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ranz_Josef_Strau%C3%9F_1982.jpg|wid=350&height=400]]|| ||<:> '''풀네임''' ||<(> '''Franz Josef Strauss'''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 ||<:> '''출신 정당''' ||<(> [[기독교사회연합]] || ||<:> '''생몰년''' ||[[1915년]] [[9월 6일]] ~ [[1988년]] [[10월 3일]] (만 73세 27일) || [목차] == 개요 == [[서독]]의 [[우파]] 계열 정치인. [[바이에른]] 주 총리와 [[기독교사회연합]] 총재를 지내면서 [[헬무트 콜]]과 [[독일 총리]] 자리를 놓고 다툴만큼 거물 정치인이었으나, 정치 성향이 [[극우]]에 가깝고 [[슈피겔]]지 탄압 등의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 결과 끝내 총리직에 오르는 데는 실패했다. == 생애 == === 초기 === [[바이에른]] 지역에서 도축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교원 자격을 땄지만, 곧바로 닥친 [[2차대전]]으로 인해 징집된다. [[독소전쟁]] 초기 심각한 [[동상]]을 입은 뒤로는 주로 방공포 부대에서 근무했으며, 1945년 종전 당시 최종 계급은 [[중위]]였다. === 정계 진출 === 종전 이후 [[바이에른]]을 점령한 [[미군]] 측의 통역으로 활동하면서 미군 측에 의해 바이에른 주의회(Landrat) 의원으로 지정되어서 [[기독교사회연합]]의 창당에 기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다. 1949년 첫 총선에서 의원으로 선출된 이후 당시 서독 수상 [[아데나워]]의 눈에 들어 내각에 입각하여 특임장관, 원자력에너지부 장관, [[국방장관]]과 같은 요직을 두루두루 거치면서 아데나워의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기 시작하는데... === 몰락을 자초하다 === 장관 시절 발생한 사건사고가 끝끝내 그의 대권 야심에 발목을 잡는다. 국방부 장관 재임 시절 [[F-104]] 전투기를 구매하는 조건으로 [[록히드]] 사로부터 1000만 달러를 받았다라는 뇌물 스캔들이 터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결과적으로는 증거부족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여기에 1962년 시사 잡지 [[슈피겔]]이 [[나토]]의 작전에 대해 보도하자 슈피겔의 편집진들을 [[반역|반역죄]] 혐의로 기소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에 대한 공격이 잇따랐고, 조사 과정에서 슈트라우스가 독일 의회에 거짓 증언을 한 것까지 밝혀지면서 엄청난 비난의 십자포화가 그에게 쏟아졌다. 슈트라우스는 장관직에서 사퇴해야만 했다. 슈트라우스 본인은 이 행위에서 자신을 유대인으로, 언론을 나치에 빗대서 툴툴거렸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 이후 === 1966년 [[키징거]] 수상에 의해 재무부 장관으로 재발탁되면서 화려하게 중앙정계에 복귀한 슈트라우스는 기민/기사당이 야당으로 전락한 1969년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 [[빌리 브란트]] 정권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저격수로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한편 이 시기에서 우파진영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헬무트 콜]]과도 경쟁이 계속되었는데, 1976년 총선에서 [[헬무트 콜]]이 [[헬무트 슈미트]]에게 패배하자 슈트라우스는 콜의 정치력을 비판하면서 [[기독교사회연합]]과 [[기독교민주연합]]의 자매관계[* 정확히 설명하자면, 둘의 관계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기사련은 바이에른에서만 출마하고, 기민련은 나머지 독일 지역에서 출마) 원내에서 같은 노선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를 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고자 했다. 당연히 기민련은 노발대발해서 [[바이에른]] 지역에도 기민당의 독자 후보를 출마시키겠다고 기사련과 슈트라우스에게 엄포를 놓았고 이에 깨갱(...)한 슈트라우스는 자매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본인이 기민/기사 연합의 대표로 야심차게 나섰지만 1980년 총선에서 1976년보다 무려 20석을 더 잃는 처참한 참패를 당하고 만다. 이 총선은 콜과 슈트라우스 간 싸움의 종결선언과도 같았고 슈트라우스는 사실상 중앙정계에서 은퇴해 바이에른 주 총리직을 수행하는데 전념한다. 이후 슈트라우스는 1988년 10월 1일 [[레겐스부르크]] 근교에서 사냥을 하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이틀후인 3일에 숨을 거둔다. 또한 [[뮌헨 국제공항]]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있다. [[분류:독일 국방군/인물]] [[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 [[분류:독일의 정치인]] [[분류:1915년 출생]][[분류:1988년 사망]][[분류:당 대표/독일]][[분류: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