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반란자]][[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통치 기구]] ||<-3><table width=100%><tablebgcolor=#ffffff><tablebordercolor=#808080> {{{#113 '''[[조선군 훈련대|{{{#113 조선군 훈련대}}}]] 간부'''[* 대한제국으로 개칭되기 전에 없어졌기에 정확히는 대한제국군이 아니다. 후에 [[대한제국군 친위대]]로 개편되었다.]}}} || || 제1대대장[br][[이두황]] || 제2대대장[br][[우범선]] || 제3대대장[br][[이진호(1867)|이진호]] || [목차] == 개요 == 訓練隊 1895년 2차 갑오개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창설된 부대. 일본 공사가 제안하고 일본군 장교가 교관이었으며 3명의 훈련대대장들은 모두 친일파였다. 대한제국군 소속이 아니며 [[을미사변]]에 가담한 죄로 [[아관파천]] 이후 해체되었다. == 설명 == 1895년 제2차 갑오 개혁 당시에 창설되었다. 그해 1월에 일본 공사가 근위병을 설치할 것을 제안해 2월에 구 친군사영(親軍四營)[* 장위영, 통위영, 총어영, 경리청]에서 장병을 뽑았다. 규모는 1개 대대 수준이었다. 훈련대장으로는 참령([[소령]])을 임명했고 교관은 [[일본군]]이 맡았다. 1대대 외에 [[서울]]에 2대대를 추가 설치하고 [[평양]]에 3대대를 설치했다. 청주와 진주 등에 4대대 - 6대대를 설치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예산 부족 등으로 연기되었다. 7월에는 1대대, 2대대를 합쳐 연대 규모로 재편성되었다. 일본교관에 의해 양성되었고 지휘관들은 친일파로 을미사변에 가담하였기에 [[아관파천]] 이후 해체되어 1년도 유지되지 못했다. 훈련대에 맞서 싸웠고 이후 러시아 교관의 훈련을 받아 재창설된 [[대한제국군 시위대|시위대]]와는 편제도 장비도 성격도 전혀 달랐다. [[별기군]]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근대 편제를 구성하는 등 이전의 군사 개혁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 조선군 훈련대 반란사건 == [include(틀:조선 시대의 실패한 내란)] [[을미사변]] 때 [[일본군]]과 함께 [[대한제국군 시위대|시위대]]와 교전하였다. 일본 공사 미우라에 포섭된 훈련대 간부 제1대대장 '''[[이두황]]''', 제2대대장 '''[[우범선]]'''[*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 때문에 우장춘 박사는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황무지 대한민국에서 맨땅에 헤딩하면서 종자 자급과 연구에 힘쏟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3대대장 '''[[이진호(1867)|이진호]]'''(李軫鎬), 전 군부 협판 '''이주회''' 등이 일본군에 합세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일본군 공사관 수비대 및 훈련대 동원을 담당한 인물은 구스노세 유키히코였고 미우라는 [[을미사변]] 발생 전, 구스노세 유키히코를 포함한 관련자들을 공사관으로 불러 각자의 역할과 행동 지침을 하달했다. 을미사변 이후 1895년 11월 [[법부]]에서 을미사변 관련자들을 모두 모반자로 지목하여 재판할 때, 궐석으로 재판받았다. 한편 현장에 있던 박선, 이주회 등은 11월 14일 [[법부]]의 최종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왕명으로 유길준, 조희연(趙羲淵), 장박(張博), 권영진(權濚鎭), [[이두황]], [[우범선]], 이범래(李範來), [[이진호(1867)|이진호]](李軫鎬) 등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2월 15일 고종은 이들에 대한 참수령을 내렸다. [[이두황]], [[우범선]], 구연수는 일본으로 망명에 성공하였다. 이 가운데 [[우범선]]은 결국 일본에서 자객 [[고영근]]에게 암살당했으며, [[이두황]]과 구연수는 일본 망명 생활 동안 살아남았다. == 여담 == * [[조선군]]이었던만큼 당연히 조선 정부의 지휘를 받았고 조선의 세금으로 운영되었다. 그럼에도 일본의 모략으로 조선의 군대를 향해 총끌을 겨누었는데, 현대에서 훈련대에 대한 인식은 [[쿠데타]]나 [[반란]]과 동일할 정도로 매우 나쁘다. * 이후 훈련대 반란 사건 관련자들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이름을 올렸다. * [[장충단공원|장충단]]은 을미사변 때 일본군 및 훈련대와 싸우다 숨진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과 궁내부대신 이경직 등 여러 장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1900년 9월 고종이 세운 사당으로, [[장충단#s-3.1.1|장충단비]]는 장충단을 세우게 된 내력을 새긴 비석이다 1969년에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