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000><-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60C30 20%, #003478)" {{{#FFFFFF ''' 임성민의 주요 수상 이력 ''' }}} }}} |||| ||<#ffffff><-1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002266><#002266><-5><:> {{{+1 '''{{{#white '''역대'''}}} [[청룡영화상|[[파일:bluedragonfilmawards_logo.png|width=120]]]]'''}}} || ||<#FFFFFF><-5><:> [[파일:bluedragonawards3.png|width=30]] || ||<#002266><-5><:> [[청룡영화상/남우주연상|{{{#white '''남우주연상'''}}}]] || ||<width=30%><#E0FFFF><:> ''' 제11회 [br] ([[1990년]]) ''' ||<#E0FFFF><:> {{{+1 → }}} ||<width=30%><#E0FFFF><:> ''' 제12회 [br] ([[1991년]]) ''' ||<#E0FFFF><:> {{{+1 → }}} ||<width=30%><#E0FFFF><:> ''' 제13회 [br] ([[1992년]]) ''' || ||<:> [[안성기]][br]([[남부군(영화)|남부군]]) ||<:> {{{+1 → }}} ||<:><#fff> '''{{{#000 임성민[br]([[사의 찬미#s-4]])}}}'''||<:> {{{+1 → }}} ||<:> [[문성근]][br](경마장 가는 길) || ||<#002266><-5><:> || }}} || [[파일:external/file.koreafilm.or.kr/tn_DSHT047870.jpg]] [[1956년]] [[2월 25일]] ~ [[1995년]] [[8월 20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배우]]로, [[본명]]은 임관배다. [[숭실고등학교]] 시절에는 육상선수로 활동했고, [[건국대학교]] 체육학과를 다녔으나 중퇴 후 [[1977년]] [[JTBC]]의 전신(前身)인 [[동양방송|TBC]]의 1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고, 1980년 언론통폐합 후 KBS로 배치돼 1982년 <TV 문학관> '바라암'에서 삭발을 한 채 주연으로 나와 처음 주목받았다. 1980~1990년대 미남 배우로 잘 알려졌으며, 잘 생긴 얼굴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물론 용모만이 아니라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도 평가를 받아 왔다. 1986~1987년 KBS 대하드라마 '[[노다지#s-6|노다지]]'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았으며, [[주식회사 LF|반도패션]]의 전속 모델로도 활동했다. 1980년대 중후반 에로영화 --요즘 수위로는 애들영화-- 의 간판급 배우로 주로 바람둥이 혹은 남창(지골로) 역할을 주로 맡았다. "달빛 멜로디"에 이은 두 번째 에로영화인 "탄드라의 불"에선 여주인공와의 [[베드신]] 때 부끄럼을 타서 자신의 주요부위(?)를 두손으로 가렸다는 순진하고 풋풋한 에피소드가 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영화로는 "색깔있는 남자"와 "[[무릎과 무릎사이]]"를 들 수 있다. 이후 에로영화는 1989년 "애란"[* [[박영규(배우)|박영규]], 김구미자, 진희진 등과 함께 출연했다. 일제시대 독립투사로 나와 일본인 자매인 김구미자, 진희진과 정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을 끝으로 이후엔 노출도가 없는 영화만 찍었다. 얼굴이 아주 멋지고 키까지 큰 데다 연기도 곧잘하는 배우라 월등한 비주얼로 많은 여심을 사로잡았다. 다만, 벗어서 유명해진(?) 배우라는 프레임만 씌우는 것도 부당한 게, 1986년 '장사의 꿈'으로 [[백상예술대상]] 남자신인연기상, 1991년 '[[사의 찬미#s-4]]'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연기력이 있는 편이었다. [[드라마]]에서도 한때는 [[선역]]보다 [[악역]]을 자주 맡아서 한동안은 [[비호감]] 인상이었다.[* '푸른 해바라기'에선 절친의 여친을 탐하는 역할, '황금의 탑'에선 크게 도약해서 절친을 죽이고 약혼녀를 빼앗는 무자비한 역할을 맡았다. 두 드라마 모두 메인 남주인공은 [[홍요섭]].] 그러나 당대 최고의 유행어 "잘났어 정말"을 탄생시킨 염현섭 연출, [[고두심]] 주연의 드라마 '사랑의 굴레'에서 젠틀하고 유능한 데다 발군의 비주얼 "고실장" 역할을 맡아 고두심, 노주현, 김미숙 등 주연들과 스토리를 이끌어 가면서 급호감으로 대반전을 이루게 되었다. 여기서 극중 의부증 쩌는 고두심의 노골적인 추파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전국 아줌마들의 지지도 No.1으로 급상승 하며 이후 서브남주에서 메인남주로 격상되었다.[* 당시 드라마 한편으로 떠서 아줌마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배우로는 '내일은 잊으리'의 [[박영규(배우)|박영규]]와 '[[엄마의 바다]]'에 나온 [[독고영재]]가 있었다.] 1992년 <억새바람>을 시초로 MBC에서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1990년]]에 만성 [[간염]]을 앓게 되었고, [[1993년]]에는 [[문화방송|MBC]] 드라마 "폭풍의 계절" 출연 도중에 간질환으로 쓰러져 투병하기도 했다. 결국 [[1995년]] 5월 드라마 출연 도중 갑자기 쓰러져 투병하다가 [[간경변|간경화]]로 결국 [[8월 20일]] 저녁 [[서울특별시|서울]] [[서초구]] [[강남성모병원]][* 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같은 시기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부상자들도 이 병원에서 수용되어 있었다.]에서 향년 3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며, 사후 충청남도 예산군 선영에 묻혔다. 그런데 그는 [[1995년]] 당시 [[SBS]] 드라마 '고백', [[문화방송|MBC]] 드라마 '사랑과 결혼'에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었고, [[김호선]] 감독과 [[김청]] 등과 함께 [[멕시코]] 올 로케로 찍고 있었던 영화 '[[애니깽]]'[* 미완성 상태에서 대종상을 받아 논란이 된 그 작품 맞다. 1997년 12월에 지각 개봉했다.]도 촬영 중이었다..... 당시 간 이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고 하였지만, 간 이식을 받지 못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가 건강 악화로 하차하면서 '사랑과 결혼'은 [[손창민]]이 그의 대타로 출연하였으며 결국 이 드라마는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당시 그가 전속모델로 활동하던 신원에벤에셀의 남성복 "모두스 비벤디"의 광고모델은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정보석]]으로 모델이 교체되었다. 월간 영화잡지이던 스크린의 [[1986년]] 3월호 기사 중 "2000년대에 대한 미래는?" 이라는 기사의 인터뷰에서 "...[[미중년|난 중후하게 늙고 싶으며]] ....외모보단 연기력으로 평가받고 싶다. [[넷플릭스|미래에 독자들이 컴퓨터 버튼 하나로 영화를 볼 시대가 올지 모르지만]], 넓은 화면에서 영화를 보는 게 매력이다." 라는 말을 했다. ~~30년을 앞선 선구안~~ 슬하에 1녀를 두고 있었는데, [[1984년]]에 [[이혼]]했다. [[딸]]은 임성민이 키우고 있었고, 전처는 [[미국]]에서 생활했었다. 그로부터 21년 뒤 큰 키와 귀공자 느낌의 잘 생긴 얼굴을 가진 비슷한 느낌 배우로 [[김성민(1973)|김성민]]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은 그쪽도 43살에 요절하였다.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에서 사망한 것도 같다.[* 다만, 이쪽의 사인은 [[자살]] 기도로 인한 뇌손상. 사후에 장기 기증되었으며, 생전에 [[마약]] 혐의로 구속된 전적이 있다.] == 관련 문서 == * [[배우/한국]]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임성민, version=43)] [[분류:한국 남배우/ㅇ]][[분류:1956년 출생]][[분류:1995년 사망]][[분류:건국대학교 출신]][[분류:간경변으로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