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파일:Futsches-Reich-Briefmarke-UK.jpg]] [* 위 작전에 실제로 동원되었던 일명 히틀러 해골 우표. 밑의 "Futsches Reich" (몰락한 제국) 이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Operation [[콘플레이크|Corn flake]] == 개요 ==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이 계획하고 실제로 실행했던 작전이다. 아무리 작전 준비가 철저해도 작은 실수 하나면 있으면 [[망했어요|작전이 어떻게 되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루어졌다. == 작전이 계획되다 == [[1942년]], 추축국, 특히 [[나치 독일]]은 전 세계를 정복할 기세로 몰려오고 있었다. [[프랑스 침공|이미 프랑스는 함락된 상황이었고,]] 나치 독일은 이제 [[독소전쟁|소련 땅 안으로 진격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주만 공습|진주만이 공격당하면서,]] 미국도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OSS]](현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전신)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독일 국민들의 사기를 꺾는 작전, 이른바 ''콘플레이크 작전''을 입안한다. 왜 콘플레이크 작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하단의 "상세" 문단을 참고. == 상세 == 콘플레이크 작전이 입안된 계기는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루즈벨트 대통령]] 덕분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평소 [[우표]] 수집이 취미였는데,[* 그냥 취미가 아니고 우표 덕후였다고 한다.] 이에 영감을 받은 OSS가 "독일이 망했다는 가짜 우편을 배송해서 독일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건 어떨까?" 라는 발상으로 입안시켰다. 이 작전의 핵심은 우표였다. 우선 미군은 두 종류의 우표를 극비리에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제조하였다. 첫번째 우표는 [[히틀러]] [[해골]] 우표라 불렸는데, 이 우표는 독일 총통 히틀러의 얼굴을 흉물스럽게 바꾼 그림과 <몰락한 제국>이라는 글귀가 적혀져 있었다. 다만 [[자폭|히틀러 해골 우표를 대놓고 배송될 우편에 붙일 수는 없으니,]] 미군은 우편에 붙일 또다른 [[가짜]] 우표들을 따로 제조해야 했다. [[히틀러]] 해골 우표는 해당 우편 안에 [[연합군]]의 전공을 과장한 선전물들과 함께 독일 가정으로 배송될 예정이었다. 또한 이 작전의 이름은 상술했듯 <콘플레이크 작전> 으로 정해졌는데, 그 이유는 [[독일군]]이 [[아침]]을 먹는 동안[* 대부분의 미국 가정은 아침으로 콘플레이크를 먹는다.] 이 우편물들을 확인하고 [[멘붕]]할 것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붙여졌다. 하지만 [[작전]] 규모가 워낙 거대했던 만큼 작전에 사용될 [[우표]]의 갯수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았다. 또한 제조 작업 역시 극비리였기 때문에 진척이 매우 더뎠고, 미군은 [[1944년]]이 돼서야 작전에 쓰일 우표와 선전물을 모두 제조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화폐|비용]]이 소모되었으나, 일단 성공한다면 [[독일군]]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참모들의 기대감 덕분에 작전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렇게 1944년 말, 드디어 콘플레이크 작전이 실행되었다. == 실행 == [[1944년]] 말, 5만 통에 가까운 우표와 선전물을 모두 완성시킨 미군은 본격적으로 작전을 개시했다. 우선[[ 폭격기]] 몇대를 동원해 독일의 주요 도시들로 향하는 우편 열차를 공격해 파괴시킨 뒤, 우편 열차 근처에 미군이 제작한 대량의 가짜 우편들을 투하했다. 미군은 이렇게 된다면 [[폭격]]을 수습하러 나온 독일군이 미군이 투하한 [[가짜]] 우편을 진짜 우편로 오인하고 가져갈 것이라고 기대했고, 실제로 [[독일군]]은 [[미군]]이 투하한 대부분의 가짜 우편물을 모두 회수해 갔다. 이 소식을 들은 [[OSS]]와 참모들은 [[설레발|작전의 거의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축포를 터트렸지만...]] == [[망했어요]] == 일단 독일군은 히틀러 [[해골]]우표와 선전물이 들어있던 가짜 우편을 그대로 회수해 갔다. 하지만 대다수의 [[우편]]들은 '''우표의 소인이 변화해 아예 운송되지조차 못했다.''' 콘플레이크 작전은 준비기간만 2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작전 준비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다 보니, 그 사이 독일의 우편 소인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새로 바뀐 [[소인]]이 찍힌 우편물들도 있었으나, 이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 양이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였다. 일단 1944년 말에는 [[독일 본토 항공전|허구한 날 실시되는 폭격]] 때문에 독일의 철도 상황이 [[개판]]이었고, 수송 가능 우편물이 줄어들자 상부는 오직 [[사업]]이나 군대 관련 우편물만 운송하도록 방침을 바꾸었다. 당연히 '''사업이나 군대에 관련된 우편물이 아니었던''' [[미군]]의 가짜 우표는 '''그냥 폐기 처분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나마 일부 우편들은 사업 관련 [[우편]]에 섞여 운송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제대로 전달된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였는데, 그 이유는 '''연합국의 폭격으로 사람들은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난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미군은 옛날 주소를 우편에 적어 보냈고, 상당수의 [[가짜]] 우편물들은 모두 옛날 [[주소]], 즉 아무도 살지 않는 곳으로 전달되어 버렸다. 결국 '''우편 [[소인]], 사업 및 군사 우편물 우선배송, 그리고 갱신되지 않은 주소지'''라는 삼중타를 맞은 [[콘플레이크]] 작전은 완전히 실패하였고, 이를 증명하듯 처음 준비했던 5만통의 우편물 중 제대로 전달된 것은 고작 몇백 통밖에 되지 않았다. 즉, 콘플레이크 작전은 특수 작전 분야에서는 아무리 완벽한 작전처럼 보일지라도 작은 실수가 하나라도 있다면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분류:제2차 세계 대전]][[분류:전략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