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주요선거)] ||<-3><tablewidth=500><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005BA6><tablebgcolor=#FFFFFF><bgcolor=#005BA6> {{{+1 {{{#FFFFFF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선거'''}}}}}}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mindan.org/20080815_02a.jpg|width=100%]][br]{{{-2 선거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 || ||<-3><#005BA6> {{{#!wiki style="margin: -7px -12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5BA6><width=30%><#FFFFFF> ''[[8.15 광복|광복]]'' ||<width=5%> → ||<#FFFFFF><width=30%> {{{-2 [[1948년]] [[7월 20일]]}}}[br]'''초대 대선''' ||<width=5%> → ||<#FFFFFF><width=30%> {{{-2 [[1952년]] [[8월 5일]]}}}[br][[제2대 대통령 선거|2대 대선]] ||}}} || ||<width=20%><#F0F0F0> {{{#005BA6 '''투표율'''}}} ||<-2>98.99%[* 이 선거는 [[대한민국 국회|국회]]에서 뽑는 간선제였다.] || ||<-3><#005BA6> {{{#FFFFFF '''선거 결과'''}}} || ||<#F0F0F0> {{{#005BA6 '''후보'''}}} ||<width=40%> [[대한독립촉성국민회|{{{#!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5px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1271B5; font-size: .8em" {{{#FFFFFF '''대한독립촉성국민회'''}}}}}}]][br]'''[[이승만]]''' ||<width=40%> [[한국독립당|{{{#!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4C516D; font-size: .8em" {{{#FFFFFF '''한국독립당'''}}}}}}]][br]'''[[김구]]''' || ||<|2><#F0F0F0> {{{#005BA6 '''득표율'''}}}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271B5 93%, #4C516D 93%)" }}} || || '''92.3%''' || 6.7% || ||<#F0F0F0> {{{#005BA6 '''득표수'''}}} || '''180''' || 13 || ||<-3><#005BA6> {{{#FFFFFF '''당선인'''}}}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승만.jpg|width=100%]]}}} || ||<-3><bgcolor=#1271B5> [[대한독립촉성국민회|{{{#FFFFFF '''대한독립촉성국민회'''}}}]][br]'''[[이승만|{{{#FFFFFF {{{+2 이승만}}}}}}]]''' || ||<-3><tablewidth=500><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005BA6><tablebgcolor=#FFFFFF><bgcolor=#005BA6> {{{+1 {{{#FFFFFF '''대한민국 제1대 부통령 선거'''}}}}}}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mindan.org/20080815_02a.jpg|width=100%]][br]{{{-2 선거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 ||<-3><#005BA6> {{{#!wiki style="margin: -7px -12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5BA6><width=30%><#FFFFFF> ''[[8.15 광복|광복]]'' ||<width=5%> → ||<#FFFFFF><width=30%> {{{-2 [[1948년]] [[7월 20일]]}}}[br]'''초대 부선''' ||<width=5%> → ||<#FFFFFF><width=30%> {{{-2 [[1951년]] [[5월 16일]]}}}[br][[제2대 부통령 선거|2대 부선]] ||}}} || ||<width=20%><#F0F0F0> {{{#005BA6 '''투표율'''}}} ||<-2>98.99%[* 이 선거는 [[대한민국 국회|국회]]에서 뽑는 간선제였다.] || ||<-3><#005BA6> {{{#FFFFFF '''선거 결과'''}}} || ||<#F0F0F0> {{{#005BA6 '''후보'''}}} ||<width=40%> [[대한독립촉성국민회|{{{#!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5px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1271B5; font-size: .8em" {{{#FFFFFF '''대한독립촉성국민회'''}}}}}}]][br]'''[[이시영(정치인)|이시영]]''' ||<width=40%> [[한국독립당|{{{#!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4C516D; font-size: .8em" {{{#FFFFFF '''한국독립당'''}}}}}}]][br]'''[[김구]]''' || ||<|2><#F0F0F0> {{{#005BA6 '''득표율'''}}}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271B5 68%, #4C516D 68%)" }}} || || '''67.5%''' || 31.5% || ||<#F0F0F0> {{{#005BA6 '''득표수'''}}} || '''133''' || 62 || ||<-3><#005BA6> {{{#FFFFFF '''당선인'''}}}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nate.com/249945001.jpg|width=100%]]}}} || ||<-3><bgcolor=#1271B5> [[대한독립촉성국민회|{{{#FFFFFF '''대한독립촉성국민회'''}}}]][br]'''[[이시영(정치인)|{{{#FFFFFF {{{+2 이시영}}}}}}]]''' || [목차] [clearfix] == 개요 == [[1948년]] [[7월 20일]] 제헌 [[국회]]에서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선거를 통해서 국가원수를 뽑은 사례이다.''' == 배경 == 제헌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 대통령]]과 [[대한민국 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가 아니라, [[국민]]의 직접선거로 뽑힌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선출'''하도록 했다. 즉 간접선거였던 셈. 이는 제헌헌법이 제정되던 당시의 상황과 비교해봐야 한다. 원래 [[유진오]]가 기초한 제헌[[헌법]] 초안은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이며, 의회에서 선출하는 국무총리가 실권을 가지는 [[내각책임제]]였고, 대부분의 제헌의원들도 여기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이 유력시 되던 이승만 국회의장이 대통령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는 미국식 [[대통령 중심제]]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마찰이 생겼다. 결국 타협책으로 4년 임기에 1회 중임이 가능한 [[미국]]식 정부통령제로 결정되긴 했으나 정부통령 선거를 [[국회의원]]들이 [[투표]]하도록 하면서 내각제적 요소를 첨가하였다.[* 그러나 당시 유력 대선후보 [[이승만]]이 원했던 것은 '''4년의 임기가 확실히 보장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 이후 [[이승만]]의 행보는 줄곧 국회와의 마찰로 얼룩졌으며, 의회의 지지 없이 정부가 구성될 수 없는 내각제에서의 '국무총리 이승만'이었다면 진작에 실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혹은 제헌헌법 초안대로 갔다면은 이승만은 실권이 없는 상징적인 대통령이 되고, 실권을 가진 국무총리 자리는 다른 사람한테 갔을 수도 있다. 이승만은 이런 시나리오를 경계했다는 썰도 있다.] 제헌헌법 53조에서는, 정부통령 선거는 무기명투표로, 재적의원 2/3의 출석과 출석의원 2/3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당선이 확정되는 것으로 하였다. 만약 이런 후보가 없으면 2차 투표를 진행하며, 이래도 확정되지 않으면 2차 투표의 최다득표자 2인을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진행, 최다득표자가 당선 확정되는 것으로 하였다. == 결과 == ||<rowbgcolor=#4169E1><tablebordercolor=#4169E1><-7> '''{{{#FFFFFF 대한민국 제1대 대통령 선거}}}''' || ||<rowbgcolor=#0c0f8d> '''{{{#FFFFFF 기호}}}'''[* 당시 정부통령 선거에는 기호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기호가 있었다.] || '''{{{#FFFFFF 후보명}}}''' || '''{{{#FFFFFF 정당}}}''' || '''{{{#FFFFFF 득표수}}}''' || '''{{{#FFFFFF 득표율}}}''' || '''{{{#FFFFFF 순위}}}''' || '''{{{#FFFFFF 당선유무}}}''' || || - || '''[[이승만]]''' || [include(틀:대한독립촉성국민회)] || '''180''' || '''92.30%''' || '''1''' || '''당선''' || || - || [[김구]] || [include(틀:한국독립당(1946년))] || 13 || 6.67% || 2 ||<|2> 낙선 || || - || [[안재홍]] || [include(틀:무소속)] || 2 || 1.03% || 3 || ||<-3> 선거인수 || 198 ||<-2> 투표수 || 196 || ||<-3> 무효표수[* 미국 국적자인 [[서재필]]에게 투표된 표가 무효표 처리] || 1 ||<-2> 투표율 || 98.99% || ||<rowbgcolor=#4169E1><-8> '''{{{#FFFFFF 대한민국 제1대 부통령 선거}}}''' || ||<rowbgcolor=#0c0f8d> '''{{{#FFFFFF 구분}}}''' || '''{{{#FFFFFF 기호}}}''' || '''{{{#FFFFFF 후보명}}}''' || '''{{{#FFFFFF 정당}}}''' || '''{{{#FFFFFF 득표수}}}''' || '''{{{#FFFFFF 득표율}}}''' || '''{{{#FFFFFF 순위}}}''' || '''{{{#FFFFFF 당선유무}}}''' || ||<|6><:> 1차 투표 || - || [[이시영(정치인)|이시영]] || [include(틀:무소속)] || 113 || 57.36% || 1 || || || - || [[김구]] || [include(틀:한국독립당(1946년))] || 65 || 32.99% || 2 || || || - || [[조만식]] || [include(틀:무소속)] || 10 || 5.08% || 3 || || || - || [[오세창]] || [include(틀:무소속)] || 5 || 2.54% || 4 || || || - || [[장택상]] || [include(틀:무소속)] || 3 || 1.52% || 5 || || || - || [[서상일]] || [include(틀:한국민주당)] || 1 || 0.51% || 6 || || ||<|4><:> 2차 투표 || - || [[이시영(정치인)|'''이시영''']] || [include(틀:무소속)] || '''133''' || '''67.51%''' || '''1''' || '''당선''' || || - || [[김구]] || [include(틀:한국독립당(1946년))] || 62 || 31.47% || 2 || || || - || [[이구수]] || [include(틀:대한국민당(1948년))] || 1 || 0.51% || 3 || || || - || 무효표[* 서재필] || - || 1 || 0.51 || - || || 대통령 선거에는 재적 의원 198명 중 196명이 참여해 당선에 필요한 득표수는 131표였으며, 부통령 선거에는 197명이 참여해 당선에 필요한 득표수는 132표였다. 결국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외 한국민주당에서 밀던대로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정치인)|이시영]]'''이 당선되었다. 이 [[선거]]는 후보자 등록 없이 의원들이 지지하는 '''임의의 사람'''을 적어서 투표하는 식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한테나 투표할 수 있다. 어느 국회의원이 자기 지인 이름을 써내면 그것도 유효표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독정부 참여를 거부한''' [[김구]], [[안재홍]], [[조만식]][* 심지어 조만식은 당시 [[김일성]]에 의해(아직 단독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38선 이북에 억류된 상태였으므로 실질적인 의미는 없었다.]이라든가, 아예 '''미국 국적자라서 피선거권이 없는''' [[서재필]]이 득표[* 물론 무효표 처리되었다.]한 표도 있었다. [[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분류:미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