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만의 국가행정조직]] {{{+1 中華民國行政院 / The Executive Yuan of the Republic of China (Taiwan)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Executive_Yuan01.jpg|width=500]] (중화민국 행정원 청사) [[파일:BD89B214-45B9-4AE0-B353-784D4684B12A.png]] (행정원 로고) [목차] == 개요 == [[오권분립]]에 의거하여 [[중화민국]]([[대만]])의 행정부이다. 본청사는 [[타이베이시]] [[중정구(타이베이)|중정구]]에 있으며, 본청사는 좁기 때문에 휘하 부서들은 타이베이 도심 [[총통부]] 인근에 흩어져 있다. == 역사 == [[파일:Nanjing-Executive_Yuan.jpg|width=500px]] [[난징]] 시절의 행정원 건물. [[총통부]] 영역 안에 있었다.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이 [[국민혁명]]을 완수한 1928년에 [[국민정부]]의 행정부로써 출범하였다. 당시 초대 행정원장은 [[탄옌카이]]. 이후 1947년에 [[중화민국 헌법]]이 제정되면서 정식으로 헌정에 기반한 행정원이 출범했다. == 조직 == 행정원은 [[중화민국 행정원장|원장]] 1인, 부원장 1인, 비서장 1인, 부비서장 2인(비서실 차장), 여러 명의 정무 위원(무임소 장관), 각 부처 부장/부서장(장관) 및 상무차장 또는 정무차장(둘 다 차관에 해당), 주임위원(줄여서 주임, 위원회 위원장을 말한다)으로 구성된다. 행정원장은 [[총리]]에 해당하며 [[중화민국 총통|총통]]이 임명한다.[* [[북양정부]]에서는 국무총리의 직함을 사용했지만 북양정부를 엎어버린 [[중국 국민당]]에서 [[쑨원]]을 '''영원한 총리'''라고 신격화했고 [[장제스]]은 '''영원한 총재'''라며 신격화했다. 그래서 총리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다.] 영어 표기로는 총리를 뜻하는 Premier를 쓴다. 그리고 행정원 원장이 부원장, 비서장, 부비서장, 정무 위원(무임소 장관으로서 [[타이완성]] 주석 및 [[푸젠성(대만)|푸젠성]] 주석 직책이나 일부 위원회의 주임을 겸임한다), 각 부처 부장/부서장, 각종 위원회 주임, 행정원 대변인, [[중화민국중앙은행|중앙은행]] 총재, [[국립고궁박물원]] 원장 후보자를 제청하며 총통은 이에 따라 임명하고 이들이 [[내각]]을 구성한다. 그러나 일부 독립된 위원회의 주임위원(예를 들면 선거관리위원회 등)은 [[중화민국 입법원|입법원]]의 동의를 받아야 임명될 수 있으며, 주어진 임기를 보장받는다. 본래는 행정원장의 임명에도 [[중화민국 입법원|입법원]]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1997년의 헌법 수정으로 현재는 행정원장의 인사권이 전적으로 총통에게 있다. 하지만 지금도 행정원이 입법원의 신임을 받아야 한다는 관습은 어느 정도 있다. 입법원은 행정원장에 대해 [[내각불신임결의|불신임안]]을 제출할 수 있고, 관례적으로 입법원 선거를 치르고 나면 새 입법원의 원내 구성과 상관없이 내각 구성원은 총통에게 사직서를 제출한다.[* 1995년에 이에 관련된 헌법 해석이 이루어진 바 있다. [[http://cons.judicial.gov.tw/jcc/zh-tw/jep03/show?expno=387|링크(중국어)]]] 또한 입법원의 동의권이 사라진 지금도 입법원 다수당이 마냥 안 된다고 뻗대는 사람을 총통이 행정원장으로 임명하기는 어렵다. 이게 [[정권교체]]가 일어나는 [[레임덕]] 기간에 간간히 벌어지는 일이다. 예를 들어 [[2016년]] 총통 선거와 입법원 총선에서 [[민주진보당]]이 압승했지만 [[중국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이 4개월간 계속 총통 자리에 있는데 국민당 출신인 마오즈궈(毛治國) 행정원장과 내각이 총사퇴서를 제출했지만 마잉주 총통이 사퇴서를 반려하고 [[차이잉원]] 총통 당선인과 [[민주진보당]]에게 4개월 간의 임시 행정원장 추천권을 준 사례가 있다. 민진당 측에서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마잉주 총통의 계속된 양보[* 어차피 입법원이 민진당이 절대과반수(68석/113석)인 상황에서 마잉주 총통이 국민당 내각을 4개월간 레임덕 상태에서 이끌어봐야 마찰만 벌어진다는 이유다.]로 국민당-민진당 간 타협으로 [[무소속]] 장산정(張善政)[* 4년 후 총통선거에서 [[한궈위]] 당시 가오슝 시장의 부총통 런닝메이트로 출마했다.] 행정원장을 지명하고 임시 내각을 운영한 예가 있다. 내각은 한국의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행정원회의(行政院會議)를 열어 국가 정책을 결정한다. 행정원 원장, 부원장, 각 부처의 부장(장관), 정무위원은 의무 참석 대상이며, 그 외의 내각 구성원이나 직할시장([[타이베이]], [[신베이]], [[타오위안]], [[타이중]], [[타이난]], [[가오슝]]), 기타 행정원 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인사가 참석 가능하다. 부서 및 위원회와 관련해서는 [[국가행정조직/중화민국]]을 참조.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오권분립,version=109)] == 역대 행정원장 == [[중화민국 역대 행정원장]] 문서 참조. == 역대 행정원 부원장 == [[중화민국 역대 행정원 부원장]] 문서 참조. == 기타 == * 본청사는 [[타이베이시]] [[중정구(타이베이)|중정구]]에 위치해 있으며 [[대만일치시기|일제시대]] 타이베이시청이었다. 이 건물이 행정원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7년으로, 해방 직후에는 [[타이완 성]] 정부청사로 쓰였다가 타이완 성 정부청사가 [[난터우]] 중싱신춘으로 이사가면서 빈 건물에 행정원이 들어섰다. 해당 건물은 1940년에 지어졌는데, 화려하게 건물 장식을 붙이던 일제시대 관청 건물들과는 달리 소박하게 생겼다. [[중일전쟁]]으로 인해 물자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다. 행정부 본청사는 대만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국부천대]] 이전 행정원은 당시 중화민국 수도인 [[난징]]에 있었으며, 지금은 [[중국 인민해방군]] 난징정치학원(中国人民解放军南京政治学院)의 일부로 쓰이고 있다. 해당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에도 [[중일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충칭]]에도 임시 행정원 청사로 쓰였던 건물이 남아 있으며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여기에 대척되는 조직이 [[중국 국무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