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대한민국의 배우 조혜정, rd1=조혜정(배우))]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gcolor=#000><tablebordercolor=#000> {{{#ffde00 '''조혜정의 역임 직책 및 수상 이력'''}}} || ||<bgcolor=#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GS칼텍스 서울 KIXX 역대 감독)] [include(틀:FIVB 여자 배구 월드컵 MVP)] }}} || ||<-2><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 width=5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109/2010/04/15/201004150833051400_1.jpg|width=100%]]}}}|| ||<-2><bgcolor=#fff,#191919> '''조혜정''' [br] ( 曺惠貞 / Jo Hea-jung ) || ||<bgcolor=#fff,#191919> '''생년월일''' || [[1953년]] [[3월 5일]] ([age(1953-03-05)]세) || ||<bgcolor=#fff,#191919> '''출신지''' || [[부산광역시]] || ||<bgcolor=#fff,#191919> '''출신학교''' || [[숭의여자고등학교]] [br] [[수원대학교]] || ||<bgcolor=#fff,#191919> '''신체사이즈''' || 신장 163.5cm, 체중 58kg || ||<bgcolor=#fff,#191919> '''포지션''' || 레프트 || ||<bgcolor=#fff,#191919> '''가족''' || 남편 [[조창수]], 장녀 조윤희, 차녀 조윤지 || ||<bgcolor=#fff,#191919> '''소속팀''' || [[미도파 배구단|국세청]] (1971~1973) [br] [[미도파 배구단|대농]](미도파) (1973~1977) [br] 라이온스 베이비 (이탈리아) (1979~1981) || ||<bgcolor=#fff,#191919> '''등번호''' || 12번 (국가대표)[* [[https://digital.la84.org/digital/collection/p17103coll8/id/30124|1976 몬트리올 올림픽 기록지]]] || ||<bgcolor=#fff,#191919> '''지도자''' || [[GS칼텍스 서울 KIXX]] 감독 (2010~2011)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 前 [[GS칼텍스 서울 KIXX]] 감독이자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 165cm의 단신이지만 이를 극복하는 서전트점프 68cm, 러닝점프 72cm라는 놀라운 점프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http://www.hani.co.kr/arti/PRINT/257061.html|#]] == 선수 생활 == 현역 시절 164cm의 단신으로 놀라운 점프력을 앞세워 강한 스파이크를 시원스럽게 날려 상대 팀 코트를 맹폭해 '''나는 작은 새''' 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했다. 숭의여고 3학년이던 1970년, 17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승선하였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 구기종목 사상 최초였다. 이외에도 [[1972 뮌헨 올림픽]]에 참가했고,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은메달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583840|#]] 국내 무대에서는 국세청과 대농(미도파)를 거치며 현역 생활을 하다가 무릎 부상으로 1977년에 국내 무대를 은퇴하고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에서 잠시 코치를 지냈으며, 1979년, [[박기원]] 전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IG손해보험]],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 감독의 부름을 받아 [[이탈리아 여자 배구 리그|이탈리아 무대]]로 건너가 2년 간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다 1981년에 선수 생활을 완전히 마감하였다. == 은퇴 이후 == [[1981년]] 현역 생활 마감 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감독 대행을 지낸 [[조창수]]와 결혼했다. 결혼 당시 스포츠 커플로도 큰 화제로 올랐는데, 슬하에 두고 있는 두 딸 조윤희, 조윤지 자매도 현재 프로골프 선수다. 그 후 [[송원여자고등학교]] 배구부 코치와 비치발리볼연맹 사무국장을 역임하였으며, 골프를 하는 두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때 [[대구광역시]]에서 [[냉면]]집을 열기도 하였다. [[2008년]]부터 KOVO 경기운영위원으로 배구 일선에 복귀하며 경기감독관 등으로 지내다가, [[2010년]] [[4월]] [[이성희]] 감독의 후임으로 [[GS칼텍스 서울 KIXX]]의 감독직에 오르게 되어 프로배구는 물론 국내 4대 프로스포츠 통틀어 '''사상 최초의 여성 사령탑'''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야구|4대]] [[축구|프로]][[농구|스]][[배구|포츠]] 이외의 타 스포츠까지 시야를 넓히면 e스포츠 구단 [[삼성 갤럭시(프로게임단)/스타크래프트|삼성전자 칸]]의 [[김가을]] 감독이 있었다.] '''하지만 프로 감독직으로서는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그녀도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속설을 보여주고 말았는데,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서 활기차고 즐거운 팀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와는 달리 이렇다 할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감독 선임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있었고 그가 감독으로 있던 2010-2011 시즌에도 1라운드 까지만 해도 2승 2패로 나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으나 2라운드 이후로 용병 제시카 산토스 실바의 부진과 서브 리시브 불안 등으로 팀의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한때 '''12연패'''까지 당하는 등 최하위까지 속절없이 추락하게 된 것. 어떻게든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시즌 중반 용병도 산야 포포비치로 교체하고 당시 '''팀의 코치로 있던 [[장윤희(배구)|장윤희]]를 현역으로 복귀시키는''' 초강수까지 두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자 시즌 후반기엔 신인급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세대교체와 리빌딩에 중점을 두었다. 결국 '''4승 20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성적 부진으로 사퇴한 뒤 [[이선구]]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0&aid=0000000907|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사임 후에는 병원 신세까지 졌다고 한다.]] == 선수 경력 == === 국가대표 경력 === * 1970 방콕 아시안게임 (2위) * 1972 뮌헨 올림픽 (4위) * 1973 FIVB 월드컵 (3위) * 1974 테헤란 아시안게임 (2위) * 1976 몬트리올 올림픽 (3위) === 개인 수상 === * 1973 FIVB 우루과이 월드컵 MVP [[https://news.joins.com/article/1365179|#]] - 세계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MVP를 받은 건 1973 월드컵의 조혜정과 [[2012 런던 올림픽]]의 [[김연경]] 뿐이다. == 여담 == * ''''나는 작은 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키가 무척 작았던 조혜정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활약하자 외국의 기자가 붙인 'Flying little bird'을 번역한 말이다. *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쿠바와의 경기에서 무릎을 심하게 다쳐 출전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됐는데, "동생이 여섯 명인데 학비를 제가 대야 한다"는 후배 백명선의 말에 의사의 반대를 만류하고 일본과의 준결승 경기에 출전하였다고 한다.[[https://steemit.com/kr/@sanha88/125xc6|#]] * 한 기사의 표현에 따르면 조혜정은 당시 [[소녀시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명했는데, 당시 사법고시를 3등으로 통과한 한 고시생이 "조혜정이 결혼해준다면 다시 시험을 치러 1등으로 합격하겠다"고 협박에 가까운 구애를 보낼 정도였다. 당시 한국에선 조혜정을 모르면 간첩이란 말까지 돌았다고 한다.[[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1111/wk20111104183620121180.htm|#]] * 두 딸 조윤희와 조윤지는 골프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 2005년 당시 기사에 따르면 몬트리올 멤버 12명 중 6명 정도가 가끔씩 모였다고 한다.[* 유정혜, 변경자는 해외에 살고 이순복은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에서 살던 윤영내는 2004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504051809551|#]] * [[2012 런던 올림픽]]에서 36년만에 4강 신화를 쓴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몬트리올에서 함께 뛰었던 이순복, 유경화와 함께 2일 런던으로 날아가 후배들을 응원했다. 한 인터뷰에서 "8강전을 앞두고는 ‘이탈리아만 이겨다오’라고 생각했는데 욕심이 생기더라. 지금의 전력, 자신감이라면 미국도 꺾을 수 있다"고 말했다.[[https://news.joins.com/article/9002046|#]] == 관련 문서 == * [[배구 관련 인물]] * [[배구 해외파 선수들]]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배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배구감독]][[분류:창녕 조씨]][[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53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배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분류:수원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