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2><:>'''[[경찰예비대]]의 역대 중앙본부장·총감'''||<:><-3>'''[[보안대]]의 역대 제1막료장'''||<:><-2>'''[[육상자위대]]의 역대 [[육상막료장]]'''|| ||초대 '''하야시 게이조'''||<-2><:>→||초대 '''하야시 게이조'''||<-2><:>→||초대 [[쓰쓰이 다케오]]|| ||<-7><:>'''[[자위대]]의 역대 [[통합막료회의의장]]'''|| ||<-3>초대 '''하야시 게이조'''||<:>→||<-3><:>2대 [[스기에 이치조]]|| [[파일:external/www.geocities.co.jp/01hayasi.jpg]] 林 敬三 (はやし けいぞう) [[1907년]] [[1월 8일]] ~ [[1991년]] [[11월 12일]] [목차] == 개요 == [[일본]]의 육상[[자위관]]. 초대 [[육군참모총장|경찰예비대 중앙본부장·총감, 보안대 제1막료장]]과 초대 [[통합막료회의의장]]을 지냈다. [[일본군]] 경력이 없으며 내무부 출신으로 [[경찰예비대]] 시절부터 요직을 차지해 구 [[일본군]] 출신들과 대립했던 [[내무군벌]]의 수장이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건군기]]에 [[광복군]]과 [[만주군]], [[일본군]]의 3대 [[파벌]]이 있었고 가장 세가 강한 건 만주군 출신이었다. 광복군 출신들이 대체로 영관급 이상의 4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었고 다소 전술/전략 면에서 엉망이었던 중국에서 활동을 한 것에 비해 [[미군]]한테 발리긴 했지만 동아시아에서 가장 정예였던 일본군과 그 방계인 만주군 위관급 출신들이 [[한국전쟁]] 당시에 좋은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특히 만주군은 일본군에 비해 장교 등으로 조선인을 받아들이는데 관대했다.] == 생애 == [[1907년]] [[1월 8일]], [[이시카와현]]에서 [[일본 육군]] 중장 하야시 야사키치(林弥三吉)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패전 후에 [[내무성]] 등에서 일하다가 [[1950년]]에 [[경찰예비대]]가 생기자 중앙본부장, 총대 총감 등 톱에 올랐다. [[1952년]]에 [[보안대]]로 개칭되자 제1막료장이 되었고 [[1954년]] [[합동참모본부|통합막료회의]]가 생기자 초대 통막의장이 되어 [[1964년]]까지 10년 동안 재직했다. 육막장 후임은 [[쓰쓰이 다케오]]였고 통막의장 후임은 [[스기에 이치조]]였다. [[1964년]]에 퇴임하여 일본주택공단 총재, 일본 [[적십자사]] 이사 등을 지내다 [[1991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분류:일본의 자위관]] [[분류:경찰공무원]] [[분류:이시카와현 출신 인물]] [[분류:1907년 출생]] [[분류:1991년 사망]] [[분류:도쿄대학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