진 시설들이기 때문이다. * 고전 뮤지컬 'The Student Prince'(한국에서는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번역)의 무대이기도 하다. 독일 어느 소국에서 이 도시로 유학온 왕자가 현지 바걸과 사랑에 빠진다는 작품인데, 듣보잡 독일 연극을 각색하여 1924년 미국에서 제일 처음 상연하였며 영화로는 1954년 만들어졌다. 역시 하이델베르크를 띄우기 위해 미국에서 엄청 홍보한 작품이다. * 독일에서 이름있는 도시임에도 이 도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팀이 없다. 웬만한 소도시들도 다 도시를 대표로 하는 축구팀이 있음을 감안하면 의외의 일이다. 이 도시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축구팀으론 [[2. 분데스리가]]의 [[SV 잔트하우젠]]이 있고 가장 가까운 [[분데스리가]] 팀으로는 진스하임 연고의 [[TSG 1899 호펜하임]]이 있다. == 관련 문서 == * [[하이델베르크 대학]] * [[바덴뷔르템베르크]] [[분류:바덴-뷔르템베르크]][[분류:독일의 도시]][[분류:하계패럴림픽 개최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