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2.bp.blogspot.com/252525.jpg]] ~~라이더 잠롱 옹~~ [목차] == 개요 == 잠롱 스리무앙( จำลอง ศรีเมือง)[* 중국명 盧金河(루진허)] [[1935년]] [[7월 5일]]~ [[태국]]의 [[군인]], [[정치인]]. 前 [[방콕]] 시장. 국립국어원의 [[태국어]] 표기 세칙에 의하면 '짬롱 시므앙'으로 표기된다. == 생애 == 태국 [[방콕]] 옆에 있는 톤부리의 [[화교]] 마을인 삼레에서 태어났다. 한 살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다가 출라촘클라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62년]]에 [[태국군|태국 육군]] 정보부에서 정보 장교[* 일선의 야전 장교와 달리, 해외 유학도 갈 수 있고 뭔가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아 선택했다고 한다.]로 근무하고 [[1970년]], [[미국]]에 유학을 가 육군 행정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에 육군 [[중령]]으로 크리앙삭 수상의 비서를 지냈고 [[1978년]]에 상원 의원을 지내다가 [[1979년]]에는 프렘 수상의 비서 실장을 지냈다. 비로소 [[1985년]], [[전역]]과 동시에 초대 방콕 민선 시장에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나랏일에 힘썼다. 최종 계급은 [[소장(계급)|소장]]. 그는 월급을 자신이 쓰지 않고 전부 자선 단체에 기부하였고, 비가 오면 물난리를 겪는 방콕의 하수도, 도로 정비를 하고 24시간 이내에 침수를 막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건강과 일자리를 위해 힘썼고, 시장과 채식 가게[* 그는 태국인답게 독실한 [[불교]] 신자로,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살아가는 [[채식주의자]]이다.]를 차리고 부정 부패를 없앴다. [[1988년]]에는 팔랑탐 당을 창설해 당수에 취임했고 [[대한민국]]의 가나안 농군 학교의 일가 재단에서 주는 일가 기념상 사회 공익상을 받았다. [[1992년]]에는 반군사 독재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 군부와 반대 세력의 공격을 막기 위해 팔랑탐 당 당수직에서 물러나고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민주화가 된 뒤 8월, [[막사이사이상]] 사회봉사부문을 수상하고, [[1994년]]에 태국 연립 정부의 부총리에 오르고 [[1996년]]부터 팔랑탐 당 당수직에 복귀해 국민들을 위해 힘 쓰던 중 3번째 방콕 시장에 도전했다가 낙선하여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그래도 정계 은퇴 이후에도 탁신을 지원해서 총리로 만들어주는데 공헌했다.[* 참고로 그 [[탁신 친나왓]]이 맞다! 90년대 중반에 탁신을 천거해서 정계로 영입시킨 사람도 바로 잠롱이고 2001년 총선때 선거운동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에 갈라져서 현재는 탁신과는 원수지간이라고...] == 기타 == '''[[청백리]]의 대명사'''라 해도 손색이 없는 인물로 방콕 시장 시절, 거리를 깨끗이 하고 부정부패를 쓸어내어 태국어로는 '나이시안', 영어로는 '미스터 클린(Mr. Clean)'으로 불리었다. 한국에서는 1990년 4월에 [[문화방송|MBC]]가 방콕 현지에서 촬영해 제작한 '인간시대'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태국의 청백리 시장'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그 해 10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시사저널]]의 공동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해 당시 [[국무총리]]였던 [[강영훈]], [[서울특별시장]]이었던 [[고건]]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과 면담하고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후 1995년까지 경실련 등 [[비정부기구|NGO]]의 초청과 명예 학위 수여식 등으로 거의 매년 한국을 찾았는데, 특히 태국 농업 기술 발전을 위해 [[강원도]] [[원주시|원주]]에 있는 가나안농군학교에 입교해 [[유기농]] 농법을 비롯한 농업 기술을 직접 배우기도 했다. 잠롱과 그의 의형제인 한국인 김영성이 쓴 수필과 시를 모은 책인 '잠롱과 짬렁'이 1994년에 국내에 출판된 바가 있다. [[분류:태국의 정치인]][[분류:태국의 군인]][[분류:1935년 출생]][[분류:중국계 태국인]][[분류:베트남 전쟁/군인]][[분류:군인 출신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