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민중가요, rd1=인터내셔널가, other2=미국의 트럭 메이커, rd2=나비스타 인터내셔널)] [목차] == 개요 == [[사회주의]] 단체의 국제적 조직. 공식명칭은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이지만, 일반적으로 첫 단어만 빌려와서 인터내셔널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 탄생 == 19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유럽 전역에는 [[산업혁명]]의 물결이 가속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과 사회주의 이념 역시 점차 발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계급 의식의 성장은 여전히 미약한 상황이어서 기껏해야 같은 직종에 국한되고 있는 판국이었다.[* 예를 들면 같은 프랑스 안에서조차 광부들과 철도 노동자들이 같은 노동계급이라는 의식이 별로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같은 광부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서로 편가르기가 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어렵사리 파업과 같은 계급 투쟁 운동이 성사된 경우에도, 자본가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쉽사리 어려움을 극복하곤 하였다.[* 가령 독일 지역의 경우에는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이주해온 노동자들을 주로 고용했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언어가 똑같은 벨기에 출신 노동자들을 애용했다.] 이에 따라 보다 효율적인 계급투쟁을 위하여 국제적인 단위의 사회주의 조직을 결성할 필요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갔고, 1863년 1월 발생한 폴란드의 독립 항쟁을 기념하기 위한 명분으로 같은 해 7월 영국 런던에서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이 회합을 갖는다. [[칼 마르크스]]에서 부터 오언주의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푸르동주의자]],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블랑키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파의 좌파 세력[* 마르크스에 따르면 [[공상적 사회주의]].]이 모인 이 회합을 통하여 마침내 국제노동자협회가 탄생하게 된다. == 역사 == === 제1차 인터내셔널(1864-1876) === 1차 인터내셔널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은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였다. 특히 마르크스는 창립선언을 비롯한 주요 문서를 작성했다. 1차 인터내셔널은 1872년까지 6차례 대회를 열었으며, 이를 통해 노동조합운동을 비롯하여 지금까지도 실행되고 있는 계급투쟁의 기본적인 운영 방안이 정립됐다. 또한 1일 8시간 노동, [[보통선거]]권 쟁취 운동, 민족 자결주의 지지 등의 활동도 병행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부터 [[무정부주의]], 오언주의, 푸르동주의 등 온갖 다양한 세력이 이합집산했던만큼 1차 인터내셔널은 1864년에서부터 1876년에 이르는 12년의 존속 기간 내내 다양한 분파들간의 치열한 헤게모니 다툼을 겪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던 것은 카를 마르크스가 이끄는 마르크스주의와 [[미하일 바쿠닌]]이 이끄는 무정부주의 세력이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즉각적인 혁명을 통한 체제 전복을 주장하였던 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역사적 발전단계에 입각한 점진적인 체제 개혁]]을 주장하였고, 투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바쿠닌을 비롯한 무정부주의 세력은 인터내셔널에서 축출되어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조직을 결성한다.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인터내셔널을 장악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등장을 목도한 유럽의 각국들은 공산주의 체제의 등장에 대해 진지하게 공포심을 느끼기 시작했고, 인터내셔널을 비롯한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적극적인 탄압을 실시한다. 1876년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기로 예정됐던 7차 인터내셔널 대회가 미국 당국의 탄압으로 무산된 것이 가장 단적인 예. 또한 마르크스 본인 역시 다른 좌파 세력들과의 오랜 [[키보드 배틀]]에 지쳐 인터내셔널 초창기만큼의 열정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1876년 1차 인터내셔널은 해체된다. === 제2차 인터내셔널(1889-1916) ===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 창설되었다. 1차 인터내셔널을 이끈 칼 마르크스는 이미 6년전이었던 1883년에 사망했고, 이에 따라 마르크스의 사상적 동지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2차 인터내셔널의 이념적인 기반을 뒷받침해주었다. 총평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가졌던 1차 인터내셔널과 달리, 2차 인터내셔널은 각국의 노조 및 사회주의 정당들의 느슨한 ~~친목질~~ 연합체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산업화가 서서히 마무리되어가던 당대 유럽의 사회적 배경과 결부되어 2차 인터내셔널은 세계 곳곳에 사회주의 운동을 성장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1차 인터내셔널만큼은 아니었지만 2차 인터내셔널 역시 정치적 노선을 둘러싸고 상당한 내홍을 겪는다.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제국주의]] 및 독점자본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고,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하여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기 때문.[* '무리하게 유혈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사회 실현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어차피 산업화가 진행중인만큼 노동자가 전체 사회의 51%가 되어 과반을 차지하게 되면 그 때 우리가 정권을 자연스레 잡고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어도 늦지 않다.'라는 온건 수정주의가 2차 인터내셔널 안에서 대세를 차지했다. ~~하지만 [[계급배반투표]]가 일어난다면?!~~ 참고로 이러한 수정주의에 대하여 [[독일 사민당]]의 정신적 지주였던 [[카를 카우츠키]]는 '''"우리 당은 (이념적으로는) 혁명적이지만, (실제행동은) 혁명적이지 않다."'''라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안철수....?~~][* 현실 사례를 보자면 [[핀란드]]에서 유일하게 [[핀란드 사회민주당]]이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선거로 200석 중 103석 51%를 달성했지만 우익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핀란드 내전]]이 터졌다.] 그리고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이 2차 인터내셔널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민족]]과 [[계급]]의 선택길에서 제2인터내셔널을 이끌던 쌍두마차 독일 사민당과 프랑스 사회당은 나란히 민족을 선택했고[* 특히 독일 사민당(SPD)의 경우 전쟁 발발 직전에 전비 조달을 위한 국채 발행 안건에 대해 찬성을 당론으로 정했다가 2차 인터내셔널 회의장에서 푸짐하게 욕을 얻어먹는다.], 1차대전의 발발과 동시에 제2인터내셔널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가 1916년 결국 해체된다. 다만 '선거등의 합법적 수단을 중심으로 한 점진주의적, 개혁주의적 사회주의 노선'(흔히 말하는 [[사민주의]], 또는 [[민주사회주의]] 노선)이라는 정치적 정체성과 각국의 노조 및 사회주의 정당들의 느슨한 연합체라는 조직 구성상의 특성을 가진 국제조직의 명맥 자체가 1916년에 단절된 것은 아니다. 1916년 해체되었던 제 2 인터내셔널의 경우 제 3 인터네셔널([[코민테른]])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1920년 재결성되었고, 이후 1921년 제 2 인터내셔널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제 3 인터네셔널에도 반대하여 통칭 2.5 인터내셔널이라고 불린 사회당 국제노동연맹(International Working Union of Socialist Parties)이 결성되었다가 1923년 제 2 인터내셔널과 합병되는 등, 제 2 인터네셔널을 재건하기 위한 시도 자체는 20년대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것. 그러나 20년대의 제 2 인터내셔널 재건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이후 약 20년간 합법적 개혁주의 노선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활동은 중단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47년 국제 사회주의자 회의 위원회(Committee of the International Socialist Conference)의 결성으로 제 2 인터내셔널의 재건 시도가 다시 시작되고 결국 51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의 재건에 이르게 되는 것. 물론 51년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과 1889년의 제 2 인터내셔널을 같은 조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자신이 제 2 인터내셔널의 후계조직임을 자처하고 있고 성향 및 노선의 공통점을 생각한다면 계승자 정도로는 인정해 줄 만 하다. 이 계승성을 인정할 경우, 60년대 후반의 전성기에는 서유럽의 부유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20개에 육박하는 국가에서 가맹 정당이 정권을 차지했고, 21세기 이후에도 나름 강력한 조직으로 남아있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을 통해 그나마 역사적 전통과 흔적이 잘 보존된 사례로 볼 수도 있는 것. 자세한 내용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참고. === 제3차 인터내셔널(1919-1943) === * [[코민테른]] 문서 참고. === 제4차 인터내셔널(1938-1963) === 4차 인터내셔널은 스탈린의 [[코민테른]]에 대항하여 [[트로츠키주의]]자들이 1938년에 만든 인터내셔널이다. 4차 인터내셔널의 상징인 좌우가 상반된 낫과 망치덕에 숫자 4를 연상시키어 4와 낫과 망치가 겹쳐진것이 로고이다. == 같이 보기 == * [[코민테른]]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 [[자유주의 인터내셔널]] * --[[붉은 라인|인터스테이셔널]]-- == 영화 == [youtube(H6_WKbMqrRQ)] [[분류:사회주의]][[분류:정치 조직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