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021년 출생]][[분류:1069년 사망]] [include(틀:고려의 제후왕)] ||||<:><#191970> '''{{{#white 개성 왕씨 평양공파 시조[br]{{{+1 왕기}}}}}}'''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191970><#191970> '''{{{#white 시호}}}''' ||<white>'''정간왕(靖簡王)''' || ||<:><#191970> '''{{{#white 작위}}}''' ||<white>개성국공(開城國公)[*1031년][br]평양공(平壤公) || ||<:><#191970> '''{{{#white 본관}}}''' ||<white>개성 왕씨 평양공파 || ||<:><#191970> '''{{{#white 이름}}}''' ||<white>기(基) || ||<:><#191970> '''{{{#white 아들}}}''' ||<white>왕진, 왕거, [[낙랑공|왕영]](王瑛) || ||<:><#191970> '''{{{#white 딸}}}''' ||<white>정의왕후 || ||<:><#191970> '''{{{#white 부왕}}}''' ||<white>[[현종(고려)|현종 원문대왕]] || ||<:><#191970> '''{{{#white 모후}}}''' ||<white>[[원혜태후]](元惠太后) || ||<:><#191970> '''{{{#white 생몰연도}}}''' ||<white>1021년 8월 ~ 1069년 11월 || [목차] == 소개 == [[고려]] 왕조 중기의 왕족. 필영대왕[* 징효대사탑비 기록. 추가로 시호 미상의 추증 대왕이 한명 더 있다.], 문원대왕, [[조선후(고려)|조선국 양헌왕]]과 같이 사후 제후왕으로 추증 되었다. 휘는 기(基). 고려사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현종의 넷째 아들로 아버지에 버금가는 명군이었던 [[문종(고려)|문종]]의 동복 동생이다. 또한 [[순종(고려)|순종]]의 1비 정의왕후의 아버지. == 역임 관작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191970><#191970> '''{{{#white 정간왕의 생전 역임 관작}}}''' || ||<:><#191970> '''{{{#white 공신호}}}''' ||<(><white> 홍인숭효광덕공신(弘引崇孝光德功臣)[*1031년 弘引崇孝光德功臣守太尉兼尙書令開城國公] || ||<:><#191970> '''{{{#white 수직}}}''' ||<(><white> 수태위(守太尉)[*1031년][br]수태보(守太保)[br]수태사(守太師)[*1049년 守太師兼內史令] || ||<:><#191970> '''{{{#white 직위}}}''' ||<(><white> 상서령(尙書令)[*1031년][br]내사령(內史令)[*1049년][br]중서령(中書令) || ||<:><#191970> '''{{{#white 작위}}}''' ||<white>개성국공(開城國公)[*1031년][br]평양공(平壤公) || == 생애 == 현종 때 받은 작위는 개성국공(開城國公). 문종 초에 평양공(平壤公)으로 바뀌었다. 평양공이 사망한지 2년이 지난 1071년, [[문종(고려)#s-4.1|그를 옹립하려는 모의가 발각되어서 주모자들이 처벌받는 일이 벌어진다]].[* 만약 실행되었다면 실패한 [[계유정난]]이 되었을 것이다.] 쿠데타 모의가 흐지부지된지 2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들킨 것. 그의 장남 왕진(王璡)이 이 일로 평양공을 대신하여 유배를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나름 명망이 있었는지, 사후 정간왕(靖簡王)으로 추봉되었다. 추봉된 시기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데, 문종 때 추봉되었다는 설과 순종이 추봉했다는 설이 있다. == 후손 == 그의 후손들은 알게 모르게 사료에 많이 등장하며, 고려사 열전 종실편에서는 다른 항목의 '''거의 20배 분량'''이다. [[삼별초]]에게 왕으로 추대된 [[승화후]] 왕온은 그의 7대손이며, 고종~원종 때에 등장하는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 왕준이 포로로 몽골에 끌려간 이후 왕준의 일가는 13세기 초 [[홍다구]]의 일가와 함께 요동을 관할하며 요동의 고려인들을 관리하였고, 홍씨 일가와 함께 요동행성의 고위관직을 맡았다.]은 승화후의 동생이다. 또한 충선왕에 의해 대리통치를 하게 되는 [[제안대군#s-2]], [[희종(고려)|희종]]의 왕비 [[성평왕후]], [[강종(고려)|강종]]의 2비 [[원덕태후]], [[원종(고려)|원종]]의 2비 경창궁주,[* 세 사람 다 남편과 성씨가 겹치는 걸 피하려고 그랬는지 왕씨가 아닌 다른 성씨를 썼다.] [[공민왕]]의 3비 익비(益妃)[* 익비는 공민왕과 혼인한 후 한씨 성을 받았다.]도 그의 후손이다. [[개성 왕씨]]의 분파 중 하나인 평양공파는 그에게서 파생된 것인데, 사실 그의 세 아들 중 후손을 둔 것은 막내아들 [[낙랑공|낙랑공 왕영]]뿐이다. 차남 왕거(王琚)는 요절했다고 한다. 왕영은 문종과 2비 [[인예태후]]의 차녀 보령궁주[* [[순종(고려)|순종]], [[선종(고려)|선종]], [[숙종(고려)|숙종]], [[의천]]의 동복 남매. 생년이 기록에 없어 그녀가 이 4명과 정확히 어떤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다.]와 혼인해 아들 2명을 뒀다. 위에 언급된 정간왕의 후손들은 모두 왕영의 후손들이며 왕영부터 그의 8세손인 왕숙까지 '''무려 8연속으로''' 국왕의 부마가 되는 영예를 누린다. 보통 왕족의 경우 자신의 조상 중 마지막으로 국왕을 한 사람의 5대손부터는 종친으로 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습망체에 가까운 지위가 아니었을까 추정될 정도. [[분류:고려의 왕자]] [[분류:고려의 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