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탈리아 왕국의 식민지)] ||||<tablealign=right> '''{{{+1 이탈리아령 톈진 조계}}}[br]Concessione italiana di Tientsin''' || |||| [[이탈리아 왕국]]의 식민지 || ||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width=13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71px-Coat_of_arms_of_the_Kingdom_of_Italy_%281890%29.svg.png|width=60]] || || 국기 || 휘장 || |||| [[파일:톈진 조계.jpg|width=260]] || |||| 연두색이 이탈리아의 구역. || |||| 1902년 ~ 1943년[* 1943년 [[일본군]]의 점령으로 사실상 해체되었고 1947년 [[파리 조약]]에 따라 정식으로 [[중화민국/국민정부|중국]]에 반환되었다.] || || 위치 ||[[톈진시]]|| || 수도 ||[[톈진]]|| || 정치체제 ||[[이탈리아 왕국]]의 [[조차지]]|| || 국가원수 ||이탈리아 국왕|| || 정부수반 ||주지사|| || 언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 성립 이전 ||[[청나라]]|| || 멸망 이후 ||[[왕징웨이 정권]]|| [목차] == 개요 == 현 [[중국]] [[톈진시]]에 위치한 [[이탈리아 왕국]]의 [[조계]]지 형태의 [[식민지]]였다. 0.458km² 정도의 조그만 영토였다. 이탈리아에서 파견한 주지사가 다스렸다. == 역사 == [[의화단 운동]] 당시 [[이탈리아 왕국군|군대]]를 보내서 [[청나라]]를 굴복시킨 일원 중 하나인 [[이탈리아 왕국]]은 1901년 9월 7일 톈진의 일부를 [[조계]] 형태로 넘겨받았다. 1902년 6월 7일부터 이탈리아가 이곳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령 톈진은 외무부 관할이었다가 1912년 식민부가 들어서며 식민부 관할이 되었다. 1918년 [[시베리아 내전]]에 이탈리아가 개입할 때 이곳을 물자 운송 거점으로 쓰이기도 했고, 일부 [[해군]]을 배치시켰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인 1943년 [[이탈리아 왕국]]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실각하고, [[피에트로 바돌리오]]의 내각이 들어서 [[연합국]]으로 전향했다. 그러자 이미 이탈리아령 톈진 주위의 모든 지역을 점령한 [[일본군]]이 곧바로 점령해 버리고, 일본의 [[괴뢰 정권]]인 [[왕징웨이 정권]]의 관할 구역이 되었다. 동년 [[이탈리아 반도]] 북부에 [[나치 독일]]의 괴뢰 정권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 출범했고, 왕징웨이 정권에게 공식적으로 이 지역의 영유권을 포기함을 선언했다.[* 그러나 어차피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은 [[추축국]]만 승인한 [[미승인국]]이라 이런 선언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1945년 [[일본 제국|일제]]가 패망하자 [[국민정부]]가 이곳을 차지하게 되었고, 1947년 [[파리 조약]]이 체결되며 국제적으로 중국 영토임을 승인받았다. == 현재 == 지금은 이타리지애(意大利街), 이스펑칭지에(意式风情街)라 불리며 현재도 당시 지어진 건물이 남아 있다. [[중국]]의 풍경과는 다른 이탈리아식 건물이 늘어선 독특한 분위기 덕에 톈진의 유명관광지가 되었다. == 관련 문서 == *[[이탈리아 제국]] *[[톈진시]] [[분류:이탈리아의 식민지]][[분류:중국의 조차지]]