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통치 기구]] [목차] {{{+1 [[統]][[理]][[機]][[務]][[衙]][[門]] }}} == 개요 == 조선 말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된 정1품아문 관청. == 상세 == === 설치 이전 ===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던 시기의 국제 정세는 날이 다르게 변화해가고 있었다. 조선 역시 일본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고 [[수신사]]를 파견하는 등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에서 본격적인 개화의 흐름은 188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이에 맞추어 변화를 이끌고 근대적 내정 사무를 관장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정확한 설치 날짜는 1880년([[고종(대한제국)|고종 17]]) 12월 21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9315]]]이다. 참고로 고종이 외교와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새로운 아문의 설치를 명한 것은 같은 해 12월 5일이었다.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삼군부]]는 결국 1882년(고종 19) 6월 경 완전히 폐지된다. === 역할 === 통리기무아문은 군국기무(軍國機務)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여기서 군국기무란 국가의 군사 업무와 일반 국정[*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83491&cid=50293&categoryId=50293]]]을 뜻한다. 즉 통리기무아문은 당시 조선의 정치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