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발해 국왕)] ||||||<:><#2531a2>'''{{{#FFD700 발해 4대 국왕[br] {{{+1 {{{#FFD700 廢王[br]폐왕}}}}}}}}}'''|| ||<tablealign=right><:><tablebgcolor=#fff,#2d2f34><table bordercolor=#2531a2><#2531a2>'''{{{#FFD700 시호}}}'''||||<(>없음 || ||<:><#2531a2>'''{{{#FFD700 왕호}}}'''||||<(>'''없음'''[* 폐왕(廢王)이란 말은 폐위된 왕이라는 뜻이지, 고유명사가 아니다. 다른 폐제, 폐왕 모두 마찬가지다.] || ||<:><#2531a2>'''{{{#FFD700 성씨}}}'''||||<(>대(大) || ||<:><#2531a2>'''{{{#FFD700 휘}}}'''||||<(>원의(元義) || ||<:><#2531a2>'''{{{#FFD700 생몰년도}}}'''||<(>음력 ||? ~ 793년 || ||<:><#2531a2>'''{{{#FFD700 재위기간}}}'''||<(>음력 || 793년(12개월 미만) || [목차] == 개요 == [[발해]]의 제4대 [[가독부]]. [[문왕(발해)|문왕]]의 친척동생이다. '폐왕'은 말 그대로 [[폐위]]당했기에 붙은 것. 폐위된 임금인 것이다. 재위 기간이 1년이 채 안된다. == 생애 == 문왕 대흠무가 죽은 후 원래는 [[태자]]인 [[대굉림]]이 이어받아야 했으나 대굉림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 동생으로 확인되는 [[대정알]](大貞斡)은 [[당나라]]에 숙위(宿衛)로 가 있었으며 대굉림의 아들인 대화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승하지 않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c208182bc3ef4123989b791ed82dd222|족제(族弟)]]인 [[대원의]]가 왕위에 올랐다.[* 아들과 손자들이 다수 존재하였음에도 족제라는 불분명한 인물이 즉위하였다. 현재 일반적으로 12촌(5종) 이상의 친척부터 족-을 붙여 표현한다. 당시에도 족제를 같은 의미로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왕 말기에 왕위 계승 다툼이 있었기에 이 사태가 일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성질이 포악하고 시기심이 많아 끝내 신하(국인 - 귀족 세력)들의 반발로 인하여 시해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대원의 시해의 뒷배경에는 문왕의 막내아들이자 제6대 왕인 [[강왕|대숭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왕이 동경용원부로 천도한 지 얼마되지 않아 사망하고 폐왕 사후 다시 [[상경용천부]]로 천도한다는 점 때문에 폐왕은 발해의 [[수도]] 중 하나인 동경용원부를 세력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또한, 공식적인 국왕이 아닌 공위 시대를 이끈 임시 국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원의가 시해당한 후 왕위는 대굉림의 아들 [[성왕(발해)|대화여]]가 이어받았다. 폐왕 이후 즉위한 성왕부터 [[간왕]]까지의 나무위키 문서는 내용이 시호, 휘, 재위 기간, 연호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과 아주 적은 내용의 치적밖에 없다. 기록이 그만큼 적게 남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강왕]]을 제외한 나머지 왕들은 재위 기간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5년밖에 안되기 때문에 기록이 적을 수 밖에 없다. [[분류:생년 미상]][[분류:793년 사망]][[분류:발해 국왕]][[분류:폐위된 군주]][[분류:암살된 인물/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