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 관련 정보]] [include(틀:조선의 붕당)] [include(틀:경제학사(한국))] [목차] == 개요 == 重商學派. 이용후생학파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에 상공업을 중시한 [[실학]]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인 실학자는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실학자)|박지원]], [[박제가]]가 있다. 이들은 조선 후기 상공업의 발달, 서양과 [[청나라]]의 선진 문물에 영향을 받았고, 농업에 기초한 유교적 이상국가론을 벗어나 상공업 진흥, 기술 혁신, 대외 무역 중시를 통한 부국강병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후의 [[개화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표적으로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중농학파]]와 대비된다. 큰 줄기에서는 같지만. '''연암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상업]] 중심의 개혁론을 외치던 [[실학자]]들'''을 이르는 말. === 어원 === 북학파에서 북학은 『맹자(孟子)』의「등문공장구(騰文公章句)」에서 유래되었다. 여기서 남쪽에 위치한 초나라 사람인 진량(陳良)이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도를 흠모해, 북으로 중국에 유학해서 용화변이(用華變夷)를 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즉 중국 문명의 선진성을 인정하고 그를 본받으라는 것인데, 당시 중국은 그렇게 조선에서 오랑캐로 멸시하던 [[만주족]]의 [[청나라]]였다. 즉 북학파는 청나라의 발전된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조선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지닌 사람들을 이르게 되는 것이다. === 결성 === 사실 북학파라 불릴만한 시초는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이 아니라 그와 친분관계가 두터웠던 [[홍대용]]이다. 홍대용은 1765년 북경에 다녀온 이후 서양과학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서양문물을 직접 들여오게 된다. 그리고 박지원이 1768년 백탑으로 이사하고 이 주변에 [[이덕무]], [[이서구]], [[서상수]], [[유금]], [[유득공]] 등이 모여 살았고, [[박제가]], [[이희경]] 등도 출입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암모임이 결성이 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북학파가 형성이 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 주장 === 이들은 청나라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개혁하자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공업을 중심으로 개혁을 하자는 입장을 지니고 있었는데, 특히 상업의 발전과 소비를 강조했다. === 영향 === 이들의 사상은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에 의해 [[개화파]]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인물 == === [[유수원]] === 위의 상공업 진흥이나 기술 혁신 같은 주장이 그에게서 처음 나왔다. 그의 사상은 그의 저서인 '우서(迂書)' 에 집대성되어 있는데, 이 책의 중심내용은 '''나라가 발전하려면 백성이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해야하는데 신분제의 고착화로 그게 잘 안되고 있음. 그러니까 사농공상의 구분을 신분이 아닌 평등한 직업으로 대하고 전문화해라!''' 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우서' 는 문답형식으로, 매우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당시 왕이었던 [[영조]]가 읽기도 했다! 영조 曰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저술은 선대 유학자의 말을 뽑아 모아서 기교만 부리는데, 이 사람은 자기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만을 기술하였으니, 참으로 귀하다’ 라고 할 정도니... 그밖의 주장으로 상인들이 연합하여 대자본을 형성해 규모를 늘리고, 생산과 판매를 직접 담당함으로서 상공업을 진흥시키자, 대상인이 학교와 교량, 방위시설 등을 건설해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자 등이 있다. 여담이지만 유수원의 일생은 그야말로 [[안습]]... 관리가 되어서 영의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잘못보여 파직되었다. 다행히 복직되었지만 이미 세상은 [[노론]]의 세상...[* 유수원은 [[소론]]] 고위직으로 못 올라가고 작은 고을 수령으로 떠돌다가 심한 귓병까지 얻어 귀머거리가 되었다. '우서' 집필로 뜨긴 했지만... 후에 [[나주 괘서 사건]]때 역적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고 만다. === [[홍대용]] === 청년기 때 [[박지원(실학자)|박지원]], [[박제가]] 같은 북학파들과 교류하였고, 35세 때 청으로 가 선진 문물을 접했다. 청으로 가서 연구한 것을 토대로 [[의산문답]](醫山問答) 이라는 저서를 통해 중국 중심 세계관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를 돈다는 지전설(地轉說)과 우주는'무한하다는 우주무한론(宇宙無限論)을 주장했다. 지금 보면 별거 아닌 거지만 이 주장은 당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엄청난 주장이다. 이게 뭔 소리인가하니, 지구가 한 곳에 멈추고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니 중심은 계속 바뀌는 것이고, 우주는 무한한데 그 중심이 지구라고 할 수 있냐? 따라서 중심 [[그런거 없다]] 라는 것. 물론 이것 가지고 홍대용이 중상학파인 것은 아니다. 홍대용은 [[과거]]의 철폐와 공거제[* 인재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등용시키는 제도.]를 통한 인재 등용, 신분 관계 없이 8세 이상 아동을 전부 교육 시켜야한다 등 과감한 개혁을 주장했다. '의산문답' 외에도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그 저서는 [[담헌서]], [[사서문의]], [[건정필담]], [[주해수용]],[* 수학책. 홍대용은 담헌서에서 수학을 찬미한 바 있다.] [[계방일기]][*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조선)|정조]]가 서연(書筵)을 드나들 시기에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계방桂坊이라고도 한다.) 직책으로 강론에 참여한 경험을 대화체로 기록한 것이다.]이다. === [[연암 박지원]] === 허생전과 양반전을 집필했으며 수레와 선박의 이용을 강조했다. 또 화폐의 유통도 강조하였다. === [[박제가]] === 북학의를 집필했으며 청과의 통상 확대를 통한 문물 수용을 주장하였다. 소비의 중요성을 우물에 비유하여 강조하였다.[* 그래서 우물론이라고도 불린다.] === 주요 인물 === * [[박지원(실학자)|박지원]] * [[홍대용]] * [[유득공]] * [[이덕무]] * [[박제가]] == 같이보기 == * [[북학파]] * [[실학]] * [[자본주의 맹아론]] * [[한국사 관련 정보]]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북학파, version=10)] [[분류:조선(18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