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신성 로마 황제)] [include(틀:역대 헝가리 국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rans_Luycx_002.jpg]] 생애 : [[1608년]] [[7월 13일]] ~ [[1657년]] [[4월 2일]](만 48세) 재위기간 : [[1637년]] [[11월 18일]] ~ [[1657년]] [[4월 2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며 [[헝가리]]의 [[왕]], [[보헤미아]]의 왕이다. 이 황제의 치세에 [[30년 전쟁]]이 끝났다. 1608년에 그라츠에서 [[페르디난트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예수회의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1627년에 군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중요한 법률이며 군사 판례가 될 수정 영토 조례를 발표한다. 이것은 군대를 기르느라 지쳐있던 보헤미아 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을 강화했다. 30년 전쟁이 계속되던 1634년,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이 암살당한 이후에, 형식적으로 제국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페르디난트 3세는 그의 사촌인 [[페르난도 데 아우스트리아]]와 같이 활동하면서, 도나우뵈르트와 레겐스부르크를 되찾았으며 뇌르틀링겐 전투에서 스웨덴군을 패배시킨다. 화평파의 리더로서 그는 [[작센]] 등의 신교도 제후들과 1635년 프라하 평화 조약을 맺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신의 고압적 태도와 친 가톨릭 성향의 조약으로 인해 조약을 망치게 된다] 1637년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페르디난트 3세는 프랑스, 스웨덴과 평화를 맺길 원했으나 30년전쟁은 11년을 더 끌었다. 1648년에야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이 맺어져 전쟁이 종결되었다. 1644년에 페르디난트 3세는 모든 제후들에게 독자적인 외교권을 준다는 칙령을 발표한다. 이전에는 [[선제후]]들만이 독자적인 외교를 할 수 있었다. 이 칙령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의 권한과 정체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그리고 [[프랑스]], [[스웨덴]]과 협상하는 와중에 더 많은 군대를 모았다. 1648년 이후 페르디난트 3세는 독일에 있는 외국의 군대를 몰아내고 베스트팔렌 조약의 조항들을 실천에 옮기느라 바빴다. 1656년에는 [[프랑스]]와 분쟁에 들어간 [[스페인]]을 지원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군대를 보냈다. 1657년 4월 그가 죽기 전에 스웨덴 왕 칼 10세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폴란드]]와 동맹을 맺었다. [[분류:신성 로마 황제]] [[분류:독일 국왕]] [[분류:오스트리아 대공]] [[분류:헝가리 국왕]] [[분류:크로아티아 국왕]] [[분류:보헤미아 국왕]] [[분류:합스부르크 가문]] [[분류:1608년 출생]] [[분류:1657년 사망]] [[분류:카푸친 교회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