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서아시아의 군주]][[분류: 1950년 출생]][[분류:바레인의 인물]] [include(틀:군주 일람)][[분류:지폐의 인물]] [[파일:Hamad-Bin-Isa-Al-Khalifa.jpg]] [[바레인]]의 국왕. 아랍어: حمد بن عيسى آل خليفة 영어: Hamad bin Isa Al Khalifa [목차] == 개요 == [[1950년]] [[1월 28일]] 생 ([age(1950-01-28)]세) 으로 바레인 리파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에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인 이사 빈 살만 알할리파[* 1933년 6월 3일 ~ 1999년 3월 6일]는 [[1971년]] 독립한 바레인의 첫 에미르였다. 그의 장남이었던 하마드는 1999년 3월에 부왕이 사망하면서 에미르위를 계승했고, 2002년에 에미르라는 지위를 왕으로 승격시키면서 대관식을 올렸다. 2020년 말 오랫동안 총리를 맡고있던 삼촌이 죽자 자신의 아들인 살만 왕세자를 차기 총리로 지명했다. == 인권유린 == 하지만 그는 단순히 바레인의 절대군주일뿐 아니라 억압적인 독재를 펼치기도 했다. 1990년에는 바레인에서 개혁을 원하는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것이 1994년에 대규모 시위/항쟁으로 변하면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고, 이런 일은 1999년까지 일어났다.[* 이 때 바레인 왕실 가문들이 시민들을 억압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다만 1990년대 바레인의 경우는 개혁을 원한 시민들만 있었을 뿐 아니라 다수의 시아파들과 좌파, 자유주의자들도 나타나는데 이들 중 헤즈볼라나 과격한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나타나면서 테러까지 나타났던 현상이었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도 나왔을 수는 있지만 또 다른 문제점이라면, 죄 없는 시민들까지 탄압당했다는 게 문제.] 그 이후 하마드가 즉위하면서 대사면령을 내리고, 2000년대에는 의회를 재소집하려고 국민투표를 하면서 차츰 민심을 얻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일종의 명분이었고, 군 장성과 관료, 의원을 임명하는데 권한은 모두 오직 국왕에게만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2002년에는 칭호를 종래의 에미르에서 말리크(왕)으로 높였다. 그 이후 권위주의 체제가 더 강화되면서 독재가 나타난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봄|중동에서 대규모 불꽃의 항쟁]]이 번지면서 바레인에도 나타났다. 처음에는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했으나 경찰과 군인, 시민들의 투쟁으로 4명의 시민들이 사망하면서 대규모 항쟁이 일어났다.(자세한 사항은 [[아랍의 봄]]에서 바레인 항목부분을 참고.) 결국 2011년 2월 14일에 일어난 시위는 3월에도 이어졌다. 그러자 하마드 국왕은 경찰/군인들을 총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이때 바레인 군경은 실탄을 발포하여 진주광장[* 수도인 마나마에 있는 광장. [[https://en.wikipedia.org/wiki/Pearl_Roundabout#/media/File:Protesters_camped_out_infront_of_the_Pearl_Roundabout_in_Bahrain.jpg]] 여기서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의 시민들은 학살을 당했고, 진주광장은 처참한 폐허로 변한다.[[https://en.wikipedia.org/wiki/Pearl_Roundabout#/media/File:Pearl_Monument_Leveled.jpg]] 뿐만 아니라 하마드 국왕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걸프만에 있는 수니파 국가들의 도움을 요청했고, 특히 사우디군이 제일 먼저 파병하자 아랍에미리트와 쿠웨이트도 군대와 경찰을 파견하였고 이들과 손을 잡으면서 더욱 강압적인 유혈진압을 펼쳤다. 그리고 그 흔적을 없애거나 시위를 못하게 하려고 싶었는지 아예 광장과 중앙의 진주탑을 없애고, 그곳에 레이스 경주대회를 하는 경기장으로 만들어버렸다.[[https://en.wikipedia.org/wiki/Pearl_Roundabout#/media/File:Al_Farooq_Junction_under_construction_at_former_site_of_Pearl_Roundabout.jpg]] 물론 광장이 없어져도 계속 그 장소에서 시민들은 2012년 3월까지 항쟁을 하였고,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나지만 강경하게 진압시키고 있어 시민들의 항쟁은 실패로 돌아간다. 게다가 이 국왕을 포함한 바레인 왕실가문은 [[친미]]독재라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에게 외면을 당해서인지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적이 많았고 결국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이 사태로 인해 독재자를 방조했다며 비난을 듣는다. 시위자들에게 감금한 후 가혹한 고문을 했다는 게 밝혀졌다.[* 2011년 대규모 시위 이전 2010년에도 국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2014년부터 국왕모독죄에 대한 처벌을 최대 징역 7년과 벌금 1만 디나르(한화로 3천만원)로 강화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739455|#]] 하지만 아랍 독재자들이 다 그렇듯 세속적인 종교 정책을 펼치면서 [[쿠웨이트]]나 [[아랍에미리트]], [[요르단]]처럼 은근히 개방적인 모습도 있다. 특히 하마드 국왕은 철저하게 정교분리를 추구한다. 게다가 저 '민주화 시위자'들도 문제가 있던것이 순수한 민주화가 아니라 친서방 수니파 세속주의 왕실을 타도하고 이란식 반서방 시아파 신정 독재를 꿈꾼다는 게 함정. 그리고 저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이 외면하지 않은'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시리아]]를 보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