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제임스 본드)] ||<tablealign=center> [[파일:external/img.thesun.co.uk/George-Lazenby-620_1610943a.jpg|height=40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GeorgeLazenby11.14.08ByLuigiNovi.jpg|height=400]] || ||<:> 제임스 본드로 출연할 당시 ||<:> 최근의 모습 || [목차] == 개요 == '''George Robert Lazenby''' [[숀 코너리]]에 이은 [[007 시리즈]]의 2번째 [[제임스 본드]]로 알려진 배우이다. 역대 본드 중에서 유일하게 비(非)유럽권 출신의 배우이다. [[1939년]] [[9월 5일]] 생. 출신지는 [[호주]]. == 상세 == 레이전비는 1964년, 호주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뒤 제법 인기 많던 남성복 모델이었으나, [[숀 코너리]]가 개런티 문제로 하차한 이후, [[007 시리즈]] 6편 《[[007과 여왕]]》에 캐스팅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1965년에도 《077 - 첩보작전》(…)이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적 있다.] 007 영화 시리즈에서 《[[007과 여왕]]》은 사실 상징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데,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당시 레이전비가 연기했던 제임스 본드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연기가 어색했다'거나 혹은 아예 잊힌 본드로 취급 받고 있다. 제작진과의 불화가 있었던 그는 촬영 후 더 이상 제임스 본드 역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7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본드는 다시 [[숀 코너리]]가 맡게 되었다. 약 3,000:1의 경쟁률을 뚫고 본드 역을 맡았던 레이전비의 후임으로 다시 초대 본드인 코너리를 캐스팅했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레이전비는 코너리가 연기했던 제임스 본드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여왕 폐하 대작전 중후반부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장식하는 스노우 액션은 007 시리즈의 수많은 스노우 액션, 아니, 더 나아가 수많은 액션신이 난무하는 007 시리즈의 모든 액션신을 통틀어 놓고 보아도 단연 압권일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는 장면이다. 게다가 본인이 촬영 초반부터 [[대역]]없이 직접 액션 신을 소화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 촬영 순서는 실제 영화의 순서와 상관이 없다.] 사실 레이전비는 캐스팅 당시부터 액션 연기에 능하다는 것으로 많은 기대를 받는 배우였다.[* 실제로 레이전비는 [[가라테]] 유단자다] 실제로 단 한 편에 출연한 것에 그쳤지만, 여왕 폐하 대작전에서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고, 결과적으로는 오랫동안 제임스 본드로 활약하며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것에 실패한 아쉬운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그는 몇 편의 [[B급]] 영화를 전전하며, 배우로서 성공가도를 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 경력에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있다면, 1983년, 《돌아온 0011 나폴레옹 솔로》에서 주인공을 돕는 캐릭터로 등장했는데, 캐릭터의 이름이 다름 아닌 'J.B.'였다는 것.[* 당연히 '제임스 본드(James Bond)'를 뜻한다.] 또한 [[이소룡]]의 일대기나 일화를 담은 다큐멘터리에 자주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유독 홍콩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이소룡 다큐멘터리들 중 하나인 《이소룡적생여사(李小龍的生與死, Bruce Lee, The Man and the Legend)》(1973)[* Fortune Star에서 나온 영어판과, 이전의 광동어판이 세부적인 면에서 조금씩 다르긴 하다.]에는, 이소룡의 홍콩 장례식 때 이소룡의 영정(影幀) 앞에서 그가 예를 표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다큐는 [[골든 하베스트]]가 배급한 것인데, 이 다큐에 따르면, 레이전비가 이소룡과 공동주연으로 영화에 출연하기로 하고, 그가 홍콩에 와서 영화에 계약한 바로 그 다음 날, 이소룡이 죽었다고 한다. 그 영화는 《직도황룡(直搗黃龍, The Man from Hong Kong)》이다.[* 죽은 이소룡 대신 투입된 것이 왕우왕우(王羽)였다.] 이 영화는 이후 홍콩과 [[오스트레일리아]]의 합작으로 제작되었고, 《스카이 하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개봉되었다.[* [[홍금보]]가 무술감독을 맡으면서 동시에 출연도 했고, [[원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왕우]]가 급히 ~~땜방~~투입된 것도 있고, 호주 제작진의 경험, 기술, 준비 부족 등이 겹쳐, 제작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문제가 좀 있었던 듯하다. 특히 왕우와 호주 제작진들, 백인 배우들과의 불화가 심했다고 하는데, [[http://tdolbin.blog.me/30015587945?Redirect=Log&from=postView|자세한 리뷰가 담긴 글 참고]]. 왕우를 한 번 손 봐주겠다면서 나서려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진짜로 그랬다면, 그 사람은 왕우에게 [[개발살]]났거나, 이후 생명이 위험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왕우는 싸움실력도 실력이지만, [[삼합회]] 죽련방의 두목급 대접을 받던 사람이다.] 이때의 인연으로 이후 홍콩영화 등에 출연하게 된 듯. 사생활적 측면에서는 2008년, 테니스 선수 출신의 아내 팜 슈라이버와 이혼하고, 이혼 소송 진행 중일 때도 전처에게 연달아 폭행 피소를 당하는 등 평화롭지 못한 나날을 보냈다. 또한 2013년 이후로 연기활동도 전혀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원래 드문드문 활동하긴 했지만~~ 최근 들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공식 계정이 생겨 007 팬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매우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다. 연로함에도 불구하고 웬만하면 자신이 직접 댓글에 답을 해주거나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바로는 아니더래도 답장을 해 주고 있다! 레이전비 옹에 의하면 최대한 답장을 자기가 하려 노력중이며 바쁠 때는 매니저가 대신 해준다고 한다. 제임스 본드의 팬이라면 한번쯤 직접 덧글이나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2020년 10월 31일,원조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가 90세로 사망하자 뉴센이라는 한국 ~~[[기레기]]~~ 언론이 멋대로 숀 코너리 사망 기사에 멀쩡한 조지 레이전비 사진을 붙여 보도하는 짓을 저질렀다. [[분류:호주 남배우]][[분류:1939년 출생]][[분류:뉴사우스웨일스주 출신 인물]][[분류:1965년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