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구 제국대학)] ||<tablealign=right><tablewidth=650><tablebordercolor=#783b42><:> [[파일:Imperial Univ..jpg|width=100%]] || || 일본 본토에 위치한 구 제국대학의 휘장. || [목차] == 개요 == >'''제 1조''': 제국대학은 국가의 필요에 응한 학술 기예를 가르치고 또한 그 학문의 심오한 경지를 연구함을 목적으로 한다.[* {{{+1 [ruby(第一條, ruby=だいいちじょう)] [ruby(帝國大學, ruby=ていこくだいがく)]ハ[ruby(國家, ruby=こっか)]ノ[ruby(須要, ruby=しゅよう)]ニ[ruby(應, ruby=おう)]スル[ruby(學術技藝, ruby=がくじゅつぎげい)]ヲ[ruby(敎授, ruby=きょうじゅ)]シ[ruby(及, ruby=および)][ruby(其, ruby=その)][ruby(蘊奧, ruby=うんのう)]ヲ[ruby(攷究, ruby=こうきゅう)]スルヲ[ruby(以, ruby=もっ)]テ[ruby(目的, ruby=もくてき)]トス}}}] >---- >- [[메이지 시대|메이지]] 19년 칙령 제3호 '''제국대학령'''(帝國大學令) 제국대학령에 의거하여 [[일본 제국]]이 설립한 9곳의 대학. 일본제국 시절의 유일한 종합 [[관립대학]][* 제국대학은 설립/운영 주체에 따른 분류상으로 '''관립'''(국립)대학이나, 대학령에 의거 설립된 다른 모든 [[구제대학]]과 달리 별도 법령인 제국대학령에 근거 설립되었다. 한편, 당시 유일한 종합대학이었다는 사실에 기인한 대학측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사례도 있는데, 이는 하단의 '상호 관계' 문단 참조.]들이다. [[일본 제국]]은 제국대학령에 의해 1886~1939년간 [[도쿄시]], [[교토시]], [[센다이시]], [[후쿠오카시]], [[삿포로시]], [[조선총독부|조선]] [[경성부|경성]], [[대만총독부|대만]] [[타이베이|다이호쿠주]], [[오사카부]], [[나고야시]] 순서로 제국대학 총 9개교를 설립하였다. 이 제국대학들의 모체는 1877년 세워진 [[도쿄대학|구 도쿄대학]][* 최초의 [[관립대학]]. 참고로 이 '''구제 도쿄대학'''(1877~1886)은 현재의 '''신제 도쿄대학'''과는 제도가 다름.]으로, 1886년 반포된 제국대학령에 따라 도쿄대학을 제국대학으로 개칭하면서 '''제국대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지역별로 제국대학들이 추가로 설립되며[* 대부분의 제국대학들은 전신교(前身校)에서부터 승격한 것이다. 당시 제국대학보다는 일반 [[관립대학]]이, 일반 [[관립대학]] 보다는 사립 [[구제대학]]이, 사립 구제대학보단 [[구제전문학교]]의 격이 낮다고 보았다.] 각 지방의 최고 학부가 되었고[* 간토지방 최고 학부이자 전일본의 수위 학부인 도쿄제대를 정점으로, 긴키지방 교토제대, 도호쿠지방 도호쿠제대, 규슈지방 규슈제대, 홋카이도지방 홋카이도제대, 조선 경성제대, 대만 다이호쿠제대, 긴키지방 제2학부 오사카제대, 추부지방 나고야제대 등이 제국대학 시스템을 구성했다. [[https://baike.baidu.com/item/帝国大学?timestamp=1614170814051|바이두백과]] 참조.] 1897년에 교토제국대학 설치와 동시에 도쿄에 있던 제국대학은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이 되었다. 당시 제국대학은 [[구제전문학교|관립전문학교]], 그 중 특히 의학전문학교를 기반으로[* 부속병원과 교수 의료진이 필요한 의학부 설치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었기 때문에 보통 부속병원이 있는 의학전문학교를 활용] [[종합대학]]화하여 개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의학교'+개성학교), [[교토대학|교토제국대학]]('[[오카야마대학|오카야마의학전문학교]]'), [[도호쿠대학|도호쿠제국대학]]('센다이의학전문학교'+이학부), [[규슈대학|규슈제국대학]]('후쿠오카의학교'), [[홋카이도대학|홋카이도제국대학]]('삿포로농학교'), [[경성제국대학]]([[경성의학전문학교]]의 교수진과 물적 자산 활용. [[도쿄대학]] 문학부 대학원 인문사회연구계에서는 [[경성의전]]을 경성제대 의학부의 사실상의 전신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京城帝大医学部は法文学部とは異なり事実上の前身となる機関(朝鮮総督府医院・京城医学専門学校)を持ったが" [[http://www.l.u-tokyo.ac.jp/postgraduate/database/2017/6268.html|출처]]), [[다이호쿠제국대학]]('[[국립중흥대학|다이호쿠고등농림학교]]')(개교 후 9년차였던 1936년에 대만총독부병원과 다이호쿠의학전문학교를 부속병원과 부속의학전문부로 흡수해 의학부를 만들었다). [[오사카대학|오사카제국대학]]('오사카의학전문학교'→오사카의과대학), [[나고야대학|나고야제국대학]]([[구제전문학교|아이치의학전문학교]] → [[구제대학|아이치현립의과대학]] → [[관립대학|관립아이치의과대학]]의 승격 테크를 밟고 제국대학으로 설립)] 당시 [[소학교]](6년)-[[구제중학교]](5년)[* 오늘날의 중학교(전기중등교육)와 고등학교(후기중등교육)를 합쳐놓은 학교이다. [[대한민국]] 역시 1950년까지는 구제중학교 시스템을 이어받아 중학교가 5~6년제였다.]-[[구제고등학교]](3년)의 14년에 걸친 입시경쟁에서 승리한 최고 [[엘리트]]만이 가는 학교였고, 현재에도 역시 마찬가지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당시 일본에서 '학생'이라고 불린 것은 제국대학 소속 학부생 뿐이었고[* 당시 [[구제전문학교]]나 다른 [[구제대학]]의 재학생은 '생도(生徒)'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래 제국대학 본과에 진학하기 전 단계인 [[구제고등학교]] 재학생의 호칭이 '생도'였는데, [[구제전문학교|전문학교]]나 사립대학은 구제고등학교에 비해서도 낮은 취급을 받았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이 대학들만이 [[학사]], [[박사]] 학위를 딸 수 있던 곳이었다[* 1920년대 이후로는 다른 교육기관들도 [[구제대학]]으로 승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학위 수여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한편, 제국대학령 제3조에는 제국대학에 [[대학원]]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석사]] 학위가 없었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학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 남아 박사 과정에 등록해야 했는데, 이러한 과정에 등록 중인 사람을 [[연구생]]이라 불렀다.]. 2차대전 이후 기존의 제국대학령이 국립종합대학령으로 대체되면서 제도적으로 제국대학은 사라졌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후신으로 남은 본토의 7개 [[국립대학]]들을 '''구 제국대학'''(旧帝国大学)으로 지칭한다.[* 일본 본토 7곳 제국대학의 약칭은 '''구제대'''([ruby(旧帝大, ruby=きゅうていだい)]), 혹은 '''칠제대'''([ruby(七帝大, ruby=ななていだい)]).] == 역사 == === 설립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ordercolor=#783b42><bgcolor=#FFFFFF>[[파일:imperialuniversitiesofjapan.png|width=100%]]|| || [[https://www.lib.ntu.edu.tw/gallery/promotions/20181115_TheEarlyYearsofNTU/injapan.html|九帝國大學]] || * 1886년: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약칭 토다이(東大、とうだい).] - 現 [[도쿄대학]](東京大学) * 1897년: '''[[교토대학|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약칭 쿄다이(京大、きょうだい).] - 現 [[교토대학]](京都大学) * 1907년: '''[[도호쿠대학|도호쿠제국대학]]'''(東北帝國大學)[* 약칭 호쿠다이(北大、ほくだい). 다만 이것은 당대의 약칭으로, 후에는 이 약칭을 [[홋카이도대학]]이 가져가서 현재는 약칭이 따로 없이 토호쿠다이(東北大、とうほくだい)라고 불리고 있다.] - 現 [[도호쿠대학]](東北大学) * 1911년: '''[[규슈대학|규슈제국대학]]'''(九州帝國大學)[* 약칭 큐다이(九大、きゅうだい).] - 現 [[규슈대학]](九州大学) * 1918년: '''[[홋카이도대학|홋카이도제국대학]]'''(北海道帝國大學)[* 약칭 카이다이(海大、かいだい). 다만 현재는 관용적으로 호쿠다이(北大、ほくだい)라고 불리고 있다.] - 現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学) * 1924년: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약칭 죠다이(城大、じょうだい). [[교토대학|교토제국대학]] 약칭 경대(京大)와 중복되어 성대(城大)로 불렸다. 해방되자마자 [[경성대학]], 약칭 경대(京大)로 이름이 바뀌었다. 물론 성대라는 약칭과 한동안 혼용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경성대학의 명칭 변경을 다룬 논문도 있다. 한편, [[경성]](京城、けいじょう)은 게이조(케이죠)로 읽힌다.] - 現 [[서울대학교]](서울大學校)[* 법제상으로 서울대학교는 [[경성제국대학]] 및 10개의 [[구제전문학교]] 및 사범학교([[구제중학교]] 위치 상당.)와 함께 폐교 후 통합 재구성하여 [[국립서울대학교]]가 되었다.] * 1928년: '''[[국립타이완대학|다이호쿠제국대학]]'''(臺北帝國大學)[* 약칭 타이다이(臺大、たいだい).] - 現 [[국립타이완대학]](國立臺灣大學) * 1931년: '''[[오사카대학|오사카제국대학]]'''(大阪帝國大學)[* 약칭 한다이(阪大、はんだい).] - 現 [[오사카대학]](大阪大学) * 1939년: '''[[나고야대학|나고야제국대학]]'''(名古屋帝國大學)[* 약칭 메이다이(名大、めいだい).] - 現 [[나고야대학]](名古屋大学) === 종전 이후 개편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0><tablebordercolor=#783b42><:><width=46%><bgcolor=#FFFFFF>[[파일:1608144821487.jpg|width=100%]]||<:><width=54%><bgcolor=#FFFFFF>[[파일:제국대학 후신 위치.png|width=100%]]|| |||| 제국대학 및 그 후신 || [[일본제국]] 패망 후 일본 내지에 위치한 [[도쿄도|도쿄]], [[교토시|교토]], [[센다이시|도호쿠]], [[후쿠오카시|규슈]], [[삿포로시|홋카이도]], [[오사카시|오사카]], [[나고야시|나고야]]의 [[제국대학]]들은 1947년 미군정에 의해 제국대학령이 '''국립종합대학령'''으로 개정되면서[* 이에 앞서 1947년 5월 3일에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어 정식 국명이 [[일본국]](日本國, Japan)이 되었다.] 교명에서 '''제국'''이 빠지게 된다. 이어 통합학부는 단일학부로(예컨대, 법문학부는 법학부/경제학부/문학부로, 이공학부는 이학부/공학부로) 분리되었으며, 미군정의 '고등교육기관 일원화' 방침에 따라 1948~1949년에 걸쳐 각 지방([[도도부현]])에 있던 고등교육기관인 [[구제고등학교]], [[구제전문학교]]([[고등상업학교]], [[고등사범학교]], 고등공업학교 등)들을 흡수하여 신제대학(新制大學)으로 개편되었다. * [[도쿄대학]] - [[구제고등학교#s-3.2|제1고등학교]], [[구제고등학교#s-3.4|도쿄고등학교]]를 흡수해 교양부 설치 * [[교토대학]] - [[구제고등학교#s-3.2|제3고등학교]]를 흡수해 교양부 설치 * [[도호쿠대학]] - [[구제고등학교#s-3.2|제2고등학교]]를 흡수해 교양부 설치하고 [[구제전문학교|센다이고등공업학교]]를 공학부로 흡수통합했으며, 미야기사범학교와 미야기청년사범학교를 흡수해 교육학부 설치하고 미야기여자사범학교를 흡수해 농학부 가정학과를 설치 * [[규슈대학]] - [[구제고등학교#s-3.4|후쿠오카고등학교]]를 흡수해 교양부를 설치하고 [[구제전문학교|구루메고등공업학교]]를 공학부에 흡수통합 * [[홋카이도대학]] - [[구제고등학교#s-3.3|홋카이도제국대학 예과]]를 본과내 교양부로 재편하고, [[구제전문학교|하코다테고등수산학교]][* 본래 출발이 홋카이도제국대학의 전신인 삿포로농학교 수산학부로, 1935년 홋카이도제국대학 부속 수산전문부에서 하코다테고등수산학교로 분리독립했다가 1944년 하코다테수산전문학교로 개칭한 후 1949년 다시 홋카이도대학으로 합병된 현재 [[홋카이도대학]] 수산학부]를 재흡수하여 수산학부 설치 * [[오사카대학]] - [[구제고등학교#s-3.4|오사카고등학교]]와 부립 [[구제고등학교#s-3.4|나니와고등학교]] 흡수해 교양부를 설치하고 [[구제전문학교|오사카약학전문학교]]를 흡수해 약학부를 설치 * [[나고야대학]] - [[구제고등학교#s-3.2|제8고등학교]]를 흡수해 교양부를 설치하고 [[고등상업학교|나고야고등상업학교]]를 흡수해 법경학부에 경제학과와 경영학과를 두었으며, [[고등사범학교|오카자키고등사범학교]]를 흡수해 교육학부를 설치 외지에 위치한 2개의 제국대학, [[조선총독부|조선]]의 [[경성제국대학]]과 [[대만총독부|대만]]의 [[국립타이완대학|다이호쿠제국대학]] 또한 비슷한 변화를 거쳐 미국식 대학체제로 변화하게 된다. [[경성제대]]는 1945년 9월 미군정청에 의해, [[국립타이완대학|다이호쿠제대]]는 1945년 11월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접수되어 각각 [[서울대학교|경성대학]]과 [[국립타이완대학]]으로 교명을 바꾸고 통합학부를 분리학부로 독립시키며 부속전문부를 본과에 병합하고, 인근에 위치한 [[구제전문학교]]들을 흡수통합하여 미국식 대학 체제로 변화하게 되었다. * [[경성제국대학]] - 1946년 8월 22일 미군정 법령 제102호 [[서울대학교/역사#s-3.1|'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에 의거하여 경성제국대학 [[구제고등학교#s-3.3|예과]]와 법문학부와 이공학부 이학계열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구성하고, 의학부는 [[경성의학전문학교]]를 흡수해 의과대학이 되며, 이공학부 공학계열은 [[구제전문학교|경성고등공업학교]] 및 [[구제전문학교|경성광산전문학교]]와 합쳐져 공과대학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대학교의 [[서울대학교/학부/인문대학|인문대학]],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사회과학대학]], [[서울대학교/학부/자연과학대학|자연과학대학]], [[서울대학교/학부/공과대학|공과대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과대학]], [[서울대학교/학부#간호대학|간호대학]],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의 모체가 되었다.] 동시에 [[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사범대학으로, [[구제전문학교|경성법학전문학교]]를 법과대학으로, [[구제전문학교|경성고등상업학교]]를 상과대학으로, [[구제전문학교|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치과대학으로, [[구제전문학교|수원고등농림학교]]를 농과대학으로 흡수하고 예술대학을 신설하여 '''국립서울대학교'''로 출범 * [[국립타이완대학|다이호쿠제국대학]] - 1945년 12월 15일 [[타이완 섬]]을 접수한 [[중화민국]] 정부 행정원 결의에 의해 [[국립타이완대학]]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구제고등학교#s-3.3|예과]]를 통합하고, 단과대학을 일본식 학부(學部)에서 중국식 학원(學院)으로 변경함과 동시에 문정학부를 문학원과 법학원으로 분리. 1947년 [[구제전문학교]]인 다이호쿠고등상업학교[* 1919년 대만총독부 고등상업학교로 설립, 1926년 다이호쿠고등상업학교를 거쳐 1944년 다이호쿠경제전문학교로 개편(동년 조선의 경성고등상업학교도 경성경제전문학교로 개편). 1945년 중화민국에 접수되어 1946년 대만성립법상학원으로 개칭되어있던 상황]를 법학원 상학계로 흡수[* [[타이완 섬|대만]]의 [[구제전문학교|의학전문학교]]는 1936년에 이미 [[다이호쿠제국대학]] 의학부를 창설할 때 부속 의학전문부로 흡수된 상태였고, [[국립성공대학|공업전문학교]]와 [[국립중흥대학|농림전문학교]](원래 [[다이호쿠제국대학]] 캠퍼스 자리에 1919년 먼저 개교했던 다이호쿠고등농림학교(臺北高等農林學校)였으나, 제국대학 설립의 모체가 되어 흡수당했다가 1943년에 [[타이중시|타이중]]으로 독립해 나감)는 각각 [[타이난시|타이난]]과 [[타이중시|타이중]]에 위치해 있어서 개별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이외에 대만 유일의 [[구제고등학교#s-3.4]]인 다이호쿠고등학교는 다이호쿠제국대학 캠퍼스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었으나, 시급한 중등교원 양성을 위해 [[국립대만사범대학]]으로 별도 승격되었다.] [[국립타이완대학]]은 자신들의 전신은 [[일본제국]]이 설립한 [[다이호쿠제국대학]]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국립타이완대학 홈페이지에서는 제국대학 당시의 일본인 [[총장]]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는 35년간 일제통치를 겪은 조선 보다 일본의 지배기간이 50년으로 상대적으로 길었고, 35년 내내 재정독립을 달성하지 못하고 일본의 지원금에 의존했던 [[조선총독부]]와 달리 1900년대 초반에 쌀, 차 재배 수출 및 설탕 제당산업 등 경제발전으로 흑자재정을 실현한 [[대만총독부]]의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통치를 받은 탓에 [[대만일치시기]]에 대해 전면 부정만 하지는 않게 된 [[대만-일본 관계|대만의 일본관]]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패전 후 [[타이완 섬]]을 접수한 [[중화민국]]의 대만인 탄압과 [[2.28사건]] 역시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반면, [[서울대학교]]에서는 1946년을 개교년도로 삼고, 10개 학교를 바탕으로 설립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전신이 [[경성제국대학]]임을 대놓고 밝히진 않고, [[경성제대]]는 여러 전신학교들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서울대학교]]에서는 [[구제전문학교]]와 섞인 단과대학들이 경성제국대학 대신 다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그쪽을 강조하는 실정이었다. 가령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 경성제대 의학부가 본과가 되고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전문부([[구제전문학교]]에 해당)로 흡수하여 폐지했음에도, 경성의전을 강조하며 경성의전의 전신인 대한의원(1907)과 관립의학교를 넘어서 학교의 기원을 '관립(국립)' 병원이라는 것을 명목으로 [[제중원]]까지 무리해서 소급하다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과 충돌하기도 했다.] 다만, 그 통합된 학교 중 '''[[구제대학]]'''은 [[경성제국대학]]이 유일했고, 나머지 9개 학교는 '''단과 [[구제전문학교]]나 [[구제중학교]]'''[* [[일제강점기]]의 학제에서 초등교원을 양성하는 사범학교는 당시 중등학교 급이었다. 경성사범학교는 전문학교급 승격이 해방 직전인 1943년이어서 아직까지 전문학교라는 인식이 미약하고 [[구제중학교|중학교(구제)]]급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경성제대 예과를 졸업하고 경성제대 법문학부와 이공학부 이학계열 출신들로만 구성된 [[문리과대학]]에서는 서울대학교 초창기 경성사범학교에서 비롯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사범대학]]을 철폐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를 전신으로 한다. 미군정청의 '국대안' 역시 그 성안과정을 보면 경성대학을 중심으로 경성과 수원의 전문학교들을 통폐합해 국립서울대학'''교'''를 설립한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보면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학교의 전신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한편으로 세간에서 경성제국대학을 서울대학교의 전신으로 보는 인식도 상당히 높고, 통합 후 서울대학교가 신생 대한민국에서 최고 학부 자리를 차지하면서 경성제대 출신 동문들도 서울대 동문회에도 참가하며 서울대를 모교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통합 당시 원래 경성제국대학 출신자들은 서울대학교를 모교로 인정하는 것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일례로,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학교로 이관될 당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제1류 법학전공, 제2류 정치학전공, 제3류 경제학전공) 학생들은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s-3.3|경성법학전문학교]]와 섞이는 것은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격렬히 반대하면서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중심으로 설립된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s-3.4|서울대 법과대학]] 소속으로의 학적 변경을 거부하고, 경성제국대학의 정통 계승이라 여겨지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소속의 정치학과로 끝까지 남았다. 이 때문에 서울대학교에는 정치학과가 [[법과대학]]이 아니라 [[문리과대학]]에 소속되어 있었고, 1950년대에는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서 오히려 법과대학보다도 더 많은 [[사법고시]] 합격자가 쏟아져 나왔다. 다른 [[전문학교]]와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후신으로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은 서울대 중의 진짜 서울대로 인정받았다고 한다(출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육십년사). [[http://sangdae.com/s5/s5_1.php|서울상대 총동창회 회보인 향상의탑]] 제165호(2018.12)에 실린 [[http://www.sangdae.com/webzine/2018-12-165/EBook.htm|정기준 명예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1943년 10월 경성제대 입학생인 조영휘, 서우택, 송겸호, 최형규 등 4명만이 경성경제전문학교의 후신으로만 여겨지는 서울대 상과대학의 제1회 졸업생으로 졸업하였으며 1945년 4월 경성제대 최후 입학기수인 조철 역시 서울상대 제2회 졸업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방 이후 국대안 시행 이전까지 경성대학으로 입학한 학생들 중에서도 17명만이 상과대학 소속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의 [[경성제국대학]] 부정은 '''반일(反日)'''을 국시로 삼고 국가주의의 극치를 달리던 [[이승만 정부]]에서 제일 극심했으며[* 경성제대 등 제국대학 출신이었던 서울대 및 주요대학 국문학과/국사학과 교수들은 역시 제국대학 동문들이던 일본의 한국학 연구자들과 매년 교류 세미나를 이어왔는데, 당연히 일제시대부터 써왔던 일본어로 소통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모여서 세미나를 진행하던 어느날 갑자기 한국인 교수들은 '''한국''' 연구회니 모든 소통은 한국어로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하며 한국어로 발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일본인 교수들이 벙 쪘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어 군부독재가 이어지면서 자유로운 학문적 논의조차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를 거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한일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2000년대부터 기존의 경성제대 부정론이 수정되기 시작했고, [[경성제대]]를 주제로 삼은 박사논문과 여러 단행본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이후 경성제대가 단과대학의 역사를 넘어서 종합대학 차원에서도 서울대의 전신임을 부정하던 한국의 전통적 견해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도 2008년 서울대학교총동창회 회원 33만 명의 이름으로 ‘서울대 개교 원년 찾기’ 운동이 시작되어 1946년 국대안으로 개교했다는 기존 설명을 수정하여 '개학' 연도를 경성제대 및 여러 전문학교를 포함하여 가장 빠른 1895년으로 수정한 바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서울대학교의 공식 간행 校史([[http://archives.snu.ac.kr/SERVICE/ebook_new/ebook3/ebook.jsp|서울대학교 개학 120년 기념 국립서울대학교 개학 반세기사(1895~1946)]])에서 경성제대를 서울대의 근간을 구성한 모체로 규정하고 있다. 경성제대의 학부 중 존속기간이 가장 짧고[* 법문학부 의학부 20년, 이공학부 '''5년'''] 경성공전 및 경성광전과 통합되어 서울공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큰 지분을 차지하지 못한 [[경성제대]] 이공학부 공학계열에 대해서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서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장을 역임한 과학사학계의 원로 이성규 교수는 '''[[일본 제국|제국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이루어 놓은 성과 중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 이성규 교수는 조선반도의 유일한 대학으로 군림한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에 관한 국내 사학계의 서술의 비중과 평가가 과소하다고 비판하며, 경성제대 이공학부의 조선인 졸업자 수가 ‘37명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까고 ‘37명이나 된다’고 규정했다. 경성제대 이공학부는 식민지과학기술의 전당이었으며, 나아가서 해방 후에 신생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에 이들 경성제대 졸업생들이 지대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며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를 '[[일본 제국|제국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이루어놓은 성과 중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규정한다(교수신문 2005년 5월 7일자 참조). 이성규 교수의 논문 [[http://db.history.go.kr/item/pdfViewer.do?levelId=hn_042_0030|이공학부를 중심으로 본 경성제국대학의 식민사적 의미]]를 참조.] == 평가 및 전망 == ||<tablewidth=600><tablealign=center><#23651C><:><width=14%> [[홋카이도대학|[[파일:hokkaidouniv.png|width=90%]]]] ||<#3F0099><:><width=14%> [[도호쿠대학| [[파일:tohokuuniv.png|width=90%]]]] ||<#187FC3><:><width=14%> [[도쿄대학| [[파일:tokyouniv.png|width=90%]]]] ||<#006E4F><:><width=16%> [[나고야대학|[[파일:nagoyauniv.png|width=100%]]]] ||<#00266F><:><width=14%> [[교토대학|[[파일:kyotouniv.png|width=90%]]]] ||<#343d9c><:><width=14%> [[오사카대학|[[파일:osakauniv.png|width=90%]]]] ||<#7F3044><:><width=14%> [[규슈대학|[[파일:kyushuuniv.png|width=90%]]]] || ||<#23651C><:> [[홋카이도대학|{{{#ffffff {{{-2 홋카이도대학}}}}}}]] ||<#3F0099><:> [[도호쿠대학|{{{#ffffff {{{-2 도호쿠대학}}}}}}]] ||<#187FC3><:> [[도쿄대학|{{{#ffffff {{{-2 도쿄대학}}}}}}]] ||<#006E4F><:> [[나고야대학|{{{#ffffff {{{-2 나고야대학}}}}}}]] ||<#00266F><:> [[교토대학|{{{#ffffff {{{-2 교토대학}}}}}}]] ||<#343d9c><:> [[오사카대학|{{{#ffffff {{{-2 오사카대학}}}}}}]] ||<#7F3044><:> [[규슈대학|{{{#ffffff {{{-2 규슈대학}}}}}}]] || ||<tablealign=right><tablewidth=310><tablebordercolor=#783b42><bgcolor=#FFFFFF><:>[[파일:20171127_03_01-272x302.jpg]]|| || 동 세대 1.6%만이 '''구제국대학'''에 진학 || [[일본 제국]] 당시 최고의 엘리트만이 가는 종합대학이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의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국립•공립대학은 200여 개 가까이 되지만, 제국대학은 그 중에서도 최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600~700여 개가 넘는 웬만한 4년제 [[사립대학]]들은 비교조차 안 되는 수준이다. 실제로 3대 대학 랭킹이라고 불리는 [[ARWU]], [[THE 세계 대학 랭킹]], [[QS 세계 대학 랭킹]]을 보면 일본 순위의 1위부터 8위까지는 '''항상''' 구제국대학이 차지한다.[* 7곳의 구제국대학에 [[도쿄공업대학]]이 껴서 대략 1~8위를 차지하고 있고, [[쓰쿠바대학]]도 그 뒤를 쫓고 있으며, [[NAIST]]와 [[JAIST]] 및 [[이화학연구소]]도 일부 연구 분야에서 상당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구제국대학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특히 [[이공계]]의 경우엔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간 가성비 차이는 [[넘사벽]]이다. 학생 한명당 할당된 1년간의 예산만 봐도 국립대(약 2020만원)와 사립대(약 160만원)는 약 '''13배 차이'''가 나는데[* 국립대학의 경우 1년간 학생 한명당 공재정지출은 202만엔, 사립대학은 16만엔. [[https://headlines.yahoo.co.jp/hl?a=20181104-00010001-newswitch-bus_all|출처]] 참조.], 이공계의 경우엔 사립대학의 수업료가 국립대의 3배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국립대와 사립대의 '''가성비의 차이는 약 40배'''이다. 이공계에서 특히 국립대와 사립대의 선호도의 차이가 현저한 이유는, 이공계 특성상 엄청난 재정을 투자해야 하는데,[* 일본 국립대학의 이공계 분야는 일본 정부 지원금을 엄청 받고 있고 일본의 연구 거점기관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부주도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있는 반면, 사립대학은 연구 규모로도 재정으로도 뒤쳐질 수밖에 없다.] 사립대학은 자신들의 [[이윤]] 창출이 제1의 목표이기 때문에 돈이 드는 이공계열 학과에 대한 투자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립대는 일반적으로 수험 과목의 수가 국립대보다 훨씬 적고, 일부 전형을 제외하면 [[센터시험]]을 보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기에, 사립대학은 [[편차치]]가 특히 심하게 높게 나오기 때문에, [[소케이]][* [[와세다대학]] 및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일컫는 용어.]가 도쿄대학 다음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많은 [[한국인]]들이 위와 같이 착각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이병철]], [[신익희]],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송진우]], [[양주동]], [[김성수(1891)|김성수]] 등 많은 유명인물을 배출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추측된다. 그 당시 와세다대학에 [[조선인]]이 상당히 많았던 이유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제국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구제고등학교]]의 졸업장이 필요했는데, 당시 조선에는 구제고등학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조선인들은 [[와세다대학]]이나 [[게이오기주쿠대학]]과 같은 [[사립대학]]에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혀 다른 일본의 대학서열화를 한국에 억지로 끼워맞추기 위해 수도에 있는 국립대, 그 다음 라이벌 관계인 두 사립대라는 도식을 그대로 대입해 버렸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도쿄대와 소케이를 그냥 한국의 스카이에 대입해 버리는 우를 범한다.일본의 대학 서열화를 보면 알겠지만 한국이랑 전혀 다르다. 오히려 일본하고 미국하고 유사한 부분이 많으며 한국처럼 대학 앞글자 따와서 순서대로 나열하는 식의 서열화는 없다.] 실제 전국적인 수험생들의 관점으로는 7곳의 '''제국대학'''과 [[도쿄공업대학]] 등의 최상위 국립대학들을 돌고 난 다음 순서로 취급받는다. 이 차이는 [[의학과]]로 가면 더 벌어져, 의대의 경우에는 구제국대가 거의 모든 사립대학 의학과를 압도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게이오기주쿠대학]] 의학부, [[준텐도대학]] 의학부, 도쿄지케이카이의과대학 등 명성이 높은 사립 의대도 존재한다. 이 사립 의대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학비가 비교적 싸다는 것. 그러나 사립 최고 의대인 [[게이오기주쿠대학]] 의학부 역시 구제국대에는 밀리고, 나머지 사립의대들은 [[관립대학|관립의과대학]]이었던 구6의대에 뒤진다.] 그 이유는 일본의 국립대학 의학부는 [[대한민국|한국]]과 비교해도 [[등록금]]이 아주 저렴할 정도이지만(1년 등록금 약 550만 원), 사립대 의대는 가장 저렴한 곳이라도 연간 학비가 한화로 환산하면 수천만 원이 넘으며, 1억이 넘는 곳도 부지기수이다. 일본의 의료 체계가 국립대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 형태인지라 일본의 의료 [[소비자]]들도 국립대학 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사립 의대는 [[의사]]가 자신의 [[병원]]을 물려주기 위해 그리 학업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자녀를 진학시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일부 [[사립대학]] 의대는 연간 학비만 '''1억 원'''이 넘고, 입시 난이도도 [[소케이]] 이공학부보다도 쉬운 경우가 있다. 물론, [[사립대학]]은 일반적으로 학생 수가 매우 많아 [[졸업생]]을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학연]], [[지연]]이 중요시되는 [[문과]] 계열에서는 힘이 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7곳 제국대학의 문과 정원을 전부 합한다고 해도 대표적인 사립대학인 [[와세다대학]]의 문과 정원보다도 적다. 각 대학별 문과계열 모집 정원을[* 고등학교 이과생에 할당된 문과 학부의 모집 정원까지 전부 포함해서] 확인해보면 도쿄대 1,223명[* [[https://www.u-tokyo.ac.jp/ja/about/overview/e08_01.html|링크]] 참고. 문과1류 401명, 문과2류 353명, 문과3류 469명.], 교토대 970명[* [[https://search.keinet.ne.jp/outline/department_sp/1280|링크]] 참고. 종합인간학부 120명, 문학부 220명, 교육학부 60명, 법학부 330명, 경제학부 240명. [[https://www.kyoto-u.ac.jp/sites/default/files/embed/jaadmissionsundergradrequirementsdocumentsr3R3_01.pdf|교토대 자료]] 참고], 도호쿠대 700명[* [[https://search.keinet.ne.jp/outline/department_sp/1050|링크]] 참고. 문학부 210명, 교육학부 70명, 법학부 160명, 경제학부 260명. [[https://www.tohoku.ac.jp/japanese/profile/about/06/about0602/|도호쿠대학 자료]] 참고.], 규슈대 717명[* [[https://search.keinet.ne.jp/outline/department_sp/1405|링크]] 참고. 공창학부 105명, 문학부 151명, 교육학부 46명, 법학부 189명, 경제학부 226명. [[https://www.kyushu-u.ac.jp/f/35746/H31_joukyo.pdf|규슈대학 자료]] 참고.], 홋카이도대 625명[* [[https://search.keinet.ne.jp/outline/department_sp/1025|링크]] 참고. 문학부 185명, 교육학부 50명, 법학부 200명, 경제학부 190명. [[https://www.hokudai.ac.jp/admission/R03_admission.pdf|홋카이도대학 자료]] 참고.], 오사카대 1,352명[* [[https://search.keinet.ne.jp/outline/department_sp/1295|링크]] 참고. 2007년 오사카외국어대학을 흡수 합병하면서 외국어문학부로 별도 편제된 덕분에 오사카대학은 현재 최대 규모의 학부를 가진 국립대학이 되었다. 문학부 165명, 법학부 250명, 경제학부 220명, 인간과학부 137명 등 기존 오사카대학 772명과 외국어문학부 580명. [[https://www.osaka-u.ac.jp/ja/guide/about/data/admit.html|오사카대학 자료]] 참고.], 나고야대 545명[* [[https://search.keinet.ne.jp/outline/department_sp/1250|링크]] 참고. 문학부 125명, 교육학부 65명, 법학부 150명, 경제학부 205명. [[http://www.nagoya-u.ac.jp/admission/applicant/accepted/index.html|나고야대학 자료]] 참고.] 수준이다.[* 참고로, [[서울대학교/입시|서울대 문과]](인문대, 사회대, 경영대, 사범대, 자유전공학부) 정원은 1,200명대, [[http://www.aca.ntu.edu.tw/reg/statistics/109recrig.pdf|대만대 문과]](문학원, 사회과학원, 법률학원, 관리학원)는 약 1430명이다.] 이에 반해서, 와세다대의 모집정원은 문과만 무려 '''6,810명'''[* [[https://search.keinet.ne.jp/outline/department_sp/2293|링크]] 참고. 문학부 660명, 교육학부 960명, 국제교양학부 600명, 문화구상학부 860명, 사회과학부 630명, 법학부 740명, 정치경제학부 900명, 상학부 900명, 인간과학부 560명]에 달해서 7개 제국대학 문과 총합을 상회하고, 심지어는 개별 학부가 각각의 제국대학의 규모를 넘어설 정도.[* [[와세다대학]] 이공계는 다 합쳐야 1,700명 수준인데, [[이과]]는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서 사립학교로서 감당하기 어려우니 [[문과]]에만 집중하는 전략이다. 정원 전체에서 문과계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제국대학들은 2,000~3,000명 정원 중 문과는 1/3 이하일 정도로 문과의 비중이 적다.][* [[https://search.keinet.ne.jp/outline/department_sp/2210|게이오기주쿠대학]]도 '''4,625명'''(문학부 800명, 법학부 1,200명, 종합정책학부 425명, 경제학부 1,200명, 상학부 1,000명)에 달하는데, 결국 [[소케이]]의 문과 정원은 모든 구제국대학은 물론이고, 기타 중상위권 국공립 대학들의 문과 정원까지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한 규모라는 것.] 역사적으로도 제국대학 자체가 의학부/이학부/공학부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1945년 패전 당시 기준으로도 [[도쿄대학|도쿄제대]]와 [[교토대학|교토제대]]만이 법학부/경제학부/문학부를 갖추고 있었고, [[도호쿠대학|도호쿠제대]][* 1907년 개교, 1922년 8월 법문학부 설치, 1923년 법문학부 제1회 입학]와 [[규슈대학|규슈제대]][* 1911년 개교, 1924년 9월 법문학부 설치, 1925년 법문학부 제1회 입학], [[경성제국대학|경성제대]][* 1924년 예과 개교, 1926년 법문학부 설치], [[국립타이완대학|다이호쿠제대]][* 1928년 개교 및 문정학부 설치]는 문과계열이라고는 20년대에 설치된 '법문학부'[* [[국립타이완대학|다이호쿠제국대학]]의 경우는 법학과가 없이 '문정학부'였다.] 단 하나에 불과했다. 이외에 [[홋카이도대학|홋카이도제대]]와 [[오사카대학|오사카제대]] 및 [[나고야대학|나고야제대]]는 패전 때까지 법문학부는 커녕 문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즉, 현재 구제국대학의 문과 학부들은 대부분 전후 신제대학이 되면서 [[구제고등학교]]를 흡수하거나[* 제국대학에 흡수된 [[구제고등학교]] 고등과(대학예과)는 주로 교양학부가 되었다. [[홋카이도대학]]은 [[구제고등학교#s-3.3|홋카이도제대 예과]]를 교양학부로 개편하고 법문학부를 신규설치했고, [[오사카대학]]도 구제고등학교인 [[구제고등학교#s-3.4|오사카고등학교]]와 [[구제고등학교#s-3.4|나니와고등학교]]를 흡수해 교양학부로 삼고 법문학부를 신설했다. [[나고야대학]]은 [[구제고등학교#s-3.2|제8고등학교]]를 교양부로 개편했다. 기타 문과 학부가 존재하고 있었던 제국대학들도 마찬가지.] [[구제대학|관공립대학]]을 병합하면서[* [[나고야대학]]은 1948년 나고야경제전문학교와 오카자키고등사범학교를 흡수해 법경학부와 교육학부의 모체로 삼았고, [[오사카대학]]은 2007년 오사카외국어대학을 외국어문학부로 흡수함.]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 비교적 역사가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격화로 중단되기 전 마지막이었던 1943년까지의 [[일본 제국]] [[고등문관시험#s-3.2|고등문관시험 행정과]] 합격 실적을 보면, 도쿄제대와 교토제대가 선두를 달리는 한편, 유일한 문과계열 학부인 문정학부[* 철학과, 사학과, 문학과, 정학과(政學科)로 구성]를 통틀어 한 학년이 10~20명 수준에[* 1930년 제1회 졸업생 14명부터 1943년 제14회 졸업생 32명까지 총 324명으로 연평균 23명의 졸업생 배출. [[https://core.ac.uk/download/pdf/70292658.pdf|논문]] 20페이지 참고.] 법학과는 존재하지 않았던 [[국립타이완대학|다이호쿠제대]]와, 아예 문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홋카이도대학|홋카이도제대]]에서도 [[고등문관시험]] 합격자가 있었다. 또한 사립학교들이 50년 동안 누적된 수치인데 반해서, [[도호쿠대학|도호쿠제대]](1926년 법문학부 1회 졸업), [[규슈대학|규슈제대]](1928년 법문학부 1회 졸업), [[경성제대]](1929년 법문학부 1회 졸업)는 15년 정도 동안의 합격자에 불과한 수치인데다[* 당시 평균수험기간이 졸업 이후 5년 정도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사립대에 비해 학부의 규모 자체가 상당히 작았는데도[* 모집정원 [[도호쿠대학|도호쿠제대]] 법문학부 300명과 [[규슈대학|규슈제대]] 법문학부 200명 중 법학과의 정원은 1/4~1/3에 불과했고, [[경성제대]]의 경우는 법문학부 80명의 절반인 40명뿐이었다.] [[:파일:Capture+_2020-12-18-14-17-47~2.png|상당수의 합격자]]를 배출하여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합격률로 따지면 문과 자체가 없는 제국대학도 최고 [[:파일:Capture+_2021-02-19-01-59-39~2.png|명문 사립대학보다 높은 수치를 보인다.]] 현재 [[일본]] 정부는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와 국채발급과 이자지급에 쓰이는 예산이 계속하여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줄일 수 있는 연구비를 줄이고 있다.[* [[https://mainichi.jp/articles/20171130/ddm/016/040/010000c| 국립대학 연구비 삭감]] [[http://blog.livedoor.jp/universitydata/kakenhi-ranking-h28| 2017년 대학별 연구비 순위]] [[http://www.mext.go.jp/a_menu/shinkou/hojyo/__icsFiles/afieldfile/2016/11/14/1377914_01_02.pdf|교차검증자료]]] 그래서 결국에 제대로 된 학문의 연구·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연구중심대학인 구제국대학에 몰릴 수밖에 없는 고로, 구제국대학의 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일본은 최근 21세기에 들어서 2019년까지 과학 분야 [[노벨상]]을 19개를 배출하여 대략 1년에 한개씩 수상하였으나[* 21세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보면 [[미국]]에 이어 두번째. 참고로 2019년 기준 전부 28명의 일본인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 수상자들은 모두 국립대학 출신이었고, 최종학력은 대부분이 구제국대학이었다. 여담으로 2008년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 [[나고야대학]] 출신이 있는 걸 한국의 기자가 '지방 명문'이라 칭하면서 '''어익후 지잡에서 용났네'''란 뉘앙스로 기사를 작성했는데 이건 그냥 기자의 무식함을 자랑한 케이스이다.[* 그리고 2014년에 반복되었다.[[http://imnews.imbc.com/replay/2014/nwdesk/article/3538355_13490.html|#]] 다만 기사에 나온 [[도쿠시마대학]]은 제국대학이 아닌 점에 유의.] 한국은 유명 대학들은 대부분 수도권 집중이지만 일본은 각 지역별로 제국대학이 분포되어 있는 구도이다. == 상호 관계 == 예전에는 제국대학 학생들은 [[자부심]]이 강해서 자기네 학교 아니면 다 깔보면서도, 위에 나온 7+2에 속하면 한 수 높게 봐주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서로 간에는 당연히 친한 척을 하지만 다 라이벌 관계. 특히 [[도쿄대학]]과 [[교토대학]]간의 라이벌 관계는 옛날부터 꽤 유명하다. 교토대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토론하는 것을 중시하는 학풍을 자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도쿄대를 '암기 위주에 [[교양]]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녀석들'이라고 까기도 하였다. 도쿄대는 교토대를 [[빨갱이]]에다가 전통 좋아하고 자빠지는 비현실적인 놈들... 정도로 생각해 주었다고. 물론 이건 옛날 [[쌍팔년도]] 시절이나 [[학회]]에서의 얘기고 요즘와서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은 당연히 없으며, 오히려 거리가 거리임에도 대학 간의 친목교류도 활발하다. *학생들 차원뿐만 아니라 대학 차원에서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사례들도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현재 [[일본]] [[국립대학]]의 최고 직위(한국의 총장)는 법적으로 '''[[학장]]'''(学長)이라고 부르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오직 이 7곳의 구제국대학만은 특별하게 '''[[총장]]'''(総長)이라고 일관되게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2차대전 이전에는 제국대학만이 유일하게 여러 개의 학부를 가지고 있는 종합대학이었기 때문이다. 패전 후에 여러 국립대학(그 당시에는 관립대학)이 통합되면서 종합대학으로 바뀐 것. 지금도 제국대학들이 대학 최고 직위를 학장이 아닌 총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그 당시 유일한 국립 [[종합대학]]들으로서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대학교]]의 경우에도 이런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해방 후 당시에는, 사범대학은 '사범대학신문', 농과대학은 '농대신문' 등, 자신의 [[단과대학]] 소속을 이름에 넣어서 단과대학 별로 따로 기관지를 발행했다. 하지만, [[1947년]] 7월 1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생회 문화부에서 창간한 [[학보]]의 제호는 그냥 ''''대학신문''''이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의 '대학신문'은 1947년 9월 제3호까지만 발행되었다. [[1948년]] 3월 1일에는 서울대 전체 학보인 ''''서울대학신문''''이 창간되어 1950년 5월까지 발행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제17호를 마지막으로 정지되었다. 그리고 현재 발행되는 '대학신문'은 1952년 2월 4일 [[전시연합대학]] 시절에 탄생한 것이 이어내려온 것이다. 전쟁으로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서울대 학보의 명칭은 그대로 '서울대학신문'이 되었을 것이다.] 유독 [[문리과대학]]이 '대학신문'이라 한 것은 [[구제전문학교]]나 [[구제중학교]]와 통합된 다른 단과대학들(법대, 공대 등)과는 달리, 문리과대학은 온전히 일제시대 '''유일한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의 문학부와 이학부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적통[* 의학부도 의예과를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의과대학이 아닌 문리과대학 소속으로 두었음. 2012년 3월에 자연과학대학에서 의과대학으로 소속변경]에서 기인한 자부심이었던 것이다.[* 사실 제호나 명칭을 보통명사로 퉁치는 명칭부심은 최초, 최고의 위상이 확고한 경우에 종종 드러나기도 한다.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 이름은 그냥 "TIMES"이고 세계 최초인 잉글랜드 축구협회 명칭은 그냥 "FA". 밑에서 서술할 제국대학의 종합적인 동창회인 '[[학사]]'회 역시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가 위치해있던 동숭동과 의학부가 있던 연건동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명칭 역시 [[대학로(서울)#s-2|'대학로']]인 것도 대표적인 예.] 일본 본토의 제국대학들은 지금도 끈끈한 결속력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구제국대학의 종합적인 [[동창회]] 모임인 '''학사회'''가 존재한다. 또한 구제국대학이 모여 매년 '''전국7대학종합체육대회'''라는 [[대학교 정기전]]을 개최하며, 2019년 기준 58회를 맞이했다. 약 30~40종목의 경기를 치러 점수를 합산하여 순위가 매겨지며, 매년 돌아가면서 대회를 주관하게 된다. '''구제전 수학부문(旧帝戦数学部門)'''이라는 것도 있는데, 각 구제국대학들의 캠퍼스에 3문의 [[수학]] 문제가 게시되어 있는 상자를 설치하고 그것을 가장 빨리 푸는 대학이 승리하는 싸움. 문제를 다 풀면 상자 안에 있는 전리품을 참가상으로서 얻을 수 있고, 우승자에게는 수학제전[* 2회차 기준 수학제전 MATH POWER 2018 참가 티켓이 주어졌다.]에 참가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또한, 일본의 학회나 연구, 학술회 등 역시 이들 구제국대학 출신들이 휘어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일:DB3AA82A-5A78-4AA7-AED8-658E4D1653EC.jpg|학부별 출신대학 점유율]]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제국대학 출신들이다.[* 특히 이공계열. 그래도 문과에서는 [[소케이]]와 [[구 3상대]]였던 [[히토쓰바시대학]], [[고베대학]], [[오사카시립대학]]. [[관립대학|문리과대학]]인 [[쓰쿠바대학]], [[히로시마대학]] 등이 끼어있다.]] 물론 자기네끼리도 파벌이 복잡해서 암투와 냉전을 벌이지만, 문제는 사립대학 출신들은 아예 낄 틈도 안 준다는 점.[*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사립대 출신 학자 중 출중한 사람들은 해외로 진출해서 성공하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 데 반해서, 구 제국대 출신들은 일본 내에서만 지지고 볶는 경향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국제학회 등에서 일본사립대 학자들은 왕따시키면서도 [[서울대학교]] 출신이나 [[국립타이완대학]] 출신은 같은 제국대학 출신이라고 은근히 우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국제학회 등에서 한일 학자들이 모이면 토다이, 쿄다이 출신의 나이 많은 할아버지급 일본 교수들은 [[사립대]]는 무시해도, [[국립타이완대학]]이나 [[서울대학교]] 교수들에게 조다이(城大) 드립을 치며 같은 제국대학이라고 은근히 대우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일본의 젊은 교수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대학교]]가 국제화를 추진할 때 해외 대학 중 최초로[* 단과대학 수준까지 포함하면 1987년 7월 15일 서울대 농대가 [[규슈대학]] 농학부와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한 것이 최초] 1995년 10월 [[도쿄대학]]와 학생교류협정(교환학생 협정)을 체결하고[* 이는 교환학생 파견 협정으로, 도쿄대학과의 '학술교류협정' 체결은 1990년. [[:파일:snu60_3_4.png|서울대학교 60년사 (제3부 교육, 제4장 장학 제도와 학생 교류 확대)]] 참고. 현재는 관악캠퍼스에 동경대 사무소를, 동경대 캠퍼스에 서울대 사무소를 두고 있기도 하다. [[http://then.snu.ac.kr/?mid=c&n=74&sa=12|참고 링크]]] 이를 시작으로 교토대 등 [[제국대학]]들과도 협정을 체결하고 협력 단계를 심화시켜왔고, 홋카이도대[* 홋카이도대학 공학부 건물 내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일본 오피스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와는 [[https://hu-snu-jointsymp.com/|학술 심포지엄]]을 매년 번갈아 개최하고 있기도 하는 등, 특히 구제국대학들과는 현재 활발한 학술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뿐만 아니라 [[경성제국대학]]과 함께 또 하나의 제국대학이었던 [[국립타이완대학]]과 서울대의 관계 역시 긴밀한데, 서울대가 본격적으로 국제화를 표방하기 전부터 협력을 이어오다 1998년 6월 24일에는 대학교 차원에서 협력양해각서, 일반 교류와 교환학생 상호파견까지 포함한 최고 수준의 [[:파일:NTU-SNU-agreements.png|전면적 파트너쉽]]을 맺었다. 1990년대~2000년대 초중반까지 상호 교환학생 파견교가 손에 꼽던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舊[[제국대학]]들은 괜찮은 학교들 중 거의 유일한 선택지나 다름없었다. === 동문회 === ||<-2><table width=400><bgcolor=#783b42><tablealign=right><:>{{{#F5F5F5 {{{+1 '''{{{#!html<ruby><rb>学士会</rb><rt>がくしかい</rt></ruby>}}}'''}}}}}}[br]{{{#F5F5F5 '''학사회'''}}}[br]{{{#F5F5F5 '''Gakusikai'''}}}|| ||<-2><:><#FFFFFF>[[파일:1557929133206.png|width=100%]]|| ||<bgcolor=#783b42><:>{{{#F5F5F5 '''설립'''}}}||<bgcolor=#F5F5F5><(>{{{#783b42 1886년 7월}}}|| ||<bgcolor=#783b42><:>{{{#F5F5F5 '''분류'''}}}||<bgcolor=#F5F5F5><(>{{{#783b42 일반사단법인}}}|| ||<bgcolor=#783b42><:>{{{#F5F5F5 '''대표 위치'''}}}||<bgcolor=#F5F5F5><(>{{{#783b42 [[도쿄도]] [[치요다구]] 칸다니시키초}}}|| ||<bgcolor=#783b42><:>{{{#F5F5F5 '''홈페이지'''}}}||<bgcolor=#F5F5F5><(>{{{#783b42 [[http://www.gakushikai.or.jp/|학사회 링크]][br][[https://www.gakushikaikan.co.jp/|학사회관 링크]]}}}|| 구제국대학 출신자들의 종합적인 동문회 모임인 '''학사회'''(学士会)가 존재한다. 이름이 '[[학사]]'회인 이유는 당시 [[학위]]를 부여할 수 있는 교육기관은 원칙적으로 제국대학들에만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삿포로농학교(일본 최초의 학위 부여 기관)만은 예외로 가입이 가능했지만 후에 도호쿠제국대학 농과대학으로 승격되고 곧 [[홋카이도대학|홋카이도제국대학]]으로 개편된다.] 지금도 여전히 학사회 규정에는 [[경성제국대학]]과 [[국립타이완대학|다이호쿠제국대학]] 출신자도 회원 자격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사실 제호나 명칭을 이런 식으로 [[보통명사]]로 퉁치는 명칭부심은 최초, 최고의 위상이 확고한 경우에 종종 드러나기도 한다.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 이름은 그냥 "TIMES"이고 세계 최초인 잉글랜드 축구협회 명칭은 그냥 "FA". 이외에도 세계 최초의 [[영국]]의 [[학회]]는 국적을 적지않는 곳이 많은데, 예를 들어 영국 물리학회는 Physical Society→Institute of Physics이고 화학회는 Chemical Society→Royal Society of Chemistry이다. 위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의 제보가 그냥 '대학신문'인 것도 대표적인 예.] 학사회의 학사회관(学士会館) 건물은 1928년에 건설되었으며, 현재 유형문화재에 지정되어 있다. 내부에는 숙박시설, 레스토랑, 회의실, 연회장, 미용실, 사진관, 결혼식장 등의 시설이 있으며, 일반인들도 이용이 가능하다. 1887년부터 매달 발간하고 있는 학사회회보(學士會会報)[* 會와 会는 구자체 신자체의 차이일 뿐 글자는 같은 '모일 회' 글자이다. '학사회' 부분만 구자체로 쓴 이유는 역사성, 정통성 강조 및 학회 예우 때문이다. 다른 예로 국학원대학(國學院大學)은 모든 한자를 구자체로 쓰고, [[게이오기주쿠대학]]의 '[[게이오]]'가 연호에서 따와서 이 부분은 여전히 구자체를 원칙으로 하는 등 구자체는 이러한 정통성 강조와 예우의 목적으로 여전히 쓰인다.]를 비롯하여, 선학방문, NU7, 메일 매거진 등을 발행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전국7대학종합체육대회에도 협찬하고 있으며, 매년 7천만원 이상의 협찬금을 지출하며 우승 대학에는 학사회 [[트로피]]를 증정하고 있다. 학사회 회원만 발급받을 수 있는 [[신용카드]]도 있다. [[http://blog-imgs-19.fc2.com/a/r/e/areiz6/img185.jpg|사진]] 참조. [[다이너스 클럽]]과 [[시티카드]]로 발급받을 수 있다. [clearfix] === 정기전 === ||<tablealign=right><tablewidth=500><tablebordercolor=#783b42><:>[[파일:nanadaisenn.jpg|width=100%]]|| || 개회식의 모습[* 총장들이 모여서 카가미비라키(鏡開き)를 시연하고 있다. 행사가 탈 없이 진행되기를 기원하는 일본의 전통 풍습 중 하나.] || ||<tablealign=right><tablewidth=500><tablebordercolor=#783b42><:>[[파일:CIMG1700-Yuji-Higuchi.jpg|width=100%]]|| || 칠대전 글라이더 경기 || [[http://www.7univ-nanadaisen.jp|홈페이지 링크]] 일본 본토 7개의 제국대학이 모여 매년 '''전국7대학종합체육대회'''(全国七大学総合体育大会)라는 [[대학교 정기전]]을 실시한다. 줄여서 '''칠대전'''(七大戦)으로 부르기도 하며, 2019년 기준 58회를 맞이했다. 대회는 약 30~40종목의 경기를 치러 점수를 합산하여 순위가 매겨지며, 7개 대학이 매년 돌아가면서 대회를 주관하게 된다.[* 홋카이도 - 규슈 - 오사카 - 교토 - 도호쿠 - 도쿄 - 나고야 순서.] 종목은 일정하진 않지만, 주로 아래와 같은 항목을 두고 겨룬다. *[[아이스하키]] *[[스키]] *[[글라이더|항공]] *[[경마]] *[[중국권법|소림사 권법]] *[[농구]] *[[유도]][* 전국7대학체육대회에서 하는 유도는 오늘날의 강도관 유도와는 규칙이 좀 다른 구석이 있는데, 스스로 누우며 그라운드 공방에 진입하는 행위에 대한 벌칙이 없으며, 스탠딩 선언을 받기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강도관 유도보다는 어려운 편이다. 강도관이 이런 저런 수정을 가하기 전의 초창기 유도의 형태와 가장 흡사하며, 오히려 [[브라질리언 주짓수]]와 더 비슷하다.] *[[요트]] *[[가라테]] *[[검도]] *[[라크로스]] *[[수영]] *[[육상]] *[[야구]] *[[핸드볼]] *[[체조]] *[[배드민턴]] *[[응원단]] *[[하키]] *[[발레]] *[[펜싱]] *[[스모]] *[[궁술|궁도]] *[[수구]] *[[골프]] *[[모터 스포츠|자동차 레이싱]] *[[소프트테니스]] *[[소프트볼]] *[[탁구]] == 조선인 관련 == 모든 제국대학은 원칙적으로 [[구제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혹은 그 제국대학에 부속되어 있는 [[예과]]를 졸업해야 입학이 가능했다. 이 당시의 [[구제고등학교|고등학교(구제)]]는 현재 [[대학]] 교양과정 레벨을 가르치는 고등교육기관으로, [[독일]]계 학교인 [[김나지움]] 혹은 [[영국]]계 학교의 [[식스폼]] 과정에 해당하는 가까운 엘리트 양성 기관이었다.[* [[구제고등학교]]를 일단 합격하면 대학 진학은 쉬웠다. 그래서 언제나 고등학교 입시가 입시생과 부모들의 관심사였고 고등학교 재학생들의 프라이드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고 전해진다. 이런 구제고등학교의 전설적인 [[엘리트주의]]에 관해서는 일본에 많은 문학, 예술작품이 있다. 심지어 [[도쿄도|도쿄]] 소재의 제1고등학교는 그 당시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자체보다 더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실업학교나 [[고등보통학교]][* 예컨대 마산여고는 마산여자상업학교, [[광주일고]]는 광주고등보통학교, [[경복고등학교]]는 경성제2고등보통학교(경성제2고보,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복 중, 고로 분리되었다.) [[고등보통학교]]가 [[구제중학교]](5년제)로 인정된 것은 1938년부터.], 혹은 [[구제고등여학교]]와 [[구제중학교]][* 당시의 중학교는 5년제로서 현재의 중학교+고등학교와 같은 레벨의 학교였다.]까지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반도에 [[예과]]를 갖추고 있는 [[경성제국대학]] 이외의 제국대학에 바로 진학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가지 못한 조선인 학생들은 [[고려대학교|보성전문학교]](現 [[고려대학교]])나 [[연세대학교|연희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와 같은 [[구제전문학교]]를 다녔고, 정 [[대학]]을 가고 싶다면 일본 본토의 [[와세다대학]], [[게이오기주쿠대학]]과 같은 사립 [[구제대학]][* 일본의 학교교육법(1947년)이 시행되기 이전의 제도에 의거하여 설립된 일본제국의 모든 대학을 지칭하는 말.]을 다녔다.[* 일부 사립대학에서는 예과를 별도로 운영을 하면서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학생들을 받아서 가르쳐 본과로 진입시키곤 했다.] 본토의 제국대학에 입학하는 극소수의 엘리트 조선인 학생들은 [[구제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 제국대학 본과에 바로 입학하는 과정을 밟거나[* 이를 방계입학이라고 한다. 이들은 [[구제고등학교]]나 [[예과]] 출신과는 달리, '선과생'이라고 하여 편입생 취급을 받았으며 졸업 자격은 획득할 수 있었지만 학력 평가를 포함한 별도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했으며 고등학교/예과 출신과 같은 대접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 본토의 [[구제고등학교]]를 통해서 제국대학으로 진학하였다고 한다. 대다수가 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조선인에게 입학허가를 비교적 후하게 내주었던 마쓰야마(松山, 송산)고등학교(現 [[에히메대학]])로 진학한 다음 제국대학으로 진학하였다고 한다. [[구제고등학교]]와 제국대학 테크를 밟은 사람들의 예시로는 다음과 같다. 그 외의 출신자는 [[구제고등학교]] 항목 참조. *[[윤일선]] : 제 6대 [[서울대학교/임원|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 [[오카야마대학|제 6고등학교]]와 [[교토대학|교토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유기천]] : 제 9대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 [[고베대학|히메지고등학교]]와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윤종화]] : [[경상남도]] [[창녕]][[군수]] 역임. [[사가대학|사가고등학교]]와 [[규슈대학|규슈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권녕대]] : 우리나라 물리학의 선구자. [[세이조대학|세이조고등학교]]와 [[홋카이도제국대학]] 이학부를 졸업했다. *[[인태식]] : [[관세청장|관재청장]]을 역임. [[에히메대학|마츠야마고등학교]]와 [[도호쿠대학|도호쿠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박준규(1925)|박준규]] : 前 [[국회의장]](3선). [[에히메대학|마쓰야마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에 편입했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 [[구마모토대학|구마모토의과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재학 중 광복을 맞아 귀국하여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로 편입하였다가, 법문학부 정치학과로 전과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한편, 당시 [[조선인]] 출신으로 제국대학 교수까지 한 케이스도 있었다.[* 당시 제국대학의 교원은 주임교수-조교수-강사-조수-부수 순으로 보직이 정해져 있었다.] *[[이태규]](李泰圭)는 [[경성고등보통학교]] 및 [[히로시마대학|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거쳐 [[교토대학|교토제국대학]]의 이학부 화학과를 졸업하였다(이학박사). 1937년에 교토제국대학 조교수[* 도중 [[경성제국대학]]에서 이공학부 화학과 교수로 초청받았으나 교토제국대학에 재직 상태였기 때문에 응할 수 없었다.], 1943년에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태규는 교토제국대학 교수 경력 때문에 해방 이후 [[국대안]] 파동 당시 좌익 계열 학생들에게 친일부역자로 낙인찍혀 숱한 테러를 받기도 했다. * 마쓰야마고등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공학부 화학공학과를 전공한 [[리승기]](李升基)는 교토제국대학 조교수를 지냈다. 리승기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제2대 학장을 지내다가, [[6.25]] 때 [[월북]]하여 자신이 1939년에 개발한 [[비날론]]을 공업화했다. * 임호식(林浩植)은 [[양정고등보통학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수원고등농림학교]]를 거쳐 [[홋카이도대학|홋카이도제국대학]] 농학부를 졸업하고 홋카이도제국대학 조수를 거쳐 1935년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조선인]] 최초의 농학 [[박사]]로도 알려져 있다. * [[윤일선]](尹日善)은 [[서울고등학교|경성중학교]] 및 [[오카야마대학|제6고]]를 거쳐 [[교토대학|교토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부수 및 조수를 거쳐 1928년 조교수에 임명되었다. 한국 최초의 [[병리학]]자이며 [[서울대학교/임원|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 고영순(高永珣)은 [[오사카대학|부립 오사카의과대학]](오사카제국대학의 전신)을 나왔다. 1928년 12월 24일 경성제국대학 조교수로 임명되었으나 이틀 만에 사표를 내고 서울 [[정동]]에서 내과의원을 개업하였다. 임명재[*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 [[홋카이도대학]] 의학박사], 심호섭[* 총독부의학전문학교 졸업,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의학박사. [[경성의학전문학교]] 및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초대 학장, [[대한의사협회]] 초대 회장 역임.]과 함께 당대 3대 내과 의사로 손꼽혔다. * [[김종원(1900)|김종원]](金鍾遠)은 [[에히메대학|마쓰야마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하였다. 그 후 [[규슈대학|규슈제국대학]] 공학부 지질학교실에서 [[연구생]] 생활을 하다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강사를 거쳐 1945년 7월 13일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곧 해방을 맞게 된다. 이 당시 대학생의 대부분은 남학생이었으나, 이 코스를 밟은 여학생도 있었다. [[이회창]] 前 [[자유선진당]] 대표위원의 막내이모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과학자]]인 [[김삼순]]이 그러한데, 김삼순은 도쿄고등여자사범학교(現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구제전문학교]] 과정. 단, 당시 [[고등사범학교]]는 [[구제전문학교]] 중에서도 우월한 지위였다.]를 졸업한 다음 [[홋카이도대학|홋카이도제국대학]]에서 이학부를 졸업하였다. 민족시인으로 유명한 [[윤동주]]도 [[연세대학교|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 제국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릿쿄대학]]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후에 [[도시샤대학]]으로 편입.] 특히 동갑내기 사촌이었던 [[송몽규]]가 [[교토대학|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하여 친척들의 비교대상이 되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영화 [[동주(영화)|동주]]에서도 이런 상황이 묘사된다. 함께 교토제국대학 입학시험을 치렀는데 송몽규만 합격하자, 윤동주가 태연한 척 하려고 애쓰며 송몽규를 축하해주고 송몽규도 난처해한다. 그리고 그 소식을 편지로 접한 윤동주의 아버지도 실망한다.] == 기타 == * [[일본제국]] 시절, 제국대학 출신은 같은 일을 해도 봉급을 더 받는 등의 우선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고등문관시험]] 준비를 위해 [[경기도청]] 고원으로 있었던 [[경성제국대학]] 졸업생 김영재는 65원의 월급을 받았다. [[구제중학교]] 졸업자는 30원, [[구제전문학교]] 졸업자는 40원, 일본 사립대학의 졸업자는 45원의 임금을 받은 데 반해 제국대학 졸업생은 65원의 최고 수준 봉급이 주어졌던 것이다.[* 출처 : 김두식, 「법률가들」, 창비, 2018. p.49] 또한, 전쟁 전 [[미쓰이 그룹|미쓰이]], [[스미토모 그룹|스미토모]], [[미쓰비시 그룹|미쓰비시]] 등 재벌계 [[대기업]]의 평균 초봉은 [[제국대학]]과 [[구 3상대|상대]]는 80엔, [[고등상업학교]]나 [[소케이]]는 70엔, 그외 사립대학은 60엔이었다고 한다.[* 출처: 早稲田と慶応 名門私大の栄光と影 - 橘木 俊詔 (著)] >(제국대학의) 문학부 졸업자에게는 무시험검정에 의해 소학교에서 대학까지 어느 곳에서든 교원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줬다. 민간기업에서도 제국대학 출신자에게는 동일한 노동을 하는 사립대학 출신자보다 봉급을 더 주는 것이 관례였다. 국가는 제국대학 출신자에게 각종 특혜를 주고, 제국대학 출신자는 국가의 충직한 신민이 되는 완벽한 공생관계였다. >---- >- [[신동아]], 2005년 12월호 <경성제국대학 입시 대소동> 中. >메이지 말기의 관립/사립학교 문과 졸업생의 초봉 격차를 "제국대학 100엔에 대해서 히토츠바시[* 당시 [[고등상업학교|도쿄고등상업학교]]] 60~70엔, 게이오 50~60엔, 와세다는 30~40엔을 동등한 것"으로 본다. >---- > 오자키 모리테루[* 尾崎盛光. 전후 도쿄대학 문학부 사무장을 지냈다.] 일본취직사(日本就職史) 中. >사립대학이 정식 [[구제대학]]으로 승격한 [[다이쇼 시대]] 이후에도 엄연한 급여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다이쇼 버블 시대의 닛폰유센(日本郵船)에서는 제국대학, 상과대학(히토쓰바시대학) 졸업생의 초봉은 80엔, 와세다·게이오와 지방[[고등상업학교]]가 60~65엔, 소케이를 제외한 사립대학이 50~55엔이었다. 대체로 제국대학-[[관립대학|관립상대]]-[[소케이]]-기타사립대학이라는 순서로 평가받으면서 사립대학 출신은 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차별 대우를 감수해야 했다. >---- >- 주모쿠 고사이(寿木孝哉) 취직전술(就職戦術) 中.[* 웹사이트 출서 [[https://kangaeruhito.jp/article/8635|反東大の思想史]] 참고.] * 일본제국 시절 [[만주국]]의 최고학부인 [[건국대학]]도 제국대학에 (어디까지나)버금가는 수준이라고 보았다고 한다.[* 만주 건국대학 출신인 [[강영훈]]은 당시 경성제국대학 예과와 건국대학에 동시에 합격했으나 만주 건대에 진학했다고 증언한 바가 있다.] 당연히 [[네임밸류]]는 제국대학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학비 [[무료]]에 관료 임용까지 보장한다는 특전, 그리고 징병 징용대상에서 면제된다는 점 때문에 일본과 그 식민지 지역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진학을 희망할 정도였다.[* 건국대학이 설립된 1930년대 말의 동아시아 지역의 엄혹한 경제 상황을 보면 건국대학의 인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군수전시총동원 체제로 개박살난 민생 상황에서 네임밸류를 얻고자 하는 것은 당시 용어로 유한계급이 아닌 이상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실제로 당시 대학 학비는 월간 수입이 40원 이상인 가정(신입 은행원 월급이 25~30원하던 시절)에서나 어느 정도 부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학비도 입학만하면 [[무료]]에 졸업하면 [[취직]]이 보장된 대학이니 인기가 상당했던 것이다. 제국대학의 경우도 대학생들 중 가장 늦게까지 징병이 면제되긴 했으나 전쟁 말기로 가면 문학부-의학부 순서로 학병 징집되었다. 그러나 군수와 직결된 분야인 공학부는 끝까지 징병이 이뤄지지 않아서 공학부 인기가 의학부 보다도 높았다고.] 하지만 건국대학이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최고학부이다 보니. 일본제국 본토에선 그저 깨갱해야 했다. 입학도 제국대학과 달리 중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학할 수 있었다.[* 전기/후기 과정으로 나누어져 전기가 대학예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고 후기가 본과 과정을 담당.] 그래도 그나마 전쟁 당시에는 위세를 부릴 수 있었으나, [[광복]] 이후에는 제국대학 출신들 특히 숫적으로 가장 많았던 [[경성제국대학|경성제대]] [[파벌]]에 밀려 지내야 했다. * 1900년대 초반에 현재의 [[가나자와대학]]을 제국대학으로 승격해달라는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가칭은 호쿠리쿠제국대학(北陸帝国大学). 무산된 계획이지만 이를 두고 [[관립대학|관립의과대학]]인 [[니가타대학|니가타의과대학]]의 전신인 니가타의전을 보유하고 있던 [[니가타현]]과 [[이시카와현]]의 김치국 들이키기 기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그러나 당시 분위기는 [[구제고등학교]]인 제4고가 소재해있던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쪽으로 기울어져있었다고 한다. [[호쿠리쿠]] 지방 외에도 제국대학 설치되지 않았던 [[주고쿠]] [[시코쿠]] 지방에 제국대학을 설립해달라는 청원이 제국의회로 제기되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이 후보자를 두고도 유서깊은 [[관립대학|오카야마의과대학]]의 전신인 [[오카야마대학|오카야마의학전문학교]]를 둔 [[오카야마현]]과 주고쿠시고쿠 지방의 중심지 지위를 갖고 있으면서 [[관립대학|히로시마문리과대학]]의 전신인 [[고등사범학교|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가 소재한 [[히로시마현]] 사이에서 쟁탈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어쨌든 무산. * [[2차대전]] 패전 후 기존의 학제를 개편하는 과정에 미군정 [[GHQ]] CIE[* 문교부에 해당]는 1947년 기존 내지의 제국대학 7곳에 더해 [[호쿠리쿠]], [[주고쿠]], [[시코쿠]] 등지에 3곳을 신설한 '''국립종합대학''' 10개교만 국립(관립)으로 두고, 나머지 [[관립대학]] 및 관립[[구제전문학교|전문학교]] 등 고등교육기관은 전부 지방 [[도도부현]] 소관으로 이관하여 [[공립학교]]로 삼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가나자와대학]] 50주년 [[http://muse.w3.kanazawa-u.ac.jp/50th/sousetsu/iinkai/index.html|기념페이지]] 참조. * 전후에는 이 10개 국립종합대학안과 별개로 여자교육의 진흥을 위해 수도권과 [[간사이]] 지방에 여자제국대학을 설립하는 구상이 제시된 적도 있다고 한다. [[고등사범학교|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를 여자제국대학으로 격상시키는 방안이 검토되었으며, 역시 여자고등사범학교로 긴키지방의 유력한 유일 후보였던 [[고등사범학교|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에서는 이에 호응해 나라여자제국대학 승격 운동을 전개했으나 역시 실패. 제국대학으로 승격되지 못한 두 여자고등사범학교는 각각 [[오차노미즈여자대학]]과 [[나라여자대학]]이라는 두 국립 여대로 승격하였다. * 구제국대학 졸업자는 [[일본 고도인재 외국인 대상 포인트 우대제도]]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문부과학성]]이 추진하는 [[슈퍼글로벌대학]]에서 TOP형에 선발된 대학은 10점 가산점을 받을 수 있고, 3대 세계 대학 랭킹으로 알려진 [[ARWU]], [[QS 세계 대학 랭킹]], [[THE 세계 대학 랭킹]] 중 2개 이상에서 300위 이내 랭크된 대학 출신도 10점의 가산점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구제국대학들은 두 조건 모두 해당된다. * [[제정 러시아]]에도 [[https://ru.wikipedia.org/wiki/%D0%A3%D0%BD%D0%B8%D0%B2%D0%B5%D1%80%D1%81%D0%B8%D1%82%D0%B5%D1%82%D1%8B_%D0%A0%D0%BE%D1%81%D1%81%D0%B8%D0%B9%D1%81%D0%BA%D0%BE%D0%B9_%D0%B8%D0%BC%D0%BF%D0%B5%D1%80%D0%B8%D0%B8|제국대학]]이 있었다. 1917년 당시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모스크바]](1755년), [[타르투|유리예프]](1799년), ~~[[빌뉴스]](1803년 개교, 1831년 폐교)~~, [[하리코프]](1833년), [[카잔(러시아)|카잔]](180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상트페테르부르크]](1819년), 알렉산드롭스키(1827년 [[헬싱키]]), 성 블라디미르(1834년 [[키예프]]), 노보로시스키(1865년 [[오데사]]), [[바르샤바]](1869년)[* 참고로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은 1816년을 개교연도로 잡고 있는데, 이는 제정 러시아의 괴뢰국인 [[폴란드 입헌왕국]]의 왕립대학으로서의 창건 년도다. 폴란드가 완전히 러시아 제국 직할지가 되면서 제국대학으로 승격한 것.], [[톰스크]](1878년), 니콜라옙스크(1909년 [[사라토프]]) 11개교가 있었다. (()안은 개교연도)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제국대학 출신자는 [[블라디미르 레닌]]일 것이다(카잔제국대학 중퇴). * 하나 합격하기도 어려운 제국대학을 무려 4개나 합격한 굇수가 있다. 이 사람의 정체는 일본의 유명 학원강사였던 야스모토 하지메. [[https://news.yahoo.co.jp/articles/d31a6917127dfdc82d890b1a5b2e05ca61cd6e7d|#]] * [[https://www.youtube.com/watch?v=-PetAXvJ_P8|요런 영상도 있다.]] 일본 국내의 7개 구제대를 나름 멋지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 대학들을 노리는 일본의 수험생들의 심정도 나타내고 있다. * 관련 문헌 제국대학 - 아마노 이쿠오 저 / 박광현·정종현 역. 산처럼. 2017. * 관련 링크 * [[구제대학]] * [[관립대학]] * [[일본의 대학군]] * [[대학 서열화/외국/일본]] [[분류:일본 제국]][[분류:일본의 구제교육기관]][[분류:일본의 대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