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음이의어/ㅍ]][[분류:전함]][[분류:해상 병기/세계 대전]][[분류:1905년 출시]] [목차] == [[제정 러시아]]의 귀족 == 러시아어: Григо́р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отёмкин-Таври́ческий 영어: Grigory Aleksandrovich Potemkin-Tavricheski 1739~1791. [[제정 러시아]]의 귀족 출신 정치인, 관료, 군인이자 [[예카테리나 2세]]의 총신 겸 정부. [[크림 반도]]를 러시아 땅으로 하는 공로를 세웠고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총사령관으로 복무했다. 포템킨은 'ё'(요)를 잘못 읽었거나 Potemkin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생긴 오류.[* 러시아어 키릴문자 ё는 e로 표기하는 일이 많다. [[Ё]] 참조. 포템킨도 Потeмкин으로 표기되었으므로 '포템킨'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그리고리 알렉산드로비치 포툠킨-타브리체스키, 구개음화를 반영한 원어 발음로는 '빠쫌낀'에 가깝다. 2,3,4번 항목의 어원이다. == 러시아 제국의 전함 == [include(틀:1차 세계대전/러시아 함선)] ||<table bgcolor=white><table bordercolor=#0036a7> [[파일:attachment/포템킨/potemkin.jpg|width=100%]] || ||<rowbgcolor=#FFCC33> {{{#0036a7,#588eff '''«Князь Потёмкин-Таврический»'''}}} || ||기공||1898년 10월 10일|| ||진수||1900년 9월 14일|| ||취역||1905년 5월 20일|| ||퇴역||1925년 11월 21일|| || 이전 함급 ||[[페레스베트급 전함]] || || 다음 함급 ||[[레트비잔]] || || 배수량 ||12,500톤 || || 길이 ||115미터 || || 너비 ||22.3미터 || || 최고속도 ||16노트 || || 주무장 ||12인치 연장포 2기(4문) / 6인치 단장포 16문 || 보통 '포템킨'이란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정식 함명은 '크냐지 포툠킨(파촘킨) 타브리체스키'. 1898년부터 건조가 시작되었으나 중간에 화재사고가 일어나는 등의 문제로 [[1905년]]이 돼서야 흑해 함대에 배치되었다. 건조 시기부터 따져봐도 상당히 뒤늦게 만들어진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서 이미 [[영국]]에서는 [[드레드노트급]]이 건조되고 있을 무렵이었지만, [[러일전쟁]]으로 인해 발트 함대가 증발당한 러시아에는 그야말로 막 뽑혀나온 최신예 전함이었다. === 포템킨 반란 사건 === [[포템킨 반란]] 문서 참고. === 영화 [[전함 포템킨]] === [[전함 포템킨|해당 문서]] 참고. == "초라한 상태를 은폐하기 위해 꾸며낸 겉치레"라는 뜻을 가진 [[관용어]] == '''포템킨 마을'''이라고 한다. 유래는 '포템킨'이란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는 1번 항목의 러시아 귀족 그리고리 포툠킨(포템킨)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포템킨은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 치하의 궁정 인사였고, 여제의 연인이기도 했다. 또한, 포템킨은 당시 러시아 제국에 합병된지 얼마 안 된 옛 [[크림 칸국]]의 통치를 맡기도 했다. 그에 관해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예카테리나 여제가 포템킨이 통치하고 있는 지역을 순방하겠다고 나서자, 포템킨은 쾌히 응했다. 그러나 그가 통치하고 있던 지역은 러시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만약 예카테리나에게 낙후되었던 영지가 자신 치하에서 크게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자신의 궁정에서의 영향력은 물론이고 덤으로 러시아의 위상도(여제의 일행에는 외국 외교관들도 포함됐다)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에 대규모의 개발을 마칠 수는 없는 노릇 --진작 좀 하지--. 그래서 포템킨은 예카테리나 여제가 그의 영지를 관통하는 [[드네프르 강]]에서 바지선을 타는 것이 유일한 순방 계획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니까, 여제는 실제로 마을에 들어가지는 않고 오로지 배에서 강 유역에 있는 마을과 도시를 바라볼 것이라는 사실! 그래서 포템킨은 한 가지 묘안을 떠올리는데, 바로 '''가짜 마을'''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여제가 배를 타고 바라볼 드네프르 강 유역의, 두꺼운 종이에 발전 되어 있는 마을의 모습을 그려넣은 뒤 마치 이곳이 부유하고 발전된 곳인 마냥 위장했다. "우왕 여기 심시티 쩌네여ㅋ"라는 평을 받아낸 포템킨은, 여제가 배를 타고 둥둥 떠나가면 그 그림을 철거하여 여제가 바라볼 다음 장소에 또 갖다 놓았다. 여제 일행은 역시 계속해서 낚였고(...) 포템킨은 목표 달성에 성공하였다!|| --[[합판소문]]?-- 위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은 적지만, 그후 그레고리 포템킨의 이름을 딴 '포템킨 마을'이라는 용어는 [[전시행정|초라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를 은폐하기 위해 꾸며낸 겉치레]]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또한 포템킨 마을 전략은 전쟁터에서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군대가 전력을 실제보다 더 강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법이라는 뜻도 있다. 소련이 [[냉전]] 시대에 이 수법을 사용하였다. [[흐루쇼프]]는 미국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 미사일과 핵무기를 가지고 미사일로 미국을 싸그리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라며 60년 초에 수많은 공갈 협박을 자행해왔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인 것마냥 두려워하는 척 하였다. 왜냐면 우선 자기들이 저들의 패를 훤히 읽고 있다는 사실을 소련 측이 알기를 원치 않아서였고, 또 소련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해 더 많은 국방예산을 타기 위해서였다. 그야말로 적도 아군도 철저히 속여먹은 셈(...).]. 폭격기 갭 논란, 미사일 갭 논란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후 80년대에 들어서는 소련이 핵무기를 무진장 늘려놔서 미국보다 더 많은 수의 핵무기를 가졌었다. 그만큼 핵전쟁의 공포는 더 늘어났지만 [[상호확증파괴]] 덕분에 다행히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소련은 얌전히 붕괴했다. 한국도 해당 상황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을(를) 자제해 주십시오|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을(를) 자제해 주십시오]]가 대표적. 특히 군인 출신이 정권을 잡았던 군정 시절에 이러한 "전시(보여주기) 행정"이 심하였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녹화([[잔디]] 심기) 정도가 미진하자 큰 도로 주변의 잔디밭에 녹색 페인트를 스프레이칠한 것은 당시 세대에게 잘 알려진 일화이다. [[북한]]도 --같은 한민족이라고-- 똑같이 구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평양]]의 일부 지역 외엔 절대 여행 허가를 안내주는 것이 그것이다. 일부러 가장 발전된 지역만 외국인에게 보여주려는 목적. == [[길티기어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 == [[포템킨(길티기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