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페르시아어]], [[아랍어]] : {{{+1 قلج ارسلان }}} [[터키어]] Kılıç Arslan 생몰 1079년 ~ 1107년 6월 3일 재위 1095년 ~ 1107년 6월 3일 == 개요 == [[룸 술탄국]]의 3대 술탄. [[군중 십자군]]을 전멸시키고 [[니케아]]를 지켜내었으나 이로써 십자군을 과소평가하고 [[다니슈멘드 왕조]]와의 싸움에 치중하다 [[1차 십자군]]에게 수도를 잃었다. 이후 [[콘야]]로 천도한 그는 절치부심하여 1101년 롬바르드 십자군을 메르지푼에서, 느베르-아키텐 십자군을 헤라클레아 전투에서 괴멸시켰다. 이러한 참사들로 인해 십자군의 진로는 육로 대신 점점 해로를 택하게 된다. 안정적으로 아나톨리아를 통치하던 클르츠 아르슬란은 1107년 [[모술]] 시민들의 초청으로 남하했다가 알레포-셀주크 연합군에 패한 후 도주하다 하부르 강에서 익사하였다. 이때 장남 멜리크샤가 포로가 되었다가 1110년에야 콘야로 돌아와 계승한다. 서양권에서 그는 십자군에 맞선 첫 무슬림 군주로 알려져 있다. 동로마와 십자군의 압력으로 무너질뻔 했던 룸 술탄국은 클르츠 아르슬란의 지도 하에 장기간 존속할 토대가 마련되었다. == 생애 == 클르츠 아르슬란은 칼의 사자라는 뜻이다. ([[킬리지]], [[아르슬란]] 문서 참고) 부친 쉴레이만샤는 동로마 내전을 틈타 1077년 니케아를 점령했고, 1081년 [[알렉시오스 1세]]의 즉위를 도우며 그 일대의 지배권을 공인받아 술탄을 칭하였다. (룸 술탄국) 클르츠 아르슬란은 두 시기의 사이인 1079년 니케아에서 태어났다. 같은해 셀주크 술탄 [[말리크샤 1세]]의 동생 투투쉬는 시리아를 정복하였다. 쉴레이만샤는 1083년 킬리키아를 병합하며 아나톨리아 서부와 남부를 평정하였고 시리아를 노렸다. 1085년, 알렉시오스 1세의 승인 하에 안티오크를 점령한 쉴레이만샤는 파죽지세로 알레포를 포위하곤 [[우카일 왕조]]의 아미르를 전사시켰으나 이듬해 투투쉬에 패해 전사하였다. 원정에 동행했던 7세의 클르츠 아르슬란은 포로가 되어 이란으로 압송되었다. == 치세 == > 룸 셀주크의 실질적 건국자 --[[태종]]-- 1106년 [[말라티야]] 점령 == 매체에서 ==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 젊은 튀르크인 군주로 묘사된다. 보에몽에게 원수를 갚겠다고 하는 부분에서 알렉시오스 1세와 오마주된다. 이후 보에몽 협상에서 알렉시오스와 함께 열렬히 참가한다. --그러나 최종 승자는 보에몽-- [[분류:십자군 전쟁/관련인물]][[분류:터키의 역사]][[분류:룸 술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