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사성어]], [[고사성어/목록]] ||||||||||||||<:><width=400><table bordercolor=black><bgcolor=black>'''[[고사성어|{{{#white 고사성어}}}]]'''|| ||<:><width=100>{{{+5 '''貞'''}}} ||||<:><width=100>{{{+5 '''觀'''}}} ||||<:><width=100>{{{+5 '''之'''}}} ||||<:><width=100>{{{+5 '''治'''}}} || ||<:>곧을 정 ||||<:>볼 관 ||||<:>갈 지 ||||<:>다스릴 치 || [목차] == 개요 == [[태종(당)|당태종]] 재위 시기 [[태평성대]]를 일컫는 성어. 연호가 정관(貞觀)이었던 데서 유래한다. 직역하면 정관의 치세. == 상세 == [[당나라]] 2대 황제 태종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키며 즉위한 후 [[양제(수)|수양제]]의 학정과 수당 교체기의 혼란을 빠르게 수습하고, [[방현령]]과 [[두여회]], [[위징]], [[이정(당나라)|이정]], [[이세적]] 등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해 [[태평성대]]를 열게 되었다. 군사적으로도 장안을 위협하던 동[[돌궐]]을 멸하였고 [[토번]]과는 결혼 동맹을 맺어 국경을 평안케 하였다. 이러한 태종의 정치는 [[정관정요]]라는 책으로 정리되어 후세 [[현종(당)|당현종]], [[건륭제]] 등 황제들과 [[고려]], [[조선]]의 국왕과 [[일본]] [[에도 시대]]의 쇼군들과 [[다이묘]] 그리고 역대 [[천황]]들도 즐겨 읽었다고 한다. 다만 고려의 [[공양왕]]이 [[정몽주]]에게 정관정요를 강독하게 했는데, 이때 [[윤소종]]이 이를 말리면서 "중흥 군주로서 [[삼황오제|요순]]과 삼대[* 고대 중국의 세 왕조. [[하나라|하]], [[상나라|은]], [[주나라|주]] 왕조를 이른다.]를 모범으로 삼아야지 당 태종은 따를 것이 못 된다"고 디스한 바 있다. 정관정요 대신《대학연의》(大學衍義)를 권했다고 하는데, 당태종을 [[춘추]][[의리]]로 비판했던 [[성리학]]자 윤소종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어쨌든 태종이 이룩한 성장세는 그의 아들인 [[고종(당)|당고종]] 때까지 이어져 [[서돌궐]], [[백제]], [[고구려]]를 멸하고 서역을 평정하기에 이른다. 다만 말년에 가선 당태종도 초심을 잃고 해이해져 신하들의 간언도 귀찮아하는 등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개원지치]]를 연 [[현종(당)|당현종]]도 비슷한 테크를 탄거 보면 집안 내력일지도.(...) [각주] [[분류:고사성어]][[분류:수당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