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이탈리아의 역사]][[분류:공국(공작)]][[분류:중세 이탈리아 왕국 구성국]][[분류:도시국가]][[분류:19세기 멸망]] [include(틀:이탈리아의 역사)] ||<table align=right><table width=100%><-4> {{{+3 '''파르마 피아첸차 공국''' [br] '''Ducato di Parma e Piacenza'''}}} || ||||<:> [[파일:파르마 깃발.png|width=150]] ||||<width=50%> [[파일:Parma(Arms).png|width=100]] || ||<-2> 국기 ||<-2> 국장 || ||||||<:> [[파일:Duchy_of_Parma_(Territory).png|width=100%]][br]1545년 ~ 1859년 || ||<:> 위치 ||||이탈리아 중부 || ||<width=20%> [[수도(행정구역)|수도]] ||||[[파르마]] || ||<:> 정치체제 ||||군주정 || ||<:> 국가원수 ||||공작 || ||<:> [[언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 ||<:> [[민족]] ||||이탈리아인 || ||<:> [[종교]] ||||[[가톨릭]] || ||<:> 통화 ||||스쿠도 || ||<:> 성립 이전 ||||밀라노 공국|| ||<:> 주요사건 ||||1545년 건국[br]1731년 [[파르네제]] 왕가 단절[br]1802년 ~ 1814년 해체[br]1859년 해체|| ||<:> 멸망 이후 ||||중부 이탈리아 연방 || [목차] == 개요 == [[이탈리아]] 중부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에 존재했던 군주국이다. [clearfix] == 역사 == [[교황]] [[바오로 3세]]는 이전 교황들로부터 대대로 이어오던 독점적인 권력 유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밀라노 공국령 포 강 남쪽 지역이었던 [[파르마]]와 피아첸차는 프랑스가 물러난 이후 [[교황령]]에 흡수되었다. [[바오로 3세]]는 자신의 양자였던 피에르 루이지 파르네제를 파르마 공작으로 임명했는데 밀라노 공국을 획득한 황제 [[카를 5세]]는 파르마 공국을 이전처럼 밀라노에 통합시키고 싶어했다. 황제의 조종에 의해 파르마와 피아첸차에서는 친황제파 [[반란]]이 일어났고, 이에 의해 초대 공작 피에르 루이지가 사망했다. 하지만 [[교황]] [[바오로 3세]]는 피에르 루이지의 아들 오타비오 파르네제가 재빨리 공작위를 잇게 했으며, 반란을 수습했다. 이로써 파르마를 흡수하려는 [[카를 5세]]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1559년 [[펠리페 2세]]와 [[앙리 2세]]가 카토 캄브레지 조약을 체결하여 [[이탈리아 전쟁]]을 마무리한 이후 파르마 공국은 [[스페인]]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알레산드로 파르네제]]와 같은 공작은 [[스페인]]의 [[장교]]로 일하기도 했다. 이외에 [[예수회]]가 파르마에서 활동하는 등 [[가톨릭]]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1731년 파르네제 가문이 단절되고, 혼인 관계였던 [[스페인]]의 [[보르본 왕가]]가 공작위를 계승했다.[* 마지막 공작의 누이 엘리자베트 파르네제의 아들 카를로(후일의 스페인 왕 카를로스 3세)가 계승했다] 폴란드 왕위계승전쟁 도중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카를 6세]]와 [[마리아 테레지아]]가 파르마를 양도 받았으나[* 파르마를 양도하는 댓가로 카를로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넘겨받았다.]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도중 다시 [[스페인]] [[보르본 왕조]]에 넘어갔다[* 카를로의 동생 펠리페가 파르마 공국을 이어받았다.] 180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파르마 공국을 멸망시켰다. 나폴레옹은 파르마를 프랑스 직할령으로 병합했다가 [[프랑스 제국]]이 몰락한 1814년 파르마 피아첸차 공국이 부활한다. [[빈 회의]] 이후 파르마 공국은 오스트리아 공주이자 [[나폴레옹]]의 황후였던 [[마리 루이즈]]의 영지가 되었다. [[마리 루이즈]]가 사망하고 다시 [[부르봉 왕가]]가 계승했지만 [[2월 혁명]]의 여파가 파르마까지 번져 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1848년 이탈리아 통일전쟁으로 [[사르데냐 왕국]]이 일시적으로 파르마를 병합했으나 라데츠키가 이끄는 [[오스트리아]]군이 사르데냐군을 격파하여 다시 부르봉 왕가가 복귀했다. 이후 오스트리아가 사실상 파르마를 속국화했다. 1859년 [[이탈리아 통일]]전쟁이 재개되자 파르마에서는 이웃 [[토스카나 대공국]], 모데나 레조 공국, [[교황령]]의 [[볼로냐]] 일대 지역과 함께 혁명이 일어났고, 외국 지배자들이 축출되었다. 이후 혁명이 일어난 중부 지역은 서로 중부 이탈리아 연방을 구성했고, 국민 투표를 거쳐 [[사르데냐 왕국]]과 병합했다. 이후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졌다. == 기타 == [[파일:Palazzo della Pilotta.jpg]] 파르마 공국의 [[궁전]]으로는 [[16세기]] 세워진 필로타 궁전(Palazzo della Pilotta)이 있다. 이 궁전의 이름은 궁전 내부에서 왕족들이 스페인 전통 공놀이인 펠로타(Pelota)를 즐겼다는 데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