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주요선거)] ||<-4><tablewidth=500><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005BA6><tablebgcolor=#FFFFFF><bgcolor=#005BA6> {{{+1 {{{#FFFFFF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3.ruliweb.com/15a0dfc03fa3459e3.jpg|width=100%]][br]{{{-2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 || ||<-4><#005BA6> {{{#!wiki style="margin: -7px -12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5BA6><width=30%><#FFFFFF> {{{-2 [[1987년]] [[12월 16일]]}}}[br][[제13대 대통령 선거|13대 대선]] ||<width=5%> → ||<#FFFFFF><width=30%> {{{-2 [[1992년]] [[12월 18일]]}}}[br]'''14대 대선''' ||<width=5%> → ||<#FFFFFF><width=30%> {{{-2 [[1997년]] [[12월 18일]]}}}[br][[제15대 대통령 선거|15대 대선]] ||}}} || ||<width=19%><#F0F0F0> {{{#005BA6 '''투표율'''}}} ||<-3>81.9%{{{-3 [[제13대 대통령 선거|{{{#blue ▼ 7.3%p}}}]]}}} || ||<-4><#005BA6> {{{#FFFFFF '''선거 결과'''}}} || ||<#F0F0F0> {{{#005BA6 '''후보'''}}} ||<width=27%> [[민주자유당|{{{#!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0px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3990; font-size: .8em" {{{#FFFFFF '''민주자유당'''}}}}}}]][br]'''[[김영삼]]''' ||<width=27%> [[민주당(1991년)|{{{#!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0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9D68; font-size: .8em" {{{#FFFFFF '''민주당'''}}}}}}]][br]'''[[김대중]]''' ||<width=27%> [[통일국민당|{{{#!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0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2B14C; font-size: .8em" {{{#FFFFFF '''통일국민당'''}}}}}}]][br]'''[[정주영]]''' || ||<|2><#F0F0F0> {{{#005BA6 '''득표율'''}}}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3990 45.6%, #009D68 45.6%, #009D68 81.3%, #22B14C 81.3%, #22B14C)" }}} || || '''42.0%''' || 33.8% || 16.3% || ||<#F0F0F0> {{{#005BA6 '''득표수'''}}} || '''9,977,332''' || 8,041,284 || 3,880,067 || ||<-4><#005BA6> {{{#FFFFFF '''당선인'''}}}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resident_YS.jpg|width=100%]]}}} || ||<-4><bgcolor=#003990> [[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br]'''[[김영삼|{{{#FFFFFF {{{+2 김영삼}}}}}}]]''' || [목차] [clearfix] == 개요 == ||<tablewidth=6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5BA6><tablebgcolor=#005BA6><tablecolor=#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영삼-당선-인사.jpg|width=100%]]}}} || || '''환호하는 [[김영삼|{{{#FFFFFF 김영삼}}}]] 당선자 내외'''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2김영삼당선_조선일보.png|width=100%]]}}} || || '''당선 확정을 알리는 기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mY961zvkgzY)]}}} || || '''대통령 취임 영상''' ||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1992년]] [[11월 20일]]에 [[관보]]에 공고(대통령공고 제129호)[* [[파일:제14대 대통령 선거 공고.jpg]] ][* 참고로 [[대한민국 제6공화국]] 체제에서 [[관보]]에 공고된 마지막 대통령 선거가 될 뻔 했는데, 그 이유는 이후에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대통령 선거'의 시행이 법정화가 되어 굳이 공고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7년]] [[3월 10일]] 제18대 대통령 [[박근혜]]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의해 파면]] 당하고, 이후에 시행한 [[제19대 대통령 선거|궐위로 인한 선거]]의 날짜를 공고하기 위해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같은 해 [[3월 15일]]에 대통령 선거를 25년 만에 공고하였다(대통령공고 제271호)], [[1992년]] [[12월 18일]]에 실시되었으며 [[김영삼]]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득표율 8.2%, 표차 193만 6,048표 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 배경 == [[1987년]] 개헌 이후 두번째로 시행된 직선제 대통령 선거이자 [[제6공화국]]이후 실시된 최초의 선거이다. [[1990년]] [[3당 합당]]을 거쳐 비대해진 [[민주자유당|거대 여당]]을 이끄는 [[김영삼]]과 [[민주당(1991년)|통합 야당]]을 이끄는 [[김대중]]이 경쟁하였다. 특이한 점은 1960년대부터 줄곧 보여왔던 [[여당]]의 [[군인]] 출신 후보가 사라지고 순수 [[민간인]] 출신 후보끼리 벌인 대결이라는 것이다. 즉,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거대 [[여당]]과 제1[[야당]]과의 대결이었다. 한편, [[정주영]]은 현대그룹의 재력을 바탕으로 [[통일국민당]]을 결성, 대선에 앞선 14대 총선에서 31석을 획득하며 제3당으로 부상했다. 마지막으로 [[민주당(1990년)|꼬마 민주당]] 출신의 정치인 박찬종 역시 [[신정치개혁당]] 깃발 아래 출마하게 된다. == 과정 == [include(틀:제14대 대통령 선거 후보)] ||<table width=500> [[파일:attachment/14thelectionmascot.png|width=100%]] || || 각 정당의 마스코트. 왼쪽부터 신정당의 종돌이, 국민당의 호돌이, 민주당의 토끼와 거북이, 민자당의 곰돌이. || 당초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자당의 의석수가 크게 줄어들어 김영삼의 입지에 큰 타격이 온 상태였으나, 민자당내에서 김영삼을 위협하는 대권주자가 없어서 역으로 노태우를 압박하여 당권을 장악하였고, 결국 대통령 후보가 되는데에 성공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각 후보의 지역을 기반으로 4개로 나눠진 모양인데 반해,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대체로 [[경상도|영남]]과 [[전라도|호남]]의 대결구도였다. 김영삼 후보의 지지기반은 [[민주자유당|3당 합당]]으로 인해 전통적 지지기반이었던 [[부산광역시|부산직할시]]와 [[경상남도]]([[부울경|PK]])에서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와 [[경상북도]]([[대경권|TK]])까지 연고범위가 넓어졌다. --우리가 남이가-- 김대중 후보는 지지기반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한편 정주영은 자신의 연고지인 [[강원도]]와 더불어 [[충청도]]에서 지지를 보탰다.[* 하지만, 정주영 후보가 강원과 충청에서 상대적으로 강세였다는 뜻이지, 강원과 충청의 1위는 김영삼이었다. 선거 당시에는 JP가 [[민주자유당]]에서 나와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기 전이라 충청도 지역 정당은 없었다. 다만 통일국민당은 훗날 신정치개혁당과 합쳐져 [[신민당(1994년)|신민당]]이 되었다가 이후 자유민주연합으로 흡수되었다.] [[http://www.youtube.com/embed/TVGceZuIEV4|'신한국 창조'를 기치로 내세운 김영삼 후보 진영의 광고.]] [[http://blog.naver.com/creative_21/10182864107|'상도동의 새벽' 광고]] --깨알 같은 [[이덕화|전두환]]-- --빈손으로 돌아와-- [[http://tvpot.daum.net/v/53669687|'금요일엔 바꿉시다'를 기치로 내세운 김대중 후보 진영의 광고]] [[http://blog.naver.com/creative_21?Redirect=Log&logNo=10114335586&jumpingVid=CE2C452E696B274B263001D2991DD77D6E08|'경제 대통령, 통일 대통령'을 기치로 내세운 정주영 후보 진영의 광고]] --이 사람 밑에 있던 [[이명박|아주 유명한 현대그룹 임원]]도 경제 대통령을 내세웠는데-- [[199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대선]]에서 [[민주당(1991년)]]의 [[김대중]] 후보는 농촌 유권자의 친 [[민주자유당]](현재 [[국민의힘]]) 친 [[노태우]]성향을 비판하며 유권자의 책임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그의 발언에 수긍하지 않는 청중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미 30년전인 [[1992년]] 대선때부터 계급배반투표의 논리가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20500209204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12-05&officeId=00020&pageNo=4&printNo=22020&publishType=00020|후보가 유세장서 유권자 비판 1992년 대선 김대중후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20500329105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12-05&officeId=00032&pageNo=5&printNo=14605&publishType=00010|표 잘못찍어 제 발등도 찍었다, 민주당 유권자 책임강조]] 예전 선거에 비해 선거 기간 중 [[북한]]의 도발 등의 큰 사건은 없었지만, 이 때 지금도 [[지역감정]]의 악사례로 자주 회자되는 [[우리가 남이가|초원복집 사건]]이 있다. 해당항목 참조. 또한 민자당 측에서는 끊임없이 김대중 후보에게 용공론을 펼쳤고, 민주당 측에서는 김영삼 후보의 3당 합당을 비난하는 등 네거티브 선거 양상이 짙었다. --[[병림픽]]--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선거운동기간 내내 의외로 김영삼과 김대중이 초접전을 벌이고 정주영과 박찬종이 3-4위를 다투던 구도였지만 부동층이 위낙에 많아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초원복집 사건]]의 역풍으로 영남권의 결집이 대대적으로 이뤄지면서 김영삼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8.2% 차이로 여유있게 제치고 당선되었다. [[파일:KakaoTalk_20170503_204709624.png|width=500]] 다음날 오전 8시 5분, 개표 92.7% 상황에서 당선이 확정되었다. 한편, [[남장여자|남장]] 정치인으로 유명해진 [[김옥선]]도 '무공약이 공약'을 내세우며 출마했다. 지키지 않을 바에는 안 하는게 낫다는 취지. 사실 정치적 경력으로 볼 때 "황당한 후보, 황당한 대선 공약"이라고 까긴 보기 어렵지만 결국 입에 오르내려지는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결국 김 후보는 0.4% 득표에 그쳐 6위로 낙선했다. 심지어 자신의 연고지이자 과거 지역구였던 [[충청남도]] [[서천군]]에서조차 처참히 발렸다(...) 이미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3위 낙선했던 상태. == 결과 == ||<rowbgcolor=#4169E1><tablebordercolor=#4169E1><-7> '''{{{#FFFFFF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 || ||<rowbgcolor=#0c0f8d> '''{{{#FFFFFF 기호}}}''' || '''{{{#FFFFFF 후보명}}}''' || '''{{{#FFFFFF 정당}}}''' || '''{{{#FFFFFF 득표수}}}''' || '''{{{#FFFFFF 득표율}}}''' || '''{{{#FFFFFF 순위}}}''' || '''{{{#FFFFFF 당선여부}}}''' || || 1 || '''[[김영삼]]''' || ''' [include(틀:민주자유당)] ''' || '''9,977,332''' || '''42.0%''' || '''1''' || '''당선''' || || 2 || [[김대중]] || [include(틀:민주당(1991년))] || 8,041,284 || 33.8% || 2 || 낙선 || || 3 || [[정주영]] || [include(틀:통일국민당)] || 3,880,067 || 16.3% || 3 || 낙선 || || ~~4~~ || ~~[[이종찬(1936)|이종찬]]~~ || [include(틀:새한국당)] || - || - || - || 자격 반납 || || 5 || [[박찬종]] || [include(틀:신정치개혁당)] || 1,516,047 || 6.4% || 4 || 낙선 || || 6 || [[이병호]][* 변호사 출신의 후보로 15대 대선에도 도전했으나 무산되었다. 2016년 별세.] || [include(틀:대한정의당)] || 35,739 || 0.2% || 7 || 낙선 || || 7 || [[김옥선]][* 사상 두 번째 여성 대선후보. 다만 지난 대선 당시 [[홍숙자]] 후보의 경우는 선거 이전에 등록무효처리 되었으며, 실제 투표로 이어진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다.] || [include(틀:무소속)] || 86,292 || 0.4% || 6 || 낙선 || || 8 || [[백기완]] || [include(틀:무소속)] || 238,648 || 1.0% || 5 || 낙선 || |||||| 선거인수 || 29,422,658 |||| 투표수 || 24,095,170 || |||||| 무효표수 || 319,761 |||| 투표율 || 81.9%[* [[http://blog.naver.com/goodandright/130151769547|지역별 투표율]]은 광주가 89.1%로 1위. 가장 낮은곳도 78%가 나왔을 정도로 상당히 높았다.] || === 지역별 결과 === [[파일:800px-14대_대선_1555778182260.jpg]] [* 행정구역은 현재의 행정구역 기준이며, 1992년 당시와는 일치하지 않다. 예를 들어 [[도농복합시]]가 출범하기 전이라든가.] ||<rowbgcolor=#4169E1><tablebordercolor=#4169E1><-5> '''{{{#FFFFFF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 지역별 개표 결과}}}''' || || 지역 ||<#003990> '''[[민주자유당|{{{#FFFFFF 민주자유당}}}]][br][[김영삼|{{{#FFFFFF 김영삼}}}]]''' ||<#009D68> [[민주당(1991년)|{{{#FFFFFF 민주당}}}]][br][[김대중|{{{#FFFFFF 김대중}}}]] ||<#22B14C> [[통일국민당|{{{#FFFFFF 통일국민당}}}]][br][[정주영|{{{#FFFFFF 정주영}}}]] ||<#317873> [[신정치개혁당|{{{#FFFFFF 신정치개혁당}}}]][br][[박찬종|{{{#FFFFFF 박찬종}}}]] || || 전국 ||<#72E0FF> '''9,977,332[br](42.0%)''' || 8,041,284[br](33.8%) || 3,880,067[br](16.3%) || 1,516,047[br](6.4%) || || 서울 || 2,167,298[br](36.4%) ||<#99FFCC> '''2,246,636[br](37.7%)''' || 1,070,629[br](18.0%) || 381,535[br](6.4%) || || 부산 ||<#72E0FF> '''1,551,473[br](73.3%)''' || 265,055[br](12.5%) || 133,907[br](6.3%) || 139,004[br](6.6%) || || 대구 ||<#72E0FF> '''690,245[br](59.6%)''' || 90,641[br](7.8%) || 224,642[br](19.4%) || '''136,037[br](11.7%)''' || || 인천 ||<#72E0FF> '''397,361[br](37.3%)''' || 338,538[br](31.7%) || 228,505[br](21.4%) || 84,211[br](7.9%) || || 광주 || 14,504[br](2.1%) ||<#99FFCC> '''652,337[br](95.8%)''' || 8,085[br](1.2%) || 2,827[br](0.4%) || || 대전 ||<#72E0FF> '''202,137[br](35.2%)''' || 165,067[br](28.7%) || 133,646[br](23.3%) || 64,526[br](11.2%) || || 경기 ||<#72E0FF> '''1,254,025[br](36.3%)''' || 1,103,498[br](32.0%) || 798,356[br](23.1%) || 239,140[br](6.9%) || || 강원 ||<#72E0FF> '''340,528[br](41.5%)''' || 127,265[br](15.5%) || '''279,610[br](34.1%)''' || 56,199[br](6.9%) || || 충남 ||<#72E0FF> '''351,789[br](36.9%)''' || 271,921[br](28.5%) || 240,400[br](25.2%) || 64,117[br](6.7%) || || 충북 ||<#72E0FF> '''281,678[br](38.3%)''' || 191,743[br](26.0%) || 175,767[br](23.9%) || 68,900[br](9.4%) || || 경남 ||<#72E0FF> '''1,514,043[br](72.3%)''' || 193,373[br](9.2%) || 241,135[br](11.5%) || 115,086[br](5.5%) || || 경북 ||<#72E0FF> '''991,424[br](64.7%)''' || 147,440[br](9.6%) || 240,646[br](15.7%) || 124,858[br](8.2%) || || 전남 || 53,360[br](4.2%) ||<#99FFCC> '''1,170,398[br](92.2%)''' || 26,686[br](2.1%) || 7,210[br](0.6%) || || 전북 || 63,175[br](5.7%) ||<#99FFCC> '''991,483[br](89.1%)''' || 35,923[br](3.2%) || 9,320[br](0.8%) || || 제주 ||<#72E0FF> '''104,292[br](40.0%)''' || 85,889[br](32.9%) || 42,130[br](16.1%) || 23,077[br](8.8%) || [[호남]] 지역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으며,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승리했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근소한 표차로 김대중이 이긴 것은 맞지만, 서울의 각 자치구별로는 표심이 매우 엇갈렸다. [[중산층]] 이상이 많이 거주하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와 [[용산구]] 등에서는 김영삼이 넉넉한 표차로 앞섰고, 호남 출신 노동자와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금천구]], [[관악구]], [[구로구]] 등 서울 서남부 지역과 변두리 권역들은 김대중에게 몰표를 던졌다. 그러나 이 때 당시는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 [[양천구]]가 김영삼의 손을 들어줬고 또한 정주영 후보와 박찬종 후보의 표차를 합치면 서울에서도 보수진영이 우세했다. 이는 20년 뒤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지역별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광역자치단체 표심 뿐만 아니라 시, 군, 구 등 기초자치단체들의 표심 또한 상당히 유사하다. 두 선거 모두 [[대한민국 보수정당|보수정당]] 대 [[민주당계 정당]]의 양강 구도를 띤 것이 두 선거의 지역별 결과가 유사하게 나온 것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정주영 후보가 16%라는 상당한 득표율을 올리긴 했지만 어느 한 쪽의 진영에 속한다기보다는 성공신화를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서 기존 정치를 불신하는 중도층의 지지를 받은 것에 가까웠다. ~~재밌는건 이것도 18대 대선의 [[안철수]]랑 비슷하다.~~] 즉, 양측 진영에서 여러 후보가 나와 지지층이 분열되고, 이로 인해 지역별 1위 후보가 뒤바뀌는 일이 14대 대선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18대 대선의 지역별 결과를 보고 싶으면 [[제18대 대통령 선거/지역별 결과|해당 항목]] 참고. === 예측 조사 === ||<rowbgcolor=#4169E1><tablebordercolor=#4169E1><-7> '''{{{#FFFFFF 한국갤럽 92년 대선 예측조사}}}''' || ||||[[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6|출처]] ||<#003990> '''{{{#FFFFFF 김영삼}}}''' ||<#009D68> '''{{{#FFFFFF 김대중}}}''' ||<#22B14C> '''{{{#FFFFFF 정주영}}}''' ||<#317873> '''{{{#FFFFFF 박찬종}}}''' ||<#808080> '''{{{#FFFFFF 기타 후보}}}''' || ||||전체 ||<#72E0FF> '''39.5%''' || 31.1% || 15.7% || 12.4% || 1.2% || ||||실제 결과보다 ||'''+2.5%p ''' || '''+2.7%p '''||'''-0.6%p'''||'''+6.0%p'''|| - || ||<|4>세대별 ||20대 || 22.2% ||<#99FFCC> '''37.3%''' || 20.7% || 16.8% || 3.0% || ||30대 ||<#72E0FF> '''31.5%''' || 26.4% || 22.4% || 18.8% || 0.9% || ||40대 ||<#72E0FF> '''49.0%''' || 30.0% || 10.5% || 9.7% || 0.7% || ||50대 이상 ||<#72E0FF> '''55.9%''' || 30.9% || 8.5% || 4.4% || 0.3% || ||<|2>성별 ||남성 ||<#72E0FF> '''34.2%''' || 32.1% || 17.8% || 14.4% || 1.5% || ||여성 ||<#72E0FF> '''44.5%''' || 30.2% || 13.8% || 10.5% || 1.0% || ||<|8>권역별||서울 || 31.3% ||<#99FFCC> '''32.4%''' ||19.0% || 16.1% || 1.3% || ||인천/경기 ||<#72E0FF> '''35.6%''' || 28.2% || 19.9% || 14.8% || 1.5% || ||강원 ||<#72E0FF> '''38.8%''' || 22.4% || 24.3% || 14.5% || 0.0% || ||대전/충청 ||<#72E0FF> '''39.5%''' || 26.3% || 21.5% || 11.7% || 1.0% || ||광주/전라 || 3.2% ||<#99FFCC> '''88.1%''' || 1.7% || 5.7% || 1.3% || ||대구/경북 ||<#72E0FF> '''66.4%''' || 5.0% || 17.7% || 9.4% || 1.4% || ||부산/경남 ||<#72E0FF> '''64.1%''' || 12.3% || 10.2% || 12.4% || 1.0% || ||제주 ||<#72E0FF> '''41.7%''' || 28.9% || 16.7% || 10.6% || 2.2% || ||<|4>학력별 ||초졸 이하||<#72E0FF> '''56.8%''' || 31.8% || 6.6% || 4.5% || 0.3% || ||중졸||<#72E0FF> '''47.8%''' || 31.7% || 11.7% || 8.3% || 0.5% || ||고졸|| 30.8% ||<#99FFCC> '''31.5%''' || 21.0% || 15.6% || 1.2% || ||대재 이상|| 26.7% ||<#99FFCC> '''29.0%''' || 20.8% || 20.2% || 3.3% || ||<|7>직업별 ||농/임/어업 ||<#72E0FF> '''44.0%''' || 42.5% || 7.2% || 5.9% || 0.3% || ||자영업 ||<#72E0FF> '''37.6%''' || 27.5% || 19.6% || 14.8% || 0.5% || ||블루칼라 ||<#72E0FF> '''33.5%''' || 31.8% ||18.7% || 15.2% || 0.8% || ||화이트칼라 || 27.6% ||<#99FFCC> '''30.2%''' || 24.1% || 16.4% || 1.7% || ||가정주부 ||<#72E0FF> '''47.8%''' || 26.6% || 14.2% || 10.3% || 1.1% || ||학생 || 11.0% ||<#99FFCC> '''37.2%''' || 14.7% || 29.8% || 7.3% || ||무직/기타 ||<#72E0FF> '''41.9%''' || 30.3% || 14.2% || 11.4% || 2.2% || ||<|4>87년대선투표별 ||노태우||<#72E0FF> '''55.4%''' || 17.5% || 17.5% || 8.9% || 0.7% || ||김영삼||<#72E0FF> '''52.0%''' || 16.0% || 14.5% || 16.1% || 1.3% || ||김대중|| 10.3% ||<#99FFCC> '''68.2%''' || 10.1% || 10.4% || 0.9% || ||김종필||<#72E0FF> '''38.1%''' || 16.4% || 30.2% || 13.4% || 1.9% || == 여담 == *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에서는 이 선거의 개표방송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뜻밖의 반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바람. * [[부산경남]]의 보수정당 후보 득표율이 [[대구경북]]의 보수정당 득표율보다 높은 유일한 대선이기도 한데, 이는 YS의 지역기반이 부산경남이었기 때문이다. YS는 당시 부산경남에서 약 73%의 득표율을 보였는데, 이후로도 이 지역에서 이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없다. 반면 대구경북에서 YS의 득표율은 약 50%-60% 정도에 그쳤고 이는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보수정당 후보의 TK 득표율 중 두번째로 낮은 수이다. 이는 민정계 - 민주계 의원과의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YS가 민자당을 장악해가면서 대구경북지역에서의 反 YS 정서가 커져 정주영이 약 10%-20%가량 잠식했기 때문이다. * [[199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대선]]에서 [[민주당(1991년)]]의 [[김대중]]후보는 농촌 유권자의 친 [[민자당]](현재 [[미래통합당]]) 친 [[노태우]]성향을 비난하며 유권자의 책임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그의 발언에 수긍하지 않는 청중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미 30년전인 [[1992년]] 대선때부터 [[계급배반투표]]의 논리가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20500209204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12-05&officeId=00020&pageNo=4&printNo=22020&publishType=00020|후보가 유세장서 유권자 비판 1992년 대선 김대중후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20500329105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12-05&officeId=00032&pageNo=5&printNo=14605&publishType=00010|표 잘못찍어 제 발등도 찍었다, 민주당 유권자 책임강조]] * 2017년 1차 경찰공무원 채용시험의 한국사 과목에서 이 대선이 나왔다. 정확히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한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고 순서를 맞추는 문제인데 '제14대 대통령 선거'라고 나와서 이게 몇년도 대선인지 모르면 맞출 수 없는 문제였다. * [[북한]]은 대선이 끝나자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을 통해 ‘예상대로의 남조선 대통령선거’라는 논평에서 처음으로 김영삼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대해 언급했다. 해외통신에 따르면 로동신문 논평은 미국의 지배와 간섭이 지속되고 있는 남조선에서는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없으며 결국 미국이 원하는 대로 6공 민자당 정권의 연장이라는 구태의연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이런 전제에 따라 새로운 정치적 변혁을 요구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염원과는 배치되는 결과라고 비난했다. [[로동신문]] 논평은 또 [[민자당]]과 현 집권 당국이 거국 중립내각 등 인민 대중의 요구를 억눌러서 진정한 인사가 선거에 반영될 수 없었고 새 정권이 문민정권도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이 같은 [[북한]]의 태도를 5년전 당시 [[노태우]] 후보의 대통령 당선 직후와 비교해 보면 비난의 기조는 변함이 없었다. [* 1992년 대선결과에 대한 북한의 노동신문 논평[[https://imnews.imbc.com/replay/1992/nwdesk/article/1750964_30556.html|북한, 대통령선거 결과 비난]]] === 대선 격전 지역 === 각 지방을 대표하는 맹주 간 대결답게 지역구도가 확고했지만 이런 지역주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수도권 지역과 충청도 지방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양김이 치열하게 격돌했다. 시, 군, 구 단위에서 두 후보 간 표 차가 1,000표 미만이었던 지역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43표 차 김영삼 승 *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107표 차 김영삼 승 * 인천직할시 북구 갑[* 현재의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부개동, 일신동, 십정동]: 132표 차 김대중 승 * 서울특별시 강서구 갑: 222표 차 김대중 승 * 경기도 시흥시: 302표 차 김영삼 승 *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311표 차 김영삼 승 * 경기도 군포시: 517표 차 김대중 승 * 서울특별시 중랑구 을: 755표 차 김영삼 승 * 경기도 의왕시: 757표 차 김영삼 승 * 충청남도 서산군: 789표 차 김영삼 승[* 다만 정작 이 곳의 1위는 정주영 후보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886표 차 김대중 승 * 제주도 서귀포시: 913표 차 김대중 승 * 서울특별시 동작구 갑: 965표 차 김대중 승 이상 13곳이 이번 대선 격전지였으며 이 중 7곳에서 김영삼 후보가 6곳에서 김대중 후보가 승리하며 팽팽히 맞섰지만 결국 지역주의 구도에서 인구가 더 많은 영남을 먹은 김영삼 후보가 인구가 적은 호남을 먹은 김대중 후보를 앞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안양시 만안구에서 기록한 표차는 10년 뒤인 2002년에 치른 16대 대선 때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타이 기록을 세웠다. [[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분류:노태우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