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전용성.jpg]] * 田溶星 * [[1911년]] ~ [[2007년]]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법조인]], [[의사]]. 의사 출신 법관 1호라는 기록을 남겼다. == 상세 == 1911년 [[경상남도]] [[함양군]] 출생. 도쿄의 아자부수의학교[* 현 아자부대학]에 유학하였으나 [[수의학]]에서 [[의학]]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1938년]]에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의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해방 당시까지 일제 치하 [[경성부]]에서 전 내과의원을 개업하여 의사로 활동하였다. [[8.15 해방]]을 맞아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 편입[* 동기로 [[구태회]] 전 국회부의장, 차기벽 전 성균관대 명예교수 등이 있다.]한 그는 [[1949년]] 졸업 후 [[고등고시]]에 응시하였으나 당시 치러진 고시에서는 낙방하였다. 이후 [[6.25 전쟁]] 발발로 [[대구광역시|대구]]로 피난간 그는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한편 고등고시 수험을 계속하였고, [[1955년]] 제7회 [[고등고시]]에서 46세의 나이로 행정과와 사법과에 동시 합격하였다.[* 최고령 합격] 합격 후 법관으로 임용된 그는 서울지방법원[* 1950년대에는 서울 각 지방법원이 당시에는 단일한 법원이었다.], 서울형사법원[* 60년대에 민사법원과 형사법원으로 분리]에서 판사로 재직하였는데 이는 최초의 의사 출신 법관이기도 하다. 법관 활동을 하면서도 의학 연구를 계속하였는데, [[1965]]년에는 54세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내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7년]] 변호사로 개업하였고, 서울의사회 법률고문, 의료관계 판례연구 서적 출판 등 의학 지식을 갖춘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81년]]에는 늦깍이로 본 전공인 [[정치학]]을 살려 무소속으로 70세에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짧은 정계활동을 은퇴한 후에는 서울라이온스 총재, 국제라이온스 부총재,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동창회장을 역임하는 등 사회활동에 주력하였으며, 말년에는 다시 의사로 돌아와 전병원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2007년]] 별세. [[분류:1911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분류:함양군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의사]][[분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