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光秀''' '''? ~ 1217년''' == 개요 == [[고려]] 중기의 반란자. 1217년 고구려부흥운동을 표방한 최광수의 난을 일으켰다.[* 비슷하게 옛 신라지역인 경상도 일대에서는 [[신라부흥운동]], 옛 백제지역인 전라도 담양지역에서는 [[이연년 형제의 난]]이 신라와 백제 부흥을 표방하면서 일어났다.] == 생애 == 반란을 일으키기 이전에 사졸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고려군에 복무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려는 1216년, [[거란 유민들의 고려 침공]]으로 전쟁 중인 상황이었다. 1217년, 최광수는 상관 서경병마사 최유공(崔兪恭)의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고구려부흥병마사·금오위섭상장군(金吾衛攝上將軍)'''로 자칭하면서 서경([[평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최유공은 수탈을 즐겨해서 병사들에게 인망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거사에 치르기 앞서 신사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최광수와 인연이 있던 정의(鄭顗)가 이에 분노하여 교위 김억(金億)·백유(白濡)·필현보(畢玄甫)·신죽(申竹) 등 10여명에게 최광수는 피살당하고 최광수에 가담했던 8명을 죽인 뒤 나머지 병졸들은 불명에 부치면서 난은 제압되었다. == 기타 == * 최광수의 난은 고려시대 민란 중 삼국부흥운동을 표방한 사건이나, 가장 허무하게 제압당한 면도 있다.[* 이연년 형제의 난은 나주성 전투 이전까지 승승장구했으며, 신라부흥운동 역시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최광수의 난은 그가 일찍 피살당하면서 끝났다.] 최광수의 난을 끝으로 [[여몽전쟁]] 이후에는 삼국의 부흥을 내세우면서 반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어지게 된다. [[분류:고려의 인물]][[분류:고려의 반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