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그리스 로마 신화]]의 최초의 바다의 신 == [include(틀:가이아가 스스로 낳은 자식들)] ||<table 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6699><#006699><tablebgcolor=#fff><-2><:>{{{#ffd700 '''{{{+2 폰토스 (Πόντος / Pontos)}}}'''[br]'''바다의 신'''}}} || [[우라노스]], [[우로스]]와 함께 [[가이아]]의 자식이다. [[그리스어]]로 이미 그 자체가 '바다'라는 뜻이다.[* 그리스인들은 [[흑해]]를 폰토스 에우크세이노스(Pontos Euxeinos 혹은 [[라틴어]]식으로 Pontus Euxinus)라고 했는데, 친절한 바다라는 뜻이다. [[그리스]]인들이 흑해 연안 각지에 교역 거점들을 가지고 활발히 교역 활동을 했으므로 그렇게 불렸다.] 그러나 대부분 바다의 신이라고 하면 3세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 좀 마이너하더라도 [[오케아노스]]를 떠올리지, 폰토스를 떠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안습한 취급처럼 그와 관련된 전설은 없지만 우라노스가 고자가 된 이후, 가이아와 관계해 자식들이 태어나는데, 바다의 공포를 의미하는 포르키스와 케토, 바다의 장로로 존경받는 변신술에 뛰어난 네레우스와 경악의 신 타우마스[*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면 바다가 거칠고 해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거칠고 강한 힘을 자랑하는 에우리비아[* 다른 본에는 그라이아이도 그들의 자식이라 되어있다.]의 아버지가 된다. 가이아가 원시의 대지를 상징한다면, 이쪽은 원시적인 바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참고로 1세대 바다의 신이다. 또한 헤메라와 아이테르의 자식인 또 다른 바다의 신인 탈라사[* 그런데 일부 전승에 따르면 탈라사는 바로 폰토스 자신의 여성형이기도 하다. 일리아스에 나오는 제우스-디오네와 같은 관계이거나, 혹은 단순히 테티스(아킬레우스의 어머니)-테튀스(오케아노스의 아내)와 비슷한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와 관계하여 할리아와 로도스 섬의 최초의 거주자들이며 키클롭스나 다크틸로이(δάκτυλος)처럼 뛰어난 대장장이로 알려진 텔키네스[* 개의 머리, 손 대신 물갈퀴 혹은 지느러미를 가졌다고 한다. [[포세이돈]]을 레아의 부탁으로 맡아 키웠다는 전승이 있다. 이후 [[헬리오스]]의 아들들에 의해 로도스 섬에서 쫓겨난 데에 원한을 품고 자신들의 힘을 악한 목적으로 썼다가 [[제우스]], 포세이돈, [[아폴론]]에 의해 몰살당한다.]들을 낳았다. 한편 일부 신화에서는 [[프로토게노이]] 중 고대의 바다(혹은 지중해)를 의인화한 신을 여성으로 여기기도 했다. 바로 위의 [[탈랏사]](Θάλασσα)여신. 폰토스의 [[성전환/창작물|여성형]]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테튀스나 암피트리테와 동일시 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 자체가 하나의 사물이나 자연을 여러 신들로 동시에 신격화시키기도 했으니, 아프토디테의 어머니는 이쪽일지도 모른다. 일리아스에서는 아예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로 여겨진다. == 흑해 남안의 지명 == [[그리스어]] Πόντος 주요 도시는 [[시노페]], [[삼순]], [[트라브존]], [[아마시아]], 니카사르, 오르두, 토카트 등 정확히 말하면 [[아나톨리아]] 북동부의 해안 지역을 가리킨다. 원래 [[카파도키아]]의 일부로 간주되던 지역이지만, 아래 서술할 독립 왕국이 건국된 이후로 "폰토스([[흑해]]) 방면의 카파도키아"라고 불리다가 축약되어 그냥 폰토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고대부터 [[동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 시대까지 지명으로 사용되었으나 이 지역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시기는 아마도 로마 제국에 대항했던 고대 폰토스 왕국일 것이다. 1번 항목에서도 서술했다시피 흑해 연안은 그리스인들의 교역 거점이 많았으므로 그리스인들에게 친숙한 곳이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대개 해안의 몇몇 [[폴리스]]들에 한정되었으며, [[이오니아]]처럼 그리스 문화가 융성하지는 못했다. 이후 오리엔트 세계를 석권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영토로 편입되었는데, 이때 페르시아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include(틀:아나톨리아의 역사/고대)] 그 뒤 아케메네스 왕조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침공으로 멸망한 뒤 [[디아도코이]] 전쟁으로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 제국]]이 분열된 틈을 타 페르시아 귀족 출신인 미트리다테스(또는 미트라다테스) 1세 크티스테스가 독립하여 폰토스 왕국을 세웠다. 나라를 세운 지배층은 페르시아 귀족이었지만, 그리스-헬레니즘 문화를 최대한 우호적으로 대하였으므로 사실상 헬레니즘 국가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PonticKingdom.png]] 폰토스 왕국의 영역. 짙은 보라색이 원래 폰토스 왕국의 영역, 중간 보라색이 미트리다테스 6세가 재위 초기에 획득한 영역, 옅은 보라색이 "미트리다테스 전쟁"으로 알려진 일련의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차지한 영역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폰투스 왕국]] 문서 참고 미트리다테스 1세가 왕국을 세운 BCE 302년부터 BCE 120년까지는 주위 열강의 눈치를 보며 숨어 사는 미니 왕국에 불과했으나, 미트리다테스 6세라는 걸출한 왕의 등장으로[* 내정, 외교, 군사 모든 방면에서 천재중의 천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뛰어났으나 인성적인 면에선 잔혹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다. 자기 왕권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와 동생을 죽였고, 자국내의 로마인들을 평화적으로 추방할 수 있었는데도 학살했다. 그 업보였는지 결국 반란을 일으킨 아들에게 포위되고 자살한다.]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2세와 결혼 동맹을 맺어 영토를 대폭 확장하였다. 하지만 이는 한참 동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로마]]와의 대립을 야기하였고, 결국 폰토스 왕국은 [[술라]], [[루쿨루스]], [[폼페이우스]]라는 명장들의 샌드백 신세가 되어 몰락하고 말았다. 이를 미트리다테스 전쟁(Mithridatic War)이라고 한다. 패망한 폰토스는 아르메니아와 비슷하게 우선은 속국이 되어 왕조 체제를 유지하다가 이후 완전히 [[로마 제국]]령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속주]]들과 달리 일종의 [[자치구]] 비슷한 형태가 잔존하였다. 제4차 [[십자군 전쟁]](1204년)의 여파로 동로마 제국이 분열되었을 때는 동로마의 옛 황가였던 [[콤네노스 왕조]]의 일족이 [[트레비존드 제국]]을 세우기도 했다. [[흑해 그리스인|폰토스 그리스인]]들은 [[오스만 제국]] 때까지 존재하다가 1923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그리스로 보내지거나, 혹은 [[소련]] 같은 다른 흑해 국가들로 이주해갔다. [[분류:그리스 로마 신화/신]][[분류:바다의 신]][[분류:그리스어 단어]][[분류:아나톨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