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youtube(FXMsSm3OuFw)] わんぱく王子の大蛇退治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1963년 3월 24일 개봉한 극장판 영화 애니메이션. 감독 세리카와 유고(芹川有吾). 연출 보조 [[타카하타 이사오]], 야부키 키미오(矢吹公郎). 작화감독 [[모리 야스지]].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하러 가는 일본 신화를 동화처럼 각색해서 만들었다. 제작비 7000만 엔. 총 스태프 180 명. 작화 매수 25만 장 [* 비교 대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조차도 14만 장을 썼는데 이것도 엄청나게 많이 쓴 것이다. 25만 장의 그림이 들어간 애니메이션을 지금 돈으로 만든다면 70억 엔 이상의 제작비가 필요할 것이다.], 그림물감 1 톤이 사용된 희대의 애니메이션. 거의 24 풀프레임으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당시 일본의 인건비가 싸서 이 정도의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나올 수 없는 작품.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정점에 달한 작품으로 꼽힌다. 지금 봐도 우수한 작품이다. 당시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은 대충 애니메이터가 그린 걸 모아서 짜맞추면 된다는 주먹구구 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세리카와 유고는 그러면 안 된다면서 자신이 직접 작품 전체의 컨셉과 질을 관리하는 감독 일을 했고 사실상 일본 애니메이션의 감독 시스템이 이 작품부터 자리잡게 된다. [* 아주 최초는 아니고 그 전에도 총괄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는데 방식이 확립되기 전이라 그때그때 하는 일이 달랐다.] 또한 작화 분량이 많아 전부 관리할 순 없었으므로 세리카와가 [[콘티]]를 그리고 타카하타 이사오와 야부키 키미오가 현장을 지휘하며 [[연출]] 보조를 하는 시스템도 여기서 정립되었다. 그리고 [[원화]]를 [[작화감독]]이 수정해서 그림체와 분위기를 통일시킨다는 작화감독 제도가 최초로 도입된 작품으로 [* 이 작품에선 원화감독이라고 하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신''' [[모리 야스지]]가 작화감독을 맡았다. [[오오츠카 야스오]]가 원화를 그리고 츠키오카 사다오(月岡貞夫)가 동화를 그려넣은 클라이막스 전투신은 원화 300컷, 동화 1만장이 사용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면이다. 오오츠카 야스오는 자신의 인생 최고의 작화로 이 장면을 꼽으며 다시는 그릴 수 없다고 회고하였다.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작 방식을 확립한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 이후로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작품이 나온 1963년은 [[철완 아톰]], [[철인 28호]]도 제작되어 일본 애니메이션 사의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되었다. 여성 애니메이터 [[오쿠야마 레이코]]가 원화로 참여했으며 오쿠야마 레이코를 모델로 한 드라마 [[나츠조라]]에 언급되기도 한다. 저작권 문제로 이름은 살짝 변경. [[카타부치 스나오]]는 이 작품을 보고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왜색이 짙어서 한국엔 한 번도 수입 및 방영되지 않아 인지도가 낮다. 2020년 2월 4K 화질로 복원되어 블루레이 박스가 발매되었다. [[분류:일본 애니메이션/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