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다른 뜻, rd1=찐씨 정권)] [include(틀:타이완섬의 역사)] ||||<tablealign=right><:> {{{+1 '''동녕국'''}}}[br]{{{+1 '''東寧國'''}}}[br]''Tang-lîng-kok''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Flag_of_Ming_Cheng.svg.png|width=150]]|| ||||<:>국기[*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94%A8%EC%99%95%EA%B5%AD#/media/File:Flag_of_Ming_Cheng.svg|출처:위키미디어 공용]]]|| ||||<bgcolor=#ffffff><:>[[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60px-Kingdom_of_Tungning.svg.png]] || ||||<:> 정씨 왕국 지도[*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94%A8%EC%99%95%EA%B5%AD#/media/File:Kingdom_of_Tungning.svg|출처:위키미디어 공용]]]|| ||<:> 위치 || [[타이완 섬]] || ||<:> 수도 || [[타이난|승천부]](承天府) || ||<:> 정치체제 || 군주제 || ||<:> [[국성]] || [[정(성씨)#s-2|정]](鄭) || ||<:> 역대 국왕 || 1대 [[정성공]][br]2대 [[정경]][br]3대 [[정극상]] || ||<:> 언어 || [[대만어|대만 민남어]] || ||<:> 문자 || [[한자]] || ||<:> 종교 || [[유교]], [[도교]][* 북극성의 신인 현천상제(玄天上帝)를 대만의 수호신으로 숭배], [[대승 불교]] || ||<:> 종족 || [[한족]]([[본성인]]) || ||<:> 성립 이전 || [[네덜란드 제국|네덜란드령 포르모사]] || ||<:> 멸망 이후 || [[청나라 치하 타이완 섬]] || ||<:> 현재 국가 || [[대만]]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어]]: 東寧國 (Dōngníng guó) [[대만어|대만 민남어]]: 東寧國 (Tang-lîng-kok) [[정성공]]이 [[1661년]] [[네덜란드인]]을 몰아내고 [[타이완 섬]]을 통치하게 된 시기를 말한다. == 설명 == '''정씨왕국(鄭氏王國)''', '''동녕왕국'''(東寧王國), '''연평(延平)왕국''', '''[[명정(정씨 왕국)|명정]]시기'''(明鄭時期)라고도 한다. [[조선]]에서는 대번국(大樊國)[* '대번'은 '타이완'의 음차 중 하나로, [[대만어]]로는 Tāi-hoân이라고 읽는다. 타이완은 중국어 유래 명칭이 아니어서 [[청나라]] 통치 이전에는 여러 한자 가차 표기가 보이는데, 그 중 하나이다. 오늘날 타이완을 한자로 표기할 때 쓰는 臺灣은 대만어로 Tâi-oân이라 읽는다.]이라고 [[현종실록]]에 언급되었다. 1661년부터 1683년까지 존속하였다. 정성공은 평생을 [[명나라]] 부흥운동에 바쳤고 명나라의 옛 도읍 난징을 거의 되찾을 뻔 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 후 교두보 확보를 위해 당시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대만 섬]]을 노렸다. 결국 네덜란드령 대만을 공격해 [[타이난]][* 프로빈티아 요새, 제일란디아 요새]을 점령하고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지원군도 격파하여 대만 남서부를 차지했다. 정성공이 죽고 아들 정경이 즉위한 뒤에도 반청복명 정책은 유지되었다. [[삼번의 난]] 때도 군대를 보내 [[푸젠 성]] 일부를 장악하기도 했다. 3대 정극상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중국 대륙을 완전히 평정한 [[청나라]]의 침략으로 1683년에 멸망했다. 그나마 청나라에서 정성공과 그 후예들의 명예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항복 후 정씨 왕족들은 청나라 본토에서 그럭저럭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이후 타이완 섬의 역사는 [[청나라 치하 타이완 섬]] 문서 참고. == 외교 == === 청나라 === 건국 목적 자체가 반청복명인 만큼 청나라와는 내내 적대하였다. 그러나 반청복명 의지가 비교적 확고했던 정성공이 죽은 이후 그의 자리를 이어받은 [[정경(정씨 왕국)|정경]]은 [[청나라]]에서 사신이 파견되어 복종, [[명나라]]의 옥새, 변발 등을 요구하면서 사면과 함께 높은 벼슬을 내리겠다고 하자 그 조건으로 독립국으로서의 조공국 지위[* 이를테면 당시 조선과 같은 국제적 지위.] 설정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 [[조선]] === 당시 조선은 [[현종(조선)|현종]]과 [[숙종(조선)|숙종]]이 즉위하고 있던 시기였으며, 대만 섬에 있는 정씨 왕국을 [[대번국]](大樊國)이라고 표기하는 등 그 존재는 알고 있었다. [[삼번의 난]] 당시에 북벌을 위해서 정씨 왕국과 손을 잡아야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기도 하고 청나라가 [[삼번의 난]]을 결국 진압하고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바람에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현종 11년(1670년)에 중국 옷, 오랑캐 옷, 일본인 옷을 입고 있는 무리들 90여 명이 [[제주도]]에 표류한 바 있는데 이들이 당시 제주목사 노정에게 정씨 왕국과 중국 남부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들은 청나라가 중국 남부를 석권하자 만주족의 탄압을 피해 [[나가사키]]로 도망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했으며, 이에 제주목사는 그들을 나가사키로 보냈다고 한다.(출처: [[현종실록]], [[현종개수실록]]) 그러나 중국이나 대만 쪽 학자들 중에서는 조선이 이들을 청나라에 송환하였고 결국 청나라에 살해당했다는 주장도 있는 듯하다. === [[일본]] === [[에도 막부]]와는 활발하게 교역을 전개했다. 일본에 [[쌀]], [[사슴]]의 [[가죽]], [[설탕]] 등을 수출하고 [[은]], [[구리(원소)|구리]], [[납]], [[면포]] 등을 수입하는 교역 관계가 멸망 당시까지 지속되었다. === 서양 === 정씨 왕국 자체가 타이완 섬의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세운 국가라 대체로 서양 국가와의 사이는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 그의 공격으로 거점을 뺏긴 네덜란드는 말할 것도 없고, 근처 [[필리핀]]을 영유하고 있었던 [[스페인]]과도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다. 한편 [[영국 동인도 회사]]와는 1675년에 통상 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 의의 == 외세(네덜란드)를 물리치고 [[대만 섬]]에 건국된 첫 번째 독립국 혹은 첫 [[한족]] 정권이라 할 수 있기에 현대 [[대만인]]들이 중요하게 배우는 시대이다. 정씨 왕국은 [[다두 왕국]] 등 원주민들의 부족국가보다 좀 더 체계적인 정부를 세웠고, [[영국]]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써 통상조약을 체결하는 등 독립국으로써의 입지를 다졌다. 한편 본토 수복이 기치인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 대만의 [[중화민국]]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은 정권이었다. == 역대 군주 == ||<bgcolor=#DCDCDC><:> 대수 ||<bgcolor=#DCDCDC><:> [[시호]] ||<bgcolor=#DCDCDC><:> [[휘]] ||<bgcolor=#DCDCDC><:> [[왕비]] ||<bgcolor=#DCDCDC><:> [[부친]] ||<bgcolor=#DCDCDC><:> 재위 기간 || || 1대 || 조무왕(潮武王) || [[정성공]](鄭成功) || 동씨(董氏) || [[정지룡]](鄭芝龍) || 1655년 ~ 1662년 || || 2대 || 조문왕(潮文王) || [[정경(정씨 왕국)|정경]](鄭經) || 당씨(唐氏) || 정성공(鄭成功) || 1662년 ~ 1681년 || ||<:> 감국 ||<:> - || [[정극장]](鄭克臧) || 진씨(陳氏) || 정경(鄭經) || 1681년 || || 3대 ||<:> - || [[정극상]](鄭克塽) || 풍씨(馮氏) || 정경(鄭經) || 1681년 ~ 1683년 || [[분류:정씨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