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pe Buonarroti (1761.11.11 ~ 1837.09.16) [[파일:필리프 부오나로티.jpg|width=300]] [목차] == 개요 == [[이탈리아]] 출생의 [[혁명가]], 사상가, 사회운동가. [[바뵈프]]와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블랑키]]에 영향을 미쳤고, 초기 [[사회주의]]의 원류가 되는 인물이다. == 생애 == 필리포 부오나로티는 1761년 이탈리아 [[피사]]에서 태어났다.[* 성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후손]]였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어 활동하다가 [[프랑스 혁명]]을 맞았다. 혁명에 열광한 그는 [[클뢰브 데 자코뱅]]의 영향을 짙게 받아 이탈리아 내에서 자코뱅을 지지하는 활동을 벌였고 마침내 프랑스로 넘어오기에 이른다. 그는 혁명정부를 도와 [[코르시카]]에서 첩보 활동을 벌였는데, 거기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만나는 인연을 겪기도 했다. 한편 [[프랑스 혁명#s-8|테르미도르의 반동]] 이후에는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를 만나 서로 평생 동지가 되었다. 부오나로티는 바뵈프와 함께 '평등'을 강조하며 [[프랑스 혁명#s-9|총재 정부]]를 비판했고[* 부오나로티와 바뵈프는 [[로베스피에르]]의 집권 시절에는 그를 비판했지만, 테르미도르의 반동 이후 부르주아 공화정이 들어서며 민중을 위한 정책을 펴지 않자 그에 대한 반발로 [[로베스피에르]]를 적극적으로 옹호해주었다. ~~본격 로베스피에르 [[재평가]]~~], 1795년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했다. 이 일로 둘은 감옥에 갇혔고, 바뵈프는 처형당하고 부오나로티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 1812년 출옥한 그는 이번엔 [[프랑스 제1제국|나폴레옹의 전제 정치]]에 맞서 군인들의 반체제 음모에 가담했다가 또 실패해 [[스위스]]로 망명한다. 이후 [[이탈리아]]의 혁명 운동을 도왔고, 책을 써서 바뵈프의 혁명 사상을 알리고자 했다. 그러다 1830년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조가 타도되자 파리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다 1837년 세상을 떠났다. [[분류:이탈리아의 정치인]] [[분류:혁명 프랑스의 정치인]] [[분류:토스카나 주 출신 인물]] [[분류:1761년 출생]] [[분류:1837년 사망]] [[분류:공상적 사회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