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왕릉)] 靖陵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강남구)|삼성동]]에 있는 조선 11대 왕 [[중종(조선)|중종]]이 안장된 [[왕릉(무덤)|왕릉]]. 선대왕이자 부왕이었던 조선 9대 왕 [[성종(조선)|성종]]의 [[선릉]]과 한 울타리에 있기 때문에 '''선정릉(宣靖陵)'''이라고도 불리우며 '''중종왕릉'''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강남이 아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서삼릉|있었던 왕릉]]이었으나 [[문정왕후]]가 안장지가 지리설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선왕이자 부왕이 안장된 성종의 능인 선릉의 한 울타리에 안장되어 정릉(靖陵)으로 봉해졌다. 선릉과는 달리 중종 단독으로 안장된 능이었기 때문에 왕후들의 능은 모두 다른 지역에 안장되었다. 첫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는 폐위되었기 때문에 [[경기도]] [[양주시]] 장흥의 온릉, 둘째 왕비로 [[인종(조선)|인종]]을 낳고 사망한 [[장경왕후]] 윤씨는 [[고양시]] [[서삼릉]] 경내의 희릉, 마지막 왕비인 [[문정왕후]] 윤씨는 서울 [[노원구]]의 [[태릉(문정왕후)|태릉]]에 묻혔다.[* 아들 명종이 승하한 후 태릉 왼편의 [[강릉(조선 명종)|강릉]]에 묻혔다. [[태릉선수촌|인지도에서도 어마마마보다 못한 신세다. 지못미...]] ~~죽어서도 수렴청정~~] 이후 [[임진왜란]] 때 [[선정릉 도굴사건]]으로 중종의 유골이 빼돌려졌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재궁이 소실되기도 하였다가 복원되었다. [[기유약조]]를 통해서 일본과 외교 관계를 복원할 때 조선 측은 조건으로 이 정릉과 선릉을 파헤친 범인 및 유골의 반환을 주장했다.일본의 외교를 맡은 [[쓰시마 섬|쓰시마]] 측에서 이를 수락하고 도굴범과 유골들을 보냈지만, 조사 결과 송환된 일본인들은 도굴과는 무관한 잡범들이었고 유골 또한 생전에 중종의 외모를 본 궁녀들의 진술을 통해 중종의 유골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되돌리는 건 불가능해서 조선 측도 일본인들을 도굴범으로 몰아서 처형하고 유골의 장례를 치뤄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후 [[서울/강남|서울 강남]]의 도시화 및 개발화가 불어왔지만 선릉과 함께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영향 때문에 개발화를 면하게 되어서 현재의 소나무숲이 우거진 곳으로 남게 되었다. 참고로 서울 [[성북구]]에 있는 [[정릉(서울 성북)|정릉(貞陵)]]은 이와는 다른 능으로 [[태조(조선)|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가 안장된 곳이다. 상세내용은 [[정릉(서울 성북)]]으로. [[분류:조선왕릉]][[분류:서울특별시의 무덤]][[분류:강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