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clude(틀:창경궁)] ---- ||<table width=662> [[파일:창경궁 선인문2.png|width=100%]] || || 창경궁 안쪽에서 바라본 선인문[[http://www.heritage.go.kr/heritage/heritage_pop/detailImgPop.jsp?gung_number=3&file_name=img_changgyeong_story_bg_24_00.jpg|#]] || [목차] == 개요 == {{{+1 昌慶宮 宣仁門}}} [[창경궁]]의 출입문이다. [[정문]] [[창경궁 홍화문|홍화문]]의 남쪽에 있다. == 역사 == 1483년([[성종(조선)|성종]] 14년) [[창경궁]] 창건 때 지었다고 한다. 다만, 1475년(성종 6년)에 [[창덕궁]] 밖 동쪽 담장 [[문]]을 선인문으로 이름지었다고 하는데[[http://sillok.history.go.kr/id/kia_10608023_007|#]] 이 문이 창경궁의 선인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광해군]] 때 재건했다. 1857년([[철종(조선)|철종]] 8년)에 [[화재]]를 입었고 1877년([[고종(대한제국)|고종]] 1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 용도 == [[왕세자]]와 [[신하]]들이 주로 사용했다. 위치 상으로 궐내각사 및 [[동궁]] 권역과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남아있는 [[기록]]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한경지략》에서는 ‘신하들이 드나든다’고 소개했다. 《동국여지비고》 - 〈경도〉 편에는 ‘[[동궁]]의 [[정문]]으로 신하들이 출입한다’고 쓰여있다. 또한 세자가 궁 밖을 드나들 때, 특히 [[성균관]] 입학할 때 이용한 내용이 《[[승정원일기]]》 등에 적혀있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C%84%A0%EC%9D%B8%EB%AC%B8(%E5%AE%A3%E4%BB%81%E9%96%80)|#]] 단,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재위 기간에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예외도 있었던 듯 하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C%84%A0%EC%9D%B8%EB%AC%B8(%E5%AE%A3%E4%BB%81%E9%96%80)|#]] == 구조 == * 1층[*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 [[목조]] [[건물]]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 총 4칸이다. * 《[[동궐도]]》와 현재의 모습이 다르다. [[지붕]]은 현재는 평지붕이지만, 《동궐도》에는 창경궁 동북쪽 출입문인 [[창경궁 월근문|월근문]]처럼 왼쪽 칸 지붕이 낮고 오른쪽 칸 지붕이[*A 궁 밖에서 볼 때 기준.] 높은 솟을지붕 형태였다. 그리고 문 북쪽으로 현재는 돌담이 붙어있지만, 《동궐도》에서는 행각이 붙어있는 모습이다. 아마 [[철종(조선)|철종]] 때 불탄 것을 [[고종(대한제국)|고종]] 때 재건하면서 바꾼 듯 하다.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기와]]를 얹어 마감했다. 지붕 양 끄트머리에는 [[용두]]를 올렸다. * 공포를 두지 않은 민도리 양식이다. [[단청]]은 모루단청[* 부재 끝 부분만 화려하게 칠하는 단청.]으로 칠했다. * [[현판]]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이며 오른쪽 칸에 걸려 있다.[*A 궁 밖에서 볼 때 기준.] * 문짝과 벽체는 전부 붉은 칠을 한 [[나무]][[판]]이다. [[천장]]은 서까래와 [[구조]]들이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만들었고, [[문]]틀 위에는 궁판을 놓고 그 위에 홍살을 올렸다. 왼쪽 칸 궁판은 7개로 세로 길이가 길며, 오른쪽 칸 궁판은 8개로 세로 길이가 짧다.[*A 궁 밖에서 볼 때 기준.] 양쪽 문짝의 높이가 다른데, 오른쪽 칸의 높이가 더 높다.[*A 궁 밖에서 볼 때 기준.] == 여담 == * 유독 [[왕실]]에서 일어난 나쁜 사건들과 엮였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당할 때와, [[민회빈 강씨]]가 [[누명]]을 쓰고 폐출당할 때 이 [[문]]으로 쫓겨나갔다. 또한 [[희빈 장씨]]가 [[사약]]받고 죽은 뒤 [[시신]]이 여기로 나갔다. 선인문 안쪽에서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철종(조선)|철종]] 때 불탔는데 하필 [[순원왕후]]의 [[국상]]을 치르던 중이었다. --이 정도면 가히 [[창경궁]]의 흉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 1617년([[광해군]] 9년)에는 선인문 [[자물쇠]]가 저절로 열려서(...) 다시 만들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oa_10901024_003|#]] [[분류:창경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