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88년 범죄]][[분류:제5공화국/살인사건]][[분류:서울특별시의 사건사고]] [include(틀:사건사고)] [[https://imnews.imbc.com/replay/1988/nwdesk/article/1806390_29513.html|1988-02-13 뉴스데스크 보도영상]] [목차] == 개요 == [[파일:20210131_000517.jpg]] 연행된채 기자회견장소로 가는 어성갑 [[1988년]] [[2월 9일]]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사건 당시에는 [[성동구]] [[중곡동]]이었다. 광진구는 성동구에서 분구되어 1995년 신설되었다.]에서 어성갑(魚聖甲)(당시 36세)이라는 살인범이 평소 원한 관계에 있던 동료 버스 기사 조학연 씨(당시 35세)의 집에 침입해, 조 씨의 아내와 아들 둘을 살해한 [[보복살인]] 사건이다. == 전개 == [[1985년]] [[3월]]부터 [[서울특별시]] [[강동구]] [[명일동]] 소재 [[버스]]회사에서 [[버스 기사]]로 근무한 범인 어성갑은 [[1987년]] [[11월]] 버스요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버스회사에서 해고되고 [[특수절도]] 혐의 등으로 수배를 받아왔는데 이를 밀고한 사람이 동료 버스기사 조학연 씨라고 확신하여 조 씨에게 깊은 원한을 품어왔다. 어성갑은 조학연 씨를 찾아가 자신이 회사에서 해고당한 것은 조 씨 때문이니 생활비를 빌려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하였으나 그 때마다 거절당하여 조 씨의 일가족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1988년 2월 9일 오후 5시 40분 경 중곡동의 모 시장에서 길이 25cm의 과도를 구입, 조 씨의 집을 찾아가 집에 있던 부인 오연옥(당시 35세) 씨와 조 씨의 장남 성훈 군(당시 9세), 차남 성민 군(당시 7세)을 차례로 살해한 뒤 집에 있던 현금과 귀금속을 훔쳐 달아났다. 어성갑은 범행 직후 [[강동구]] [[암사동]] 친구 집으로 도피하여 밤새 술을 마시고 다음날인 10일 새벽 귀가했다가 고향 부근인 청주로 달아났다. 귀가한 남편 조 씨에 의해 신고를 접수받은 경찰은 조 씨 일가족 주변에 대해 탐문 조사를 하던 중 어성갑이 조 씨 내외와 버스회사에서 해고당한 문제 등으로 앙심을 품고 있었다는 점을 파악하고, 어성갑을 용의자로 지목해 청주의 한 여관에서 도피중이던 어성갑을 붙잡아 서울로 압송했다. 집에서 피묻은 점퍼가 발견되자 어성갑은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였으며, 조 씨가 자신을 신고해 버스 회사에서 해고당한 데 대해 앙심을 품고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 재판과 결말 == 1988년 6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어성갑은 이후 형이 확정되었고, 1990년 4월 17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되었다. 어성갑은 범행을 참회하는 뜻에서 안구와 신장을 기증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00418015002|관련 기사]]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