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 최병훈(崔秉勳) || || 생몰 || [[1879년]] ~ ? || || [[출생지]] || [[평안남도]] [[남포특별시|진남포]] 후포 || || 사망지 || 미상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최병훈은 1879년생이며 평안남도 진남포 후포 출신이다. 그는 [[감리회]] 전도사로, 1919년 3월 1일 신흥동 감리교회 광장에 군중 500명을 결집시키고 시위를 전개했다. 군중은 대한독립이라고 크게 쓴 기를 앞장세워 경찰서를 향해 행진하다가 일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체포된 이는 70~80명에 이르렀다. 이때 체포된 그는 재판과정에서 “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문제가 생겨 우리 조선도 독립의 기회가 부여되려 하고 있다. 군중 속에 참가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른 것은 국민의 당당한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만세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였지만, 1919년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최병훈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분류:일제강점기의 개신교 신자]][[분류:남포시 출신 인물]][[분류:1879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최병훈(독립운동가), version=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