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미국 국무장관)] ---- ||<-2><tablebordercolor=#172172><tablewidth=450><tablealign=right><tablebgcolor=#fff><colcolor=#0000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72172 0%, #1A2478 20%, #1A2478 80%, #172172)" '''[[국무장관|{{{#ffc224 미합중국 제66대 국무장관}}}]][br]{{{#ffc224 {{{+1 콘돌리자 라이스}}}[br]Condoleezza Rice}}}'''}}}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콘돌리자 라이스.jpg|width=100%]]}}}|| ||<|2><bgcolor=#172172><width=25%> {{{#ffc224 '''출생'''}}} ||<colcolor=#000000>[[1954년]] [[11월 14일]] ([age(1954-11-14)]세) || ||[[미국]] [[앨라배마|앨라배마 주]] [[버밍햄]] || ||<bgcolor=#172172> '''{{{#ffc224 국적}}}''' ||<bgcolor=#ffffff>[[파일:미국 국기.svg|width=28]][[미국]] || ||<bgcolor=#172172> '''{{{#ffc224 직업}}}''' ||<bgcolor=#ffffff>[[정치인]] || ||<|2><bgcolor=#172172> {{{#ffc224 '''재임기간'''}}} ||<bgcolor=#f5f5f5>제66대 국무장관 || ||2005년 1월 26일 ~ 2009년 1월 20일 || ||<bgcolor=#172172> '''{{{#ffc224 서명}}}''' ||<bgcolor=#ffffff>[[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0px-Condoleezza_Rice_Signature_2.svg.png|width=150]]|| ||<bgcolor=#172172> '''{{{#white 정당}}}''' ||<bgcolor=#ffffff>[include(틀:공화당(미국))] || ||<bgcolor=#172172> '''{{{#white 종교}}}''' ||<bgcolor=#ffffff>[[개신교]]([[장로회]]) || ||<bgcolor=#172172> '''{{{#white 학력}}}''' ||<bgcolor=#ffffff>St. Mary's Academy (졸업) (-1971년)[br][[덴버 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1971년-1974년)[br][[노트르담 대학교]] (석사) (1974년-1975년)[br][[덴버 대학교]] 요제프 코벨 국제연구대학 (박사) (-1981년)|| ||<bgcolor=#172172> '''{{{#white 경력}}}''' ||<bgcolor=#ffffff>스탠포드 대학교 교무처장[br][[백악관#s-4|미국 국가안보보좌관]][br][[국무장관]] || [목차] [clearfix] == 개요 == [[1954년]] [[11월 14일]]생으로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낸 [[정치인]]이다. [[콜린 파월]]의 뒤를 이어 [[조지 W. 부시]] 행정부 2기에서 국무장관을 지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론 [[콜린 파월]]에 이어 2번째, 여성으로선 [[매들린 올브라이트]]에 이어 2번째 국무장관이었다. [[공화당(미국)|공화당]] 소속이다. == 생애 == [[인종차별]]이 만연한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 버밍햄 출신이다. 콘돌리자라는 이름은 [[음악]] 용어인 [[이탈리아어]] Con dolcezza(부드럽게 연주할 것)에서 따 왔다.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초등학교 동창생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테러에 의해 죽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덴버 대학교에서 일하게 되어 [[콜로라도 주]] [[덴버]]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아버지의 직장인 [[덴버]]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주로 [[소련]]을 연구하였고 [[러시아어]]에 능통하였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정치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교편을 잡았다가,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시절에 공직에서 근무했다. 이후 [[스탠퍼드 대학교]]로 복직, 부총장을 지냈다.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1기에는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냈고 2기에는 사퇴한 [[콜린 파월]]의 뒤를 이어 국무장관이 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ondoleezza_Rice_Colin_Powell_George_W._Bush_Donald_Rumsfeld.jpg]] 국가안보보좌관 시절. 가장 왼쪽이 콘돌리자이며 오른쪽으로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 [[조지 W. 부시]] 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다. == 여담 ==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이상하리만큼 라이스에게 꽂혀있었다고 한다. 이상형으로 생각했다는 듯.(...) 사진집을 모아두고 라이스가 [[리비아]]를 방문했을 때 카다피는 라이스의 활동 영상 등을 편집한 괴상한 동영상을 틀어주고 혼자서 장광설을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이미 라이스는 저 양반 해괴한 행동을 할 테니 알아두라는 경고를 받아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카다피의 기행에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보여주고 있는 동영상이 있다길래 혹시 성적인 내용이 아닌가 해서 매우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행적을 편집한 것에 지나지 않아 괴상했지만 성적인 느낌은 없었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이를 이용해 리비아와 [[밀당]]을 시도하기도 했다. 카다피는 라이스가 자기 조건을 들어주지 않자 그 자리에서 통역관을 [[해고]]하는 기행을 보였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자연히 국무장관에서 물러나 [[스탠퍼드 대학교]]로 돌아갔다. [[독신|미혼]]으로써 당연히 남편도 자녀도 없다. 이걸 두고 2006년, 당시 러시아 하원 부의장이었던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가 독한 년이니까 남자라곤 없어서 욕구불만을 러시아 패는 걸로 해소한다고 망언을 하기도 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오바마]] 행정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UN 대사를 지낸 [[수전 라이스]](Susan Rice, 1964 - )와는 성이 같고 같은 흑인이지만, 혈연 관계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을 자매인 줄 알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면서도 [[신보수주의]]의 핵심 인물로, [[딕 체니]]의 정책을 철저하게 실천하려 노력했다고 하여 미국의 좌파 세력들은 거의 제 2의 [[마거릿 대처]]로 취급하는 편이다. 거기다가 [[도널드 럼즈펠드]]를 국방장관으로 추천했다. ~~[[미군]] 약화의 근원?~~ 하지만 라이스 본인은 럼즈펠드가 '''남의 분야에 월권을 일삼고 [[안하무인]]으로 군다고''' 회고록에서 가루가 되도록 씹었다. [[이라크]]군의 일방적 해산만 해도 멍청한 [[미합중국 국방부 청사|펜타곤]]이 치안 유지에 현지 부대들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개삽질을 했다고 가루가 되도록 깠다. 럼즈펠드 본인도 [[이라크]]군이 해산된 후에 자기 명령도 없이 그렇게 됐다고 펄펄 뛰긴 했다곤 하는데... ~~본인이 그 가능성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으면 그럴 일도 없었겠지.~~ 아버지 부시가 아들 부시가 정치한다고 해서 옆에 붙여준 정치 과외교사라는 평도 있었다. 2011년에 회고록을 발간했는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1/02/2011110200764.html?Dep0=twitter|장관 재직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 및 언급도 있어]] 국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애초에 1년여 정도밖에 겹치지 않았던 [[김대중]],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가장 길게 마주해야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종잡을 수 없는 반미적 인물이었다고 매우 비판적이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는 위에 나온 부정적인 평가를 반영해서인지 [[성전기사단]]의 일원으로 나온다. 어릴 적부터 '''"[[백악관]]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10세 때 아버지와 함께 [[백악관]]을 '''밖에서''' 구경하다가 “아빠, 두고 보세요, 저는 반드시 [[백악관]]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내가 밖에서 [[백악관]]을 구경해야 하는 건 피부색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그리고 실제로 해냈다]]. 대학생 시절 [[러시아어]]를 배워 러시아어에 능통하며, 이 때문에 푸틴과 만날 때는 통역 없이 대화하곤 했다. 그리고 [[프랑스어]], [[스페인어]]도 할 줄 안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worldoftanks&no=2511848&page=1|그녀의 회고록인 '최고의 영예'에 따르면]] 일본의 외무상인 [[아소 다로]]가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전쟁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일본이 전승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미식축구]] 광팬으로 유명하다. 상당한 미식축구 지식과 이해도를 가진 열성팬이다. [[NFL]] 커미셔너 혹은 구단주를 희망하기도 했다. [[앨라배마 크림슨 타이드]]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팬이다.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 현재는 [[드롭박스]] 이사(...) 등 다양한 일을 겸직하고 있다. [[분류:미국 국무장관]][[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미국의 보수주의자]][[분류:신보수주의자]][[분류:미국 공화당 소속]][[분류:1954년 출생]][[분류:앨라배마 주 출신 인물]][[분류:미국의 개신교 신자]][[분류:아프리카계 미국인]][[분류:욱일대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