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www.cha.go.kr/2031708.jpg|width=100%]]|| |||| 정선이 1751년에 그린 [[인왕제색도]]. || || '''성명''' ||<bgcolor=white> 정선(鄭歚) || || '''본관''' ||<bgcolor=white> [[광주 정씨]] || || '''자''' ||<bgcolor=white> 원백(元伯) || || '''호''' ||<bgcolor=white> 겸재(謙齋)·겸초(兼艸)·난곡(蘭谷) || || '''출생''' ||<bgcolor=white> [[1676년]] [[조선]] [[한성부]] [[청운동|백운동]] || || '''사망''' ||<bgcolor=white> [[1759년]] || [목차] == 개요 == [[조선]] 후기의 [[화가]]. 호는 겸재, 본관은 [[광주광역시|광주]].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출생하였다. == 특징 == 우리 나라 고유의 [[진경 산수화]] 화풍을 창시했고 뛰어난 진경 산수화로서 명성을 날린 [[노론]] 계열 화가이다. 진경 산수화란 실제 경치를 화폭에 옮기는 화풍이다. 이전의 산수화는 전통적으로 [[중국]]과 사대 관계 영향으로 대개 중국적 도상, 중국 고사에 나오는 인물, 장소, 실제 중국 명승지 등을 상상해서 그렸다.[* 상상해서 그린 이유는 단순히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 시험이나 장사 등의 이유로 이동하려고 해도 공권력이 빈약했기에 [[맹수]]나 [[도적]]들을 쉽사리 볼 수 있었던데다가 당시에는 비행기, 자동차, 철도 등 고속 [[교통]] 수단이 없던 때였고 말과 마차를 타면 그나마 빨리 이동을 할 수 있었기는 했지만 말 값이 싸지 않았기 때문에 대다수가 이용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컸다. 이렇게 [[국내]] 여행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는데 하물며 [[외국]]으로 나갔다오면 아무리 필담을 할 수 있다해도 [[문맹]]률이 높던 시절인지라 아무나 필담으로 소통하지는 못했던데다가 비용은 비용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들었으니 위험성은 훨씬 컸다.] 물론 이전 세대에 [[한반도]]를 소재로 한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선의 그림처럼 주류로 내세워지지 못했으며 정선은 하나의 화단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정선의 진경 산수화는 '우리 강산, 우리 것도 충분히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특징으로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다 풍경을 실감나게 [[과장]]시킨다는 점에서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 여담 == 정선은 [[여행]]을 즐겼기에 [[금강산]] 등의 [[전국]]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인왕제색도>, <금강전도>가 특히 유명하다. 작품은 대부분 [[간송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간송미술관은 [[DDP]]에서 진경 산수화 소장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정선 생가의 터가 [[경복고등학교]] 안에 위치하고 있다. [[영조]]의 [[왕자]] 시절 그림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덕으로 만년에 [[명예]]직이기는 하지만 종2품까지 [[승진]]하게 되는데 이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서도 거의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정선은 [[관직]] 생활을 음직으로 시작했기 때문인데 음직으로 관직으로 올라온 자는 과거 시험을 통과한 자들에 비해 올라갈 수 있는 품계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음서]]나 [[과거 제도]] 항목을 참조.] * 관련 항목 * [[인왕제색도]] * [[금강전도]] * [[정선필 육상묘도]] * [[정선필 청풍계지각]] * [[정선필 풍악도첩]]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정선, version=49)] [[분류:조선의 화가]][[분류:광주 정씨]][[분류:1676년 출생]][[분류:1759년 사망]][[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