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관련 인물(MLB)]] ----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e3386><tablebgcolor=#0e3386> '''{{{#ffffff 퍼거슨 젠킨스의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시카고 컵스 영구결번)] ---- ||<-2><table align=center><bgcolor=#082574>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파일:MLB_logo.png|width=38&height=21]]]]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ffffff 명예의 전당}}}]] {{{#ffffff 헌액자}}}''' || ||<-2><bgcolor=#ffffff,#191919>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Jenkins_Fergie_Plaque_NBL.png|width=250]] || ||<-2> '''[[http://baseballhall.org/hof/jenkins-fergie|퍼거슨 젠킨스]]''' || || 헌액 연도 || [[1991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75.4% (3회) || ---- ||<-5><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004785> [[내셔널 리그|[[파일:external/oi67.tinypic.com/mkfx5j.png|width=20]]]] '''{{{#ffffff 197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 ||<width=30%> [[밥 깁슨]][br]([[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width=30%> '''퍼거슨 젠킨스[br]([[시카고 컵스]])''' || → ||<width=30%> [[스티브 칼튼]][br]([[필라델피아 필리스]]) || ---- }}} || ---- ||<-2><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e3386>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ergie_Jenkins.jpg|width=100%]]}}} || ||<-2><colbgcolor=#0e3386> '''{{{#ccac00 시카고 컵스 No.31}}}''' || ||<-2><bgcolor=#cc3433> '''{{{#ffffff 퍼거슨 아서 "퍼기" 젠킨스[br] (Ferguson Arthur "Fergie" Jenkins)}}}''' || || '''{{{#ffffff 생년월일}}}''' || [[1942년]] [[12월 13일]] || || '''{{{#ffffff 국적}}}''' || [[파일:캐나다 국기.svg|width=25]] [[캐나다]] || || '''{{{#ffffff 출신지}}}''' || [[온타리오]] 주 채탬 || || '''{{{#ffffff 신체}}}''' || 196cm, 92kg || || '''{{{#ffffff 포지션}}}''' || [[선발투수]] || || '''{{{#ffffff 투타}}}''' || 우투우타 || || '''{{{#ffffff 프로 입단}}}''' || 1962년 자유계약 ([[필라델피아 필리스|PHI]]) || || '''{{{#ffffff 소속 구단}}}'''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65~1966) [br] '''[[시카고 컵스]] (1966~1973)''' [br] [[텍사스 레인저스]] (1974~1975) [br] [[보스턴 레드삭스]] (1976~1977) [br] [[텍사스 레인저스]] (1978~1981) [br] [[시카고 컵스]] (1982~1983) || || '''{{{#ffffff 수상}}}''' || '''3회 올스타 선정 (1967, 1971, 1972) [br] NL 사이 영 상 (1971)''' [br] 2회 다승왕 (1971, 1974) [br] NL 탈삼진왕 (1969) || [목차] == 개요 ==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활약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우완 투수. [[캐나다]]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이면서 동시에 캐나다 출신의 흑인 야구선수[* 캐나디언인 것도 특이한 점이지만, 더 중요한 점으로 '''[[흑인]] 투수 HoFer'''란 점을 들 수 있다. [[재키 로빈슨]] 이래 어느 시대나 전설적인 흑인 강타자들이 등장했지만, 히스패닉 혈통이 아니면서 니그로리그를 거치지 않은 명예의 전당 입섭 흑인투수는 [[밥 깁슨]]과 젠킨스 뿐이다. 물론 신체적인 조건, 운동능력의 차이 등의 요인도 있지만, 히스패닉계 투수들이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 미국 본토 출신 흑인 에이스의 명맥이 끊겨버린 것(현역으로는 [[CC 사바시아]], [[데이빗 프라이스]] 정도가 전부다)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다만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미국계 흑인 선수들은 상당수가 타자로 활동하며, 2019년 현 시점에도 투수들은 대부분이 백인 또는 히스패닉계 선수들이며, 미국계 흑인들은 대부분이 타자들이다.] 이기도 하다. 별명은 Fergie. 흔히들 그래서 그를 퍼기 젠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통산 3,000탈삼진을 기록한 선수이자, 빼어난 제구력과 완투 능력으로 정평이 난 선수다. 통산성적은 19시즌 동안 284승 226패, 4500.2이닝, 3.34 ERA, 3192삼진, 997볼넷, K/9 6.38, BB/9 1.99, K/BB 3.2, HR/9 0.96, 267완투, 49완봉을 기록했다. == 선수 생활 == ===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 원래 묘기 농구팀인 할렘 글로버터스에서도 잠시 뛰었지만, 결국 야구를 선택해서 1962년 필라델피아에 입단했다. 마이너에서 숙성한 후, 1965년 시즌 막바지에 데뷔했는데, 1966년 바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만패팀이 1966시즌 제법 성적이 나와서 그랬는지 베테랑 투수를 영입하고자 그를 트레이드 카드로 써 버린 것. 결국 이는 큰 실수가 되고 말았다. === [[시카고 컵스]] 시절 === 1966년 컵스에서는 구원 투수와 선발을 오가면서 활약했고, 이듬 해인 1967년부터 본격적인 선발 투수의 길에 접어든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성적을 찍기 시작했다. 1967년부터 1972년까지 6년 연속 20승을 달성한 것. 이 기록은 [[워렌 스판]]만이 가지고 있던 기록이었다. 이 기간동안 매년 280이닝 이상 던졌고, 4차례나 300이닝을 돌파했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기간동안 그가 기록한 완투가 140번이라는 것. 완투 머신으로 미친듯이 던지면서 그래도 이 기간동안은 제법 괜찮았던 컵스의 성적을 이끌었다. 그런데 팔 빠져라 던졌는데도 상복이 별로 없었다. 1967년 [[사이 영 상]] 투표 2위, 1970년 [[사이 영 상]] 투표 3위, 1972년 [[사이 영 상]] 투표 3위를 기록한 것. 사실 이 기간 중에서 [[스티브 칼튼]]이라는 괴수가 27승을 찍어버렸던 1972년은 그렇다 치더라도 1967년과 1970년은 경쟁자들에 비해 그리 밀리지 않았다. 밀린 것은 딱 하나, 이런 유형은 투수가 늘 그렇듯이 승률이었다. 그랬다. 같은 기간 팔빠져라 140완투를 했는데도, 매년 두 자리수 패배를 기록하면서 승률을 깎아먹었다. 평균자책도 다 2점대 아니면, 3점대 초반인데(...) 하지만 박복하지는 않아서 1971년 [[사이 영 상]]을 차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해는 경쟁자인 [[톰 시버]]가 더 잘 던진 해였다. 승률도 좋았고, 구위의 압도적인 면에서도 더 나았다. 당장 조정평균자책점이 젠킨스가 142로 훌륭했지만, 시버는 194를 찍어버렸다(...) 그래도 사이 영 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워낙 고생한 것에 대한 동정표 + 다승 및 이닝, 완투는 시버보다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팔 빠져라 던지다가 결국 1973년 부진에 빠지면서 평범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다. 그러자 컵스는 그를 바로 트레이드시키면서 버렸다(...) ===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 하지만 텍사스에서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1974년 328.1이닝을 던지며 25승을 거두고, 무려 29완투에 성공한 것.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텍사스 레인저스의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이다. 다만 [[사이 영 상]] 투표에서는 치열한 접전 끝에 당시 강팀이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캣피시 헌터]]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다. 그 이듬해 또 무리한 탓인지 평균자책이 4점대 근처로 올라가자 [[텍사스 레인저스]]는 [[보스턴 레드삭스]]로 그를 트레이드 시킨다. 하지만 레드삭스에서 평범한 성적을 거두고 이닝 소화력도 떨어지자 보스턴은 2년간 그를 쓴 후, 다시 레인저스로 보내버렸다. 여기에는 불펜에서 강등된 후, 졸다가 걸리면서 찍힌 탓도 컸다. 이대로 사라지나 싶었는데 불굴의 의지로 다시 재기, 1978년 18승 8패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텍사스에서 4시즌을 더 뛰게 되었다. 레인저스 말년은 예년처럼 위력적이고 압도적인 선수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켜주는 선수의 위상. 1981년 5승 8패 4.50으로 부진하자, 자유계약 선수가 된 그를 텍사스는 잡지 않았다. 여기에 그가 고향인 캐나다에서 마약 소지 혐의가 적발되면서 더더욱 평가가 떨어졌다. === 말년 === 자유계약 자격을 얻어 그가 돌아간 곳은 바로 친정팀이나 다름없는 [[시카고 컵스]]. 여기서 또 다시 ~~좀비처럼~~ 부활에 성공한다. 평균자책 3.15를 기록하면서 살아난 것. 문제는 이 놈의 컵스가 늘 그랬듯이 득점 지원을 못하면서 14승 15패를 기록했다는 거지만. 대신 통산 3,000번째 삼진을 잡아내면서 메이저리그에 한 획을 긋는데는 성공했다. 1983년 부진한 성적을 내자 결국 40세의 나이를 끝으로 은퇴한다. 결국 선수 시절 내내 PO에는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의 은퇴 바로 이듬 해인 1984년 [[시카고 컵스]]는 39년만에 PO에 진출해 더욱 아쉬움을 남겼다. == 스타일 == 빼어난 제구력과 공격적인 투구로 타자를 상대한, 투지가 넘치는 투수였다. 그 증거로 젠킨스는 4500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볼넷을 997개 내줬는데 BB/9를 계산해보면 1.99개로 역대 통산 BB/9이 5번째로 적은 투수다. 또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3,000개 이상의 삼진을 잡고 1000개 미만의 볼넷을 내준 4명의 투수 중 한 명이다.[* [[커트 실링]], [[페드로 마르티네스]], [[그렉 매덕스]]가 나머지 세명이다.] 적은 볼넷과 공격적인 투구스타일 때문에 엄청난 양의 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19시즌 동안 4500이닝을 소화했으니 '''연평균 236이닝(!)'''을 던진 셈이다. 완투능력도 뛰어나서 통산 완투경기가 '''267번'''[* 현재 메이저리그의 완투머신이라는 [[제임스 쉴즈]]의 통산 완투경기가 22번이다(…).]이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약팀에서 뛰다보니 PO에는 단 한 번도 등판해 본 적이 없다. 같은 이유로 완투를 열심히 하고도 패전이 많아서 승률은 그리 좋지 못하다. 물론 여기에는 자기 잘못도 있는데,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 때문에 통산 484피홈런을 기록해서 역대 3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 재밌게도 역대 피홈런 2위는 그와 가장 유사한 선수 생활을 했던 [[로빈 로버츠]]다. 1위는 [[제이미 모이어]].] 그가 주로 뛴 홈구장들이 다 투수들이 유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좀 더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그가 가장 맹활약했던 1967년부터 1972년까지 리글리필드는 정말 타자들의 구장이었고, 팀 전력도 초극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선수 시절 단 한 번도 우승권의 강팀에서 뛴 적이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은근히 손해본 승수가 많았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 명예의 전당 입성 ==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3수 끝에 1991년 75.4%라는 턱걸이 득표율로 들어가게 되었다. 3수만에 빨리 입성한 것은 다행이지만 득표율은 꽤 낮은 편인데, 그 이유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는 마약 소지 혐의로 징계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지금이야 승수만으로 선수를 평가하지 않지만, 승률을 중시하던 당시 풍조에서는 좀 평범하기도 했었고. 한 마디로 말해 저평가 + 본인의 잘못이 겹치면서 다소 낮은 평가를 받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입성으로 인해 그는 [[캐나다]] 출신 야구 선수 중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선수가 되었다. 여러가지로 개고생하다 겨우 헌액된 [[버트 블라일레븐]]이 떠오르는 대목. 하지만 블라일레븐은 [[김병현|법규]]를 날린 것과 젠킨스보다 훨씬 처절한 승률 외에는 젠킨스보다 크게 떨어진 면도 없는데 '''14수'''나 해야 했다(...) 그는 시카고 컵스의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는데도 이 당시 [[그렉 매덕스]]가 31번을 달아버리면서 결국 그의 등번호는 매덕스와 함께 2009년에 이르러서야 결번될 수 있었다. ==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 [[명예의 전당 통계|블랙잉크]], [[명예의 전당 통계|그레이잉크]], [[명예의 전당 통계|명예의 전당 모니터]], [[명예의 전당 통계|명예의 전당 스탠다드]] || ||블랙잉크||그레이잉크||HOF 모니터||HOF 스탠다드|| || 퍼거슨 젠킨스 || 36 || 206 || 132 || 53 || ||HOF 입성자 평균|| 40 || 185 || 100 || 50 || * [[명예의 전당 통계|JAWS]] - Starting Pitcher (24th) || ||career WAR||7yr-peak WAR||JAWS|| || 퍼거슨 젠킨스 || 84.9 || 51.8 || 68.3 ||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 50.3 || 62.1 || [[분류:캐나다의 야구 선수]][[분류:온타리오 주 출신 인물]][[분류:1942년 출생]][[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텍사스 레인저스/은퇴, 이적]][[분류:필라델피아 필리스/은퇴, 이적]][[분류:시카고 컵스/은퇴, 이적]][[분류: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