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ttachment/121a6deb14.jpg]] 2012년 11월 23일 상장(上將) 진급식에 모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 한국과 마찬가지로, 진록색이 육군(무장경찰+제2포병 포함), 하얀색이 해군(하계 한정~~근데 여름도 아닌 초겨울인데 하계 예복은 왜 착용했어요?~~), 청색이 공군이다.] 가운데가 [[시진핑]] 주석.[* 1990년대의 장쩌민 국가주석 이후 역대 중국의 [[국가원수]]는 대부분의 공식 석상에서 서양식 정장을 입지만,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격으로 참석하는 행사는 반드시 [[인민복]]을 입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사진 속에서 시진핑의 복장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 ~~별이 30개~~[* 상장은 타 국가의 대장과 다르게 3성이다, 한국으로 치면 별이 40개다] [목차] == 개요 == 中国共产党中央军事委员会([[간체]]) / 中國共產黨中央軍事委員會([[번체]]) 中华人民共和国中央军事委员会 / 中華人民共和國中央軍事委員會 [[중국 인민해방군]]을 지휘하는 [[중국 공산당]]의 기관. 명실상부 중국 내의 모든 군사력을 총지휘하는 최고 지휘부다. == 조직 == 1983년에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라는 조직이 따로 설치되었지만 선출 시기만 약간 다를 뿐 두 위원회의 구성원은 동일해 사실상 둘은 같은 위원회라고 봐야 한다. 즉,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는 당 기관이면서 동시에 국가 기관이다. [[국무원(중국)|국무원]] 산하에 [[중화인민공화국 국방부]]가 따로 있기도 하지만, 국방부는 중앙군사위의 지휘 하에 주로 행정이나 기술적 문제를 다룬다. 따라서 엄연히 중국군 지휘권의 최종 권한은 당 중앙군사위에 있다. 2016년 1월 군 지휘 체계가 대폭 개편되면서 현재 중앙군사위의 구성원(위원)은 다음과 같다. * 주석: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국가주석]](공산당 중앙 총서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 부주석 (2인): 현역 군인(공산당 중앙정치국원) * 위원 (4인) (공산당 중앙위원) 주석을 제외하면 모두 현직 [[상장(계급)|상장]]들이다. 중국은 장성 계급이 3개뿐이라서 최고 계급은 상장(上將)이며 실질적인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군구 사령관들도 모두 상장이다. 군구 사령관은 중앙군사위에 참여하지 않는다. 다만 상장은 General로 번역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장(계급)|대장]]에 해당하는 계급이다. 국방부장은 개국 때부터 1981년까지 모두 원수가 맡았고, 현재는 상장이 맡고 있다. 하지만 원칙상 민간인이 맡는 타국의 [[국방장관]]과는 달리 그저 여러 상장 중의 한 명에 불과할 뿐이며, 실질적인 업무는 군의 행정 업무에만 관여한다. 다만 [[펑더화이]]나 [[린뱌오]] 시절 때의 국방부장은 군의 [[2인자]]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원래 [[군인]]만으로 구성된다는 법은 없고, 1970년대까지는 당이나 정부 인사들이 많이 참가했으나 1989년 [[장쩌민]] 이후에는 주석을 제외하고 전원 [[군인]]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2012년 11월 단행된 중앙군사위 인사에서 군인이 차지한 부주석 자리 2석 중 1석에 창군 이래 최초로 공군 소속인 쉬차량 공군사령원이 임명되었다. 최근 스텔스 전투기 [[J-20]], [[J-31]] 개발 성공에 대한 포상의 의미로 추정된다. 중앙군사위원회 위원급은 각 전구, 각 군 사령원[* 중국에서는 사령관을 사령원이라고 부른다. 이는 예전 무계급제의 흔적으로, 대부분의 권위주의적인 명칭을 모두 평범하게 바꾸었다.]으로 이루어진 정전구급보다 한급 위에 위치해 있다. 중앙군사위원회 휘하 부서들은 다음과 같다. 기능 부서 * 중앙 군사위원회 판공청[* 사무국]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합동참모부] (정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 공작은 사업을 뜻한다] (정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후근보장부[* 물류지원부]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장비발전부[* 발전은 개발을 뜻함]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훈련관리부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국방동원부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징계검사위원회 (정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정치법률위원회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과학기술위원회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전략기획판공실 (정군급) * 중앙 군사위원회 개혁편제판공실 (정군급) * 중앙 군사위원회 국제군사협력실 (정군급) * 중앙 군사위원회 심계서[* 감사실] (정군급) * 중앙 군사위원회 기관사무관리총국 (정군급) 전구 당국 *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정전구급) * 중국 인민해방군 [[서부전구]] (정전구급) * 중국 인민해방군 [[남부전구]] (정전구급) * 중국 인민해방군 [[북부전구]] (정전구급) * 중국 인민해방군 [[중부전구]] (정전구급) 군 조직 *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 *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 * [[중국 인민해방군 전략지원부대]] *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직속 부대 * 중앙 군사위원회 합동물류지원군 (부전구 급) 직계 대학 * 중국 인민 해방군 국방대학 (부전구 급) * 중국 인민 해방군 군사과학원 (부전구 급) * 중국 인민 해방군 국방기술대학 (정군급) == 역대 주석 == [include(틀:역대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 [[마오쩌둥]] (1949 ~ 1976) * [[화궈펑]] (1976~ 1981) * [[덩샤오핑]] (1981 ~ 1989) * [[장쩌민]] (1989 ~ 2003) * [[후진타오]] (2003 ~ 2013) * [[시진핑]] (2013~ ) 면면을 살펴보면 화궈펑을 제외한다면 '''1949년 현재의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된 이래 [[중국]]의 최고 권력자들은 모두 이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국가주석, 당 총서기가 중앙군사위원회를 장악하지 못하면, 일당 독재 국가인 [[중국]]이 사실상의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국가처럼 운영되는 기이한 광경이 나타나기도 한다. [[후진타오]]는 전임자 [[장쩌민]]과는 달리 자기 후임자였던 [[시진핑]]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 군 통수권까지 통째로 이양했다. 헌데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의 임기가 불일치하기 때문에 시진핑은 당 총서기에 취임하면서 먼저 공산당 중군위 주석 자리를 넘겨받았고 이듬해 국가주석에 취임하면서 국가 중앙군사위 주석직도 함께 넘겨받았다. === 생존 중인 전직 주석 === 2020년 기준 현재 생존 중인 전직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장쩌민]]과 [[후진타오]] 둘 뿐으로 90대인 장쩌민은 물론 후진타오 마저도 70대 말기에 들어 폭삭 늙어있을 정도로 고령이다. * [[장쩌민]] (1989년 11월 9일 ~ 2004년 9월 19일 재임, [[1926년]] [[8월 17일]] 출생, [age(1926-08-17)]세) * [[후진타오]] (2004년 9월 19일 ~ 2012년 11월 15일 재임, [[1942년]] [[12월 21일]] 출생, [age(1942-12-21)]세) 전직 주석 중 가장 장수한 주석은 [[장쩌민]]이다.(현재 [age(1926-08-17)]세)[* 사망한 전직 주석 중에서 가장 장수한 주석은 [[덩샤오핑]]이다.(향년 92세)] == 위상 ==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BR]- [[마오쩌둥]] 중국 [[인민해방군]]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군]](國軍)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당군]](黨軍)이다. 따라서 당 중앙군사위가 [[통수권]]을 갖고 있다. 심지어 [[중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사용 결정권도 이 중앙군사위 주석에게 있다. 중국 공산당 서열 1위인 [[총서기]]가 아닌 당 중군위 주석에게 모든 통수권이 부여된다는 점이 독특하다.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던 [[마오쩌둥]]의 발언으로 대표되듯,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간주된다'''. [[중국]]의 법적인 국가원수는 국가주석이고, [[중국 공산당]]을 이끄는 건 당 서열 1위인 [[총서기]]지만, 이 두 직책을 뛰어넘는 실질적인 권력의 정점은 당 중앙군사위 주석이다. 사실상 이 기구의 주석이 중국군의 [[최고사령관]]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최고지도자]]나 다름 없었다. 더군다나 이 자리는 정년이 없어서 주석이 죽거나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다. [[마오쩌둥]]은 평생토록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내놓지 않았으며, 마오쩌둥 사후 치열한 권력 투쟁 끝에 1인자가 된 [[덩샤오핑]]도 당 총서기나 국가주석 자리에는 다른 사람을 내세우면서도 1981년~1989년까지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움켜쥐고 [[중국]]을 통치하였다. 이 시기에 국가주석은 [[리셴녠]]과 [[양상쿤]]이 맡았지만 [[얼굴마담]]에 불과했고, 연이어서 당 총서기를 맡은 [[후야오방]]과 [[자오쯔양]]도 덩샤오핑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는 실무 책임자에 불과했다.[* 후야오방은 급진적인 정치 개혁을 주장하다가 덩샤오핑에 의해 총서기 자리에서 한 방에 짤렸다. 그리고 후야오방이 1989년 사망하자 전국에서 추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게 바로 [[천안문 6.4 항쟁]]의 시작이 됐다. 후야오방의 후임자였던 자오쯔양도 천안문 민주화 운동 당시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가 숙청됐고 [[장쩌민]]이 후임 총서기가 되었다.] 그래서 덩샤오핑 시절에는 덩샤오핑이 중국의 공식적 국가원수인 국가주석도, 공산당 최고 지도자인 총서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부 수반 뿐 아니라 국가원수 노릇도 했다. 대표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히로히토 일본 천황과 회담을 한 사람이 덩샤오핑이었다. [[덩샤오핑]]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국가주석, 당 총서기,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모두 [[장쩌민]] 한 명이 겸임하도록 내정하면서 당/정/군의 지휘 체계를 일원화하였다. 덩샤오핑의 배려 속에 [[장쩌민]]은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다만 겉으로는 모든 자리를 장쩌민 주석에게 넘긴 것 같아 보여도 국무원 총리 자리에는 [[리펑]]을, 중앙군사위 부주석 자리에는 [[류화칭]]을 내정하여 여차하면 장쩌민을 견제해 줄 세력들을 심어놓았고 실제 덩샤오핑 주석이 사망한 뒤에 장쩌민 VS 리펑 간의 파벌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시 같은 상하이방이었지만 계파가 달랐던 [[차오스]] 당시 전인대 상무위원장도 경쟁자 중 하나였지만 얼마 못 가 정계를 은퇴했다. 장쩌민 체제가 확고하게 중국을 지배하던 시기는 덩샤오핑이 사망하고 차오스 상무위원이 실각하고 난 뒤였다. 그리고 [[장쩌민]] 주석도 자신에게 배정된 5년 임기를 두 번 마치고 2002년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 자리를 덩샤오핑이 살아있을 때 정해준 후임자 [[후진타오]]에게 넘기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는 22개월 동안이나 움켜쥐고 넘겨주지 않았다.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상하이방]]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는 관측이 팽배한데, 하여튼 [[후진타오]]는 집권 2년차까지는 군 통수권이 없는 반쪽 짜리 지도자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정치 체제에서 통치자의 가장 핵심적인 권력은 군 통수권이었고 중국 같은 독재 국가일 수록 군 통수권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니까. [[파일:attachment/200409210029_435754.jpg|width=800]] 2004년 9월 21일의 중앙군사위 기념 촬영 사진. 가운데 왼쪽이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 오른쪽이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다. 이렇게 주석 두 명이 등장하는 어색한 사진이 나온 이유는 [[장쩌민]]이 후임자였던 [[후진타오]]에게 국가주석직과 공산당 총서기직은 제때 넘겼지만 이 군권은 시간을 질질 끌며 최대한 늦게 넘겨줬기 때문이다. 결국 2004년에 [[후진타오]]는 중앙군사위 주석까지도 장쩌민으로부터 넘겨받았지만, 장쩌민은 그 대신 자신의 측근이었던 쉬차이허우를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올려놓아 후진타오가 중앙군사위를 장악하지 못하게 방해했고, 그 때문에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넘겨받은 뒤에도 이미 군 고위층이 전부 [[장쩌민]]계 일색이라서 [[후진타오]]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외신 기사가 여러차례 나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장쩌민은 주요 정치 행사 때마다 [[후진타오]]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동일한 의전을 받는 등 내외에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였다. 반면에 [[후진타오]]는 5년 임기 두 번을 마치고 2012년 후임자인 [[시진핑]] 국가 부주석에게 국가 주석, 당 총서기,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까지 모두 통째로 이양하였다.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반쪽 짜리 권력(당 총서기, 국가주석)만 이양하고 2004년에 후진타오 측으로부터 자기 파벌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은 후에야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넘겨준 것에 비하면 심히 대조된다. 이런 속사정에 대해 [[일본]]의 [[중국]] 전문 르포 기자인 미네무라 겐지가 쓴 '[[시진핑|13억 분의 1의 남자]]'라는 책에 따르면, 원래 [[후진타오]]도 [[장쩌민]]처럼 국가주석직과 당 총서기직만 [[시진핑]]에게 넘겨주고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자기가 갖고서 상왕 정치를 하길 원했지만, 전임자이자 정적이었던 [[장쩌민]]과의 알력 다툼에서 끝내 이기지를 못하자 [[장쩌민]]과 [[동귀어진]]하기로 결심하고 모든 자리를 [[시진핑]]에게 넘긴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가 된 [[시진핑]]은 [[후진타오]]가 바라던 대로 [[장쩌민]]을 비롯한 그의 세력을 반부패 운동을 명분으로 숙청해 주면서 [[덩샤오핑]] 때부터 시작된 '상왕 정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그 뒤에는 자신의 종신 집권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사망할 시 관에는 [[오성홍기]]가 아닌 공산당기를 덮는다. [[분류:중국의 정치]][[분류:중국 인민해방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