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영국의 정치인]][[분류:1485년 출생]]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Cromwell%2CThomas%281EEssex%2901.jpg]] Thomas Cromwell, 1485 - 1540 [목차] == 개요 == [[헨리 8세]] 때의 정치인. 헨리 8세는 첫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을 새 왕비로 맞이하며, 종교도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바꾸었다. 토머스 크롬웰은 헨리 8세의 비위에 맞춰가면서 그 과정을 추진하였으며, [[토머스 모어]]의 처형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증인을 들어서 반역법으로 처넣게 했다.). 이후 헨리 8세가 2번째 왕비 [[앤 불린]]을 처리하는 것을 지지하는 등, 수석장관에 올라 왕의 비위를 맞추면서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여 적을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헨리 8세의 3번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 다음 4번째 왕비로 [[클레페의 앤]]을 맞아들이는 과정을 성사시키는데, 헨리 8세가 소위 '''초상화보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앤 왕비와 이혼하면서, 토머스는 왕의 총애를 잃게 된다.~~정작 왕 자신은 허리 둘레가 50인치가 넘는데...~~ 결국 정적들에 의해 구속되어 ~~왕에게 폭탄을 소개한 죄로~~ 처형된다. == 생애 == === 출신과 젊은 시절 === 비천한 평민에서 [[잉글랜드]]의 제2인자로 떠오른, 상당히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다. 1485년 토머스 크롬웰은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퍼트니(Putney) 지방은 강도가 들끓어 밤에는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위험한 지역이었다. 크롬웰은 후에 자기가 "ruffian" 즉 상당히 거친 청년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크롬웰은 10대에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서 [[이탈리아]]에서는 용병으로 일하고, [[피렌체]]에서는 은행가의 조수로 일을 했으며, 후에는 상업에도 손을 대면서 식견을 넓힌다. 30세 정도가 되었을 무렵, [[잉글랜드]]로 귀국하여 성공적인 상인이자 법률가로 커리어를 쌓으면서 엘리자베스 위크스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엘리자베스는 한번 결혼을 했던 과부였는데, 부부의 금슬은 좋았으며 크롬웰이 부인을 위해 여러가지 선물을 한 기록도 남아 있다. 아들 그레고리[* 후에 [[헨리 8세]]의 셋째 왕비 [[제인 시모어]]의 자매 엘리자베스 시모어와 결혼한다.]와 두 딸 앤과 그레이스가 태어났으나, 앤과 그레이스는 소녀 시절 [[전염병]]에 걸려 죽고 만다. 1528년에는 크롬웰은 아내 엘리자베스도 전염병으로 잃는다. 그 후 그는 재혼하지 않는다. 또 결혼 전/또는 초기에 태어난 사생아 딸 제인이 있다. === [[앤 불린]]과의 동맹 ===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법률가로 자리를 잡은 크롬웰은 1523년 잉글랜드 하원 의원직을 얻는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전환점은 1516년부터 [[토머스 울지]] [[추기경]]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토머스 울지]] 추기경은 본래 푸줏간 아들로 태어났으며, 크롬웰처럼 낮은 신분을 극복하고 권력을 쥔 인물로, [[헨리 8세]]가 즉위했을 당시부터 모셔왔다. 울지 추기경은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한 왕이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에 혼인을 무효화해 달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일의 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교황청이 끝끝내 무효화를 거절하자, 왕과 앤은 분노했다. 결국 울지 추기경은 왕의 신임을 잃고 몰락한 후, 모든 직위와 재산을 빼앗기다시피한 채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토머스 울지]] [[추기경]]이 소유했던 저택은 [[앤 불린]]이 받게 된다.] 크롬웰은 [[토머스 울지]] [[추기경]]과 함께 몰락하는 대신 자기가 왕의 오른팔 자리를 꿰어찬다. 우선 크롬웰은 [[개신교]] 성향이었기 때문에, [[앤 불린]] 및 그녀의 친정 불린 가문과 같은 종교적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크롬웰은 잉글랜드의 [[종교개혁]]과 [[가톨릭]] [[수도원]]의 해산을 이끌었으며, [[교황]]이 아니라 왕이 그 나라 교회의 수장이어야 한다는 사상을 지지했다. 결국 1534년 잉글랜드 교회의 독립을 선언하는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통해 교황청에서 독립하여 [[잉글랜드 국교회]]가 성립되고,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이 된 [[헨리 8세]]는 [[아라곤의 캐서린]]과의 결혼을 간단히 무효화하고 [[앤 불린]]과 결혼한다. 이 모든 과정에 크롬웰이 큰 역할을 했다. 같은 해 왕은 크롬웰을 수석 대신으로 임명했으며, 사실상 크롬웰은 잉글랜드의 제2인자가 되었다. === 앤 불린과의 갈등 === 크롬웰과 [[앤 불린]]의 동맹이 언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성공회]]가 잉글랜드의 국교가 된 후, [[가톨릭]] [[수도원]]을 강제로 해산하기 시작했다. 이 때 거둬들인 재산을 크롬웰은 국고에 돌리길 원했고, 앤은 교육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를 주장하면서, 의견 충돌이 빚어졌다. 불린 가문과 크롬웰 사이에서 왕의 측근자리를 두고 기싸움이 계속되다, 이 일을 통해 적대감이 분출되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후인 1536년 [[앤 불린]]의 측근이 [[감사성찬례]][* [[성공회]]의 예배]에서 크롬웰을 맹비난한다. [[앤 불린]]은 이때 이미 딸([[엘리자베스 1세]])만을 낳았을 뿐 유산을 거듭하며 아들을 낳는데 실패한 상태였고, [[헨리 8세]]는 이미 앤이 아니라 그녀의 [[시녀]]인 [[제인 시모어]]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제인 시모어]]는 왕이 자신을 정부로 삼으려 하자 결혼을 위해 정절을 지켜야 한다고 답했는데, 왕은 여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아마도 이 시점에서 앤과 이혼하고 제인과 재혼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크롬웰은 이제 시모어 가문과 동맹을 맺고 적극적으로 [[앤 불린]]과 불린 가문을 몰락시키는 과정에 참여한다. 토머스 크롬웰은 앤의 궁정에 있던 음악가 마크 스미튼에게서 앤과 부정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아내는데, 이 고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마크 스미튼은 앤과 [[간통]]을 저지른 남자들의 이름을 댔는데, 앤과도 친밀하지만 왕과 친했던 여러 궁정 인사들의 이름이 나왔다. 토머스 크롬웰은 왕의 명을 받아 앤의 "부정"을 조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앤 불린]]의 남동생 [[조지 불린]]의 부인이었던 로치포드 부인이 "앤과 조지는 [[근친상간]]을 저지르는 사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앤을 결정적으로 옭아맨 죄목이 되었다. 앤의 외삼촌이자 대귀족인 하워드 가문의 노포크 공작은 조카와 사이가 틀어진 채였고, 기꺼이 앤의 몰락을 도왔다. [[앤 불린]]은 순식간에 [[간통]]과 [[근친상간]]죄로 처형을 당했다. 약 열흘 후 왕은 [[제인 시모어]]와 결혼했다. 크롬웰은 여전히 왕의 오른팔이었다. 그러나 제인은 아들 [[에드워드 6세]]를 낳은 지 얼마 안돼 [[산욕열]]로 사망한다. === 토머스 크롬웰의 몰락 === [[종교개혁]]의 지지자였던 크롬웰은 [[헨리 8세]]에게 [[개신교]] 신자인 왕녀를 새 왕비로 얻어주기로 마음먹었고, 그 결과 [[독일]] 클레페 공국의 왕녀인 [[클레페의 앤]]과의 결혼을 주선했다. 그러나 해당 항목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듯이, 파멸적인 결과를 낳았다. [[헨리 8세]]는 [[클레페의 앤]]이 너무 추해서 손을 댈 수 없다고 불평하다가, 앤의 시녀 [[캐서린 하워드]]와 눈이 맞았다.[* [[캐서린 하워드]]는 상기 노포크 공작의 조카이기도 했다. 앤 불린과는 사촌지간이다.] [[가톨릭]] 세력을 이끄는 노포크 공작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크롬웰을 몰락시켰다. 죄목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지만[* 그나마도 대부분은 [[이단]]에 관한 죄였다.] 그거야 왕이 죽이려고 들면 얼마든지 날조가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그 신뢰성에 의문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당시의 왕은 알다시피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기로 유명했던 [[헨리 8세]] 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죄목들 중에 자신의 맏딸 [[메리 1세]][* 일반적으로 피의 메리로 알려진 바로 그 분 맞다.]와의 결혼을 획책하려 했다는 것이 있다. 다른 일반적인 재판 등을 거치지 않고, 의회를 통해 사형 판결이 통과되었다. 이건 다시 말해서 사권[* 현대적인 인권의 개념 정도로 생각하면 적합하다.]이 박탈된 후 처형당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재판 없이 형을 집행하는 게 가능했다.''' 당연히 현대에서는 통과 불가. 이렇게 죽은 사람이 헨리 8세 시대에 셋이나 되는데, 바로 이 토머스 크롬웰과 [[캐서린 하워드]], 그리고 마거릿 폴(Margaret Pole)[* [[헨리 8세]]의 사촌이자 솔즈베리 백작부인. 자신이 [[아라곤의 캐서린]]의 시녀장을 역임하는 등 일가가 [[가톨릭]]이었는데, 특히 [[추기경]]이었던 둘째 아들 레지날드 폴이 [[교황]]특사가 되어 영국에 대항하는 가톨릭 동맹 결성이 시도하는 바람에 반역자로 몰려서 첫째아들에 이어 처형당했다.]이다. 이 처형이 1540년부터 1542년까지 불과 3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토머스 모어]]가 처형당하기 전에는 재판 씬이 있는데 크롬웰이 체포당한 후 처형당할 때에는 없는 이유다. 왕이 등을 돌리자, 왕국에서 왕 다음으로 강했던 인물 크롬웰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감옥에서 그는 헨리 8세에게 왕과 [[클레페의 앤]]의 결혼 무효화를 찬성하는 내용의 편지를 쓰면서, "가장 관대하신 군주여, 제게 제발 자비, 자비, 자비를(Most gracious Prince, I cry for mercy, mercy, mercy)."라는 애원으로 편지를 끝맺었다. 그러나 헨리 8세는 자비를 베풀어주지않고 처형했다. 아무튼 죽을 때 특별한(?) 왕의 은총(?)으로 그의 [[망나니|사형 집행인]]은 아직 미숙한 젊은 풋내기로 결정되었는데, 그 이유인즉, 집행인이 풋내기므로 단번에 [[참수]]를 하지 못할 테니 그야말로 푸줏간의 고기처럼 난도질하게 되므로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꼴로 죽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장면은 드라마 [[튜더스]]에서 잘 묘사된다(...).[* [[튜더스]]에서는 [[망나니|사형 집행인]]이 전날 과음했다는 설정을 추가했다.] 그러다보니 보다 못한 경비병이 도끼를 빼앗아 끝내줄 정도. 참수된 목은 [[런던]] 브리지에 효수되었다. 그가 죽은 날은 바로 [[헨리 8세]]와 [[캐서린 하워드]]가 결혼한 날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를 죽이고 보니 국정 운영이 개판이 되면서, [[헨리 8세]]는 크롬웰을 경솔하게 죽인 걸 후회막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잘못된 증거로 크롬웰을 잡아들였다면서 장관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처형 1년 후에 [[프랑스]] 대사관이 "헨리 8세는 자신의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였다며 후회했다"고 한 기록이 있을 정도니 어지간히도 그리워했던 듯. == 인물평 ==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인물이다. 야심을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한 기회주의적이고 교활하며 잔인한 인물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갑작스럽게 출세하면서 상당히 많은 정적을 만들었고, [[잉글랜드]]의 [[종교개혁]]과 [[앤 불린]]의 몰락을 주도하면서 손에 많은 피를 묻혔다. 본래 [[흙수저|비천한 신분]]이었는데다 비참하게 끝났기 때문인지 후대에도 그를 변호하는 목소리는 드문 편. 고전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에서는 끝까지 고결한 [[토머스 모어]]와 대비되는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영문 위키에서는 출처가 불명이긴 하지만 왕에게 무례했다는 언급이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성격이 그를 죽음으로 이끈 한 원인이 된다. 어느 정도는 일리있는 것이 왕 앞에서 무례할 정도면 상당히 막 나간다는 이야기가 되니 적이 많은 것도 납득이 가는 이야기이기 때문. == 여담 == 토머스 크롬웰은 [[올리버 크롬웰]]의 '''먼 할아버지뻘'''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머스 크롬웰의 누나 캐서린 크롬웰의 증손자가 [[올리버 크롬웰]]이다. 외가 쪽인데 크롬웰 성을 이어받은 이유는, 올리버 크롬웰의 할아버지가 윌리엄스라는 본래 성 대신 외가의 성을 썼기 때문. 영어 위키백과의 표현대로면 올리버는 토마스의 'great-great-grandnephew'랜다. --헨리 8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자를 참수할 때 아예 구족을 멸했어야만 했다. [[올리버 크롬웰|이 자의 후손 중 하나가 누구]]인지 생각해본다면 그게 의무였다.-- == 대중문화에서 == === [[튜더스]] === [[파일:external/images.smh.com.au/aw-James-20Frain-20as-20Thomas-20Cromwell_20120511130410524390-420x0.jpg]] 영국 배우 제임스 프레인 (James Frain)이 연기했다.[* [[트루 블러드]]에서 프랭클린 모트, [[고담(드라마)|고담]]에서 아즈라엘,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에서 사렉 역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 [[튜더스]]에서는 4개 시즌 가운데 3번째까지 출연했다. 꽤나 냉혹-잔인하고, 교활하며, 기회주의적인 성품으로 묘사된다. 시즌1에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신임을 얻어 관직에 오르지만, 후반부에 울지 추기경이 실각하면서 도움을 청하자 이를 외면했다. 후술할 <울프 홀>에서 묘사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비하면, 매우 배은망덕한 모습. 또한 아직 왕실을 비롯한 지배층이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던 당시 [[잉글랜드]]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던 [[개신교]] 집회에 참석하고, [[앤 불린]]에게 [[종교개혁]] 관련 서적을 전해주어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요구하던 [[헨리 8세]]가 가톨릭과 결별하는 데 간접적인 역할을 했다. 시즌2에는 초반에 잉글랜드가 [[가톨릭]]과 결별하면서 [[토머스 모어]]가 재상직을 물러나자 그 뒤를 이었다. 또한 토머스 모어의 친구였던 리처드 리치를 사주하여 모어가 옥중 면담에서 왕권을 부정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도록 유도한 후, 이를 법정 증언에 활용하여 사형 선고를 이끌어낸다.[* 리처드 리치는 이후 크롬웰의 신임을 얻어 고위직에도 올랐지만, 시즌3 종반부에 크롬웰이 몰락하자 금새 발을 빼며 목숨을 보존했다. 리치는 이후 [[에드워드 6세]] 제위 시절에 재상까지 오르는 등 71세의 장수를 누렸다.] 후반부에는 헨리 8세가 [[앤 불린]]으로부터 애정을 잃고서 제거하려는 주요 조치들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했다.[* [[앤 불린]]의 시녀들을 심문하여 불린 가문의 주요 인사들에 관한 비리, 역모 혐의를 인정하도록 종용하고, 이를 명분으로 대거 구금 및 참수했다. 극중 내내 사이가 껄끄러웠던 [[찰스 브랜던]]과도 이때만큼은 행동을 같이 하는 모습을 보였던 셈.] 두 시즌에 걸쳐 자신에게 권력을 가져다 준 정치적 은인들[* [[토머스 울지]] 추기경, [[앤 불린]]]을 냉혹하게 저버린 셈. 여기에 시즌 3 중반에서 [[찰스 브랜던]]이 반란을 일으킨 고을의 주모자 74명을 처형했다고 이야기하자[* 이 때 이미 [[찰스 브랜던]]은 자기가 저지른 짓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걸로는 모자란다"'''라는 말이 압권.[* 크롬웰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반란 세력이 가톨릭 [[수도원]] 폐쇄 조치의 철회를 요구하며 [[종교개혁]] 노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상황이었고, 크롬웰 자신에 대한 문책, 처벌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 더 나아가 일신상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도 강경 진압을 밀어붙였다고 할 수 있다. 헨리 8세의 정치적 신임을 유지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고. 물론 그러한 이유들이 극중, 그리고 역사상으로 나타난 학살에 가까운 유혈 진압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인과응보일까. 이 때문인지, 크롬웰이 끌려나갈 때의 찰스 브랜던의 차가운 표정이 그의 잔인함에 대한 반감을 전달한다. 적이 많았다는 것은 드라마 [[튜더스]]를 통해서 잘 묘사되어 있는데, 그가 반역죄로 구속될 때 그는 "내가 반역자요?"(Am I a traitor?) 하고 다른 신하들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신하들의 "반역자!"(Traitor!)라는 외침뿐. 당대의 역사가 에드워드 홀(Edward Hall) 역시 그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그의 성격적 결함을 지적한 바 있다. === [[울프 홀]] === [[BBC]]의 드라마 [[울프 홀]]의 주인공. 원작은 힐러리 맨틀Hilary Mantel의 두 소설 <울프 홀>과 <Bring Up the Bodies>이다. 배우는 마크 라일랜스. [[http://www.independent.co.uk/incoming/article9980922.ece/alternates/w620/Wolf-Hall.jpg]] 대단히 유능한 행정가로 지극하게 현실적이다. 예를 들면, 크롬웰은 [[종교개혁]]을 지지하지만 [[가톨릭]] 세력과 협력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당신은 [[개신교]] 신자가 아닌가?"란 질문에 "전 은행가인걸요." 하고 태연하게 대답할 정도. [[헨리 8세]]의 눈에 띈 후 [[앤 불린]]이 왕비 자리에 앉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그 과정에서 왕의 신임을 받아 엄청난 권력을 쥐게 되지만, 결국 [[앤 불린]]과 틀어져 정적이 된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유럽]]에서 용병일을 하기도 하고 상인으로도 살고 법률가로도 활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역시 푸줏간 아들이었던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심복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배경을 공유하는 동병상련의 정으로 시작하여 추기경에게 충성하면서 깊은 정을 쌓았다. 드라마 초반에 [[토머스 울지]] 추기경이 불린 가문과 틀어지면서 비참하게 몰락한 것이 트라우마로 남았으며, 이를 잊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철저하게 복수한다. 본래 천한 신분이기에 왕의 오른팔로 떠오르면서도 계속해서 주변의 경멸과 무시를 받는다. 이 때문인지 약자인 낮은 신분의 사람들, 여자,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존중을 잃지 않으며, 자기 편에게는 극진하다. [[레이프 새들러]]를 비롯한 여러 청년을 거둬 들이고 있다. 아들 그레고리와는 살짝 서먹한 모습을 보이는데, 대장장이의 아들로 자란 아버지와 부유하게 자라 기사 작위까지 받은 아들과의 세대/문화차이인 듯. 한편으로는 자신을 적으로 돌리거나 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겐 딱히 자비가 없다. 고문을 할 정도로 잔인하거나 사악하지는 않으나, 어차피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성격. [[토머스 모어]]와는 여러모로 상극이다. 그리고 기댈 곳이 왕의 신임밖에 없는 개천에서 난 용의 숙명인지, 적도 잔뜩 만들었다. 아내와 두 딸을 전염병으로 잃은 후 홀아비로 오래 살다가, 아름답지는 않지만 순수한 노처녀 [[제인 시모어]]에게 마음이 있었는데 그녀가 [[헨리 8세]]의 눈에 드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