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한자 '재 령', rd1=嶺)] [include(틀:황해남도의 시군)] {{{+1 載寧郡 / Jaeryŏng County}}} ||<table align=right><-2> {{{+2 재령군}}} [br] 載寧郡 / Jaeryŏng County || || 국가 || [[북한]] || || 광복 당시 면적 || 739㎢ || || 광역시도 || [[황해남도]] ||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1읍 10면 || || 시간대 || UTC+9 || ||<-3><:> [include(틀:지도, 장소=황해남도 재령군)] || [목차] == 개요 == 재령군(載寧郡)은 [[북한]] [[황해남도]] 동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황해북도]] [[은파군]], [[봉산군]], [[사리원시]], 서쪽으로 [[신천군]], 남쪽으로 [[신원군]], 북쪽으로 [[안악군]]과 접해 있는 군이다. == 역사 == [[고구려]]의 삼경 중 하나인 '한성(漢城)'으로 유력한 곳이다. --[[서울특별시]]?--[* 아닌게 아니라 두번째로 유력한 학설이 현재의 서울이라는 학설이다. 또 원래 서울이었다가 나제동맹에 밀려 서울 지역을 잃으면서 재령으로 한성이 옮겨졌다는 학설도 있다.]이 때는 놀랍게도 '''[[평양직할시|평양]]''', [[국내성]]과 견줄 만한 도시였던 것. 현재에 비유하자면 '''최소한 현재의 [[광역시]]급'''이었던 곳이다. 이 때문인지 과거 ‘한성(漢城)’ 또는 ‘한홀(漢忽)’로 불리던 기록이 있고, 고구려의 도시 유적지가 나온 바 있다.[[http://terms.naver.com/entry.nhn?cid=46620&categoryId=46620&docId=794347&mobile|#]] 실제로 [[안승]]과 [[검모잠]]은 이 곳을 근거지로 삼아 고구려부흥운동을 펼친다. 재령(載寧)이라는 이름은 [[고려]] 시대인 1217년에 붙었는데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이다. 장수산성이 있다 하여 성(城)의 옛말인 재로부터 유래하여 재령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공양왕 2년부터 [[경기도]]에 속했지만 새 수도로부터 너무 멀단 이후로 태조 3년에 도로 서해도로 복귀했다고 한다. 광복 이후 국토가 분단되면서 북한 땅이 되었다. 1952년에 북한이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군의 남부 지역(신원면, 하성면, 상성면, 은룡면 일부)을 분리하여 [[신원군]]을 신설하면서 면적이 축소되었다. == 교통 == 도로는 [[51번 국도]]와 [[54번 국도]](대한민국 기준)가 지나간다. 철도는 [[은률선]]이 지나가며 [[금산역]], [[재령역]]이 있다. == 지리 == 동쪽으로 [[재령강]]이 흐르며 은파군, 봉산군, 사리원시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군의 대부분은 재령평야 지대이다. 재령평야는 [[삼국시대]]에는 대부분이 [[만(지리)|만]](灣)이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재령만의 융기와 재령강, 서강, 은파천 등의 지속된 퇴적작용으로 인해 습지로 바뀌었다. 이를 조선 [[인조]] 대부터 개간하기 시작하면서 원래 만이었던 재령평야가 오늘날의 곡창지대로 탈바꿈하였다. 때문에 재령평야에서는 해발 20m 넘는 곳이 드물고 만조시에는 해발 -3m가 되는 곳도 있다. 지명 중 '김제원리'(金齊元里)라는 곳이 있는데 원래 '대홍리'였던 것을 1961년에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 지역 출신인 '김제원'이라는 농민이 북한의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를 분배받게 되었다는 것에 감격하여 수확한 쌀 30가마니를 북한 공산주의 정권에 바쳤다는 --하지만 얼마후 집단농장 몰수 크리-- 이른바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599&docId=571977&mobile&categoryId=1599|애국미헌납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정숙군]]이나 [[김형직군]], [[김형권군]]급의 병맛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주도의 [[남북통일]]이 되면 당연히 갈아치워야 할 명칭 되겠다. ==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 [include(틀:황해도의 하위행정구역)] [[파일:재령군기.png|width=50%]] || [[파일:재령군.jpg]] || 광복 당시 1읍 10면 * '''재령읍'''(載寧邑) * 관할 리 : __일신(日新)__, 고산(孤山), 국화(菊花), 남정(楠亭), 내야(內野), 문창(文昌), 벽산(碧山), 봉천(蓬泉), 부성(富城), 석정(石井), 수창(壽昌), 신대(新垈), 신정(新井), 양산(陽山), 유화(柳花), 임천(林泉), 한천(漢川), 향교(鄕橋) * 일신리에 군청과 읍사무소가 있었다. * '''남률면'''(南栗面) * 관할 리 : __해창(海昌)__, 강교(江橋), 고잔(古棧), 내림(來臨), 방성(方盛), 신연(新延), 야두(野頭), 좌곡(左曲), 진곡(津曲) * '''북률면'''(北栗面) * 관할 리 : __장하(長河)__, 강서(江西), 굴해(屈海), 남지(南芝), 내종(內宗), 대홍(大洪), 동신흥(東新興), 무상(武尙), 북지(北芝), 서신흥(西新興), 석포(石浦), 석해(石海), 신지(新地), 쌍교(雙橋), 진초(進礎) * 전술된 '김제원리(옛 대홍리)'가 이곳에 있다. * '''삼강면'''(三江面) * 관할 리 : __청룡(靑龍)__, 광탄(廣灘), 금산(金山), 당원(堂院), 상해(上海), 설산(雪山), 용소(龍沼), 은산(銀山), 은정(銀井), 학교(鶴橋) * '''상성면'''(上聖面) * 관할 리 : __청석두(淸石頭)__, 관암(冠巖), 병암(屛巖), 상신(上新), 수원(水院), 신촌(新村), 월당(月堂), 율라(栗羅), 중곡(中曲), 천정(泉井) * '''서호면'''(西湖面) * 관할 리 : __신환포(新換浦)__, 무덕(武德), 석산(石山), 신전(新田), 신탄(新灘), 신호(新湖), 왕현(旺峴), 작도(鵲島), 재천(財泉), 창석(昌石) * '''신원면'''(新院面) * 관할 리 : __신원(新院)__, 가국(佳菊), 가려(佳麗), 계남(桂南), 기양(岐陽), 무학(舞鶴), 백우(白隅), 송림(松林), 송학(松鶴), 신대(新貸), 신정(新亭), 염탄(鹽灘), 원고(元古), 화석(花石) * 북한 행정구역상 [[신원군]] 옛 소재지. * '''은룡면'''(銀龍面) * 관할 리 : __신창(新昌)__, 구련(龜蓮), 봉오(鳳梧), 서창(西倉), 석탄(石灘), 수남(壽南), 신덕(新德), 신유(新鍮) 옥현(玉峴), 용지(龍池), 운양(雲陽), 창전(蒼田) * '''장수면'''(長壽面) * 관할 리 : __장국(墻菊)__, 동락(東洛), 동림(東林), 두목(杜木), 서림(西林), 서원(書院), 식성(食城), 양계(陽溪), 양현(凉峴), 용천(龍泉), 용평(龍坪), 재궁(齋宮), 천마(天麻), 청천(淸泉), 학현(鶴峴) * '''청천면'''(淸川面) * 관할 리 : __부덕(富德)__, 곤산(崑山), 망월(望月), 부천(富泉), 송암(松巖), 신곶(新串), 양대(陽垈), 원내(垣內), 청천(淸川) * '''하성면'''(下聖面) * 관할 리 : __아양(峨洋)__, 갈산(葛山), 검촌(儉村), 대청(大廳), 덕현(德峴), 벽화(碧花), 삼학(三鶴), 송향(松香), 신덕(新德), 영월(靈月), 용호(龍湖), 운대(雲垈), 입암(立巖), 장금(長錦) * 북한 행정구역상 신원군 현 소재지. == 기타 ==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선생이 여기 출신이며 공부는 [[해주]]에서 했다. 재령군의 한자 표기 '載寧郡'에서 '寧'의 본음은 '녕'으로 원래대로라면 '재녕군'이라고 읽어야 하지만 [[활음조 현상]]에 따라 '재령군'이라고 읽는다. 비슷한 사례로 [[보령시]], [[의령군]], [[부령군]], [[회령군]] 같은 사례가 있다. [[분류:황해남도]][[분류:나무위키 북한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