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중국의 민주화운동, rd1=천안문 6.4 항쟁)] [[파일:8082529073_939b3a02bb_b.jpg]] [[파일:timg-35.jpg]] [[파일:timg-33.jpg]] [[파일:attachment/천안문광장/1.jpg]] [목차] [clearfix] == 개요 == {{{+1 [[天]][[安]][[门]][[广]][[场]] / Tiananmen Square[* 천안문은 (Tiān'ānmén, ㄊㄧㄢ ㄢ ㄇㄣˊ, T'ien¹-an¹-men², 톈안먼)으로 읽는다.] / 천안문 광장}}} [[중국]] [[베이징]] [[자금성]] 천안문 앞에 조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광장]]이다. 면적이 대략 0.44km²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유명한 [[바티칸]]과 면적이 거의 같다. [[베이징 지하철]] [[베이징 지하철 1호선|1호선]] [[톈안먼시역]], [[톈안먼둥역]] 등에서 내리면 된다.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태극권]]을 수련하거나 광장무로 여흥을 즐기는 등 여가 및 문화공간으로써의 위상이 높다.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답게 입장에조차 신분증이 필요하다. 중국인은 거민신분증을 교통카드처럼 입장기계에 태그해서 입장하고 외국인은 여권을 공안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외국인은 방문기록을 저장하지 않는다] 들어가서도 입장권이 필요한 곳은 또 신분증을 보여줘야하며 입장권을 판매하는 직원이 여권의 모든 정보를 전산에 저장한다. == 역사 == === [[명나라]] === 천안문광장 자리는 [[명나라]] [[영락제]] 때 [[베이징 성]]을 건설하면서 어도(御道)가 설치되었던 공간이다. 당시의 어도는 내성의 정남문인 정양문과 황성의 정문인 천안문 사이에 있었으며 주변을 담장으로 둘러 일반인의 출입을 금했다. 이 때문에 내성의 동서 교통에 큰 불편을 초래했다. 정양문과 천안문 사이에는 대명문(大明門)이, 천안문 좌우에는 각각 장안우문(長安右門)과 장안좌문(長安左門)이 있었다. === [[청나라]] === [[청나라]]가 중국을 통치할 때는 대명문을 대청문(大淸門)으로 개칭했다. === [[중화민국]] === [[중화민국]]이 성립하자 대청문을 중화문(中華門)으로 다시 개칭했다. === [[중화인민공화국]] ===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베이징 도심을 개발할 때 천안문 이남의 어도와 중화문, 장안우문, 장안좌문 등을 모두 철거하고 그 자리에 광장을 조성했다. ==== 구 천안문의 철거 및 재시공 ==== 천안문 자체도 그동안 많이 손상된 것을 1960년대에 완전히 헐고 단 200일만에 새로 지었다. 그것도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개건 및 보수에 들어간 자재는 모조리 빼내고 자재까지 전부 새것을 썼다. 빨리 조달할 수만 있다면 자재의 출처는 따지지 않아서,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원목도 잔뜩 사용했다. 심지어 함수율이 80%나 되는 목재를 말리지도 않고 그냥 사용해서 지었다는데, 그래도 말짱하게 잘 서있다고 한다. 덤으로, 복원을 위해 조사해 보니 기존의 천안문에 사용된 목재 중 정말 저질 목재도 있고 심지어는 미국산 목재도 있었다고 한다. 연구자들이 추정한 출처는 불탄 [[원명원]]. 말기에 접어들어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청나라 정부가 보수작업을 위해 주변에서 되는대로 목재를 구하다 보니 의화단의 난 때 폐허가 된 원명원의 건물들을 재활용하여 썼을 것이라고. 게다가 여기저기에 의화단의 난 당시 연합군이 쏜 것으로 보이는 포탄과 총탄이 박혀 있고 알파벳 문자가 새겨진 포탄까지 박혀 있었다고 한다. == 상세 == [[파일:AKR20150810050500074_01_i_P2.jpg]] 천안문 중앙에는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 무게만 '''1.5톤'''에 이른다.]가, 양 옆에는 '중화인민공화국만세(中华人民共和国万岁)'[* Zhōnghuá Rénmín Gònghéguó wànsuì 쫑화 런민 꽁허궈 완수이], '[[국제주의|세계인민대단결만세(世界人民大团结万岁)]]'[* shìjiè rénmín dàtuánjié wànsuì 스졔 런민 따퇀졔 완수이]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 크기가 매우 거대한데다가 주변에 다른 중요 관광지가 몰려있기 때문에 베이징에 들르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로 광장을 가운데 두고 [[모주석기념당]], 인민영웅기념비, 인민대회당, [[중국국가박물관]]과 [[마오쩌둥]]의 거대한 초상화가 내걸린 천안문이 둘러싸고 있다. 드넓은 천안문광장을 보러 온 외국인도 많지만 중국 각 지방에서 온 내국인 관광객들도 엄청나게 많다. [[춘절]]이나 노동절, 국경절 연휴에 가보면 사람 물결에 떠내려간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 그 넓은 광장이 사람들로 꽉 찬다. === 국기 게양식 === [[파일:timg-30.jpg]] [[파일:20140101105325525775.jpg]] [YouTube(EcCjd2LPBVg)] 매일 아침, 또는 국가적 행사 개장 시마다 광장에서 열리는 [[오성홍기]] 게양식이 유명하다. 천안문광장을 찾는 중국 내 관광객들이 꼭 찾는 [[성지순례]] 코스. 1년 365일 베이징의 일출 시각에 맞춰 천안문 국기 게양대[* 28.3m]에 [[오성홍기]]를 게양하는데, 중국에선 새해 첫날 일출 대신 천안문광장의 국기게양식을 보며 새해 첫 아침을 맞는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국기게양을 전담하는 부대가 따로 있을 정도로 (주로 [[무경|무장경찰부대]] 소속) 국기 게양식에 공을 들이고 있다. [* 중국에서 오성홍기는 매우 신성시된다. 그 사례로, 마라톤에 참여 중이던 선수가 개주 도중 떨어트린 국기를 주우려다가 결국에는 2등을 한 경우도 있었다.]저녁에도 오성홍기 하강식을 하는데 게양식에 비하면 비교적 밋밋하다. === 기타 시설 === [[파일:CHINA-POLITICS-TIANANMEN0506_1591323504.jpg]] [[파일:timg-36.jpg]] 문 앞의 대광장 주위에는 중앙 관청, 박물관 등이 모여 있고, 광장 중앙 남쪽에는 높이 38m의 화강석으로 된 인민영웅기념비가 있다. === 상징성 === 중국 내 국가적인 큰 행사는 이 문에서 개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1919년의 5 ·4운동 이래 중국인들의 시위집회에 많이 이용되었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식도 여기서 행해졌으며,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발동하자 홍위병들을 소집해 본격적인 시작 선언을 한 곳도 이곳이며, 1976년 저우언라이의 사망을 기폭제로 제 1차 천안문 사건이 벌어진 곳도 이곳이며, 중국 현대사의 오점인 제 2차 천안문 사건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매년 5월 1일 노동절을 비롯한 국경일의 의식도 이곳에서 행한다. 이렇듯 1980년대까지는 각종 시위와 집회, 정치행사의 명소였지만 1989년 [[천안문 항쟁]] 이후로는 수많은 경비병들이 사람들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는 광경은 좀체 볼 수 없게 되었다. 즉, 정치적인 의미가 거세된 느낌이 들 수 있다는 얘기이다. 광장에 들어오는 모든 출입구에는 보안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고, 가방을 모두 X레이 스캔한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다.[* 단체관광객 출입구는 따로 있는데 단체로 온 외국인 관광객은 가이드 인솔하에 어떠한 검문/검색없이 광장으로 바로 입장할 수 있다.] 또한 수십미터 간격으로 이동 파출소 차량이 배치되어 있고, 공안, 인민해방군 군인이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다. 자금성 안에도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공안]]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베이징 시민 차량을 제외한 타 지역 차량도 2환로 이내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정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타 지역 주민들이 천안문 광장에 드나들때에 버스, 택시, 지하철, 관광버스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시대별 천안문의 모습 == === [[청나라]] 말기 === ||[[파일:Tiananmen_1901.jpg|width=100%]]|| || [[청나라]] 붕괴 직전의 천안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대신 아무 초상화도 걸려 있지 않았다. || === [[중화민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55px-Chiang_KaiShek_Portrait_Tiananmen_Beijing.jpg|width=100%]]|| || 국민당이 베이징을 장악했을 때는 마오쩌둥 대신 [[장제스]]의 초상화가 더 크게 걸려 있기도 했다. 또한 당시에는 천안문 양 옆에 써 있는 표어가 없었다. || ==== [[국공내전]] ==== ||[[파일:Tiananmen_1949.jpg|width=100%]]|| || 1949년 [[인민해방군]]이 [[베이징]]에 입성했을 당시의 모습이다. 천안문 현판 밑에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작게 걸려있다. 참고로 천안문의 현판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도 한동안 달려 있다가 1950년대 초에 철거되고 대신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장이 달렸다. || === [[중화인민공화국]] === [[파일:attachment/천안문광장/1949년 건국 당시의 천안문.jpg]]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에는 [[번체자]]로 '중화인민공화국만세(中華人民共和國萬歲)', '중앙인민정부만세(中央人民政府萬歲)'[* zhōngyāng rénmín zhèngfǔ wànsuì 쫑양 런민 쩡푸 완수이]라는 표어로 걸려 있었다. [[파일:attachment/천안문광장/1951년 당시의 천안문.jpg]] 그 다음 해인 1950년에 현재의 표어로, 마오쩌둥의 초상화는 모자를 쓰지 않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파일:attachment/천안문광장/1955년 이후의 천안문.jpg]] 1956년부터 왼쪽 표어의 '萬'과 오른쪽 표어의 '團'과 '萬'이 [[간화자]]로 바뀌는 과도기를 거치다가 1964년부터는 간체자로 완전히 바뀌었다. 또 1970년에는 목제에서 금속제로 바뀌었다. [[파일:u_1906582633_1645416884&fm_26&gp_0.jpg]] [[인민무장경찰부대]]가 [[제설작전]]에 참여하는 중이다. == 관련 문서 == * [[천안문 사태]] * [[천안문 6.4 항쟁]] *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 [[나는 베이징 천안문을 사랑해]] * [[중화(담배)]] - 천안문이 담뱃갑의 도안이다. [[분류:광장]] [[분류:중국의 관광지]] [[분류:랜드마크]] * [[골든 바우히니아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