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2000년 7월 14일 오후 2시 45분에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경상북도]] [[김천시]]와 [[충청북도]] [[영동군]]의 경계지점] [[추풍령IC]] 부근에서 터진 교통사고이다. 이 사고로 총 18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했다.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97706|당시 KBS 뉴스9 보도]]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0/1865496_19530.html|당시 MBC뉴스데스크 보도]] *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4/04/22/0701000000AKR20140422175900004.HTML|2014년 생존자 인터뷰]][* 이 인터뷰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주일 뒤에 나온 기사다.] == 사고 내용 == 285명의 학생과 인솔교사 9명 등으로 구성된 [[부일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단이 7월 11일 7대의 전세버스를 이용해 3박 4일 일정으로 [[설악산]]과 [[통일전망대(강원도)|통일전망대]] 등 [[강원도]] 일대와 [[용인시]] [[에버랜드]] 등을 둘러보는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부산광역시]]로 돌아가던 길에 수학여행 버스 1대가 빗길 과속으로 빗길에 미끄러져 정차해있던 5톤 트럭과[* 버스와 충돌하기 전에 과속으로 중앙분리대를 충돌한 상태였다.이 참극의 원인이 된 차량은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와 마찬가지로 화재가 일어난 후 차량을 대피시켜 화재를 피했다. ] [[포텐샤]] 차량을[* 이 차량 역시 5톤 트럭을 발견하고 정차한 상태였다. ] 충돌한 후. 그 후 [[마이티]] 트럭과 뒤따라오던 수학여행 버스 2대. 승용차 2대가 잇따라 추돌했다. 순식간에 8대의 차량이 좁은 2차선 도로상에 뒤엉켰고 [[기아 포텐샤]] 승용차에서 치솟은 불길이 삽시간에 옮겨붙어 버스 3대와 승용차 3대, 트럭 1대가 전소되는 등의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인명피해가 커졌다.[* 맨 뒤에 따라오던 수학여행단 전세버스는 추돌을 피하려 오른쪽으로 재빨리 핸들을 꺾으면서 15m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도 했으나 화재는 발생하지 않아 불행 중 다행히도 이 차량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 사고로 인해 [[경부고속도로]]가 2시간 동안 전면 통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여 양방향으로 20km 이상의 정체 행렬이 이어졌으며 이는 경부고속도로 역사상 최초라고 한다.[* [[중부내륙고속도로]]나 [[중앙고속도로]], [[통영대전고속도로]] 등이 완공되지 않았던 시기(중부내륙고속도로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중앙고속도로는 영주까지 갓 개통, 통영대전고속도로도 함양-무주 구간이 개통되지 않았된 시절이었다.)라서 경부고속도로의 전면 통제로 인한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 '''사망자 18명 중에 14명'''이 부일외고 학생들이었다.[* 몇몇 남학생들이 버스를 탈출했지만 친구들을 구하기위해 다시 버스안으로 들어가 친구들을 탈출시키고 있었는데 그 순간 버스가 폭발했다고 한다. 결국 해당 버스에 탑승했던 남학생 10명 중 6명, 여학생은 41명 중 7명이 사망했다.] 사고 다음 날 부일외고는 임시 [[휴교]]령을 내리고 교내에서 합동 영결식을 거행했으며 분위기 수습을 위해 [[여름방학]]을 조기 실시하였다.[* 한편 이 사고의 여파로 이 시기 예정된 수학여행들이 학부모들과 교육관계자들의 우려로 인해 취소되었다. 때문에 당시 고1~2였던 83~84년생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여파로 수학여행이 취소된 당시 고1~2인 97~98년생과 유사하다.] == 사고 원인 == 사고 당시 날씨는 '''이슬비가 내리던 상황'''이어서 길이 미끄러웠던 데다 S자 커브 내리막길 구간에서 차량들이 '''안전거리를 미확보'''한 채 '''[[과속]]'''을 일삼았던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ExV4&fldid=VdhH&datanum=233&contentval=&docid=1ExV4VdhH23320090404181845|사고정황이 서술된 글]] == 사고 이후 == 일단 당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고갯길에서의 과속 단속이 대폭 강화되었다. 또한 예산 확보 문제로 차일피일 미루어졌던 추풍령 고갯길의 왕복 6차로 확장 및 선형개량 공사가 급속도로 추진되어 인근에 새로운 선형의 고갯길을 건설하고 사고 현장이었던 '''기존 고갯길 구간은 [[http://www.bobaedream.co.kr/board/bulletin/view.php?code=national&No=1198881|완전 철거]]'''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추풍령 인근의 대전-김천간의 경부고속도로 옛 구간들은 인근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방도 등으로 대체되거나 도로로 활용되지 못해도 웬만하면 그냥 형태 보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유독 추풍령 옛 고갯길이 완전히 철거된 것은 어찌 보면 [[한국도로공사]] 측에서 정말 흑역사로 여긴다는 뜻이다. 다만 서울 방면의 경우 일부 노반은 [[4번 국도]]의 확장 노반으로 사용하였다. 지도를 보면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해당 구간은 2006년에 선형 개량이 이루어졌다. 더불어 전세버스 운행과 관련된 안전 규정도 대폭 강화되어 2대 이상의 운행시 안전 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등 '''[[대열운행]]이 전면 금지'''되고 버스 5대 이상 또는 200명 이상의 단체 이동시 주최측에서 요청할 경우 경찰의 호위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이 시기 수학여행을 다닌 사람들 중엔 이런 호위를 받아본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시군 경계가 바뀔 때마다 해당 관할의 순찰차들이 따라붙는다.] [[통영대전고속도로]] 개통 이후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부]][[부산종합버스터미널|산]]과 수도권을 잇는 [[고속버스]]들의 운행경로가 바뀌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운행하는 버스기사들이 마음대로 바꾼 것이다.] 물론 인가상으로는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을 타는 걸로 유지되었지만, 추풍령 구간의 선형이 나쁜데다 이 추돌사고가 결정적 역할을 하여 많은 버스들이 추풍령 구간을 버리고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한 뒤 통영대전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걸로 바꾸었으며, 운전기사들도 통영대전고속도로를 경유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물론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에는 통영대전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수도권과 부산을 왕래하는 버스는 없는 상태이며[*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부산사상]]-서울([[서울남부터미널]] 및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고속·시외버스 표가 모두 동났을 때 진주([[진주고속버스터미널]] 및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환승하는 걸로 대체경로를 잡으면 통영대전선을 이용하여 부산과 서울을 왕래할 수 있긴 하다.], [[천일여객]] 등 몇몇 회사는 추풍령 구간 확장 및 선형개량 후 다시 추풍령 쪽으로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상주영천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 - 부산 직행 고속버스들은 더 이상 추풍령 구간을 경유하지 않고 있다. 당시 학생들을 도와주다 숨진 이경민 군 등 6명이 [[의사자]]로 지정되었다. == 여담 == 당시 뉴스 보도가 '''부산(에 있는) 외국어 고등학교''' 라는 식으로 보도된 경우가 많아서, 이름이 비슷한 [[부산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의 가족들이 '''너희집 xxx 괜찮냐 사고났다던데''' 라는 안부전화를 받기도 했다. 사고 이후에도 이런 안전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전세버스들의 대열 운행은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대열 운행으로 인한 [[남해고속도로 9중 추돌사고|사고가 2016년에 다시 일어났다.]] 경찰차가 호위하는 경우라도 시골 2차선에선 불가피한 현실. [[안전불감증|인솔 교사나 학생들도 대열 운행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보단 지극히 당연히 여기고 있다.]] 2019년 방영된 tvN 드라마 [[블랙독]] 1화에서 이 사건을 연상하는 사고가 나왔다.[* 여기서는 터널에서 멈춰선 차량을 피하다가 전복된 후 화재로 버스가 폭발한다. ] [[분류:2000년 교통사고]][[분류:김천시의 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